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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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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2일 06시 09분 등록



  “이야기 들어드립니다. 단, 조언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들어 드립니다”


  기 막히는 투잡 아이템이 있다. 아무런 약속도 없는 주말, 자주 가는 까페에 앉아 이런 팻말 하나 써 붙이고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인터넷으로 홍보도 하면 좋겠다. 이렇게 적어둘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분은 매주 토요일 OO시부터 OO시까지 OO까페 2층으로 오셔서 빨간 티를 입은 사람을 찾으세요. 이야기 들어드립니다. 단, 조언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커피는 직접 사드셔야 합니다’. 


  그게 뭐야 싶겠지만, 나는 대박을 의심치 않는다. 이게 무슨 돈 벌이가 될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할까 싶을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주목적은 돈 벌이가 아니다. 나의 목적은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채널을 열어두는 것이다. 돈 벌이는 되지 않아도, 나의 목적은 확실하게 달성할 수 있으니 그래서 대박을 의심치 않는 것이다. 무조건 쪽박은 면한다는 심산이다. 산에 올라 큰 소리를 지르며 메아리를 듣는 것도 좋고, 강가에 돌을 던지며 풍덩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어떤 식으로는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왕 대박 아이템이 떠오른 김에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다른 구체적인 방법들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청개구리처럼 살 생각에 벌써 가슴이 떨리고 흥분이 되는 듯 하다. 


  • 장소를 가르지 않고 책을 읽다가 다 보면 모르는 옆 사람에게 그 책 선물하기

  • 정치인에게 편지 쓰기

  • 출근 길에 보이는 휴지 줍기

  •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기 (하루 세번 이상)

  • 1년 넘게 교류가 없던 옛 친구에게 그냥 전화하기

  • 어느 주말에 그 친구를 만나러 가기

  • 종이학 10마리를 접어 작은 병에 담아 지인에게 선물하기 (100마리는 너무 많다..)

  •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타고 놀기 (대신 꼬마들이 오면 자리 양보하기)

  • 미술관이나 전시관 가서 진지한 척 둘러보기

  • 봉사활동 가기

  • 헌혈하기

  • 자주 읽는 월간지 (샘터나 좋은생각 등)에 나의 사연 기고하기

  • 인터넷 신문사에 칼럼 기고하기

    … 


  5년 전 쯤으로 기억한다. 걸어서 출근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15분 남짓 되는 출근길을 걷는 동안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웠던 적이 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청개구리 심보였던 것 같다. 나름 나의 건조한 일상에 돌을 던지는 시도였던 것 같다. 분명 효과는 있었다. 무미건조한 매일 아침 출근길이 묘한 흥분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뇌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게된 원인에 대해 반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인과 관계가 형성이 되면 할 일을 마친 우리의 뇌는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그러한 상황을 다각도에서 분석하려 애를 쓴다. 합리적인 인과 관계를 찾을 때까지 쉬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의 전과 다름 없는 일상 속에서도 전에 없던 낯선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만화영화에서 외계인과 교신을 하겠다며 양은 냄비를 뒤집어쓰고 고장난 라디오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주파수를 이리저리 맞추는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세상 누구 보다 이성적인 어른들은 아이에게 외계인은 없다고 말하거나, 양은 냄비로 장난치면 안된다고 점잖게 아이를 타이를지도 모른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 버린 그들을 탓하지말자. 어쩌다 꼰대가 되어 버린 그들도 한 때는 그 아이처럼 매일 강가에 나가 돌을 던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고 그것은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다. 가장 빠르고 편한 길만 찾는다. 세상과의 소통은 늘 피곤하고, 잠은 늘 부족하다. 언제부터 가장 효율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맹신을 하게 된다. 효율적으로 살다 보니, 하던 짓만 하면서 살게 되고, 하던 짓만 하면서 살다 보니, 늘상 하던 생각만 하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의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굳은 어른이 된다. 거기다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남들에게 강요하면 그 사람은 그냥 어른도 못 되고 그저 그런 꼰대가 된다. 


  우리는 과연 자신이 세상과 소통하는 자기만의 채널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없다 싶으면 산에 올라 소리라도 지르고, 그도 안 되면 근처 강가에 돌이라도 던질 일이다. 그렇게 계속 강가에 돌이라도 던지다 보면 혹시 또 누가 알까. 산신령이라도 나타나 금도끼, 은도끼를 꺼내 주지는 않을지라도 좀 더 오래 아이처럼 살 수 있을지. 이도 저도 아니면 꼰대는 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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