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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일 11시 42분 등록

한 걸음 떨어질 순간 –거리두기

 

이번 주 책에서 니체에 흠뻑 빠지기도 했지만, 뒷부분 베버의 이야기 중 ‘거리두기’에 꽂혀 칼럼을 쓰게 되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북리뷰에서는 왜 이런 부분을 덧붙였는지 약간의 비판을 가한 나인데, 역설적이다.)

 

일단 ‘거리두기’에 대한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내용을 잠시 인용해 둔다. 참고를 위해.

  

내적 거리 두기의 능력을 갖춘 정치인은 일상 세계로부터도 자신을 분리해서 사고할 줄 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처럼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성한다. 베버는 거리두기를 통해 관료제나 합리적 훈육이 초래한 기계적 과정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훈육의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관료제가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넘어서는 것을 막아낸다. (277~278)

그는 ‘책임 윤리’와 ‘신념 윤리’를 구분했다. 이 둘을 나누는 기준은 소명이 있느냐의 여부보다는 거리 두기의 능력과 그것에 대한 책임 문제다. 자신의 행동을 거리 두기를 통해서 올바르게 예측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책임 윤리’다. (279)

책임 윤리를 가진 정치인은 관료제적 정치인과도 대립한다. 책임 윤리를 가진 정치인과 관료제적 정치인의 차이는 진리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진 학자와 단순한 효율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의 차이와 같다. (280)

베버가 바람직한 정치인의 덕목이라고 내세운 ‘거리두기’ 능력은 누구보다도 대중들 자신의 욕망과 능력에 기초해야 한다. (285)

베버가 말하는 철창(iron cage)이 왜 그렇게 강력한 것인지도 이로써 분명해진다. 그것은 제 스스로 걸어 들어간 내적인 감옥이기 때문이다. 더 열심히 움직일수록 감옥은 더 강력하게 조여든다. (274)

베버의 정치학은 합리적 훈육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고, 개인의 도구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형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소명’을 가진 정치인, 강한 ‘책임 윤리’를 가진 정치인의 출현이었다. (276)

베버는 바람직한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이러한 내적 거리라는 점을 주장했다. (277)

 

 

한국나이로 서른. 서른이 된다는 약간의 우울함도 나를 찾아올 틈이 없었다. 아마도 그토록 갈망해왔던 ‘도망치기’에 성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8년 3월 2일, 아직 꽁꽁 얼어 있던 이국 땅에 혼자 내려서는 순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해방감이 내 몸을 적셨다.

처음에는 무엇을 피해 도망쳐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하겠다고 직장에서 도망치게 해준 대학원에서도 또 교환학생이라는 핑계를 대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내뺐다. 무작정 무계획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라서 명분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나 혼자서, 한국 사회의 온갖 편견과 지금까지의 사회적 압박을 모두 벗어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러 나섰다.

그러나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법이던가. 나는 극심한 추위와 원인도 이름도 모르는 병(증상이 온 피부로 나타나 전염병자처럼 취급되고 격리되는), 절박한 외로움과 생존의 문제로 공포에 떠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지냈던 바로 그 학교로 유학 가는 친한 동생에게 안쓰러운 눈을 보내며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힘든 기억으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늘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 썰렁한 기숙사 방에서 나는 정말로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말이다.

그 곳에서 한 걸음 떨어져 본 것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그 곳에서 내린 나의 마음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으며, 약간이라도 거리껴졌던 것들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어 지금의 내게서 멀어져 있다. 불과 일 년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이상하게도 돌아가자마자 이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정확하게는 다시는 이 사람과 떨어져 외국에 혼자 나가 살지 않겠다)는 마음은 자꾸만 확고해져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논문을 쓰고 졸업하기에 있어서는 자꾸만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도 (그 곳에서의 힘든 경험이 부정적 영향을 끼쳤겠지만) 나의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 곳에서 쓴 내 미래에 대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나의 글은 지금 돌아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그건 정말 내 마음이 시키는, 직감 같은 것이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곳이 그 학교라서도, 그 나라여서도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곳은 사실 어디여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한 발짝 떨어져, 철저히 격리되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장소라면 말이다. 나는 그 곳에서 ‘이래야 해’, ‘저래야 해’ 라는 수많은 강박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길들여온 주문이었다. 교육과 합리적 훈육으로 마치 자신의 생각인 듯 사회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던 것을 나는 멈추기로 결심했다. 실체도 없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던 나날이 내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고 스스로 성공했다고 박수치는 내 모습에 정작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온 나는 ‘이상한 애’로 거듭났다. 아주 예전처럼, 나를 옭아매려는 사회적 틀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잣대로 나를 재단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심한 거부감이 들고 화가 나는 걸로 보아 제대로 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제 쉽사리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투철하게 노력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누구도 아닌, 내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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