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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8일 08시 18분 등록
기본으로 돌아가자.


조선시대 장군으로서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겠지만 리더십 측면에서 볼 때 한 가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군사를 부릴 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안다는 점이다. 이는 전략의 기본으로 특히 군사력 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순신은 훌륭한 전략가로서 23전 23승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역사에 남길 수 있었다. 난중일기에서도 이런 점을 엿볼 수 있다.

"여러 장수들과 맹세하여 목숨 걸고 원수를 갚을 뜻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험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는 왜적을 가볍게 나아가 칠 수가 없을 뿐이다. 더욱이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知己知彼 百戰不殆)'고 하지 않았던가!" (p 206)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知己知彼 百戰不殆)'는 《손자(孫子)》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말로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않다는 전략의 기본을 의미한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이후 전술을 수립하고 실행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최근 들어 경쟁이 치열해지고 창조력을 강조하는 환경에서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결과를 빨리 얻고자 하여 기본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창조력이나 응용력은 기본이 튼튼하지 않으면 그 생명력이 길지가 않고 그 결과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기본을 말하면 부끄러웠던 경험이 하나 떠오른다.

2005년도 12월 어느 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였을 때 큰 아들의 표정과 말속에 걱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보일러가 잘 돌아가다가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아내는 여기저기 보일러를 고칠 수 있는 곳으로 분주하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바깥 날씨는 춥고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씻지도 못했다고 했다.

지금 보일러를 고칠 수 없다면 밤새 고생하겠구나. 한 참 전화를 하던 아내가 “보일러의 점화플러그에 검은 때가 끼어서 멈출 수 있다고 하니 깨끗이 닦아주면 된데요.”라고 한다. 나는 그 말에 아내가 통화한 곳의 지시내용대로 보일러의 점화플러그가 있는 곳을 찾아서 분해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의 경험도 있고 해서 매뉴얼도 열심히 뒤지면서 그리고 분해하면서 ‘직접 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곳도 있구나.’ 요즈음 서비스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었다. 낑낑대면 분해하고 점화플러그를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엉뚱한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찾고 있던 중에 아내가 전화한 곳 중 한 곳에서 사람이 왔다. 기사분도 나의 설명을 듣고 나름대로 증상에 따른 원인분석과 점검에 들어갔다. 점화플러그의 위치도 설명해주시고 다른 여러 가지 원인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이것저것 점검하였지만 보일러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기사분이 기름 탱크를 보시더니 기름이 없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기름이 하나도 없단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나. 아내도 보일러가 멈추었을 때 기름이 남아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였단다. 그런데 눈으로 확인했던 부분에 문제가 있었다. 기름의 양을 표시하는 호스에 실제 기름의 위치를 표시하는 선이 아니라 기름의 자국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자국을 기름이 남아있는 양으로 착각한 것이다. 아내는 기계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나는 무어라 말인가.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것을 확인하지 않고 매뉴얼만 탓하고 원인만 탓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사분이 친절하게 보일러가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유소에 직접 가서 기름도 사오고 돌아가는 것도 확인한 다음에 모든 작업은 끝이 났다. 그리고 수고비로 7만원을 청구한다. 물론 베란다의 언 수도관도 녹여준 수고도 있지만 보일러를 수리한 것도 없고 더군다나 언 수도관을 녹이는 과정에 기사분의 옷과 양말이 젖은 것이 안타까워 갈아 신으시라고 새 양말까지 드렸는데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기본적인 것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한 값으로 7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값을 지불하였다. 아내도 나도 기본적인 것에 비싼 대가를 치룬 것에 황당하기도 하고 내 자신에 화가 나기도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기본적인 생각도 못하고 상황만 탓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창의적 생각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기본적인 것부터 튼튼히 하고 그리고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어 쓰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현재 자신의 글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금방 글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기본을 무시하고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럼 글쓰기의 기본은 무엇일까? 바로 마음으로 쓰는 글일 것이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글은 향기를 품지 못한다. 품더라도 자신의 향기가 아니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힘들더라도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보자. 그것이 글을 쓰는 이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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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08 09:03:52 *.75.15.205
그래요, 기본값 엄청 비싸지요. 그럴만 해요. 그래야 하고요. 모든 것은 기본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오늘은 나, 기본으로 돌아갈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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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6.08 10:31:07 *.134.133.15
이 귀한 깨달음을 그 날 이후, 계속 삶으로 끌어올려 실천하셨다면 수업료가 결코 비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서도 보일러 출장 수리 한 번에 7만원이라니, 비싸긴 하네요. 헉, 말이 안 되나요? 근데, 야간 할증요금이라도 붙나? ^^

글쓰기의 기본이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 좋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저도 내 마음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형의 글을 읽다보니 문득, 함석헌 선생님의 한 마디 말씀이 떠오르네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소리를 쓰려면 무엇 때문에 글을 써. 글이란 나 아니면 못하는 소리를 써야 돼." 이 말을 새겨들으려면, 연구원 과제를 전혀 못하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함석헌 선생님의 이 말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의 향기로, 자신의 마음으로 쓰는 것이겠지요. 저도 기본으로 한 번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전 그 기본이 무엇인지 고민도 안 해 봤으니 그것부터 한 번 고민해보겠습니다. ^^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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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6.09 00:17:21 *.60.237.51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시는 중인 듯 합니다. 꾸준함과 현명함이 일상의 기적을 만나면 얼마나 활짝 피어나실지, 제가 벌써부터 감개무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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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4 13:24:44 *.244.218.10
네. 그렇죠.
기본으로 돌아가자.
마음으로 써라.
마음으로 쓰려면 나의 본질 나의 밑바닥에 닿아야겠죠.

전 요새 괴롭습니다.
자각조차 못했던, 내가 아닌 나로서의 삶이 자꾸 보이거든요.
그러면서도 어찌할 바를 잘 모르는...

'온전히 나로서 살라'

말씀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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