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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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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4일 00시 06분 등록

시합이 시작되면

 

 

 

시합이 시작되면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있는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지아화는 어렵게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들어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밤에는 어머니를 도와서 야식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며 광고학과를 졸업하고 촬영을 전공하기 위해 예술대학을 지원하였다.

자아화가 000 와 만난 것은 3학년 때 대학 연맹전 시합을 가기 위해서 집중훈련을 할 때 였다. 그는 그가 쏟아 내는 이야기들이 여느 코치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훈련을 힘들기는 하지만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 주는 코치의 설명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광고학을 전공하던 그는 코치의 상징적인 표현이나 암시들에 무척 공감을 느꼈다.  거기에는 단지 검을 다루고 시합에서 이기는 것 이상의 철학이 있었고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활과 공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대학원 입학시험에서 졸업작품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질문 받았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펜싱을 가르쳐 준 코치의 이야기를 찍겠다고 말했다. 

 

지아화는 촬영이 계속되는 동안 코치의 여러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펜싱이 아닌 개인적인 생활과 가족들 그리고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과정들까지

그는 유도하지 않고 그리고  촬영의도를 이야기하지도 않고 그저 관찰되는 데로 찍고 또 찍으면서 계속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펜싱과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 갔을 때 펜싱부가 있었고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펜싱부가 되었다.

그것이 펜싱과 내가 만난 처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후일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나와 펜싱은 좀 더 많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심리학 수업중에 내관법이 있어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펜싱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요?  어떤 기억을 하게 되셨는데요?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 나는 동네 형들을 따라서 시내 구경을 갔었다. 아마도 여름이 깊은 무렵인 듯 싶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 이르러 정신이 없이 형들을 따라 다니며 구경하다가 어느 반지하의 유리창문 안으로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사람들이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손에는 긴 쇠꼬챙이 같은 것을 들고  칼싸움을 하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너무도 신기해서 나는 정신없이 그 장면을 보다가 동네 형들을 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는 기울었고 거리는 컴컴해 졌는 데 형들을 찾을 수 없었고 집으로의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무서웠겠는데요?

그랬지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데 어떤 고등학교 다니는 누나가 나를 파출소에 데려다 준 것을 기억한다. 거기에서 울고 있다가  연락 받고 오신 어머니한테 혼나고 집으로 돌아 온 것이다.

그 때 본 것이 펜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몰랐지, 난 그 이후로 가끔씩 얼굴 없는 가면을 쓴 사람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꿈을 꾸곤 했었다. 무척 놀라곤 했는데  길을 잃었던 공포감이 얼굴 없는 가면과 겹쳐져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내가 체육관 창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으니  안에 있던 연습하던 사람이 창 쪽의 나를 고개를 돌려서 쳐다 보며 뭐라고 하면서 칼로 나를 가리켰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많이 무서웠겠어요,  가위눌리셨군요.

그리고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고등학교 시절에 펜싱부가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고 결국 펜싱을 하게 되었다. 신기하지?

재미있네요..

나는 운동에 별로 소질이 없다. 어려서는 작고 몸도 약했지, 그런데도 나는 운동을 하고 싶어 했어.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집안 사람들처럼 뼈대가 굵고 손이 커서.. 특히 나는 왼 손잡이여서 운동부 코치선생님들이 운동하기를 원했지,  초등학교 때 핸드볼을 했었다.  5학년 때 우리 반은 체조 시범 학급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기계체조 선수 출신이셨다. 그래서 기계체조를 배울 수 있었지 일 년 동안…”

잘 하셨나요.?

아니, 나는 체조가 재미있고 공중회전이나 핸드스프링 같은 것들이 무섭지는 않았다.하지만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내 친구들 중에 대표선수가 되고 체육중학교로 진학한 애들이 있었다.

핸드볼을 하셨다면서요…”

육학년 때,  3학년 때 전학을 와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때여서 말썽을 꽤 피웠지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운동을 권해 주셨는데 핸드볼이었다. 나는 핸드볼을 초등학교 때 왼손으로 집을 수 있었어, 손이 그만큼 컷지.. 하지만 몸싸움을 싫어하는 나는 핸드볼을 잘하지는 못했어 공을 던지거나 힘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몸싸움을(body check) 잘 못해서 좋은 선수가 못 됐지.  그러니 당연히 후보가 됐지, 아무리 기술적인 동작이 좋아도 상대를 젖히거나 방어해 낼 수 있는 적극적인 몸싸움을 못하니 그래도 나는 핸드볼 하는게 좋았어 잘 하든 못하든 운동을 한다는 것이 좋았거든…”

그런데 왜 그만 두셨어요?

코치 선생님이 내가 2월 생이니 일 년을 유급해도 시합을 뛸 수 있으니까, 일 년 더 연습하고 핸드볼 명문중학교로 특기자로 보낼려고 아버지에게 건의했다가 난리가 났지..

~..?

아버지는 내가 운동하는 것을 싫어했어, 운동하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고, 그런데 유급이라니.  잘 해야 깡패밖에 안 된다고  화를 내시면 당장에 그만 두도록 하셨지. 그래도 나는 아버지 몰래 운동을 했었다. 방학 때도 코치 선생님 집에 놀러 가고,,,  친구들은 모두 특기자로 중학교에 갔지만 나는 그냥  일반 중학교에 진학했지 그렇게 핸드볼과 인연은 끝났어…”

그랬었군요

난 운동을 좋아해, 소질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난 좋아해,,, 이유는 잘 모르지만 펜싱도 그렇게 해서 시작된거지 아버지가 무섭기는 해도 그래도 운동을 좋아했지, 고등학교 때 펜싱을 한 것도 처음에는 아버지 몰래 운동을 하고  전국대회에 나가게 됐을 때, 이야기 했지 아버지는 화가 나 있었지만 말이 없으셨어 아마도 내가 재능이 부족하니 조금 하다 그만 둘거라고 생각하셨을 거야

운동은 잘 했었나요?

아니 당연히 잘 못했지 처음에는 우리는 코치 선생님이 없었어 그래서 선배에게 운동을 배웠는데,,, 졸업한 선배가 와서 가르쳐 주면 따라서 하는 것이었지,  나야 운동신경이 썩 좋지 않으니까 당연히 잘 못했지…”

운동신경이 안 좋다고요? 선생님이 에이.. 순발력이나 민첩성 그리고 근력이나 유연성 뿐아니라 지구력도 좋으시잖아요.. 지금도..

하하하, 그건 노력 덕분이지 그리고 너희들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운동에 타고난 소질은 없어 어쩌면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는지도 모르지만…”

믿어지지 가 않는군요…”

고등학교 일 학년 때 나는 100m 15.5 정도 밖에 못 뛰었어 그리고 민첩성도 별로였고 또 지구력도 그랬지 하긴 뭐 나중에 잘 하게 되기는 했지만.. 노력해서 안 되는게 있나.. 하고 또 하면 최고는 못 되지만 우수한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상상이 가지 않는데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요..

정말이라니까.. 내 소원이 400계주 멤버에 들어가는 것이었지, 하하하, 6년 뒤에 대학 3학년 때 소원을 이루었지.. 그것도 무슨 큰 시합이 아니라 체육학과 학술단체 운동회에서 그 땐 11 flat 을 뛰었으니까 못 뛰는 편은 아니었지.물론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정말 가능한가요. 순발력이나 민첩성 같은 것들이 훈련만으로  잘 뛸 수 있나요…”

물론이지,,, 다만 노력해야 하고 적절한 연습방법을 함께 한다면…”

어떤 …”

나는 생각했었지, 그리고 물어보았어 잘 뛰는 친구들한테, 그리고 요령을 배우고 처음에는 모래 주머니를 차고 오래 달리기를 많이 했지,.. 대학에 가서는 15kg  짜리 쟈켓을 입고 산을 뛰었고,,,   그렇게 근력을 키우고, 순발력을 키우는 훈련을 했지, 모듬발 점프 훈련

서전트 점프  순발력은 힘을 집중시키는 연습이기 때문에 그것에 맞는 훈련 방법을 배워서 하고 나중에는 스스로 개발을 하기도 했지 보폭을 넒히는 기술을 육상부 선수들한테 물어서 배우고 스피드를 늘리고 다리를 빨리 움직이기 위해서 내리막길을 뛰었지, 그렇게 몇 년을 하고 나니까 좋아졌어..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으셨나요.. 그 후로..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어.. 그렇다고 좋아 하신 것은 아니셨지,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인정해 주셨지..  처음에는 아버지가 참 원망스러웠었어.

..~~

나는 펜싱을 배운지 일 년이 채 안되서 6개월쯤 되나.. 전국체전에 나갔는데 은메달을 땄지 운이 참 좋았어 선배가 없어서 멤버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었는데 운좋게 시합을 잘 뛰어서.. 성적도 좋았지..  그리고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따게 되어  생긴 성취감과 자신감이 나를 더욱 열심히 훈련하게 만들어 주었지,, 결국 일 년만에 다른 친구들은 대개 중학교 때 펜싱을 시작하니까.. 나는 2~ 3년 늦게 시작한 셈인데 2 때 문교부 장관기 시합에서 우승을 했지.. 개인전인데 말이야. 쟁쟁한 3학년 선배들 젖히고..

그런데 집에 가서 아버지께 드렸더니,,, 아버지는 그걸 던져 버리시더라고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 아니라고하시면서 .. 정말로 서운했지.. 그 땐..

그랬었군요…”

그 때 어린 맘에 화가 나서  남쪽 섬에 있는 외가로 훌쩍 놀러갔었지.. 혼자서.. 외 사촌들이 많이 있었지.. 나와 비슷한 또래의  그런데 거기서 우연찮은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어…”

우연 찮은?...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랬지.. 그 섬에는 식목리라는 곳에 백사장이 있었는데 나는 사촌과 함께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로 했지.. 이미 8월 초여서 물이 많이 차가운 때였어 우리는 텐트를 치고 바닷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때  한 떼의 아이들도 놀고 있었지 그런데..

.. 누가 물에 빠졌나요…”

그래,,, 우연히 물 속에 아이가 눈에 보였는데,,, 한 참 후에도 그 대로 있는거야 다른 아이들은 모르고 있고 그래서  쫓아가 잡아 당기니까.. 끌려 나오는거야 중학교 때 보이스카웃을 하면서 배운 인명구조법을 시도햇었는데 별 효과가 없었어 사람들을 불러서 경운기에 태우고 함께 섬의 병원으로 갔는데 .. 마침 의사가 휴가를 떠나고 없다는 거야

그랬군요그래서 그 아이는..

아마,,, 초등학교 5학년인가 된다더군 다시 바닷가로 돌아오는 경운기 위에서 사람들이 내게 해 준 말이 아이의 부모들이 고생을 많이 하다가 겨우 자리를 잡아서 오랜만에 외가에 왔다는 거야 그래서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에 아이들은 먼저 바닷가로 나가고 부모들은 닭을 삶고  죽을 써서 오려고 준비중이었다더군…”

그런데 그렇게 됐군요…”

그렇지 나도 아쉬워…”

…”

그 날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 위 텐트 곁에서 밤새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지  그 때 죽은 아이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그의 아내에게 하던 말이 기억이 났어 여보, 이럴수록 침착해야지 그러면서 아이를 등에 엎히면서도 침착하려고 애쓰던 모습,,,  그리고 내게 와서 자신은 목포에 있는 해양전문학교의 영어교사라고 하면서 애써줘서 고맙다고 어린 내게 손을 잡고 감사하다고 말을 하시더군 붉어진 눈 눈물이 고인 그 눈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지만 그 날 바닷가에서 내내 그 생각을 했지.. 그 때, 나는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나 훈련여건의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코치선생님도 없고, 장비나 시설이나 훈련장소도 없었으니까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었는데  어린 나의 생각으로는 세상에 나만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지 겨우 겨우 살만해졌는데, 그래서 한 숨돌리는 순간에 자식을 잃게 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지…”

굉장한 경험이셨군요..

그래,,, 평생 잊지 못할거야 그리고 난 그 다음날 짐을 싸서 다시 00로 돌아왔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지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 사실은 그 때 외가로 떠날 때 운동을 그만 두겠다는 생각으로 갔었거든…”

그랬었군요…”

 

그는 항상 선수들에게 자신이 운동에 특별한 재능이 없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곤 했다.

나는 펜싱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미련하다는 말을 들었었지, 그리고 느리다고 미련 곰탱이라는 핀잔을 선배한테 받았었어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뒤에 그 선배가 나를 보고 그러시더군…’ 역시,, 내가 가르칠 때 알아봤어 넌 펜싱을 위해서 타고 난 놈이야…’ 라고..

그는 선수들에게 항상 말하곤 했다.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좋아하는 것이다. 무언가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드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노력을 기울이게 한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봐라.. 너희가 왜 여기에 왔는지.. 힘든 훈련을 참고 잘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이기려고 하는지 이유는 몰라도 좋다. 다만  눈을 감고 마음 속을 느껴 봐.. 가슴속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듯한 그런 느낌막연하지만 분명한 그런  그것이 너희에게 있는지.. 그렇다면.. 그건 좋아하는 감정이다.

 

그는 왜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좋아한다는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하자면 그건 마치 시합이 시작되면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있는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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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12.10 10:35:59 *.72.153.59
방금 전 가슴이 화 하고 눈물이 났어요.

"왜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거슨 좋아한다는 그 자체야. 그러니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봐."
백산님이 왜 좋냐고 물었을 때... '글쎄요.. .....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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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12.10 23:24:02 *.131.127.100

정화!  좋은 건 좋은 거야!
너의 그림 속에 그 감정까지 그려 넣으렴...
생각말고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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