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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8일 12시 01분 등록
 

칼럼 34 - 창조놀이- 영이야 철수야 바둑아 모두 나와놀자, 노올자!


지난 가을 시작한 호랑이 프로젝트는 엊그제 두 번째 오프 미팅을 하면서 사례연구와 창조놀이라는 두 개의 큰 물결을 가르며 흘러가 보기로 했다. 나는 한판 걸지게 놀아보고 싶어서 창조놀이에 손을 들었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놀까? 나는 마음속으로 놀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데 친구가 없다. 그래서 어느 연구소의 이장님이 확성기로 “어디 한번 창조놀이를 해 봐유!” 하고 일깨워 준 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나의 버전으로 바꿔서 놀이를 기획해보기로 했다.


살면서 좀 이상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무언가가 어느 날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사랑도 그렇지만 약속도 그런 것 같다. 수첩도 칸이 비워져 있는 날이 많지만 어느 날은 하루를 여러 토막 내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괜히 “방콕”에 있다가 강남에 나온 제비일 뿐인데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 그으래,  바쁘단 말이징? "

지난 주 목-금요일  친구들과 무주를 다녀왔다. 20년이 넘게 사귀어 온 제 2의 가족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주욱 함께 지내오는 친구들이기에 알만큼은 아는 사이이다. 대전에서 만나서 다시 무주로 이동했다. 흐린 날씨였지만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내게 보여주던 덕유산은 오늘도 변함없이 때아닌 진눈깨비로 우리를 맞이한다. 아늑함을 즐기고 싶은 친구들은 방에 남고, 모험을 선택한 1/2(우리들 중의 반)은 곤돌라를 타고 설천하우스까지 올라갔다. 곤돌라가 출발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던 눈발은 이제 한치 앞을 분간 못할정도로 휘날린다. 우리는 친구가 옆에 있으니 무섭기는커녕, 신이 나서 영이처럼, 철수처럼, 바둑이처럼 맴맴 돌았다. 그리고는 우주인처럼 걸으며 향적봉을 향해서 나아갔다. 눈바람을 맞으며 하늘 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 “아 좋다, 정말 좋다.”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중봉까지 가서 바람을 맞아볼까 했지만 입산통제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친구들은 이제 내가 이곳에 매주 칼럼을 쓰고 있고 책을 많이 읽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러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열명의 사람들의 주의를 한곳에 모으기에는 우리가 너무 허물이 없고 자유로웠다. 더구나 동양화를 두드리며 노는 3명의 친구의 등에다 대고 윌리암 브리지스가... 퀴블러 로스가...안셀름 그륀이.....이런 말을 해줄 수는 없었다. 늘 마음편지와 내 칼럼을 읽는 친구는 그래도 다 들리니 말을 해달라고 조른다. 하하하.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경청의 자세로 있어도 “반만 말해줄까보다”하고 잘난척하는 내게 좀 무리한 부탁이시지.... 내생각 이었다. 생각은 자유로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생각을 말했다고 가치판단을 해서 무우 쪽을 자르듯 친구를 버리는 것은 바보중의 바보가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떠날 준비를 다하고 나서 그야말로 평화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우리에게 상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만약 충분히 그 슬픔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이런 “해결되지 않은 감정”에 우리가 얼마나 휘둘리게 되는지를 얘기했고, 보다 섬세하게 자기의 감정을 관찰해서 몸과 마음이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얘기했다. 우리가 노년이 되어 “앙코르”인생을 기획하며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내 친구들은 이미 진짜 할머니가 되기도 했고, 미래에 좋은 할머니가 되기 위해 지금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 예비 할머니도 있다. 한숨과 절망의 노년에 대한 가설들은 이제 현장에서는 검증받기  힘든 가설이 되었다. “마을에 노인 한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아요.”  세월과 함께 자라난 지혜를 젊음과 바꾸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반은 나하고 다르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토요일 새벽에 평창을 향해서 길을 떠났다. 호랑이 프로젝트다. 승용차 세 대가 여주 휴게소에서 만났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강원도의 힘” 이라는 그 막강한 고장이 아니던가? 게다가 1인 마케팅을 향해 돌진하는 호랑이들을 싣고 달렸으니 하늘도 놀라 흰눈을 솜뭉치로 바꿔서 내려 보냈다. 운전을 하는 세 사람은 무척 긴장을 했을 터이지만 뒷좌석에 편히 앉은 우리는 눈길이 꿈길처럼 황홀하기만 했다. 비틀즈의 집을 옮겨놓은 듯한 평창의 “에비로드”는 예술가적 분위기가 품위있게 빛나는 곳이었다. 거기에 흰눈까지 내려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 속으로 들어가 그속에서  웃고 말하고 놀다온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름다운 풍광속에서 밤늦게까지 브레인 스토밍을 했다. 새벽이 되고 동이 트기 시작하고  생각도 무르익어, 이제 내가 잘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할 일을 찾았으니 검증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생각은 자유로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니 간섭을 할 수 없지만 생각의 진수를 뽑아내서 시장으로 나아가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걸을 수 있으려면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야 한다. 그러니 그전에,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기 전에, 친구를 만나 실험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래도 친구가 되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 속에서 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눈 덮인 벌판에서 드는 생각이 첫 발자욱을  함께 남길 친구를 찾아야겠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고 함께 놀이를 창조하며, 관찰과 기록을 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고향의 땅처럼 흙내나고 부드러우면 좋겠다. 그리고 ‘자발적 빈곤’처럼, ‘자발적 성실’을 꿋꿋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비장하게 길을 떠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첫 번째 창조놀이 실험에 함께 해줄 친구를 구하며 내가 서있는 곳을 한번 휘휘 둘러 보았다. 갑자기 여행을 떠날 일이 한꺼번에 밀려와 바쁘게 사는 것 같아도 사람사이의 “공감과 깊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미래의 친구”들이 이제는 놀이마당으로  나와서 영이처럼, 철수처럼, 바둑이처럼 즐겁게 함께 한판 놀아주면 참 좋겠다.

연구소 커뮤니티에 광고를 내면 손을 번쩍 들어 용감하게 지원을 해 주기를 바라며.



IP *.24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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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17:47:40 *.96.12.130
선생님~

해장국집 앞에서 돌아가며 꼬옥! 안았던 사람들 중에 유독 선생님의 느낌이 남아있어요. 제가 너무 세게 안아서 그런 것도 같고, 편안해서 그런 것도 같고... ㅎㅎ 그 늦은 밤,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창조놀이 아이디어에 열심히 지원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목표에 쫓기는 성격이라서 여유있게 과정을 즐기지 못했던 모양이에요. 다음 번엔 조금 더 깊이 듣고, 제 생각도 말씀드릴게요.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승려와 수수께끼'라는 책이 생각났어요. 기업가 정신(?)에 대한 책인데요. 그 책에 등장하는 사례가 혹시라도 선생님께 재미있게 읽히지 않을까 싶네요. 장례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예요. 얇은 책이라서 금방 읽을 수 있을텐데... 여기저기 인터넷 서점을 뒤져봐도 품절 혹은 절판이라고 나오네요. 제가 중고 서점이라도 뒤져서 찾아볼게요.

지난 주말, 쏟아지던 눈이 꿈이었나 싶어요. ㅎㅎ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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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해
2009.12.09 09:46:21 *.248.91.49
우와, 칼럼에 연구원 선배가 댓글을 달아주시다니요.............
레이스 이후에 거의 볼 수 없었던....그래서 몇배나 더 기뻐요.

종윤씨, 그날 운전하느라고 긴장됬죠?
집에 보석들을 두고와서...더 그랬을 것 같아요.

'승려와 수수께끼'  바로 도서관에 가서 찾아 읽어볼게요.
나는 이런식의 보물캐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고마워요.

 "좋은 생각 나와라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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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윰
2009.12.10 00:01:06 *.35.158.245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제2의 가족들과 떠난 여행_ 저도 항상 이런 여행을 꿈꾸곤한답니다.
공감의 깊이도 중요하지만 자유롭게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더  행복한 오늘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현재 지금의 친구가 미래의 친구가 되어주길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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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12.11 00:52:42 *.248.91.49

혹시 예쁜 백곰이 여기까지 나들이 하신건가요?

가끔 마음편지와 좋은 책이야기에 소녀윰 이란 아이디로 댓글이 달리던데...
칼럼은 다 읽기에는 좀 문장이 길지요?

그래도 지금 우리는 글을 쓰기위해 길게쓰는 연습을 하고있어서 그래요.

좋은생각을 나누면 좋은세상이 되는거니까
자주 들러서 공감있는 얘기를 깊이 나누어봅시다.

백곰과 친구가 될만한 공감이와 깊이가
여기저기에서 열심히 공감을 깊이하고 있거든요.  여기서 만나서 반갑고...자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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