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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9일 11시 19분 등록

칼럼 30 -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을 때 까지

이별에 즈음하여 사람들은 마음의 정을 나눈다. 오랫동안 간직했고 아꼈던 물건을 주고 받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작별이 서러운 나는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송별회나 그와 비슷한 행사에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인연이 엮인 자리에서는 푼수를 떨거나 딴전을 피거나 하며 핵심 감정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제까지 북 리뷰를 할 때면 날을 세우며 논리적 귀결을 찾으려 했고 칼럼을 쓸 때는 기억을 더듬으며 책의 주제와 색깔이 비슷한 경험들을 찾으려 노력했다. 때로는 자기 노출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지만 마감시간이 닥쳐오면 정신없이 써내려 가야하기 때문에 우아한 이미지를 남길 수가 없다. 그날의 운수에 따라 내 영역에 들어온 사람이면 누구든지 글의 소재가 된다. 그러나 책에 코를 파묻으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이야기 거리를 찾지 못한다. 즉, 요리에 쓸 생생한 재료를 찾아내기 힘들다.

그럴 때에는 마치 묵은지를 꺼내 밥을 먹듯이, 아니면 여러 가지 장아찌들을 늘어 놓고 밥술을 뜨는 것 처럼 그렇게 회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이 밑반찬들도 다 끝나간다. 그러니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

비밀 창고를 하나 열어 보일 수 밖에 없다.

옛날 옛적에 나에게도 사람들이 자주 예쁘다고 말해줄 때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성과 단 둘이 있는 일에는 익숙하지 못한 나의 정서를 따라 우리는 주구장창 몰려 다녔다. 누가 누구랑 더 친한지는 아는 사람만 알고 있을 때였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니 누군가가 환영 파티를 열어주며 나에게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내밀었다. 그때는 집집마다 오디오를 갖추고 살던 시절이 아니고 음악 감상실 ‘아폴로’ 나 ‘르네상스’에서 입장료를 내고 신청곡을 디제이에게 보내야 원하는 음악을 듣던 때였다. 한 선배가 나를 위해서 매우 아름다운 노래를 녹음해주었다. 드볼 작의 첼로 콘첼트와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었다. 그때는 그저 참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선율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생일을 기억하여 만들어 준 테이프였다. "Liebestraum"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난후 바다를 건너서 먼 나라로 갔다. 거기서 또 한번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자를 만났다.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금발 남자들이 까망 머리 동양여자를 신비하게 생각하고 늘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이 사람은 우리가족과 친했고 또 우리 식구들도 모두 좋아 했으므로 그가 예쁘다고 하는 말은 믿어도 될 만했다. 더구나 그는 내 할머니 친구의 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조건에서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간직해서 자신의 삶을 빛나게 가꾸는 것이 좋다. 더구나 빛나는 청춘이 아니었던가?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생일 선물을 주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였다. 그림도 같이 있어서 외국어를 익히기에는 참 좋은 책이었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사귀자고, 그래서 자기를 길들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여우와 어린왕자는 친구가 되었고, 어린왕자는 인내심과 의식과 책임감 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배웠다.  여우는 황금빛 밀밭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곳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고 여우는 울고 싶어 졌다. 헤어질 때 여우가 왕자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 주었다. 본질적인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잘보인다는 것을... 이렇게 사전을 뒤져가며 공들여 찾아 읽은 어린왕자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때가 되어서 우리도 헤어지게 되었다. 마침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던 날 떠났는데 그는 나에게 두꺼운 시집을 한권 건네 주었다. 작별을 기념하며.

“영원한 샘물”이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천개의 시가 있었고 천개의 정서가 있었다.

이번 주에 숙제로 주어진 주제가 이 한권의 시집이었다. 나는 숙제를 하기위해서 책꽂이 두칸에 걸쳐 꽂혀있는 책을 다 꺼내서 만져보았다. 모두 얇았다. 나는 “신경림” 시인의 시가 좋다. 그의 산문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나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코드가 맞는 것 같았다. 실제 나는 시인을 술자리에서 몇 번 보았다. 그가 “더불어 숲” 학교 의 제 2대 교장이었기 때문이다. 유창한 언변에 술 실력도 대단했다. 다만 그가 교장이 되고나서 학교이름이 조금 바뀌었다. “더불어 술“ 학교로. 그러나 그를 선택해서 숙제를 하자니...다른 시인들이 울 것 같았다. 신동엽, 기형도, 김수영, 정현종, 류시화, 신현림, 이시영(나는 이 사람도 참 좋아한다.)..... 사실 이 시집들도 헤어질 때 받은 선물들이 많다. 사람들이 작별을 눈 앞에 두고 시집을 고를 수 있으면 그건 참 성공한 "관계 맺음 " 인 것 같다.

그래서 시집을 여기저기 훝어 보다가 '영원한 샘물' 에 까지 손이 닿았고, 그 책을 다시 뒤적이다보니 옛 생각이 이렇게 뜬금없이 떠올랐고 나는 또 프로이드의 암췌어 누워 중얼거리듯 조근 조근 스쳐가는 생각들을 말하고 있다.


O lieb, solang du lieben kannst !
O lieb, solang du lieben magst !
Die Stunde kommt, die Stunde kommt,
wo du an Grabern stehst und klagst !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하는 시간이!

그리고 애써라, 그대의 마음이 타오르도록
그리고 사랑을 품도록, 그리고 사랑을 간직하도록
그대의 마음을 향해 또 다른 마음이
사랑으로 따뜻하게 두근거리는 한

그리고 그대에게 자기 가슴을 열어 놓는자
오 그를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리고 그를 항상 기쁘게 하라.
그리고 그를 잠간이라도 슬프게 하지마라!

그리고 그대의 혀를 조심하라.
곧, 나쁜 말이 튀어나왔구나
오, 이런, 그것은 나쁜 뜻이 아니었는데,
그 다른 사람은 그러나.. 떠나가 슬퍼한다.


이렇게 이 노래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을 하라고 후렴을 달고 계속 이을듯 끊어질듯 흘러 내린다.

프란츠 리스트가 이 시에 곡을 붙여서 "사랑의 꿈, Liebestraum " 을 만들었고, 이 슬픈 듯 아름다운 시는 강물처럼 흘러 흘러 이제 내 집앞 까지 왔다.

내가 처음 선물을 받았던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노래다.

아,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IP *.24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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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2009.11.10 14:16:40 *.248.235.10
이 노래가 말이죠,  날도 차거운데... 웬 사랑타령이야....의 차원을 잠깐 넘어서보면
심금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어요.
블로그를 긁어올릴 줄 몰라서 못 옮겨왔는데요,
제목을 검색에 그대로 쳐보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어요.

아마 하루저녁은 충분히 심란해져서 일을 안해도 될것 같더군요.

사랑하는 사람과 다툰 사람들에게 강추....해요.
와인 필요하면 문자 보내도 좋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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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11.11 11:32:01 *.108.48.236
ㅎㅎ 좌샘 댁의 그 육중하던 흔들의자가 프로이드 암체어인가요?
사랑타령으로 들리지 않았구요,
한 세월 보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진수에 대한 통탄'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말하고 싶네요.
늦지 않았다... 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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