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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5일 13시 46분 등록
미래를 보는 것이 빈 상자에 무엇을 채워 하나둘씩 늘어감에 따라 뿌듯함이 생기는 반면, 역사는 수많은 창고 속에서 가득담은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는 작업으로 환한 기쁨의 순간도 있지만 처참한 기록의 상자, 죽음과 핍박의 상자도 가끔 보였다. 역사는 정직하다. 순간순간 진동으로 선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혼자만의 욕심과 편하고 얄팍한 삶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역사가 하나의 선으로 보였다. 어느 한 점에서 시작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이어지는 선, 거기서 선의 떨림이 진동을 만들었고, 진폭이 커지면서 흐름을 바꾸는 변곡점이 되었다. 관성의 힘으로 계속 그 흔적을 유지하려 할 때, 변곡점은 선을 굵게 만들거나, 그 선을 위로 끌어올렸다. 하나의 선이 두 갈래 혹은 세 갈래 이상의 다른 선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두개의 선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기도 한다. 굵은 선이 가늘게 변하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 변화의 순간에 떨림이 있었다.


(역사속 장면#1/5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날 따라 베들레헴의 거리는 복잡했다. 마리아와 요셉은 고향에 들렀으나, 찾아가는 여관마다 만원이었다. 묵을 곳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여관의 마구간으로 간다. 1년전, 어느날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일이 떠올라다.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삶이 바뀌었다. 결혼 후 일년을 정결혼례 기간으로 그 기간에 임신은 간음죄로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율법 속에서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10여 개월의 힘든 시기가 지났다. 마리아는 무에서 유로, 불가능에서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였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드리는 그 작은 겸손을 통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실 예수 탄생의 거룩한 축복의 통로로 사용했다. 드디어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탄생의 순간은 신비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혁명가, 세상에 사랑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예수가 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존하는 경제 질서를 공격하지 않았다. 반대로 폭행을 써서 하늘나라를 빼앗으려 하는 열렬한 사람들을 질책하였다. 그가 생각한 혁명은 훨씬 더 깊은 종류의 혁명이었다. 그런 혁명이 없었다면 모든 개혁은 훨씬 더 깊은 종류의 혁명이었다. 그런 혁명이 없다면 모든 개혁은 오로지 표피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심, 잔인성, 정욕 등을 없앨 수만 있다면 유토피아는 저절로 올 것이다. 이것이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깊은 혁명이 될 것이고, 이런 혁명에 견주어보면 다른 혁명은 단순히 계급간의 쿠데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역사속 장면#2/5 - 갈릴레오와 피사의 사탑)

1599년 어느 날, 갈릴레오는 수많은 군중들의 시선들을 한 몸에 받으면서 피사의 사탑 정상을 올라가고 있었다. 손에 무게가 다른 두 개 쇠구슬이 들고 사탑 밖에 운집한 대중들을 쳐다본다. 진리는 무엇일까? 어째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한마디가 천년이상을 참된 것으로 이어왔고, 왜 앞서 살았던 사람들은 진리의 벽을 깨우치지 못했을까? 탑 밑에는 적의에 찬 당시 정통주의에 충실한 수많은 학자와 성직자들, 그리고 및 관리들이 눈초리를 따갑게 인식하고 있었다. 네가 뭔데 진리를 현혹시키느냐?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러했고, 나의 후대들도 그러하거늘 이런 시선을 받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꼭대기에 왔다. 까마득한 높이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휘청거린다. 밑에 백성들이 호기심의 함성을 울린다. 커다란 심호흡과 함께 이미 준비되어 있는 커다란 쇳덩어리와 작은 쇳덩어리를 동시에 지상을 향해 굴러 내렸다. 아찔 하는 순간 침을 삼키며 응시하고 있던 군중들의 환호성이 폭발하였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쇠뭉치는 같은 시각에 지상에 낙하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역사속 장면#3/5 - 자본론의 출판)

마르크스의 생애는 혁명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철학과 경제학을 전공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의 착취와 부의 집중에 대한 강한 반발이 생겼다. 여러 차례의 혁명의 실패로 인생을 지치게 하였다.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런던으로 망명하여 수년간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 빈궁 속에서 지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1862년부터 집필한 자본론이 1867년에 발간되었다. 자본론 2권과 3권은 마르크스의 사후에 엥겔스가 1885년과 1894년에 발간되었고, 처음에 제4권으로 구상되었던 부분은 K카우츠키에 의하여 1910년에 “잉여가치학설사“ 라는 이름의 독립된 형태로 출판되었다. 이 한권의 책은 자본에 의한 새로운 경제 질서에 대립하는 하나의 선을 만들었다. 선의 흐름을 붉은 색으로 변하고, 엄청난 파편으로 퍼져나갔다. 150년 동안 수많은 혁명과 함성이 있었다.


(역사속 장면#4/5 - 성경의 인쇄)

1455년 독일의 마인츠 시내의 한 인쇄공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 문 앞에 몰려있다. 분주한 공장안은 금속활자를 세공하고 새로운 인쇄기계를 만들기 위해 정신이 없이 일하고 있다. 얼마 후에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책을 한권 가지고 나온다. 바로 처음으로 인쇄된 성경책이었다. 얼굴에 묻어있는 잉크의 흔적을 닦지 않고 이리 저리 살펴본다. 드디어 크게 웃는다. 바로 구텐베르크다. 3년전에 금은 세공사였던 그는 그동안 배운 활자기슬을 이용하여 성경책을 인쇄하기로 마음먹었다. 참으로 힘든 세월의 연속이었다. 인쇄는 활자를 만드는 컷부터 하나하나 조각을 해야 했다. 각인된 활자를 판에 넣고 종이에 찍는 기술이 어려웠다. 압력이 필요했다. 우연히 구텐베르크는 포도즙 짜는 기계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 이제 작업이 빨리 진행되었다. 한장 한장 인쇄를 하였고, 드디어 42줄의 성경책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인쇄기술은 급속도로 퍼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성경책을 볼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기본토대가 되었다. 금속활자는 선이 무수히 만들어지는 복제의 기계이다. 이보다 200년전인 고려에서는 이미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창조물을 지배층이나 특정 세력의 활용한 활자보다는 민중의 활용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역사속 장면#5 - 동학혁명)

1894년 조선의 전라도 고부 관아 앞 새벽, 너른 관아 공터에 하나둘씩 모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다. 손에는 죽창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맨 앞, 대장인 전봉준 장군이 앞에서 큰 소리로 모인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부임시절부터 탐악하여 갖은 수단으로 농민들을 괴롭혀 왔다. 이러한 조병갑의 처사에 분격한 고부 농문들은 수차례 진정서를 내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특히 만석보(萬石洑) 수세(水稅)의 강제징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고, 이러나 저라나 굶어죽기는 마찬가지이다. 함성이 울린다. 커다란 함성과 함께 노도와 같은 물결의 흐름이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정부에서는 현장에서 관련자를 검거하여 교도의 명부를 작성하고 새로운 탄압을 시작한다. 거대한 함성은 더욱 큰 기세로 모여들었다. 보국안민(輔國安民) 커다란 깃발아래 모여선 이들의 모습이 다부지다. 이러한 함성이 멀리 멀리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동학은 최초의 민중의 자발적인 혁명이기도 하였지만, 일본 상인에 의한 경제적 침략에 대한 항쟁이기도 하였다. 어떤 시대에 살아가건 간에 우리는 이 역사의 함성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개인의 역사속 장면#1/3 - 1986.12.31 대전 도마동의 한 독서실)

오늘은 1986년 12월 31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의 겨울방학은 시작되었지만, 다시 고향으로 갈수가 없었다. 대전으로 청운의 꿈을 가지고 온 유학이었지만 사정은 만만치가 않았다. 향수와 앞날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이유 없는 방황으로 2학년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고향이 같은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욱 공부와 멀어지게 된다. 2학년의 초라한 성적을 가지고는 부모님에게 가져 갈 수가 없었다. 이게 아니다. 이건 잘못된 길이다. 힘들게 고생하시는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고, 나의 길이 아니었다. 하숙집을 정리하고, 독서실로 갔다. 아침 여섯시에 기상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식당에서 사준 도시락 2개를 가방에 넣고 학교로 갔다. 열한시에 독서실로 와서 다시 공부를 하였다. 두 달 동안 잠자고 학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부에 쏟아 부었다. 비록 눈부신 날은 아니었지만, 나를 오늘에 있게 한 소중한 하루였다.


(개인의 역사속 장면 #2/3 - 1995.12.3 부산 동래관광호텔)

결혼식이다.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한 아내의 모습이 눈이 부시다. 오늘은 모든 것이 다 눈이 부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바라보는 해도 눈이 부시고, 안경너머로 보이는 것도 끝 부분 외곽선이 희미하게 보인다. 서서히 축하하객들이 들어오고 있다. 새벽부터 서둘러 부모님의 관광버스도 도착했다. 모든 것이 너무 환하여 눈을 뜰 수없었다. 진심으로 감사를 했다. 이순간이 그냥 계속 지속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 빛나던 날로부터 1년 후에 원영이 태어났다. 병원에서 기다리다 받아든 원영의 까만 눈동자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알 수 없는 눈물과 흘렀다. 물기가 가로막는 흐린 시야 속에서도 빛나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스런 내 아들. 그로부터 5년후에 수현이 태어난 달도 그러하였다.


(개인의 역사속 장면 #3/3 - 2003.2.27, 고대 행정대학원 학위수여식)

2003. 2. 27일은 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있는 날이다. 세무대학을 선택하고 나서 대학에의 꿈은 날개를 잃었다. 다시 날개를 달고 싶었다. 우연히 옆에 앉은 직장 선배가 대학원을 다녔고, 특강을 한번 같이 갔다 온 후에 대학원의 꿈이 다시 살아났다. 우여곡절끝에 합격을 하였고, 대학원에서 2년하고도 반년의 시간은 늘 바빴다. 정신이 없었다. 일주일에 이틀의 수업이었지만, 일이 많은 날이면 다시 수업이 끝이 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일을 마치고 퇴근한 날도 있었다. 졸업식에 서보니 그러한 힘든 날들이 이러한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공부에 대하여 처절함과 욕심이 없었던 나에게 이것은 새로운 안식처였다. 학사모를 쓴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아내가 쓴 학사모도 잘 어울린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빛이 된 느낌이 들었다.


<역사와 함께 한 5월을 보내며>

5월의 책은 역사의 선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맨 처음에 읽은 역사란 무엇인가는 망원경과 현미경이라는 도구였다. 또 왜 망원경과 현미경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소중한 작업도구였다. 가자 아메리카로는 대륙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무수한 선과 점들의 뻗어가는 새로운 탄생의 역사였고, 역사속의 영웅들은 그러한 선을 따라가다 가끔씩 만나는 뭉특한 흔적들을 발견하는 재미였다. 마지막 한국사신론은 앞서 읽은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다시금 돌아보는 귀중한 체험이었다. 세계역사의 떨림의 순간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면은 많이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쉽고 간편하게 가려는 사람들의 흔적을 없앴으며, 이기적인 면이나 폐쇄적인 것들의 기억을 없앴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번성과 지속의 기회를 주었다. 때로는 반복을 하였고, 때로는 소멸하기도 하였다. 되돌아본 나의 개인적인 역사도 그러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가지만 간절하게 매달릴 때에 성과가 나왔고 나의 진면목을 발견하였다. 먼 훗날에 지금의 연구원 생활은 나의 역사에서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역사는 나에게 말한다.
훌륭한 연구원보다는 꾸준한 연구원, 늘 배움에 배고픈 연구원이 되라고
IP *.118.1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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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6.03 20:49:34 *.145.231.168
그랬구나.
그대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어요.
그 날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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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6.04 03:17:40 *.109.84.115
아~ 좋은데요. 하루 사이에 장면들이 더 세세하게 살아났네요. 형도 접신된거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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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6.04 10:03:40 *.99.120.184
속 깊은 소전의 마음에, 막내라는 사실에 놀랐다.
우직하고 꾸준한 모습에 분명 훌륭한 연구원도 되리라 믿는다.
너를 알게 되어 정말로 기쁘다. 꿈벗 모임에서 너와 같이 진하게 술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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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04 10:23:15 *.114.56.245
저는 뷔페 식당에서 욕심내어 음식을 잔뜩 가져다 놓고 다 먹지 못하는격이예요.그러나 소화제 먹지않고 운동으로 해결해 보렵니다. 우리 연구원들이 함께 운동하고 있으니 걱정없겠지요? 잠을 더 줄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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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04 11:51:01 *.72.153.12
그러게 왜 이리 생생해진거야?(종윤 말에 동감)

자신은 '윤'도 없고, 접신도 없으니 오직 끝까지 하는 성실함으로 밀고 간다고 한 사람이.... 그것이 거짓이었네 그려. 앗 여지껏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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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06 09:22:28 *.118.101.219
(자로형님)
그날 반가웠습니다. 많은 얘기를 들었고, 많은 것을 배운것 같습니다. 앞으로 꾸준하고 성실한 연구원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종윤, 정화)
숙제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다 조금더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과연 그 사람은 어떠하였을까. 나라면 어떠하였을까..고민해보니 그 순간이 머리속에 나타났어요.
그 순간에 내가 보는듯한 느낌을 적어보았을 뿐이라오..
그러나 아직 멀었지만, 정화님도 그런 접신의 순간이 올것이라 믿는다오

(여해형님)
우직하지만은 않은 모습을 곧 보여드릴날이 있을겁니다.

(최정희선생님)
질문도 미리 몇가지 준비를 했었는데요.
선생님의 역사를 듣지 못해서 아쉽네요. ㅠ.ㅠ
다음에 개인적으로 들어야 겠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난중일기를 읽는 맛이
새롭네요.
아마 역사에 대한 조금의 고민이 이러한
재미를 주는것 같습니다.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장군님의 고민과 일상이 많이 세밀하게 다가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고민하는 것이
이러한 효과가 있다는것을느낀다는것..
아마 이것이 제가 찾는 그무엇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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