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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일 21시 13분 등록
"살아가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우리는 감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일상의 신비에 대해 더이상 경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 가로수 하늘거리는 잎파리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과 살랑거리는 실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젊은날의 그대는 더이상 없다. 땅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탄성을 지르며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우리는 이제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은 왜 이다지도 무미건조하게 바뀌어버린 것인가. 세상은 거기 그대로 있을뿐 바뀐 것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은채 타고 남은 하얀 연탄재처럼 푸석푸석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가슴 떨리던 환희는 언제 벗어던진 것인지조차 알수 없이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옷가지들보다 못한 익숙함과 진부함으로 변해 버렸다. 일상은 더이상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들에 너무나 많은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수많은 광고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문명의 이기들, 그리고 속도가 미덕으로 숭배되는 세상 그 속에 우리의 삶이 놓여있다. 이제는 무엇이 본연의 내 자리에 있던 것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더 새로운 것, 더 빠른 것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었다. 고 신영복 선생은 그의 저서 <강의>에서 '아름다움'이란 우리 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찬미한다. 구식이라는 단어는 신식의 반대말이라기보다는 구닥다리라는 후진 단어와 동급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새로운 것이 끝없이 필요하다. 결승선이 없는 경주를 끝내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얼마전 절친했던 대학친구 아내의 부고를 접했다. 난데없는 소식에 가슴을 추스리며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몇년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유방암이라고 했다. 조기에 발견하지 못 했던 이유는 둘째아이를 출산하면서 모유수유를 하는 통에 가슴에 생긴 암덩어리를 젖멍울로 착각했다고 했다. 모유수유가 암의 진행을 급속화시킨것으로 보였다. 지 엄마가 자신의 삶과 맞바꿔 낳은 아이는 이제 겨우 2살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일상은 무거운 절망 속에 가로놓여 있었다. 단지 힘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상황 역시 익숙한 일상으로 바뀌기만을 바랠 뿐이었다. 하나의 인생을 갈가리 찢어놓는 이런 사건에 비하면, 우리가 겪는 일상의 불만과 걱정거리들은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힘겨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사랑하기도 모자란 지금 이 순간을 불평하며 보내야 하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귀가길, 아파트 입구에서 올려다본 집 베란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의 일상은 거기에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세상 역시 그대로 거기 있었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은채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던 그 나무도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새로움을 느낄때 정작 새로운 것은 우리의 마음일뿐이다. 우리 가슴속 변하지 않은 사랑에 대해 김용택 시인은 말한다. 

"인생은, 사랑은 시든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김용택 '첫사랑'

다시 가로등 위 불 켜진 나의 일상을 바라본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눈부신 나의 일상이다. 지금 그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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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23:12:54 *.124.22.184

이번 칼럼은 찡하네요.  우리의 심심한 일상이 감사한 일이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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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10:58:30 *.62.188.207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깊은 울림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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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11:07:22 *.48.44.227

친구분에게 정말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할까요.  애기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누군가 그 가족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이웃을 많이 만나 조금이라도 슬픔을 이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던 바울의 절규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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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6 08:17:20 *.148.27.35
일상의 황홀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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