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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일 20시 05분 등록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 버리고 있다" - 몽테뉴


얼마전 어느 상조회사의 홍보팜플릿을 받았다. 홍보물을 보니 한달에 몇 만원이면 가시는 분에게 정성을 다할수 있는 듯 했다. 병원에서 바가지 쓰지 않고, 나일론 하나 섞이지 않은 훌륭한 수의를 해드릴 수 있으며, 장례지도사 덕분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애도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나이 드신 아버지였다. 마흔을 넘기고 나니, 조문을 가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그때마다 죽음에 대해 잠깐씩 상념에 잠겨보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귀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타자의 현실을 통해서만 지각되는 사건일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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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의 일이다. 내 책상위에는 메모용으로 사용하는 큰 보드판이 있는데, 어느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보드판에 위 사진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아내에게 들어보니,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녀석이 보프판에 뜬금없이 "죽음의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라는 낙서를 적어놓았다고 했다. 더 깜짝 놀란 것은 당시 7살이던 딸아이가 오빠 따라한다고 책상위에 올라가 써 놓은 글이다. 

"죽음은 언제나 온다. 오늘일수도 있다."

어디서 들은 것이지, 스스로 생각해서 쓴 것인지 알 수 없는 7살짜리의 낙서는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출근할 때마다 아이들이 써놓은 것들을 한번 쳐다본 후 집을 나서곤 했다. 말 그대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지금의 삶은 한없이 소중한 것이라고 되뇌이며 말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그녀의 책 <인생수업>에서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삶이라고 말한다. 안타까운 것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공감을 하지만, 닥쳐야지만 움직이는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불금은 주말의 시작을 알린다. 우리는 그 끝을 알기에 지금 맞고 있는 한없이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쾌락은 고통이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없이는 삶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대극 對極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삶과 죽음, 너와 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쾌락. 신비가들은 대극을 극복하고 초월해야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말한다. 대극으로 이루어진 세계와 우리의 삶에서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위치하지만, 실상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죽음은 삶이라는 대극을 포용하는 완결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이란 외부세계와의 완벽하고 비가역적인 단절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은 있어도 죽음에서 삶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없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같이 신을 감동시키고, 온 세계를 멈출 수 있는 연주 실력이 없는 한 우리는 삶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일방통행만을 걸어가야 한다. 죽음이 외부세계로부터 소멸되어 그 관계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삶 속에서도 우리는 죽음의 상태에 있지는 않을 걸까? 단순히 인생을 소모하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매우 비약적인 표현이지만 우리는 죽어 있는 것은 아닐까?

불면증에 시달리던 힘겨운 시절에는 수면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벽 5시에 개운하게 일어나 구본형 선생님처럼 2시간동안 글을 쓰고, 말짱한 정신으로 하루하루가 주는 소소한 기쁨을 누릴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군대에 있을때는 제대하고 일반인만 되면 세상이 너무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부모들은 속썩이는 다 큰 자식의 귀여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쟤가 예전에는 착한 아이였는데'라는 탄식을 되풀이한다. 지금 내게는 앞으로 허리디스크만 나으면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더 책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 미래를 향한 어리석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죽음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못 하는 것, 다시 말해 현재를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우리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닌,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하여 메멘토모리는 아모르파티(Amor fati)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니체가 주장한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인 아모르파티는 자신의 운명(현재)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죽음을 향해가는 삶을 영위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가 아닐까?

변경연에 들어와 '나의 장례식'에서 한번 죽고 난 후 다시 석달을 살다 보니, 망자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듯 하다. 유서를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IP *.140.2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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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21:45:49 *.48.44.227

이제 양가 부모님들께서 다 돌아가시니 이제 내 차례구나 생각드네요

순간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하루하루의 의미가 기쁘게 다가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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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11:46:02 *.103.3.17

뭘 아직 창창하신데요. 저번에 등산할 때 보니 저보다 체력이 더 좋으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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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09:43:20 *.130.115.78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을 지금 하라>는 퀴블러로스의 조언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썼는데 그래도 문득 문득 '정말 이게 최선을까!'하는 질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마다 다시 따뜻한 품을 내어주는 그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실패를 알고, 고통을 겪고,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찾아 헤맨 이들이다>

우리 지금, 그녀가 우리를 보듬듯 누군가를 보듬어 낼 수 있는 더운 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겠지요?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는 거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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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11:46:55 *.103.3.17

저희가 아름다워지는 것만큼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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