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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0일 05시 54분 등록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천복을 찾아서 1)

"옳은 방향을 선택했다고 생각되면 그 방향을 확신하세요.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크리스 가드너(홀딩스 인터내셔널 CEO)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의 문제는 무엇으로 특별한 삶을 살것인지와는 출발선이 다른 문제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세속적일수밖에 없다. 밥이라는 관념이 일단 개입되면, 우리는 한없이 방어적인 속물로 변한다. 먹고 자는 생존을 관장하는 뇌간의 활동은 가장 먼저 창조된 본능답게 인간의 모든 행위에 너무도 쉽게 우선한다. 생사의 순간에서는 어떠한 가치도 이보다 우선될 수 없다. 우리는 인생 밑바닥으로 내려 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간신히 수면위에 떠올라 가라앉지 않기 위해 온힘을 다해 발을 휘젓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이상(理想)은 이미 어두컴컴하게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에 처박혀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마음을 돌보는 일은 사치일 뿐이다. 무엇으로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배고픈 상태에서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신화학자 캠벨은 내 삶을 실제로 버티어 주는 것이 모듬살이가 될 때 삶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삶의 어려움 중 하나는 그 모듬살이가 베풀어주는 마당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루고 싶은 꿈만큼이나 내 가족을 밥 먹이는 일은 절박한 일이며 지극히 절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천복(Bliss)을 찾아가고자 하지만, 모듬살이와 가족이라는 대(大)의 앞에서 꿈의 절실함 따위는 언제든지 양보할 수 있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희생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는 그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운 법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어장으로 물이끼로 뒤덮인 녹슨 배를 이끌고 고기잡이를 떠났다가 돌아왔다를 반복한다. 매번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들고 영원히 산을 오르내리는 시시포스처럼 삶은 부조리로 가득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먼 곳으로 출항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꿈에 그리던 광활한 대양, 미지의 그 섬에서 인생의 여유도 즐기고 더 많은 고기도 낚을 수 있으리라는 꿈에 오늘 하루도 근근히 버티어 낸다. 

 인생은 절실함의 잣대를 빌어 밥벌이와 나의 꿈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하는 문제일까? 처자식 모두 버리고 나를 부르는 그 길로 들어서야 하는 것인가? 너는 내 운명이야 하고 부르짖던 처자식은 이제 나의 운명을 방해하는 식어버린 찬밥이란 말인가? 자기혁명이라는 미명하에 모듬살이로부터 과감히 뛰쳐나와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자신을 공명하게 만드는 만남이 찾아오면 다 버리고 그 문 그 길로 들어서는게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허나 이는 급진적인 방법이다. 자기 혁명의 DNA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모든 혁명이 성공할 수는 없다. 흑과 백, 선택의 프레임만으로 고민하면 인생은 피곤해진다. 어느날 갑자기 벼락과 같은 깨달음이 왔다고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 버리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먼 훗날 비록 그 떠남이 모두에게 최선이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세월을 견뎌야 하는 아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결국 우리는 하고 싶은 일과 밥벌이간의 벌어진 간극을 좁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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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19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지독하게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한 남자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한물간 의료기기 세일즈맨으로 이렇다 할 실적없이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간다. 그는 어느날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주식중개인으로부터 특별한 학력이 필요없고 숫자만 잘 다루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주식중개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아내는 가출을 하고, 결국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어린 아들과 함께 노숙을 전전하게 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고 하룻밤 잘 곳을 찾아 밤거리를 헤멘다. 어깨와 양팔 한가득 짐을 짊어진 채, 아들의 기저귀를 손에 들고 다니며 화장실에서 눈물로 어린 아들을 재운다. 참담한 노숙생활은 1년동안 계속되었지만, 그는 절대 인생을, 또한 그의 어린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많은 난관과 고비를 뚫고 주인공은 결국 성공에 이른다.  역경을 딛고 승리한 한 인간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홀딩스 인터내셔널의 최고 경영자인 크리스 가드너는 세계적인 금융인으로 이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 남자를 그다지도 삶에 분투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절실함이었다.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노숙자를 성공한 주식중개인으로 변화시킨 것은 절박한 현실과 꿈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 절실함은 단순히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꿈과 사랑이었으며,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을 결코 놓지 않은 내면을 향한 희망이었다. 절실함은 변화를 낳는다. 구본형은 변화는 절박함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단언한다. 절박함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킬 수 있다면 변화의 반은 성공한다. 절박함은 아직 희망이 있을 때 찾아온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것이 희망을 이루게 하는 강력한 에너지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절실함과 변화, 그리고 희망의 삼중주다. 간절하지 않으면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하고자 하는 일이 정말 절실한 것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그 절실함이 나의 근원에서 올라오는 것인지, 외부로부터 강요당한 절실함인지부터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비록 외부적인 동기로 출발하더라도, 내부로부터 변화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내는 일은 꼭 필요하다. 단순히 밑바닥으로 내려간 내 삶에 대한 동정에서 비롯된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구는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절박함은 변화를 낳고, 변화는 천복을 찾게 해줄수 있지만 절박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돈과 명예를 바라는 절실함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이상 세속적인 성공에 집착하지 말자. 그것 하나만으로 밥벌이와 내가 찾고자 하는 천복 사이의 벌어진 틈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 직장과 일상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과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하자. 출발은 어디 먼 그 곳에서 하는게 아닌, 바로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지금 하고 있는 일들부터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더 좋아하고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요구함과 동시에 내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많은 이유와 변명으로 원하는 것들을 마음에만 담아놓은채 요구조차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나의 인생을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기회가 오기도 전에 지레 스스로 미리 포기하는 것이다. 크리스 가드너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선물은 자기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다. 매일 똑같은 상사와 일하면서 그 상사가 달라지기만을 바라는 일 또한 바보같은 짓이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치열하게 고민해도 지금의 밥벌이에서 바꿀수 있는 것이 없다면, 만약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그 하나의 기회조차 없다면 과감히 때려치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때론 혁명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부정적인 편견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바라보지는 말자. 자신의 비겁함을 외부의 원인으로 전가하려는 치졸함은 부리지 말자. 구본형은 그의 책 <세월이 젊음에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혹 언젠가 그 일을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그 일을 스스로 모욕하지 마라. 시시한 일이라고 투덜거리지도 마라. 그러면 결국 지금의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인생의 돌아올 수 없는 한때를 모욕하는 것이다."

 하루 중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위한 고정적인 시간을 찾아내서 습관으로 정착시키자. 구본형 스승이 수없이 강조하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새벽 두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다. 그 노력을 지금의 일이 아닌,  하고 싶은 그 일을 위해 고정적으로 할당하는 것이다. 진급과 업무고과를 위해 매일 새벽 재미도 없는 영어학원을 다니는 대신에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공부를 지속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기회가 오면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 마냥 자연스럽게 기회를 붙들자.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지루한 인내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름다울 것이다. 천복을 좇는 순간순간 하늘과 함께 공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 헤메고 있다. 캠벨은 삶의 의미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삶의 의미라는 '말' 대신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삶의 경험 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살아있음의 경험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야 한다. 천복이란 하나의 상태나 직업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과 그 순간순간에서 천복을,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면 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다. 천복을 찾아 조금씩 나아지는 우리의 일상은 그 자체가 신화적 모험이며 삶의 정수인 것이다. 삶은 의미로 각색되는 것이 아닌, 그 순간순간이 만들어 낸 위대한 조각상과도 같다. 조금씩 조금씩 깎아 내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천복을 누리는 삶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지와 무엇으로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 것인지는 결국 똑같은 결승점에서 만나게 된다. 먹고 사는 일이 천복이 될 때 삶의 모든 경험은 축복이 될 것이다.

"너의 천복 (天福)을 따르라(Follow your bliss). 
그러면 문(門)이 없던 곳에 새로운 문이 열리리라.”
 -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1904 ~ 1987)
IP *.215.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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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18:40:20 *.130.115.78

한 줄 한 줄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아...

온 페이지를 통째로 줄긋고 마는 희비극.


이번에 <신화의 힘>을 새로 읽으며 느꼈던 양가감정을

경종씨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체험해요.


조만간, 캠벨급의 못된 저자가 될 것만 같은 예감

괜히 드는 건 아닐듯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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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4:04:58 *.103.3.17

저도 왠지 캠벨의 책은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책이 더러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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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21:44:26 *.124.22.184

작년 [신화의 힘]을 읽으며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네요. ㅠㅠ

경종씨처럼 잘 소화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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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4:05:46 *.103.3.17

ㅜ.ㅜ......제대로 소화한게 사실 없습니다. 몇번을 더 먹어야 소화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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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22:18:39 *.48.44.227

경종님은 하루가 30시간 아닌가? 직장 다니고 아가들 돌보고, 책읽고 글쓰고 슈퍼맨인듯!

40대의 고뇌가 아름다운 글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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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4:07:00 *.103.3.17

선생님, 사실 아가들은 돌보지 않습니다. ㅋㅋ 다행히 지들끼리 알아서 잘 놀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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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1:46:21 *.39.102.67
"설혹 언젠가 그 일을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그 일을 스스로 모욕하지 마라.
시시한 일이라고 투덜거리지도 마라. 그러면 결국 지금의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인생의 돌아올 수 없는 한때를 모욕하는 것이다."
멋진 문구를 경종씨 덕분에 읽게 되네요. 글빨, 죽입니다~ 5월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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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4:08:49 *.103.3.17

감사합니다, 연대님! 5월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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