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알로하
  • 조회 수 942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8년 3월 19일 11시 59분 등록

1년전 오늘, 2017 319일은 변화경영연구소의 11기 연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면접여행을 했던 날이다. 연구원이 꼭 되어야만 하는 간절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지인의 추천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기 위해 참여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그것도 앞으로 계속 만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12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어색함을 감추고자 일부러 활짝 웃고,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날의 어색함은 스냅사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요, 저와는 인연이 아닌 거겠죠.”

이번에 연구원이 안 되면 어떡할거냐는 질문에 그저 쿨하게 대답했다. 실제 심정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면접여행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 동안 전혀 쿨하지 않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대답이 너무 성의 없었나?, 좀 더 간절해 보여야 했던 건 아닐까? 부질없이 후회하며 1주일을 보낸 후 다행히도 합격 소식을 들었다. 나중에 교육팀 선배의 얘기를 들어보니, 나를 뽑자는 의견과 뽑지 말자는 의견이 팽팽했었다고 한다. 나를 뽑자는 의견을 강하게 냈던 선배들에게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들의 목소리가 작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합격 소식을 듣고 1주일 뒤부터 바로 북리뷰를 시작했고, 그 주말에 첫 오프 모임이자, 선생님의 추도식, 그리고 우리들의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식에서 읽기 위해 유서를 준비하며, 이런 거 정말 오글거린다는 사람도 있었고, 첫 줄을 쓰자마자 눈물이 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장례식에서 읽을 때도 마찬가지 였다. 첫마디를 내뱉고 목이 메어 더 이상 못 읽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뉴스 기사 읽듯이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는 사람도 있었다. 눈물이 없었다고 유서 쓰기를 쉽게 여겼거나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슬픔을 드러내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우리는 냉철한 여자들과 감성적인 남자들로 구성된 11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냉철한 여자들과 감성적인 남자들은 이후 글쓰기나 오프 수업, 다른 문제 해결방식 등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우리의 특징이다.

첫 공식 오프 수업을 자신의 죽음과 장례식으로 시작하며 각자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 힘든 것,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후 미스토리를 공개하며 왜 그것이 중요하고, 후회하는지 더 잘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너무 강렬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의 바닥까지 보았던 건 아닌가, 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우리의 문제는 서로를 잘 몰라서 벌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12일 여행을 하고, 죽음을 함께 맞고, 개인사를 공유했다지만, 그래봤자 우리는 겨우 세, 네 번 만났을 뿐이었다. 서로를 잘 알고 삶을 공유한다는 건 깊이 못지 않게 기간도 중요하다. 기간을 무시하고 깊이로만 우리의 관계를 설정하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을 맞았다.

 

6월 경주의 신화 여행은 그런 면에서 우리 관계에 전환점이 되었던 여행이었다. 일명 쌍팔년도 보따리아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아픔까지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이 큰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성취주의자 답게 나는 여기서도 매주 주어진 책을 잘 읽고, 공들여 북리뷰를 쓰고, 칼럼을 잘 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주 한주, 칼럼의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다며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을 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더랬다. 그날 누군가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과정을 하고 있고, 하룻밤을 자는 여행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했는지, 그렇게 극적으로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사실을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일과 육아, 그리고 연구원 과정을 병행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깊이 공감하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니라서, 그들보다 시간이 많아서, 나는 과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다행이라고만 여겼던 것 같다.이후로도 완벽하게 마음으로 공감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1년의 연구원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 내가 뭘 해야하는지를 계속해서 잊지 않고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가을의 슬럼프를 겪으며 또 다른 의미의 뭣이 중한지를 경험했다. 그동안 재미없어도 어떻게든 읽던 책이 갑자기 너무 읽기 싫어졌더랬다. 눈은 책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내용도 혐오스럽고 읽을수록 우울해졌다.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서 억지로 책을 읽고, 마감을 한 두시간 앞두고 칼럼을 썼다. 책이 너무 싫어지고, 과정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슬럼프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책 때문이었다.

때마침 9월 오프수업의 과제는 역사속 인물과의 인터뷰였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주제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우울함의 원인이 되었던 작가 사마천과 정말 부러운 작가 괴테등을 인터뷰이로 삼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에게 나를 괴롭히는 질문, ‘죽음과 삶’, ‘우울함’, ‘열심과 게으름등에 대해 묻고 답을 구하는 사이에, 뜻하지 않게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저자 연구가 중요한지도 진심으로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북리뷰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모든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다는 아니더라도 올해에 몇 권은 다시 읽을 예정이다.

 

10월에 연수여행을 하면서 바로 책쓰기 수업이 시작됐다. 나는 연구원 과정을 하면서 내년에 책을 쓸 계획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었다. 내게 연구원 과정은 책읽기와 글쓰기연습이기도 하지만 내면 탐구가 더 큰 목적이었지, 책을 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10월부터 1월까지 네 번에 걸쳐 책쓰기 수업을 하면서 나에게도 책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처음에는 나와 같이 한가지 재능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래는 우리들의 것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꼭지글을 쓰려니 바로 알겠더라. 왜 선배들이 첫 책은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것을 쓰라고 했는지한달 만에 주제를 내가 쓸 수 있을 것 같은영어 공부, 특히 작문으로 바꿨다.. 이후로도 큰 틀은 유지했지만 타겟이 청소년에서 어른, 다시 어린이로 바뀌는 등, 매달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동기 중에 가장 먼저 책을 낼 것 같은 사람의 유력한 후보였는데, 이러다가 내가 가장 마지막에 낼 지도 모르겠다. 아니 꼭 책을 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1월에 마지막 오프 수업을 마치고 심하게 아팠던 이후,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책수업을 하면서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어쩌면 생기지도 않은 알을 억지로 낳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듣다 보니 욕심이 앞서 무리를 했고, 무리해서 하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사실 2017년은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감기에 걸리고 아팠더랬다. 1년 전에 비해 살도 많이 찌고 여러가지로 이상이 있었는데, 무시하고 넘어가다 보니 크게 아팠던 듯 하다. 더 큰일이 있기 전에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알을 낳으려면 먼저 알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지금까지 읽은 대부분의 책이 좋은 글쓰기, 책쓰기를 위해 매일의 힘을 강조한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지난 1년간은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보는 눈, 함께 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1주일에 한권의 책을 읽고 한편의 칼럼을 썼다. 이제는 매일 책을 읽고,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며 매일의 힘을 길러서 알을 만들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걸 혼자서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바로 한 달 전에 졸업여행을 마친 후기에 비슷한 길을 가겠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 더 아름다운 길이 되리라고 기대해 본다.”고 썼다. 어쩌면 지난 1년은 함께 갈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함께 해서 아름다운 길을 걸으려고 한다.

나로 인해 그들의 길도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를 희망한다.


IP *.222.255.24

프로필 이미지
2018.03.20 14:30:39 *.14.235.177

3월 19일이 이런 의미 있는 날이었군~

일년이란 세월이 참 고맙고 값진 기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돼요. 물론 알로하가 있어서^^

프로필 이미지
2018.03.21 14:20:54 *.73.123.208

1년간 애쓰셨어요. 건강 챙기시고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52 더 이상 슈퍼개발자를 꿈꾸지 마라(천복을 찾아서 2) [5] 불씨 2018.04.15 929
4951 또 다시 칼럼 #1 화해조정위원에게 듣는 피가해자 관계회복(정승훈) [11] 정승훈 2018.04.10 925
4950 지렁이에게서 날개 돋다 [5] 박혜홍 2018.04.10 1038
4949 5.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_ 박미옥 file [8] 해피맘CEO 2018.04.10 921
4948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천복을 찾아서 1) - 이경종 file [8] 불씨 2018.04.10 922
4947 #40 10년 후에 우리는…_이수정 [2] 알로하 2018.03.26 910
4946 메추리알 장조림에서 보는 변화의 비밀 - 풍천소축(風天小畜) file 보따리아 2018.03.25 1327
4945 칼럼 #40 부산 여중생 피해자 그 후 이야기 (정승훈) 정승훈 2018.03.24 908
» #39 연구원 과정을 마치며…_이수정 [2] 알로하 2018.03.19 942
4943 4. 스승의 빈 자리 file 해피맘CEO 2018.03.19 932
4942 단 한 사람을 위한 책 - 지뢰복(地雷復) file [2] 보따리아 2018.03.19 1442
4941 #39 내 집 마련의 꿈 에피소드 #1 (윤정욱) file [1] 윤정욱 2018.03.19 952
4940 [칼럼 #39] 사회복지사로부터 듣는 보호관찰소의 실태 (정승훈) 정승훈 2018.03.18 911
4939 3. 나는 무엇으로 특별해지고 싶은가? file [5] 해피맘CEO 2018.03.12 917
4938 승마와 어린이 교육의 괘, 산수몽(山水蒙) 보따리아 2018.03.12 1053
4937 #38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채널 갖기 (윤정욱) file 윤정욱 2018.03.12 904
4936 칼럼#38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 삭제 안 되나요? (정승훈) file 정승훈 2018.03.10 1651
4935 주저 앉은 상황마저 용서하고 사랑하라 - 풍지관괘 file 보따리아 2018.03.05 1286
4934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913
4933 #37 달래를 먹으면 (윤정욱) file [2] 윤정욱 2018.03.04 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