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8년 6월 11일 11시 59분 등록


  

"관계는 중요합니다. 나와 또 다른 나와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하죠. 그런데 관계가 제대로 되려면 먼저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어 안는 훈련이 필요해요. 지난 1년간은 제게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박미옥 선배 인터뷰 중에서-



사부님의 '선배 연구원 탐구'라는 연구원수업 공지사항을 보고 나는 주저 없이 '박미옥 선배'를 꼽았다. 면접여행에서 일면식이 유일했던 선배가 나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애정과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연구원 생활이 다른 사람의 깊이 있는 생각을 듣고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기회를 통해서 틀에 갇힌 내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4주간의 2차 지적 레이스에 참여하면서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꼈고, 동기들의 칼럼과 북 리뷰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나의 생각과 비교해 보는 것은 그저 바램으로 끝났다. 그리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여행에서 본 선배들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를 통해 상생하고 있었고 그것의 깊이가 부러웠다. 특히 동기들에게 각 개인의 심층분석 자료를 제공한다는 미옥 선배의 이야기는 나를 많이 놀라게 했다. 나 하나를 보는 것도 버거웠던 나에게 선배의 열정과 동기들에 대한 애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단지 물리적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리라.


박미옥 선배를 나의 멘토로 꼽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런 애정과 열정을 알아가고 나 또한 실천해 보고 싶다. 짧은 만남과 시간이었지만 내가 선배에게서 배우고 느낀 것을 정리해 봄으로써 그녀에 대한 탐구를 대신할까 한다.

 

"제대로 이륙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동기들에 대한 탐구는 물론 동기들에 대한 애정이기도 했지만 커리큘럼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어요. 각자가 일년 동안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커리큘럼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1년을 돌아보는 것은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던 같아요.


연구원 1년 커리큘럼은 Take off - 귀환(다시 땅으로) - 창조의 과정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Take off 입니다. 제대로 이륙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러려면 자기의 목소리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하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을 아이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이지요. 그 사랑을 윤활유삼아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쪼그라들어있던 욕망의 파편들을 복원해내는 것이 '이륙'의 의미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삶을 끌어갈 수 있는 살아있는 동력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이지요. 그러니 제대로 이륙하지 못하면 다음에 오는 과정들이 제 기능을 하기가 힘들 수 있어요.


나는 나에게 주어진 1년간의 커리큘럼을 시작 전에 보았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멋진 타이틀이라고, 이 과정을 다 마치고 나면 이해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사전에 과정의 의미를 제대로 곱씹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배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이륙하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요 며칠 마음과 시간을 다시 재정비하고 있다. 제대로 날아 올라야 할 것이다.

 

"관계 이전에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기대나 바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과 내 안에서 생각하는 나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어요. 제대로 관계하려면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선배는 북리뷰에서 "타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네"라는 부분에 많은 별과 함께 "지난 1년 나는 9개의 거울에 비친 나를 아주 꼼꼼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관계는 상대적 것이라 생각했다. 타인과의 작용과 반작용. 손익의 실타래가 교묘하게 얽혀있어서 그 끝을 찾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미옥 선배는 나의 그런 관계에 대한 개념에 실의 한끝을 쥐어준 것 같다. 선배는 관계에 욕심이 많은 듯 하지만 그것을 얻는 방법은 내가 생각했던 방법, 일반적인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세상의 어떤 기쁨이든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이든지

자기 자신만 행복하겠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2011.4 강훈의 <선배탐구> 칼럼 중에서


내가 가진 것을 온전히 활용해 지금까지와 다른 방법으로 살아보는 실험, 내게 연구원 1년과정의 의미였다. 익숙치 않았기에 말할 수 없이 부대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익숙한 방식으로 살아온 결과로 치뤄야했던 통증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내야만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눈부신 성과였다. 말할 수 없이 행복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나도 우주에 흐름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되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탄탄대로가 펼쳐지리라 믿었다. 난생 처음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 선택을 지켜낸지 1년을 꽉 채우던 무렵이었다.


내가 말하는 함정이라는 용어는 무엇이 되었든 과거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으로의 퇴행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우리가 펼쳐지는 창조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가리킨다.

조셉 자보르스키의 리더란 무엇인가217


바보같을 만치 순진한 기대임이 판명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고갈되어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과거의 패턴들이 올라왔다.


'왜 나만 그래야 해? 언제까지 나만 그래야 해? 이정도까지 했으면 나 할만큼 한 거 아냐? '


잔뜩 부은 채로 분노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때 누구라도 걸리는 사람은 하릴없이 대재앙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렇게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 궁여지책으로 내려놓은 처방이라곤 가능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 정도였다. 혼자 조용히 떨어져 그동안 착한 척하느라 모른 척하던 내 안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조금씩 화가 누그러지곤 했다. 모두 나 좋자고, 나 편하자고 했던 선택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제서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보고도 듣고도 받아안지 못했던 그들의 마음이 한조각씩 한조각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 안에서 차오르는 그것들을 나눌 수 있는 그들의 존재만으로 행복해하던 기억이 살아난다.  


그렇게 한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그러다 어느 날 찾아온 '찰칵' 마음의 모드가 전환되는 느낌. 이제는 다른 존재로 거듭났다는 신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는 패턴. '역시 인간이 변하기는 어려운가보다.' 하는 체념이 온 몸을 휘감는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했던 거지? 여기서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나 하나 어쩌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어찌 감히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겠다는 맘을 먹었을까?' 하는 자괴가 밀려온다. 어쩌면 좋을지 난감하기만 하다. 이때 내 손에 쥐어진 책이 리더란 무엇인가』였다.


내적인 투쟁을 통해서 누적된 부담감을 극복해야만, 다시 펼쳐지는 생성적 질서의 흐름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내적 투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글자 그대로 그것을 겪는것이다. 말하자면 함정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거기서 새로운 교훈을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이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다.

조셉 자보르스키의 리더란 무엇인가234


온 우주가 그를 위해 움직이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과 함께 운명의 여정을 시작한 자보르스키도 15년이 넘어가도록 같은 함정에 빠지고 또 빠지고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성장해갔다는 솔직한 고백은 내게 말 그대로 복음이었다. 


이제 8년이다. 비록 수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고 하나 35년에 걸쳐 익힌 세상의 문법을 완전히 갈아엎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아직은 성패를 단정짓기는 너무나 이르다. 자꾸만 함정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자질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변화가 필요하다는 뼈져린 각성과 더불어 그 방향정도라도 가늠해낼 수 있었으니 오히려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게다가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 것만으로 이미 '잘 하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다. 때마침 나를 일으켜줄 목소리를 듣게 된 것만 봐도 힘을 내 더 가도 좋은 길이라는 신호다.  


그제서야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넋놓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숱하게 빠져나갔던 흔적들이 마치 길처럼 선명하다. 그랬다. 그동안 나를 마땅히 있어야 할 길 위에서 쫓아내는 함정인줄만 알았던 구덩이조차 어느새 나를 부르는 길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다.


이리 알아차렸으니 다음 번엔 더 의연히 이 곳을 들렀다 나갈 수 있게 될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분명 말하게 될 날도 올거야. 가슴속 깊은 곳의 믿음을 바꾸는 순간 나의 인생도 바뀌었노라고. 그날이 기다려진다. 어서 다시 일어나 그날로 한걸음 더 걸어가 봐야겠다.

IP *.130.115.78

프로필 이미지
2018.06.11 20:48:33 *.140.242.43

살아있는 인仁(人+二)을 실천하는 과정에 계신듯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8.06.11 20:57:38 *.48.44.227

ㅎㅎㅎ 경종님은 언어의 마술사 ..무심히 그러려니 지금에 충실히 살다뵤면 그 날이 오겠지요 응원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8.06.13 16:44:58 *.88.68.40

아~ 쉽지 않아.

미옥쌤, 내면의 목소리가 궁금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