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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4일 20시 05분 등록
장면 하나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논란의 주인공은 tvN의 '식량일기'라는 예능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의 컨셉은 직접 식량을 길러서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첫 희생양은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치킨이다.  <식량일기 - 닭볶음탕>편에서 출연자들이 실제 직접 병아리를 부화시키며 그 탄생에 감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성심성의껏 키워서 닭볶음탕을 해먹겠다는 것인데, 해당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프록그램 제작진의 변은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과거 실제 가축들을 길러서 식량으로 삼았던 과거를 거론하며 닭을 단순히 식용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감정을 교류한 닭과 식품으로서의 닭은 엄연히 다르다는 주장이 있다. 

장면 둘
5월 변경연 12기 첫 오프수업은 충북 괴산 여우숲에서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연구원들과의 합동수업이었다. 각자의 신화를 발표하는 시간,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그날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수업 전날 그가 살고 있던 동네에서 한 남자가 고층에서 추락해서 죽었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흘려듣는다. 수업당일 새벽 시간, 그는 잠결에 한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는 그가 가르치는 어린이 숲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의 어머니로 바로 어제 고층에서 작업을 하다가 추락한 남자의 아내였다. 그녀는 오늘 하루 숲학교에서 자신의 아이를 하루만 돌보아 줄 수 없냐는 부탁을 한다. 병상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남편을 돌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당일 연구원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강의스케쥴까지 있는 터라 그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수 없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자위한 그는 전화를 끊고 마저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집을 나서 스케쥴대로 강의를 하고, 연구원 수업에 참석한 그는 자신의 발표시간에 이 사건을 이야기하며 극도로 괴로운 감정을 표출했다.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고, 아이를 돌보지 않은데서 오는 죄책감이 한없이 밀려오는 듯 했다

<맹자>에 보면 맹자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군주인 제선왕과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루는 제선왕이 대전에 앉아있는데, 어떤 사람이 대전 아래로 소를 끌고 지나갔다. 왕이 그것을 보고 "그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묻자 그 사람은 "혼종(제물)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선왕은 "그 소를 놓아주어라. 부들부들 떨면서 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나는 차마 보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 그러면 혼종 의식을 폐지할까요?"라고 하자, 왕은 "혼종을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소나 양이나 뭐가 다른 것이냐고 제선왕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 하신 일이 바로 인仁의 실천입니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보았느냐, 보지 못했느냐이다. 본다는 것은 만남을 의미하고, 만남은 관계가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병아리가 알을 깨고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 출연자들은 그 갓태어난 닭과의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그 탄생의 순간을 함께 하는 순간, 닭은 식량이 아닌 그들중 하나로 그들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연구원이 전날 동네에서 발생한 추락사고를 들었을때 그 사건은 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설령 떨어져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그 남자에게 한명이 아닌 열명의 불쌍한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들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새벽의 전화를 통해 그 사건은 그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고, 그 남자의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이상 타자가 아니였다.

인仁의 범위는 관계에 있다. 꽃은 우리가 불러주기까지 꽃이 아니다. 헐벗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불쌍한 아이들도 TV에서 진지하게 봐야지 조금이라도 내 안의 관계로 들어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그의 책 <강의>에서 불인인지심과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차마 있을 수 없는 일들은 바로 '만남의 부재'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식품의 유해 색소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계가 없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신영복 선생의 말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은 어떠한가? 성냥갑같은 아파트에 다닥다닥 모여살면서도 앞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민방위 훈련을 가면 매번 하는 단골 훈련메뉴가 응급처치 및 인공호흡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쓰러져서 구호를 해야 할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119에 신고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신변을 구조하는 상황에서 훈련강사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신고를 요청할때 반드시 특정한 사람을 지목해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거기 청색 남방 입으신 남자분,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라는 식이다. 그 청색 입은 남자가 그 사건의 관계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 순간 그 청색 입은 남자의 가슴에는 불인인지심이 더욱 커지고, 십중팔구 남자는 119에 신고를 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누구도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사고를 수습하려 달려오고, 119에 신고를 하는 불인인지심이 충만한 의인들도 있다. 그들 역시 그 사건을 목격했기에, 다시 말해 그 사건이 자신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행동하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불인인지심이 생겨나려면 서로간의 관계형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가까운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길 인仁은 애인愛人이며 그 실천의 지知는 지인知人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아파트 주민에게 인사하는 순간, 그들은 남이 아닌 이웃사촌이 된다. 우리는 전인류를 구하거나 세상을 구원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내 자신을 구해야 하겠지만, 내 자신마저도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구원될 수 있는 것이다. 


IP *.140.2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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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56:23 *.48.44.227

북한 주민의 참상에 관하여 좀 더 알게 된 것은 일본에 살 때 였어요

매 주 일요일 아침에 방송을 하지요. 그 때 보통 충격이 아니었지요.

나에게 북한주민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지요

마침 출석하는 교회가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기도회는 물론 북한 선교를 위한 헌금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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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9:40:38 *.124.22.184

관계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  현대인은 거리두기를 참 잘하는 것 같아요. 내가 다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 관계 속에서 힘들지 않으려고 미리 경계를 두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그 이상을 다가가기가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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