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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6일 10시 28분 등록

지난주에 여우숲에 갔을 때였다. 숲을 돌아보며, 자신과 닮은 나무를 찾아보라는 백오님의 말에 따라 아침 산책에서 나무들을 살펴봤다. 나는 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나무를 들여다보다 봐도 뭔 느낌이란 것도 없고, 도통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대추나무가 생각났다. 그렇지만, 그곳에 대추나무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마음을 놓고 한바퀴 도는데, 대추나무가 보였다. 숙소 왼편으로 돌아 숲에 들어섰다가 장독대 밑으로 돌아서, 백오산방으로 가는 길목에, 산마늘밭이 었던 곳이 묵정밭이 되는 것을 보고 그 끝트머리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윗쪽에서 얼핏 보았던 환삼덩쿨이 자란 밭은 속 안에는 뭣이 자라고 있는지 보려고 길을 잡아 들어선 밭의 끝에서 대추나무를 찾았다. 여우숲 강의장과 데크가 있는 바로 아래쪽에 밭 끝트리에 사과나무를 심은 곳이 있는데, 그곳에 대추나무도 있었다.


이제 막 올린 줄기인지 대추나무의 새싹은 연두색이었다. 아직은 연해서 대추나무 가시는 억새보이지는 않았다. 손으로 쓸어도 될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다. 이런 나무가 단단한 가시를 가지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단단해질 것이다.  몸통에도 가시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가시를 왜 가지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언제쯤이 가시를 버리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 나무로 도장을 만드는지도 궁금했다. 사실 나와 닮은 나무로 삼으려고 하니 궁금함이 더해진다.


대추나무는 남들 꽃 다 피고, 잎 다 난 후에도 싹이 나지 않아서 죽은 나무인가 의심이 들때서야 싹이 난다. 고향집에 텃밭에 아버지께서 심어둔 나무 중에 아무런 싹이 나지 않은 나무가 있었다. 나는 죽을 줄 알고 아버지께 작년에 심은 나무 중에 죽은 것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대추나무는 아주 늦게 싹이 난다 하셨었다.


따뜻해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는 대추나무를 생각하니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야 겨우 내복을 벗었다. 지난 주말 여우숲에는 겨울 파카를 가지고 가서 입고도 추웠었다. 내복을 벗은 것을 잠시 후회했다.  파카입은 상체는 괜찮았지만, 내복을 벗은 아랫도리는 추워서 연신 문질러줘야만 했다. 실내에서도 추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나는 입하정도는 되어야 내 몸은 봄옷을 겨우 걸칠 수 있다. 가볍게 산뜩하게 샌들을 신고 온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여우숲에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추나무, 거기에 있을 만큼 사랑받는 나무다.  대추나무는 어떤 생존전략, 진화전략을 짰을까 궁금해졌다. 대추나무는 맛난 열매때문에 사랑받는다. 인간에게 이 정도 사랑받는다면, 다른 동물들에게도 엄청 사랑받고 또 시달림을 받았을 것 같다.


백오선생님이 자기 닮은 나무를 찾아보라고 한 이유는 나무의 지혜를 배워서 자기가 닮았다고 생각하는 그 부분을 해석해보라고 한 것 같다. 어쩌면 장애일 것 같은 추위, 혹은 맛난 열매를 가진 괴로움, 즐거움 같은 것을 말이다. 괴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장점을 살려서 사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의미 같다. 어쩌면 선후가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열매를 가져서 괴로운 건지, 열매 때문에 극복한 건지, 추위를 극복하려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건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의문이 몹시 많다.

추위때문에 겨울에는 활동을 못하는 나는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또 나 자신을 보호하는 가시는 어떻게 만드는지,  어느 시기에 가시를 버리는지도 알아보고, 내가 가진 달달한 열매는 뭔지도 찾아서 활용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는 내가 자진 가시에 대해 재해석하고, 달달한 열매를 달게, 알차게 만드는 전략을 대추나무에게 배워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의문이 멈추질 않는다. 늦게 시작하는 나무는 어떤 전략을 쓰는 걸까? 내가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어쩐 전략을 써야할까? 나를 도와주고 후원하는 세력이 많은 때는 어떻게 성장해야할까?


날이 따숴져서 다행이다.

  

여름, 따뜻해서 좋다.

IP *.25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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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16:55:32 *.130.115.78

대추나무와 사랑에 빠지셨군요. 축하드려요. 새로운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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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0:06:29 *.252.203.12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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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17:28:28 *.48.44.227

추운 날에 넘넘 따뜻한 보온 난로를 남에게 선뜻 빌려주었던 그 자체가 벌써 대추나무의 모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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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0:08:56 *.252.203.12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생글생글 밝으니시 존재 자체로 봄이십니다. 

찐하고, 즐거운 연구원 1년차 재미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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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17:47:55 *.140.242.43

대추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어릴적 시골에서 따먹던 대추의 달콤함과 푸근했던 나무의 느낌은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선배님의 따뜻한 봄을 기원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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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0:10:15 *.252.203.12

감사합니다.

달콤함을 나눠주는 것이 대추나무의 번성하는 전략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달달함으로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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