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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7일 11시 38분 등록
실컷 울어라.

난중일기를 읽으며 생각해본다. 사는 게 무엇이더냐. 산다는 게 대체 무엇이더냐.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조선의 대장군은 무엇이 무서워, 무엇이 안타까워, 무엇이 그리워, 또 무엇이 그렇게 가슴 아파, 허구한 날 운다더냐. 통곡한다더냐.

그리 몸이 강한 사람도 아니더구나. 툭 하면 아프더구나.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력을 가진 무쇠 같은 대장부도 아니더구나. 달 밝은 밤이면 가족들이 그리워 잠 못 이뤄 뒤척이고. 조금만 불안하면 점을 보더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의 의미를 고민하더구나. 그래. 그도 우리들처럼 사는 게 불안하더라. 사람을 미워하더라.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더라.

그리도 약한 사람을, 그저 보통 사람인 그를 무엇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전투에 임하면 천하를 호령하고, 부하들을 격려하고, 자신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승리하게 만들었을까. 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득, 요즘 들어 유난히 눈물이 많아진 3기 연구원들이 떠올랐다. 툭, 하면 눈물이 글썽이는 승완이 형도 떠올랐다. 그들은 뭐가 슬퍼 그리 우는 것일까. 무엇이 가슴 속에서 북받쳐 올라 그리도 우는 것일까?

누군가 말했다. 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했다. 눈물은 연약한 자가 홀로 흘리는 것이 아니라 했다. 눈물은 단지 눈에서 흐르는 소금물이 아니라, 마음 속의 누런 고름을 토해내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눈물이 빠져 나간 자리에 새살이 돋는 것이라 했다. 그래, 그들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실컷 울어라. 마음껏 토해내고, 통곡하여라. 그렇게 검은 피를 흘리고, 붉은 상처를 드러내어라. 너무 빨리 상처를 치료하려 들지 마라. 땜질하려 들지 마라.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빨리 상채기를 닫으면 곪아 터질 지도 모른다. 썩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디 마음껏 울어라. 통곡해라. 놓아버려라!

눈물의 골짜기를 넘어선 자만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진정으로 울어본 자만이 인생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껏 울 수 있는 자만이 마음껏 기뻐할 수 있다고 했다. 울음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한 하드 보일드 잔혹극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뜨거운 영혼의 삶이 아니다. 저 나락으로 떨어본 자 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슬픔과 감정의 간격, 그것이 더 높이 날 수 있는 영혼의 기폭제가 된다. 그러니 부디 실컷 울어라. 시인도 노래하지 않았더냐.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 된 사람을 사랑한다 /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
맑고 눈이 부시다 / 나무 그늘에 앉아 /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 햇살을 바라보면 /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방울 눈물이 / 된 사람을 사랑한다 /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 기쁨이 아니다 / 사랑도 눈물 없는 / 사랑이 어디 있는가 / 나무 그늘에 앉아 / 다른 사람의 눈물을 /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래, 별도 어둠이 있으니 돋아나고, 꽃도 풀이 있어 아름답다. 그늘이 있어야 밝음이 있고,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다. 그러니 실컷 울어라. 낡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 하얀 뼈가 드러날 때까지, 그 빨간 상채기 벌어진 틈으로 감정의 고름이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울어라. 실컷 울어라.

그 울음의 끝에서 당신은 낯선 얼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넌 누구니, 하고 묻게 될지도 모른다. 그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어라. 떨리는 손으로 눈과 코와 입을 그려 주어라. 손을 잡고 천천히 눈물의 끝을 빠져 나와라. 힘이 난다면 마구 뛰어라. 어기야디어차, 힘껏 날아 올라라.

미적지근한 삶은 우리의 뜨거운 생명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이다. 그러니 부디, 눈물이 터져 나온다면 실컷 울어라. 실컷 울고 나면, 지금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새로운 떨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온 몸의 감각들이 총천연색으로 깨어나 외쳐댈 것이다.



이순신 장군,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삶은 눈물이었으리라.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일상이었으리라. 아름다운 나날이었으리라. 꼭 피를 흘리고 목을 베어야만 전쟁터인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하루 하루도 전장(戰場)이 아니던가?

그러니 나아갈 것인가, 뒤로 물러설 것인가, 저 멀리 도망갈 것인가? 그는 눈물을 훔치며, 통곡하며, 자식 잃은 슬픔으로 피를 토하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래서 그의 삶은 더욱 뜨거운 불꽃이 되어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준다.


덧붙임. 그가 죽기 이틀 전,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담담하게 기록해 놓은 일상과 그의 죽음 사이의 텅 빈 두 장의 간격이 책을 내려 놓은 이후에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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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6.07 11:45:17 *.249.167.156
모레 새벽, 일주일 동안의 출장을 떠나는 탓에 꿈벗 모임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대신 여행자의 시선으로 많이 보고, 듣고 오겠습니다. 나누어 드릴게 있다면 담아온 풍경들과 생각들을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그럼 따뜻한 만남이 있는 행복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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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07 11:56:02 *.75.15.205
언제나 부지런한 도윤! 꿈벗모임에 가려고 빨리 올렸는 줄 알았는데... 도윤의 통곡은 언제 볼 수 있을까? 통곡하지 마라, 그냥 더 잘 가꿀 수 있나니.
이순신을 보면서 언젠가 읽은 이시형 박사의< 내성적인 사람이 강하다>라는 책이 생각납디다. 부족하다고 느낄 때 더 나은 내일을, 더 나은 자신을 살아내기 위하여 비난은 비난이기보다 또 다른 자기를 향한 몸부림이었을지 모릅니다. 두 개의 자기 사이에서의 질투와 사랑 연민... 가증스럽다고 하는 것은 그 자신 그렇게 남지 않으려는 또 하나의 모델을 갖은 것은 아닐까(아직 반밖에 못 읽은 소감으로) 생각해 봅니다.

아쉽네, 자네가 빠진다고 하니. 무사히 다른 경험 많이 담아 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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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07 22:39:07 *.29.59.6
벌써 올렸네요...
나도 해볼까...여행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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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6.08 10:44:02 *.134.133.15
하루하루를 나의 뜨거운 생명에 걸맞는 '열정'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눈물이 날 만큼 나 자신을 보며 감격스러워하고 싶네요. 그리고, 뜨거운 생명에 걸맞는 '열렬함'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겠습니다. 나의 사랑이 곱디 고와 그의 두 눈에 눈물이 날 만큼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근데, 정말 일찌감치 올리셨네요. 내 삶의 눈물어린 감격을 위해서는 이런 부지런함과 열심을 본받아야 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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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6.09 00:14:35 *.60.237.51
선이 누나, 통곡하지 않고 즐겁게 살겠습니다^^ 누님도 꿈벗 모임 마음껏 즐기세요!

나는 이상하게 호정 누나 댓글이 재밌더라^^ 고맙습니다!

그리고 현운은 정말 변하기 시작했나보다! 내가 네게 본받을 게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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