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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9일 09시 25분 등록
부자 교회 앞 거지와 이방의 신

교회 앞에 서 있는 거지와 그를 외면하는 신자들과 그를 끌어내는 교회 관계자가 늘 싸우는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듣고 말씀을 나누며 통곡하고 외치고는 말짱한 얼굴로 나온다. 교회 앞에 거지는 마치 교인들의 양심에 칼을 들이대듯 서 있고, 예배를 마친 신자들의 발걸음은 아랑곳없이 가볍다. 우리나라 부촌의 하나인 ㄷ동 어느 교회 앞의 일상적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누가 무엇을 틀렸을까?

거지는 단지 하루 세끼를 굶지 않고 다 찾아 먹는 것이 그 날 하루 최대의 성공적인(목표 달성의 완전한 행복) 삶일 수 있지 않을까?

교회 앞에 거지는 하나. 교회에는 그들의 숭배하는 신과 수많은 신도들이 있다. 어떤 이는 장로이고 어떤 이는 집사이며 어떤 이는 평신도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교회를 위해 희생과 헌신했다고 스스로를 자부하며,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사업을 펼치며 또 다른 교회를 세우는 등 날마다 새롭게 그들이 계획한 인생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며 번영과 성실한 희망에 벅차다.

그들 모두의 신에게 듣고 믿고 날마다 배우지만 정작 누구도 거지와 같이 앉아 함께 밥 먹으려 하지는 않는다. 물론 목사님조차도... 거지는 늘 거지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신이 전지 전능하며 자신들은 신을 따르는 혹은 교회의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한 완전한 신도라고 믿고 있다. "너희들 가운데 미세한 사람 중에 하나에게 베푼 것 모두가 내게 한 것 이니라" 성경에는 분명히 적혀있지만 그뿐이다.

단지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는 것이 최대의 행복인 거지의 꿈은 누구보다 소박한 꿈이지만, 이루기 어렵고, 그것을 꿈이라고 인정치 않고 싶어 하는 많은 신도들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보편성을 띠는 것처럼 보인다. “네 꿈이고 뭐고 간에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말아줘. 나를 시험하지도 말고 너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 적어도 너는 아니지 않니? 그렇게 생각이 안 드니? 그동안 밥은 어디로 먹었니?” 라는 말들은 목구멍 앞에까지 차있는 듯하다.

거지는 거지답게 굶어 죽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변경邊境(절대자와 그를 추종하는 성실한 세례교인들이 즐비하고 게다가 잘사는 동네의 교회 앞)을 나와 변화경영을 하여야 할까. 거지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목욕을 하고 챙 모자를 쓰고 나발을 불면 그는 거지 일까, 아닐까. 밥을 먹어야 할까, 더 많이 배 골아가며 그냥 마지못해 사는 날까지 살아야 할까. 거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밥 먹는 것이 1차적 목적인 거지의 꿈은 이루어 질 수 있다. 신도들의 혹은 신의 뜻일 법도 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된다. 거지의 목욕과 그럴 듯한 챙 모자와 나발을 창조적으로 동원하여... 그러면 거지의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만약 변경을 나왔다면 1년 후 거지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아니면 목사가 되어 그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까.

거지의 진짜 성공은 무엇일까. 거지는 없고 목사만 남는 것이 최적의 엔트로피일까? 거지도 있고 목사도 있는 것이 보다 자연적일까. 신이 진정으로 세상에 원한 것은 무엇일까. 거지 없이 목사만 남은 세상일까. 거지였더라도 깨우쳐 누구든지 최종에 목사가 되는 것이었을까. 신은 단지 사람을 지으셨다. 사람이 거지도 되고 목사도 되었다. 변화경영연구소나 역사의 최고최선은 무엇일까.

다양성과 형평성은, 객관성과 주관성은, 가치와 존재의미는 무엇이어야 할까. 신은 무슨 재미일까. 결국에 목사만 남을 세상에서...

거지에겐 하얀 가운이 없다. 계급장도 없으며, 그 흔한 쯩 하나도 없다. 그의 역사는 세상의 관심 밖이다. 그에게는 철저한 현상만이 존재한다. 누구나가 다닐 수 있다고 하였지만 교회문턱을 더럽힌 죄, 인간들의 눈을 피곤하게 한 죄, 향기가 아닌 악취를 풍긴 죄, 이 땅에서 거지라는 신분을 갖은 죄...

그게 누명이었든, 실패였든, 무지였든, 조상의 동티였든, 신의 저주였든 세상이 거지와 공감할 사항은 단 한 가지도 없는 듯하다. (안보면 거지를 도와야 한다고 모두 다 외친다. 그러나 보면 아무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스쳐지나갈 뿐이다. 아니 피하거나 손가락질 해댄다.- 이것은 이중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당연이고 관습이며 유구한 세월동안 맥을 이어온 통용된 일상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있다면 오직 하나, 어쨌거나 거지인 이상 역겹고 추레한 형상으로 이 대단한 교회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다는 것, 신의 성전을 오염시키지 말라는 절대 절명의 눈총과 아우성, 삶보다 우선하는 명백한 사실, 아니 그의 명분보다, 배고픔보다, 진실한 욕구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 오염물질처럼 보이는 이구동성의 거지의 현재 모습이다.

거지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하여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다, 혹은 사람이면 다 사람인 줄 아느냐로 대변 될 수 있는 다수의 주장은 성경보다 강력하며, 어느덧 자생되어진 신도회의 십계명이 월등 우세하게 지배한다. 더군다나 교회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교인이라는 그 교회를 세우는데 혁혁하게 공헌해온 그들의 주장은 더더욱 옳기만 해 보인다.

그것은 성경구절보다도 절대적이며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새로 쓰는 교회역사의 지적이며 성공한 생활 속의 신앙인의 참모습으로 자리매김할지 모른다. 그것은 주로 장로나 권사, 집사 등 그 외 교회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밥 먹듯 해왔다고 주장하는 모든 교인들의 암묵적 모습이기도하다.

오늘도 교회의 높은 불빛은 찬란히 반짝이고 세상에 죄라고는 지어본 적이 없는, 노동력을 착취했거나 세금을 포탈한 적이 한 치도 없는, 지식이란 명명으로 사기를 치거나 빙자를 해볼 꿈조차 꿔보지 못한, 세상이 인정하는 좋은 회사에 장(長)은커녕 걸쳐도 본 적이 없는, 고급 외재 차를 탐내기보다 치이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운,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살려고 하지도 않았고 살아본 적도 정말로 없지만 문제는 지금 교회 앞에 서성대며 서 있는, 단지 허기짐을 면하기 위해 한 조각 빵을 구하기 위함이 당분간 인생 최대의 목표이자 전부인, 거지의 하루는 속절없고 저무는 해는 오늘 또 하루 고된 일상을 추가할 뿐이다.

높은 십자가, 번쩍이는 십자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교회의 십자가 불빛 아래서 빌어먹지 못한 채, 굳게 닫힌 교회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서서 거지는 무엇을 기도할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가장 밑바닥에서 거지는 어떤 체험과 경험을 쌓았을까. 신은 만났을까.
거지의 신은 그에게 뭐라고 영감을 주었을까. 오늘도 여전히 거지는 교회 앞에 서 있고, 수많은 신도들은 희생과 봉사와 헌신으로 교회를 지켜가고, 높은 십자가는 변함없이 화려하기만 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꿈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찬송가는 웅장하게 교회 밖에까지 울려 퍼지고, 교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하고 목사는 울부짖으며 회계하라 이른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요, 죽고자 애원하면 살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삶을 역사하시니 말씀가운데 살아 있으라. 깨어라, 할렐루야 아멘!”오늘도 성경 구절은 잘도 넘어가고 교인들의 모든 의무는 성실하게 마쳐졌다.

예배를 마칠 동안 꼼짝 않고 서성거린 거지는 신도들을 향해 다시 교회 앞에서 생명의 양식인 실체적 젖과 꿀을 찾아 서성이지만, 그의 동냥그릇은 여전히 비어있고, 많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즐거울 뿐이며, 흐린 빗방울만이 덧없이 바닥을 적신다. 어디로든 몸을 피해야할 거지의 등과 이미 흥건히 그의 발을 적시고 마는 빗물은 야속함인가 분수령인가.

쫄쫄 굶어 가장 거지다운 날의 거지는 이 사회의 취향과 손에 꼽힐 만큼 위대한 교회 앞에서 더는 사람이 아닌 단지 굶주린 이방인인 채로 주리다 못해 쓰린 몸과 마음을 달래며 캄캄한 저녁을 맞는다.


다음날이면 영락없이 또 그 자리를 맵돌고 있을...
그래도 그나마 그곳에서만은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가 보다.
총총히 사라지는 그날의 발걸음을 뒤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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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8:27:43 *.99.241.60
가자 아메리카로의 63페이지에도 이런 글이 나오더군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과 같은 방식으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좋은 자리가,
어느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다음으로 좋은 자리가,
그리고 돈이 조금밖에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자리가 주어졌다.
때로는 가장 좋은 자리는 손으로 짠 단정한 난간으로 다른 자리와
분리되기도 하였다. 천박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도 교회출입을 금하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데.
ㄷ 교회라는 것이 .혹시 교회가 아닌거 아니유..
사이비 종교단체라든가, 아님 종말론을 믿는 집단이건가...
아님 무늬만 교회아닌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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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14 19:31:40 *.114.56.245
가끔 어른들께서 말씀하시던, '그 때가 좋았다' - 그 때는 좋았습니다. 문둥병을 가지고 있던 거지도 1년을 씻지 않았던 거지에게도 어머니는 그들이 찾아오면 독상을 차리셨어요.우리는 기겁을 했지만요. 소죽솥 앞에 밥상을 가져다 주었다가 정말 야단 맞았습니다. 호되게요. 그 때보다 더 가졌지만 나의 그릇 작음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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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2:03:32 *.72.153.12
늘상 지나는 길목에 다니는 교회가 있는데, 저는 항상 거기에 불이 켜져 있나를 봅니다.
이 지역에서는 학교를 제외하고는 가장 넓은 장소를 가진 곳인데, 저곳이 지역문화센터로 개방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지나면서 오늘은 고등부 애들이 모였을까? 오늘은 예배가 없는 날인데 불이 켜있네 등등.

92년 93년 전주교 옆에 있는 교회에는 한명의 거지가 출근부를 찍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돈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밥보다는 술을 더 좋아했기에 그래서, 그가 교회옆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의 밥값은 교회의 어느 분이 대셨습니다. 그리고 그해 그는 발의 피부병이 거의 나았습니다. 그는 92년 겨울을 그렇게 났습니다.

교회 옆, 전주교 밑에는 노인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파고다 공원만큼 노인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어느덧 빈대떡 파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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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6 00:04:46 *.70.72.121
다들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일 부족한 사람은 저입니다. 너그러이 봐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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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2007.05.25 16:32:19 *.234.171.25
뭣이 그리도 복잡들 하시오?
그 탁월한 재능으로

거지도 있고, 목사도 있고, 나도 있고, 당신도 있고
거지는 뭐고 목사는 또 뭡니까?

자신을 알기에도 숨이 가프고
바르지 못한 내가 이토록 가슴이 아픈데

비판 받을 내가 어찌 남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너 자신을 알라" (2007-05-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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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26 08:57:05 *.70.72.121
은전(銀錢) 한 닢 : 피천득 수필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 놓으면서,"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 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치른 손바닥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들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칠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아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으로 몇 닢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전문)


글이란 것에 애착을 가져보았다면 선생의 수필에서 처음 이었습니다.
오늘 선생의 부고를 접하였습니다. 아, 너무 늦은 글쓰기와 별을 잃은 안타까움이 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부디 평안하시고 하늘나라에서는 모정 오래도록 누리시길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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