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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6일 11시 56분 등록

칼럼 28 -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찰스 핸디는 1999년에 아내 엘리자베스와 함께 <The New Alchemists>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29명의 현대판 연금술사들을 인터뷰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출판과정에서 여러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인터뷰이들에 대한 사진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찍었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판 제목이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이다.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을 북리뷰하기 위해서 알라딘을 뒤졌지만 절판된 책이 많아서 바쁜 가운데서도 도서관들을 뒤져서 5권의 책을 구했다. 머리맡에 나란히 그의 책을 펼쳐놓은  즐거움은 산해진미를 골라먹는 느낌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그의 글에는 흥미있는 정보들과 뼈 속까지 깊이 내려갔다온 생각들이 꾸밈없이 흐르고 있어서 감동과 재미를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일견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취향을 즐길 권리가 있다.

 

그의 글이 평범하게 보이지만 운율이 있고 메시지가 뚜렷하게 전달이 되는 것은 그의 내공에서 온다. 그는 어린 시절 매일 교회에 다닌 습관의 유산으로 언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윌리엄 던테일의 최초 영역본 성서와 크랜머의 공통기도서는 언어의 수원(水源)으로서 많은 영국민들에게 언어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었다. 찰스 핸디도 일요일마다, 아침 기도 때마다, 그 아름다운 청명한 운율이 그의 기억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어린시절 그는 고모들과 함께 모여앉아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큰소리로 낭독하며 보냈다.  세익스피어의 시행(詩行)은 그냥 읽어나가도 흥취가 느껴졌다. 그는 그런 아름다운 운율을 몸에 휘감고 결국 속까지 파고들도록 즐겨 사랑한 까닭에 오늘날 말을 가지고 벌어먹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시절 가난한 시골목사의 아들로 자라 10대가 되면서 원대한 꿈을 품었다. 자신을 상대로 은밀하게 맹세까지 했다. “다시는 가난하게 살지 않겠으며 교회에는 다시 가지 앓겠노라고...”

 

그렇게 잊어버리고 살려고 했던 그의 유년시절이 그를 불러 세운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고 교회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그의 소원대로 나름 바쁘고 잘나가며 살았다. 그에게 킬데어 교구에서만 40년을 목사로 지내온 아버지의 고요한 인생이 “아버지의 장례식” 날 소설처럼, 폭풍처럼 그의 영혼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조용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아들의 눈에는 따분한 회의와 방문객 상담, 단조로운 생활, 검소함만 있는 실망스러운 인생을 살고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 날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은 사람의 마음속에 기억을 남긴 사람이 받는 존경과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 후 영국으로 돌아가서 그의 인생과 우선순위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다시 신학대학을 들어가서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의 강점은 가르치고 글을 쓰는데 있었다. 결국 그는 주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윈저성의 성 조지 하우스의 학장이 되었다.

 

“네가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가 이제 난생 처음으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라”

그가 윈저성의 관리자가 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극도로 우울한 상황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갔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데 있고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네 자신을 알라”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새겨진 고대 그리스의 명언이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알려면 자기가 아닌 것을 우선 알아야 했고 그때, 그의 나이 40대 중반에 여러 가지 역할과 직장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내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벼룩이 되기로 결심했고 그의 아내는 그의 곁을 잘 지켜주고 오랫동안 그의 걸음을 잘 맞추어주며 함께 걸었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그보다 그를 더 잘 안다.

“이제 회사 생활을 청산 할 때예요.”
“그럼 뭘하지?”

“당신은 글쓰기를 좋아하잖아요?”
“글을 써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

“왜 부자가 되려고 하세요?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 갈 수 있어요.“
“그건 리스크가 많아”

“어차피 인생은 리스크예요. 난 피곤에 찌든 직장인과 함께 사는 게 지겨워졌어요.”

그래서 그는 난생 처음 자기의 인생을 맘대로 주무르며 자기가 아닌 그 어떤 것으로 위장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런 상태를 편안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안정궤도에 들어 섰을때 아내 엘리자베스는 대학을 들어갔다. 이제는 그녀의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두 권의 사진첩을 자비로 출간 한 후에 사진작가로 독립했다. 이제 엘리자베스는 "엘리자베스 핸디의 남편 찰스 핸디"라고  남편을 소개할 만큼 인물사진을 잘 찍는 작가가 되어있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삶을 엿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이 얘기를 조금 더 나누어보고 싶다.

 

"나는 교사였다. 나는 그런 가르치는 재능을 이용하여 내게 필요한 돈을 벌어야 했다. 또 내가 부르는 값만큼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돈얘기는 금기이고 자기 자랑은 오만이라고 가르치던 목사관에서 성장했다."  찰스 핸디의 말이다.

그가 기차표와 감사 표창장만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적이 많았다. 그런 상황을 보다 못한 아내가 스스로 그의 매니저가 되겠다고 자청하여 그대신 강의 수수료를 미리 협상했다. 실제로 그녀는 최근의 강연 주최 측에 편지를 보내, 수수료를 사전에 합의 결정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선불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아내는 경영대학원은 구경조차 한 일이 없지만 본능적으로 비지니스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상식이예요. 사람들이 당신에게 강연이나 강의를 요구할 때, 당신이 무엇을 표상하는지 또 당신의 값이 어느정도가 되는지 알아야해요.”

브랜드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명성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특별한 광고나 홍보도 하지 않고 복잡한 시장에서 우뚝 솟으려면 자기나름대로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의 생명은 명성, 명성, 명성인 것이다.

찰스와 엘리사베스는 결혼생활 내내 함께 지냈고 함께 도왔고 함께 경지에 이르렀다. 바쁜 찰스의 일상 때문에 혼자 있는 어려움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엘리사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늘 함께 있어요. 떨어져있어 본 건 그이가 수퍼마켓에 간 40분 정도가 모두 다예요.” 라고.

 

이들 부부는 후반기 인생의 사이클이 바뀜에 따라 결혼 생활의 패턴을 적절하게 바꾸었다. 런던과 토스카나를 오가며 살고 있는 이들은 그들이 인터뷰한 많은 현대판 연금술사들 중 최고의 업적을 만들어낸 연금술사일 것이다.

비록 그들은 최고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르게 되는 것이 그들이 가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최고이며 최선의 연금술의 비결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소개하는 이 29명의 현대판 연금술사들은 당연히 우리에게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걸어가는 길을 보여주며 우리보다 조금 앞서서 걸어 가고 있는 것이다.

IP *.248.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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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0.26 15:43:26 *.126.231.227
The New Alchemists란 책 꼭 읽어보야 겠네요.
29명의 연금술사들의 사는 법이 제목에 그대로 적혀 있네요."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선생님 찰스 핸디에 푹 빠지신걸 보니 홀로 연금술사가 되시려는 건가요? 아닌가 원래 연금술사였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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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10.27 19:25:27 *.248.235.10
철아, 이 책의 부록에 그사람들의 홈피와 주소가 다 나와있어.
마음 끄는 사람에게 연락해봐요.
실제 이렇게 콘택해서 인생 바꾼 젊은이들을 봤어.
누가 철이에게 줄 황금의 씨앗을 가지고 있을까? 

 구깊이께서 씨앗 하나를 이미 건네신건 우리도 다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

그런데 이 책에서 엘리자베스는 같은 사람을 여러각도에서 찍어서 조합한 '다중초상화'를 그려냈어
한사람이 갖고있는 다중적 측면을 표현해보려고....

우리 아이에게 찰스 핸디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냥 할아버지잖아!" 그러더라 .ㅎㅎㅎ   
우진이는 다르게 볼 줄 알 것 같애......... 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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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0.28 04:05:27 *.126.231.227
우진이에게 보여주면 "엄마"라고 할꺼에요.
예는 사람만 보면 "엄마"라는 데요. 흑흑~ 전 인정을 못 받고 있어요^^
누군가 저에게 "황금의 씨악"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니
가슴이 벅 차오르는데요. 예전에 막연한 시어로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나와 닿은 인연들이 연금술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생각만 해도 기쁘네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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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9 16:03:05 *.248.91.49
우진이에게 샘내는거야, 우진엄마께 샘내는거야?
게다가 까맣게 울기까지 하다니...黑黑

철아 우리가 썼던 비밀 하나 알려줄게.
"우진아 , 엄마가  좋아? 아빠 가 좋아?"  하고 물어봐.   건투를 빌며.....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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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깨이
2009.10.31 07:19:38 *.160.33.244

오, 상담가 법선생이  극약처방을 했구나
철아,  약은 또 독이 되기도 하니  잘 가려 쓰거라 . 
그러나  급하면 약이든 독이든 다 먹게 되어 있다. 

나도 그 짓을 많이 했었다.   아이 속에 나를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했느니라. 
아이와 놀면 아이가 되는데,  놀려 먹는 재미가 좋단 말이지.    
유치한 아빠가  브라보 아빠다.  변경연 연구원들은 유치함을 항상 수련하지 않느냐 ?   
아이를 못 꼬시면 , 네 내공이 정진되지 않은 것이니라. 
열공하여 유치함의 진수를 득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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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1 14:09:53 *.248.91.49
원숙하게 유치한 부지깨이시여!
길 안떠나시고 이리나와 놀으시면 어찌하나이까?

니체가 더불어 춤을 추자고 합니다.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에궁 어지럽군요.
가을비 우산속에 좀 나가 놀다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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