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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4일 09시 18분 등록
#1.

미시령 고개를 올랐다. 구름이 형체가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높은 산을 타고 넘다, 이리저리 휘감다 흩어진다. 사라진다. 구름 밖을 나오니 햇살이 쨍, 하다. 짧은 낮잠에서 깨어난 듯 온 세상 환하다. 구비구비 높은 산 아래 모든 것들 다 내려다 보이는데, 인적 드문 길 위엔 낡은 휴게소만이 남아 조용히 늙어가고 있다. 몸을 잔뜩 낮추고 사라져갈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2.

역사를 배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봤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는 일, 올라간 산을 다시 내려가야 함을 깨닫는 일. 큰 숨을 들이쉬며 호흡을 한 번 고르는 일, 지나온 날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 그 의미를 지금의 자신 속에서 일깨우는 일, 나아가야 할 길을 가늠해보는 일. 걸어온 길의 끝에서 한걸음 더 내딛는 힘을 얻는 일.

바람과 구름의 변화 속에서 난 이런 것들을 보았다. 새로운 것은 개척되지 않은 황무지에서 나온다는 것. 문명과 미지의 경계, ‘변경’에서 나온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 변화는 필수라는 것.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인 영웅들은 시대의 의지인 동시에 자신의 강점을 활용한 자라는 사실.

역사의 쳇바퀴에 비약은 없었다. 때로는 되풀이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 모든 것의 정점에서 둑이 터지 듯 새로운 세상이 되었고, 움직이는 것들이 고정된 것을 무너뜨렸다.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을 넘어뜨렸다. 그러나 강물의 거친 수면 아래의 본류는 유유히 흘렀다. 그 누구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잠시 늦출 수는 있을 뿐, 결코 되돌릴 수는 없었다.

때로 역사는 좁은 깔때기 아래로 모래 알갱이가 눈처럼 내려 산이 쌓여가는 듯 했다. 그렇게 쌓여가다 지나치게 좁고 높게 쌓이면 와락,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고, 또 다시 쌓여갔다. 갈수록 산은 높아지고 넓어져 갔다. 계곡 또한 깊어져 갔다. 풍경들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그 지평은 넓어졌다.

때로 역사의 풍경은 호수의 수면과도 같았다. 칼 마르크스는 고백했다. “나는 오로지 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대사상가의 솔직한 말처럼 모래 알갱이 같은 우리들은 오직 자신의 영혼만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뛰어넘은 그 맑은 영혼의 울림은 잔잔한 수면 위에 파동을 일으켰다.

작은 파동들, 웅장한 파동들, 그 영혼의 외침들이 때를 만나면, 잔잔한 수면에 거센 파도가 일었다. 혁명이 일어났다. 때로는 자유를 위해서, 때로는 평등을 위해서, 너무 배가 고파서, 이대로 죽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꿈꾸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저 높은 곳의 신을 위해서 그들은 때로 한 마리의 거대한 뱀이 되어 세상을 집어 삼키려 했다.

그렇다. 역사의 풍경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혁명’이었다. 나는 무엇이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지, 유한한 끝을 알고 있음에도 무한한 꿈을 꾸게 했는지가 궁금했다. 무엇이 짐승을 넘어 인간이 되게 했는지, 또 무엇이 인간을 넘어 영웅이 되게 했는지, 그리고 신을 꿈꾸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또한 나는 그 가슴 뛰는 풍경들, 피가 들끓는 치열한 풍경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의미를 묻고 싶었다. 죽어있는 박제로서의 역사가 아닌, 바람과 물의 역사, 산과 들의 역사, 그 아름다운 풍경 속 생명의 역사들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길 바랬다.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길 원했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꿈틀 되길 바랬다.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심장이 뛰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3-1.

내가 처음 만난 것은 그라쿠스 형제였다. 기원전의 일이었다. 사람은 그리 변한 게 없었다. 그렇다. 수백만 년 인간의 삶 속에서 고작 2천년 전의 일일 뿐이다. 그 시대에도 보통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만만치가 않았다. 빈부의 격차 또한 엄청났다. 부는 소수의 개인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부유한 자들은 더욱 더 자신의 배를 불려 나갔다.

그라쿠스 형제는 그 부유한 소수에 속한 채, 쉽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땅이라 부를 한 조각 땅’조차 없는 현실을 그냥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사치하는 계층 아래 다수의 빈곤’을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로마의 평민들이여, 단결하라!’ 기원전 2세기의 ‘공산당 선언’이었다. 그들의 피의 혁명은 결국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보석 같은 두 아들을 잃은 코르넬리아의 슬픔은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으며, 로마는 진동하기 시작했다.

#3-2.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유대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가진 것 없는 천한 유대인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으랴. 그러나 그에게 눈 앞에 보이는 작은 현실은 세상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 무엇도 그의 높고 넓은 이상을 가로막진 못했다.

그는 현존하는 세상을 뒤집어 엎길 원하지 않았다. 그의 혁명은 ‘훨씬 더 깊은 종류의 혁명’이었다. ‘계급 간의 쿠데타’를 넘어선, 피와 폭력의 혁명이 아닌, 영혼의 정신적 혁명이었다. 그는 이기심을 버리라 했다. 욕심을 버리라 했다. 모든 동물적인 정욕, 잔인성, 이기심을 없애라고 했다. 자신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면 자연히 하늘의 세계가 도래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굳게 믿었다. 단 한 순간도 의심치 않았다. 다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는 이렇게 외쳤다 한다. 마가복음의 한 구절이다.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막디니’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외침인가. 그렇게 죽음의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믿음을 부정했다. 하늘의 더 높은 세계를 부정했다. 이 땅의 삶을 긍정했다. 미천하지만 태양 같은 인간들의 삶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부정하는 바로 그 순간, 역설적으로 하늘의 문을 크게 열렸다. 그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았다. 그렇게 신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곧 완성이었다.’

#3-3.

내가 만난 세 번째 혁명은 피의 혁명, 영혼의 혁명을 지나 이성과 감성의 혁명, 개인과 자유의 혁명, 르네상스였다. 르네상스는 신 만을 바라보던 중세라는 긴 겨울의 끝과 차가운 종교 개혁 사이의 짧은 봄, 인디언 썸머처럼 다가왔다.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다. 억눌려 있던 이성과 감성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트렸다. 온 몸을 옥죄던 갑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세상을 다시 느끼는 듯 했다. 다시 태어난 듯 눈, 코, 입, 손 끝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자신 안의 잠재된 가능성을 마음껏 실험했고, 저 하늘 위가 아닌, 현실 속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한 꿈을 꾸었다.

약 백 년 동안의 짧은 시대였고, 유럽의 좁은 곳에 국한된 혁명이었지만, 그 이후의 시대는 전과 같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긍정과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의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주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던 신은 한 마리 나풀거리는 나비처럼 우리의 일상 속에 내려 앉았다. 그렇게 세상의 경계가 사라졌다.

#3-4.

그들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이대로 썩어 문드러지는 게 너무나도 억울했다.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피워보고 싶었다. 단 한끼라도 배불리 먹고 싶었다. 천대받지 않고,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석에 이끌리 듯’ 아메리카로 갔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미지의 땅으로 떠났다. 구역질 나고, 악취 나고, 불결하고, 끈끈한 죽음의 항해를 무릅쓰고, 뱃삯이 없어 다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은 아메리카로 갔다. 불결한 물을 마시고, 부패한 음식을 먹으며, 거친 황야와 위험한 변경을 넘어 ‘총 하나, 도끼 하나, 옥수수 한 자루’를 가지고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그렇게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 독립해서 살고자 하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역사를 쓰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들처럼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3-5.

다시 처음인 듯 했다. 이제서야 겨우 여기인가 잠시 실망하기도 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동학 혁명은 근대의 시작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 어떤 혁명보다 뜨거운 영혼의 외침이자 우리 내면에서 우러나온 자각의 큰 울림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기 배만 불리려는 탐관오리도, 백성들 걱정은 하지도 않고 자기 살 길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윗대가리들도,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나라의 도움만 빌리려 하는 쓸개는 없이 배운 것만 많은 녀석들을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믿고 따를 수만은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일어서야 했다.

5천년을 꿋꿋하게 이어온 끈질기고 옹골찬 그 무엇이 한데 뭉쳐 형체를 이루었다.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맑은 눈을 떴다. 온 세상에 당당하게 외쳤다.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자, 내가 곧 하늘이다.’ 한 뜻으로 노래했다. ‘개벽 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용담가)’, ‘십이 제국 괴질 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안심가).’

그렇게 다시 큰 하늘이 열렸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하늘이었다. 하늘님은 어디에 있나. 바로 우리가 하늘님이다! 그렇게 피 토하는 영혼으로, 땅을 밟은 거친 두 발로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새로운 역사의 서장(序章)을 펼쳤다.

#4.

12살까지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천동설의 시대였다. 13살 때, 세상의 지축이 뒤흔들렸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보였고, 나는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혼돈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딘가에 갇혀 이리저리 부딪혔다. 깨지고 멍들었다. 한참을 떠내려갔다.

20대는 나를 찾아 헤맸다. 풋사랑을 했고, 이별도 했고, 많이 즐거웠지만 또 많이 아팠다. 열정은 넘쳤지만 그 열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나는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만들다 만 퍼즐 조각이었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레고 블록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서른이었다. 성에 차지 않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불평하며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다. 그래, 나는 멈추고 싶었다. 나는 공부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사부님을 만났다. 그렇게 내 30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게 삼십대는 구축(identity)의 시대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땅을 다질 것이다. 기둥을 세우고 , 전체의 얼개를 엮을 것이다. 내게 사십대는 대화(interaction)와 실행(implementation)의 시대이다. 나는 멋진 건물을 완성할 것이다. 벽을 마감하고, 지붕을 올리고, 뜰에 나무를 심고, 멋진 꿈을 품은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일할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해갈 것이다.

내게 오십대는 나눔과 베품(inspiration)의 시대이다. 사부님처럼 같이 놀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십대, 이십 대의 나처럼 열정은 넘치나 방향을 찾지 못한, 방향은 찾았으나 시작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방황하는 영혼들을 모을 것이다. 그들과 같이 배울 것이다. 만약 가진 것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누어 줄 것이다. 그리고 육십이 되는 해, 나는 훌쩍 떠날 것이다. 다시 삼십 대처럼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또 다른 꿈을 꿀 것이다. 그 꿈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뒤를 돌아 보니, 나의 이야기는 바다와 강, 햇살과 바람의 이야기. 충무, 섬진강, 제주도의 이야기였다.

#5-1.

내가 5살이었던가? 노란 유채꽃과 파란 바다, 다리가 놓여 있는 풍경, 따사한 봄이었다. 외삼촌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섰다. 바다를 따라 걸었다. 오전 11시쯤의 바다는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마치 은빛 별들을 뿌려놓은 듯 같았다. 그 반짝이는 햇살 조각들은 어린 나의 영혼에 알알이 들어와 박혔다. 그 오전의 햇살과 물결의 반짝이는 만남은 내가 지칠 때, 흔들릴 때, 슬플 때, 답답할 때마다 나를 차분히 가라앉힌다. 내 영혼을 다독여 준다.

우린 그 오전의 따사로운 산책을 마시고 술을 한잔 마셨다. 그는 아마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였으리라. 집에 마침 아무도 없었고,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진열장 안 양주가 그를 유혹했으리라. 심심했던 그는 술을 홀짝거렸고, 5살 난 내게도 조금 주었나 보다. 그래, 엄마 오는 소리가 들려서 신이 나서 일어섰는데, 내 뜻과는 상관없이 세상이 마치 중심을 잃은 시계바늘처럼 툭, 하고 기울어졌었다. 마루 밖의 반짝이던 햇살과 방 안의 어두움이 각각 절반씩을 이루던 세상이 수평에서 수직으로 기울어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문 밖의 바다는 여전히 눈부셨다.

#5-2.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힘들게 부모님을 설득해서 1년을 쉬기로 했다. 사실은 고3이 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봄이었다. 잠시 멈춘 나의 눈에 세상은 온통 가능성으로 반짝거렸다. 그 때, 우연히 국민학교 동창이었던 동네 친구를 만났다. 우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집에 쪽지 한 장을 남기고 훌쩍 떠났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다. 막연히 떠난 여행, 첫날은 비 내리는 부산 바닷가에서 맥주를 한 잔씩 들이키고, 둘째 날은 진주에서 남강과 시내를 방황하다 낡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자고, 셋째 날 아침, 지리산을 향했다. 산을 오르고 또 올라도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하산했다. 히치 하이킹을 했지만 학교로 돌아가라는 설교만 한참 듣고 얼마 가지도 못해 내렸다.

다음날, 섬진강 근처 화개 장터에서 친구 녀석이 아는 사람을 만나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우린 강을 따라 걸었다. 주눅들어 있기에 우린 아직 어렸고,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마침 새하얀 배꽃이 한창이었다. 세상은 온통 연둣빛이었고, 하얗고 노랗고 분홍 빛이었다. 우린 강 옆의 작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달려 내려갔다. 그 곳엔 낡은 나룻배 한 척이 떠 있었고,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듯한 낡은 텐트가 기우뚱, 누워 있었다. 우린 그 하얀 모래밭에서 이리저리 뛰어 놀았다.

친구는 아마 텐트 속에서 낮잠을 청했나 보다. 나는 낡은 배 위에 혼자 앉아 거꾸로 흐르는 강과 떠내려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문득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순간이 한참 같았다. 갑자기 코 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생의 모든 순간들을 얼핏 들여다 본 것 같았다. 18살의 봄, 섬진강, 순간이 영원이었다.

#5-3.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난생 처음 제주도를 갔다. 공모전 때문이었다. 2박 3일 동안의 경쟁을 했다. 밤을 꼬박 새웠고, 팀원들과 싸우면서 힘겹게 마무리를 했다. 운 좋게 1등이었다.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갔다. 남은 하루 동안 관광을 했다. 조랑말을 타기도 했고, 박물관을 가기도 했다. 은빛 갈치회와 똥돼지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대포동 주상절리를 향했다.

바람이 참 세차게도 불었다. 우리나라로 향해오는 늦은 태풍 탓이었나 보다. 그러나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변화의 바람이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나를 날려버리는 듯한 바람이었다. 그 거친 바람을 맞으며, 검은 주상절리 기둥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시퍼런 바다를 보았다. 가슴이 확 트이는 듯 했다.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 모든 방황과 아픔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파하면서, 주저하면서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내가 너를 이끌어 주겠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겠다.’ 작지만 소중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방으로 흩어진 마음의 바람이었다. 이 세찬 바람의 힘을 한데 모으면 그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의 등을 타고 그 어디로든 훌쩍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텅 빈 마음의 허공 속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6.

역사의 끝자락에서 에릭 홉스봅 할아버지가 다시 말을 건넨다. “시대 착오와 지방색 이 둘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둘 다 다른 곳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무지에서 생겨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더라도 그런 무지는 잘 극복이 안 된다. 과거는 여전히 다른 나라다. 과거라는 나라에 그어진 국경선은 여행자만이 넘나들 수 있다. 하지만 여행자는 정의상으로 자신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이다.”

책 몇 권 읽었다고, 역사에 대해 무슨 말을 하랴. 이 글은 다만 몇 권의 책과 개인의 인생에 통해 살펴본 일종의 ‘되돌아봄’일 뿐이다. 그 되돌아봄에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짧은 감상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인간은 신이 쓴 시, 세상이 잠시 꾸는 꿈. 눈 뜨면 사라진다. 꿈꾸다 사라진다. 그 반짝이는 햇살과 일렁이는 물결의 대화를 나는 즐겼다. 슬프지만 참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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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6.04 10:13:24 *.99.120.184
도윤의 풍부한 감성이 매번 놀란다.
그런 와중에 용기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다만 부러울 따름이다.
시를 써도 됨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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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04 11:39:57 *.72.153.12
자신의 마음속의 이미지를 이렇게 글로 잘 표현하는 도윤씨 말고는 만나본 사람이 없다. 전달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복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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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6.04 16:23:33 *.209.119.130
좋겠다, 도윤. 아직 서른살밖에 안되어서 ^^
글이 참 좋네. 계속해서 내 인생의 서사시로 써나가도 좋을듯.
군대 간 아들에게 보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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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6.05 09:12:47 *.249.167.156
창용 형님, 격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디에 '용기'를 품고 있는지는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정화 누나, 너무 과분한 칭찬이네.. 누나가 아직 사람들을 덜 만나봐서 그렇겠지..그날 참 재미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복많은 놈'이다.. ^^

한선생님, 아직 뜻대로 글이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자유롭게 오가고 싶은데, 자꾸 익숙한 곳에서 맴도네요. 조금씩 경계를 넓혀 나가고 싶습니다^^

아드님이 군대에 있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더욱 건강해져서 돌아올겁니다! 훈련소에서 몸은 힘든데, 쉬는 틈틈이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던 그 때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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