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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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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8일 11시 17분 등록

불씨가 꺼지면 쌩불질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래도 불씨는 살리기 어렵다).

  ------2009 12 6, 강원도 평창 애비로드에서 사부님 어록 중 ㅋ

 

정말 그러했다. 한 번 꺼진 불씨를 다시 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불을 피우는 걸까?

 

사람들은 말이야, 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해결할 수 없는거지?” 호랑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역시 사부님께서 던진 말씀이시다. 비단 이것이 호랑이에게만 적용될까? 그룹으로 모인 것만이 다를 뿐, 사자 역시 그 본래 목적에 있어선 다를 바 없음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정말 왜 안되는걸까? 물론 현재 하고 있는 내 일을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경우 작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꿈과 이상을 쫓는 삶에서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아닌 배고픔에의 두려움인 것 같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배가 고픈 일일까? 배고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을 의미하는 걸까?

 

전자를 파고 들기 전에, 꼭 한 번 점검해야 할 일이 있다. 혹시 나는 임금님 수랏상을 기대하고 있거나, 금수저에 명품 식기를 꿈꾸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는 소박한 하루 세 끼 밥상에도 감사히 잘 먹었다 여길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디저트에 간식까지 챙겨먹고도 야식은 무얼 먹을까 고민할 수 있다.

 

배고픔에의 두려움이 정작 내가 필요한 최소 단위를 의미하는 건지,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 혹은 세상의 잣대에 빗댄 것인지 각자 한번쯤은 자가점검을 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다음으로, 흔히들 말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은 배가 고프다는 말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획일적인 산업 혁명의 시기를 거칠 때는 사실 이 말이 어느 정도 통용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난 더 이상 이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나 요즘 같은 지식 산업의 시대에서는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와 승부를 걸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배고픈 밥벌이의 원인은 다름아닌 우리는 여전히 즐기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즐기는 일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빠져든다는 표현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배고픔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을 최우선으로 두는 한 여전히 즐길 수가 없다.

 

곳간이 채워져야 예를 차릴 줄 아는 게 인간이다라는 관중이 말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물질을 향한 욕망과 그 다음으로 따라 붙는 공명심 혹은 명예를 향한 욕망. 아마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성적인 욕망만큼이나 끈질기게 인간과 함께 할 요소라 생각된다.

 

그래서 묻고 싶다. 과연 나의 꿈은 진정한 꿈인지, 아니면 꿈을 가장한 변함없는 사회적 욕구인건지? 고흐가 그림을 그리며 배고픔을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며 이 작품이 얼마에 팔릴지를 염려했으리라는 상상은 가지 않는다.

 

당신은 고흐가 아니라고? 피카소가 아니라고? 스스로 그리 생각하면 당신은 고흐도 피카소도 될 수 없다. 우리들의 삶은 우리를 닮아 있을 수 밖에 없다,라는 말은 가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밥벌이는 놀이가 되어야 좋은 것이다. “놀다보니 밥이 들어온다.” 캬아~ 이 얼마나 상쾌하고 상큼한 일인지~!

 

그리고 놀 때는 반드시 동무가 필요하다. 비록 동무들과 투닥투닥 싸우는 한이 있어도,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화해하고 또 같이 논다. 함께 놀면서 사회가 우리의 놀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우리의 놀이가 돈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운이 넘치게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창조적 놀이에 목말라하는 곳들이 엄청나게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놀자. 아무 생각도, 육중한 고민도 다 털어버리고 그냥 놀자. 어릴 적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굳이 놀이동산에 비싼 돈 내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헤질 때까지 마냥 행복하게 놀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

 

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친구들이 좋아서 자꾸 보고 싶다. 친구들과 놀다 보니, 놀이터도 좀 더 가꾸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놀이터에 나무가 더 울창해지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더 많은 새들이 날아와 쉬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줄텐데. 그러다보면, 나무들 사이로 시냇물도 만들고, 그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도 일품일텐데. 그럼 난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옮겨 다니며 도토리를 베어 먹는 다람쥐가 되어 살아도 되지 않을까? 고 녀석들 꽤나 귀엽던데. 하하. 아니면, 작은 종달새되어 순한 사자들 위에 올라타고 흥얼거리며 살아도 잼있겠다. 하하.

 

아무리 겨울이라도 햇살은 밝은 날이 좋다. 그게 인생이다

IP *.11.5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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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2.09 03:35:33 *.126.231.229
고흐는 죽어서 돈을 벌었지만, 피카소는 살아있으면서 명성과 돈을 얻었쟎아.
그런데 재미있는건 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쳤다는 사실인것 같아.
인각적이지. 살고자 하는 것. 나는 대가들에게 느껴지는 공통점에서 연민을 느껴. 인간적인 연민 말이야.
피카소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고독했다는 표현을 하는데 
이 말은 그는 창작을 위해, 배고픔을 견딜 수 밖에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해.
이게 대가들의 특징이더라구. 배고픔을 이겨내고 지속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의지력.
나는 놀이가 신성시되는 유토피아를 믿지 않아. 개인적으로
놀이는 돈,명성,재미,재능등을 유연하게 해주는관계의 도구라고 보는것이지.
인간적으로 아주 인간적인 본성을 드러내게 해주니
서로 잘 알게 되고, 유치해지게 되쟎아.
남한테 유치할만큼 여유있는 인간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나는 놀이를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내 생각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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