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ggumdream
  • 조회 수 94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7년 10월 2일 09시 43분 등록

#20. 군대 이야기 I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갔다 와야 되는 곳이 있다. 바로 군대이다. 군 복무기간은 정권이 바뀌면서 변화를 해왔는데 최초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군에 상관없이 36개월인 3년이었다. 그러다가 군 복무를 이행하는 장병들의 수가 매년 안정되고 장병들이 지는 병역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복무기간 단축은 단계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육군과 해병대는 복무기간은 21개월이다. 해군은 23개월, 공군은 24개월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찌됐든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서 보내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군대는 될 수 있으면 안가는 것이 좋은 것이고, 2년이라는 시간이 당사자는 물론, 여자친구, 가족들에게도 나름대로 꽤 긴 시간이고 인생의 황금기에 낭비되고 버려지는 시간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돈, 권력, 불법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군대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옛날에는 신의 아들이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 상황은 변했다. 이제 군대 면제는 신의 아들이 아닌 사회에 있어서 주홍글씨처럼 낙인으로 다가온다. 국회의원 등 공직사회에서 본인은 물론, 아들의 군대 면제는 일종의 화살이 되어 다가온다. 그리고 그 면제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경우라면 여론의 집중포화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처럼 이제는 정말 군대는 누구나 갔다 와야하는 그런 곳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도 보다 군대를 갔다와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이 회식자리이든 어떤 자리이든 남자가 2명 이상 모이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결국은 군대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있다. 이때 한 남자가 불쑥 얘기한다. ‘너는 군대 어디 갔다왔어?’라고 물어보면 군대를 다녀온 대개의 남자는 있는 얘기 없는 얘기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했던 것들을 자기가 한 것처럼 과장해서 군대 시절을 얘기하고 저마다 자기가 제일 힘들었고 빡셌다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그런데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대화는 참 힘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군대는 남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대에서 보낸 기간은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는 기간, 불필요한 쓰레기 같은 시간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보고 싶다. 정말 자기가 생각하기에 군대는 불필요한 시간이었고 거기에서 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가라고 말이다.

우리 동기 모닝형님은 언젠가 칼럼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그렇게 난 군대에서 쓸모 없는 쓰레기이자 부적응자가 되었다. 사회에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속을 썩이는 자식도 아니었으며, 스스로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모범 시민이라고 자부했건만 새로운 세상인 군대에선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다만 그 후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내가 제 역할을 하는 지를 늘 고민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쓰레기’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늘 혼자 다짐하곤 한다.”

그렇게 군대는 모닝형님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그는 이를 잘 극복하고 사회에서 꽤 잘나가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연구원 과정을 우수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나 역시 군대는 시간을 낭비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 하나만은 모두 얻었을 것이다. 바로 인내하고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굳이 한번 사는 인생을 즐겁고 즐겨야지 왜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군대에서 내 인생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등학생이 사관생도가 되는 것은 단순히 대학교처럼 입학하는 개념이 아니다. 4~5주의 군사훈련을 거쳐서 사관생도가 되는 것인데 그 기간이 내게는 참 힘들었다. 군대의 훈련소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갓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에게 총을 쥐어주고 겨울바다에 수없이 뛰어들고 군가를 부르고 미칠듯이 소리지르고 총을 쏘고 원하는 대로 밥도 못 먹고 잠도 자지 못했다. 정말 하루에도 열 두번씩 그만두고 싶다고 나서고 싶었으나 그런 말을 할 용기도 없었음은 물론이고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차마 얘기할 수도 없었다.(지금이라면 한순간의 망설임없이 얘기할 자신이 있다.) 이 시간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오기 전에는 웬만하면 세상의 풍파 속에서 견딜 수 있는 내공이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장교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반 병들의 생활은 잘 모를 수 있다. 병들과 그렇게 수많은 얘기를 하고 생활에 대해 듣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관학교 생활역시 이와 유사하다. 일반병이 이병에서 병장까지라면 사관학교도 1학년부터 4학년이 있다. 한 학년당 200명이니까 나는 600명의 고참병들과 3년을 같이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나는 이제 군대를 가야하는 남자라면 군대에서 보내야 되는 시간을 지금처럼 낭비의 개념, 고통의 시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 틀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기에 군대는 가정, 친구, 학교, 공부 등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장 가까이 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만지고 얘기하는 스마트 폰 조차 허용이 되지 않는 곳이다. 오로지 자신과 타인만이 있는 시간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무엇이든 하나는 이룰 수 있는 시간이다. 책을 읽는다면 최소 한달에 2권으로 잡으면 최소 50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영어를 공부한다면 하루에 10개로 친다면 6천단어에서 만단어로 가져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곳이다. 걔 중에는 상대할 가치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꽤 괜찮은 사람이 많은 곳이고 그들에게 다양한 재능기부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고, 만능 스포츠맨도 있고 정말 다재다능한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가 배울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들을 오랫동안 지켜봤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누구에게는 인생의 전환을 꿈꿀 수 있는 시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그런 고통의 시간일 수도 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시간을 선택하고 싶은가요,

IP *.106.204.231

프로필 이미지
2017.10.02 21:49:24 *.18.218.234

개인적으로, 기상씨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 이번 글이 제일 좋네요.  이번 주는 난중일기 북리뷰도 그렇고 칼럼도 그렇고 기상씨의 경력이 녹아든 글이라 읽는 사람이 몰입하기 더 좋은 듯. 


군에서 보내는 시간 = 오로지 자신과 타인만이 있는 시간

--> 이 시각 좋아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통과해야 하는 군복무라는 시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프로필 이미지
2017.10.03 06:39:14 *.41.5.100

어떤 일이든 의미의 해석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인거 같아!

군 입대자의 필독으로 한번 어딘가에 올려봐~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32 칼럼 #21 웨딩사진_윤정욱 [3] 윤정욱 2017.10.09 924
5031 11월 오프수업 후기 [1] 윤정욱 2017.11.21 924
5030 1월 오프수업 후기 (윤정욱)_마지막 수업 [3] 윤정욱 2018.01.16 924
5029 #34_하루 세번, 혼자만의 시간 [1] 윤정욱 2018.02.05 924
5028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924
5027 12. 여전히 두려운 아픔이지만 [4] 해피맘CEO 2018.05.28 924
5026 또 다시 칼럼 #14 이제는 말한다 [2] 정승훈 2018.07.30 924
5025 K [2] 박혜홍 2018.07.30 924
5024 또 다시 칼럼 #26 소년법을 폐지하면...(세 번째) 정승훈 2018.11.26 924
5023 1주1글챌린지_11 굿민 2020.08.12 924
5022 #4 시지프스의 손_이수정 [8] 알로하 2017.05.08 925
5021 <칼럼 #5> 지금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 장성한 [3] 뚱냥이 2017.05.15 925
5020 5월 오프모임 후기_이수정 [5] 알로하 2017.05.23 925
5019 # 칼럼 10 같이 노는 사람 - 친구(이정학) [6] 모닝 2017.07.03 925
5018 칼럼 #11 나의 고향 청송 그리고 제사의 추억 [3] 윤정욱 2017.07.10 925
5017 8월 오프수업 후기 (윤정욱) [1] 윤정욱 2017.08.28 925
5016 (보따리아 칼럼) 단어채굴자 [6] 보따리아 2017.10.02 925
5015 <뚱냥이칼럼 #29> 내일일기 작성법 file [3] 뚱냥이 2018.01.01 925
5014 '18년 2월 졸업 여행 후기 (윤정욱) file 윤정욱 2018.02.27 925
5013 3. 나는 무엇으로 특별해지고 싶은가? file [5] 해피맘CEO 2018.03.12 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