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9년 12월 14일 21시 16분 등록

칼럼 35. 앗싸아아~ 경주 - 12월 오프 수업에 더하여

  12월의 두 번째 토요일, 오프수업일이다. 수업 시작시간이 새벽 8시다. 이제 유치 5기가 드디어 진지 모드로 간 것일까? 토요일 아침에는 한주일 내내 얼굴을 마주치지 못한 아이들과 아침밥을 같이 먹는 시간인데... 그래서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두부찌개도 끓여놓고 김치도 썰어놓고 생선도 한 마리 구워놓고... 그리고 나왔더니...발을 동동 굴려도 좀 늦을 것 같았다. 선생님과 웨버에게 “30분 늦어용, 수업 먼저 시작하시와요”라는 문자 보내고 휘리리릭 살모사 수준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려갔다. 3명 빼고 모두 다 와 있었다. 한명은 감기에 걸려서 결석, 한명은 송년의 고행(?) 으로 이제 겨우 일어났단다. 휴~ 다행이다. 꼴찌에서 2등이다. 우히히힛~

약간 들뜬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이번 달 주제는 책의 기획을 심화하기이다. 목차를 보다 섬세하게 구성하고 이 책을 통해 확립하고 싶은 자신의 전문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어떤 과정과 어떤 방식을 통해 내용의 차별성과 완성도를 높일 것인가? 그리고 이 책에 이어 후속으로 이어지는 3개의 책의 제목을 만들어 보는 작업이다.

나는 이번 달 내내 영웅들의 죽음장면과 드라마틱한 죽음장면과 유언이나 묘비명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텅빈 종이를 놓고 오래 앉아있어 보았다. 그러나 이상한 두려움에 휩싸여서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방황을 하고 잠을 많이 잤다. 그리고 외롭다는 생각에 친구를 찾아 여기저기 다녀보았다. 그러면서도 말을 많이 줄였다. 마음 한편에서는 푼수처럼 나서서 히죽거려보고도 싶었지만 이런 감정은 분명히 불안에 뿌리를 둔 들뜬 감정이다. 평화롭지 않다. 무엇에 걸려 헤매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준비한 숙제는 발표할 수 있었다. 

1. 책의 제목과 목차는 글이 모아지고 자료가 쌓이면 조금씩 바뀌게 될 것 같다. 그러니 우    선  은 전체적인 틀을 기준으로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2.  나는 이 책을 통해 깊은 공감을 얻고 미해결 감정들은 내려놓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 실습을 통한 그룹 다이나믹스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실험을  놀이의 형식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3.  전문성은 결국 죽음 준비교육과 치유를 위한 상담과 호스피스 활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아가 이 일은 개인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이 되어야 할 것 같다.
4.  이 주제로 북리뷰를 계속하고 스스로 영성 프로그램을 개발해보려고 한다.
 지난날의 경험들이 도움이 될 것 같다.
5. 후속으로 이어지는 3권의 책은 <죽음아, 날 살려라- 우리의 죽음문화코드>,  <울지마, 이젠 괜찮아>, <삶과 죽음, 한판 걸지게 놀아보자> 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문화코드를 찾아볼까 한다. 단종비와 함께 울어주던 "동정哭", 연암의 "통곡장"과 같은 이야기 중심으로.  이렇게 후속 책의 제목을 찾아보는 일은 읽은 것을  모두 다 첫 책에 담아내려던 서툰 노력과 그 힘겨움에서 벗어나 촛점을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30분씩, 제한된 시간 안에 발표를 다 마치고 내년 2월 프리 북페어에 대한 준비를 의논한 뒤에 복국을 먹으러 갔다. "초원 복국"으로 가는 호랑이와 사자 무리들이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떠났다. 영남권 꿈벗 모임을 향해 경주로... ...변경연 홈페이지의 커뮤니티에 가보면 매월 성실하게 울산, 포항, 부산, 대구, 경주 지역의 사람들이 강의와 독서토론을 하며 알차게 모임을 운영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임이 끝나면 항상 반듯하게 올라오는 후기가 있기에 멀리 있어도 그 풍광이 그려진다. 가끔 글로만 듣던 이름들을 직접 만날 볼 수 있게 되었다. 백산은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서 거금을 들여 차를 정비했고 효인은 전남 권 꿈벗 모임의 그루터기를 준비하려고 함께 갔다. 나는? 나는 한판 걸지게 놀아보려고 갔다. 우히히힛~

장장 4시간 반을 달려서 경주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멀리까지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반갑게 맞으며 짐을 들어준다. 이끄는데로 따라 올라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화기애애하게 담소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서울에서 온 연구원”이라고 한번 더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술이 오고가고 물 좋은 “정자(해안가 도시의 이름)”에서 사왔다는 문어와 조개탕이 있고 과매기가 있고.. 저녁이 늦은 우리는 김과 미역과 파와 과매기를 함께 싸서 한입 가득물고 즐거웠다. 따뜻한 조개탕과 문어와...갖가지 과일과 떡이 풍성하게 차려진 가운데 영남권 총무님이 건배를 제의했다. 모두 따라하세요. “앗싸아아~” 우리가 크로아티아를 갔을 때 외쳤던 써니 선배의 “앗싸아~ ”, 스탕코의 “아싸아~” 와는 다른 매우 독특한 운율의 “앗싸아아~”였다.

듣기 만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는 그 오묘한 “아싸아아~” 로 술이 한 순배 돌았고, 웃다가 마시다가 또 웃었다. 이어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감탄하는 매혹적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또 한차례 건배제의가 돌아갔다. 그는 굵고 깊이 울리는 목소리로 “앗 싸아아아~” 를 매우 독특하게 외쳐서 변화경영시인의 전설을 새로 만들었다. “아아 앗 싸아아아~~”

한참을 앗싸를 주제로 아싸한 얘기들을 하다가 돋우어진 흥을 어쩌지 못해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가 노래를 불렀다.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흥을 돋우어주려고 망가지고, 또 부지런히 술잔을 채워주던 고마운 손과 발과 목소리들.....그리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사람들은 새벽까지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는 “컬쳐 코드”를 읽으며 숙제를 시작했다. 우히히힛~

다음날 아침에는 팔우정 해장국 골목으로 가서 묵국과 추어탕으로 아침을 먹고 선덕여왕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역사기행을 시작했다. 누구나 생애 한번 쯤은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을 것이고 거기에 얽힌 추억들을 하나 둘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기대를 가지고 보았던 동양 최대의 별 관측소 첨성대가 너무 작아서 속이 상했던 일, 왕릉에 올라 친구들과 함께 끝 모르게 데굴거리며 내려오던 일, 포석정에 술잔을 띄우던 일을 상상해 보기, 안압지의 비릿한 물 냄새...불국사에서 사진을 찍고 석가탑에서 탑돌이를 했던 일, 석굴암에서 새벽빛이 와 닿던 부처님의 황금빛 이마를 회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김유신장군의 묘소를 가려고 하는데 냇물이 불어나서 선생님의 등에 업혀 내를 건넜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무열왕능의 거북탑비의 거북이 앞발이 4개 였던 것을 오늘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경주에서는 도시 전체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 데, 관광 자원 개발이라는 깃발아래 신라천년 고도의 모습이 너무나 자주, 너무나 다르게 바뀌어 마음 한편에 아쉬움도 남는다.

어쨌든 우리는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서 경주 낭산(狼山)으로 가서 능지탑지를 시작으로 선덕여왕 능과 사천왕지, 진평왕 능과 설총의 묘로 이동을 하며 통일신라의 기틀을 다지던 때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방송 드라마의 위력은 대단해서 최근에 부쩍 늘어난 관광객들로 새로 주차장을 정비하고 길을 다듬고 있었다. 소나무 숲의 아름다움은 빼어났다. 그리고 진평왕능의 고적다움이 마음을 이끌었다. 비껴선 한그루의 소나무와 곧게 높이 뻗어 올라간 버드나무가 너무나 잘 어울려서 한참을 말없이 주위를 맴돌았다. 아마 이런 느낌이 경주를 서라벌답게 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해설사가 이곳에는 늦가을에 황금 들판을 바라보며 들길을 걸어 가보면 정말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답사를 할 수 있다고 강추한다.

설총의 묘라고 전해지는 곳을 마지막으로 답사하고 처음 영남모임을 시작했다는 황남동 도솔마을로 갔다. 이집에는 사람들 마다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의 두근거리던 감동들이 되살아나는가 보다.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따뜻한 사람들과 따뜻한 점심상을 받고 있으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기쁨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저마다 구본형 선생님과의 인연을 회상하고 또 시를 읊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목소리에 반하고 눈빛에 반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스무살 젊은이들은 또 어떤가? 아내가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일에는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고 하면서 선생님을 앞세우며 아내자랑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한사람 한사람 정답게 돌아보시며 천천히 덕담을 하시고 다음에도 또 오겠다며 그날이 벌써 기다려진다고 화답하셨다. 그리고는 아쉬운 마음을 남기며 경주 박물관 앞 주차장에서 작별 포옹을 나누었다.

우리는 또다시 고속도로 위에 서서 4시간 반을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졸음이 오는 백산을 대신하여 운전대를 잡은 선생님은 황혼의 그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자동차의 흐름을 따라가셨다. 우리는 산등성을 너머 저물고 있는 해가 너무나 아름다워 소월의 시를 생각해냈다.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 넓구나!”

앞만 보고 고요히 달리던 선생님은 결국 고개를 돌려 지는 해를 보고야 말았다. 운전대를 잡으면 앞만 보고 가야한다는 대뇌피질의 권고를, 석양을 바라보고 싶어 고개를 돌리는 대뇌변연계의 모드로 바꾸신 것이다. 아하, 그래서 구본형의 컬쳐 코드는 글에서 그림으로 시로 나아가고 있구나..... 겨우 한 줄로 숙제를 마무리하고는 정답고 아름다운 경주 여행을 정리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니, 벌써.. .”  그렇게 어젯밤에 쓴 후기가 올라와 있고 식지 않은 따뜻한 정이 담긴 글들이 게시판에 올라와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오래 그곳에 남아 있고 싶지만, 다음을 기약하려면 일상의 황홀을 잘 다스려 자기 몫의 숙제를 잘하고 있어야하니 경주식 “앗싸아아~”를 한번 내질르고 다시 북리뷰를 이어가기로 했다.    “ 앗싸아아~”

12월 12월 오프수업

IP *.248.91.49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12.14 22:05:37 *.108.48.236
발랄하고 스피디한 글이 참 좋네요, 좌샘!
프로필 이미지
2009.12.15 19:48:06 *.248.235.10
명석샘
컨디션은 좀 회복이 되셨는지요?
함께 가셨으면  그곳 사람들이 좋아했을 텐데요.  많이 아쉬웠어요.
주말에 뵈요.
프로필 이미지
2009.12.15 09:23:13 *.11.53.251
샘, 글이 조근조근에서 점점 귀여워지고 있는데요~!
경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따듯한 시간 보내신 것 같아
읽는 사람까지도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글이에요^^
프로필 이미지
바다
2009.12.15 19:54:25 *.248.235.10
수희향아,
내글이  귀엽다니.... 이 일을 어쩜 좋을까...
혹시 채팅하자고 하면 느릿느릿~ 대답하면서  공간을 잔뜩 살려주지 뭐~

근데 그 "앗싸아아" 말이지 지금생각하니까  에스라인 율동까지 함께 했던 것 같아.
어떤 깊은 목소리가 에스라인 앗싸아아 하는것 상상해봐라. 우히히힛~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