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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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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일 12시 44분 등록

비가 올거라고, 날씨가 추워질거라고 따듯한 옷을 준비하라 한다.

5기 웨버. 참 자상하기도 하다. 늘 그런 식으로 자칫 놓치기 쉬운 세심한 부분까지 다 살핀다.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혼자 장까지 보고

그래서일까. 루트를 정해서 통보하며 일일이 집 앞에서 Pick up하라 하는데도, 우리의 남자 막내 철이도 바로 . 형님이다. 우리 집 남자들 쫌 너무 멋지다

그래서 그가 앞장만 서면 마음이 놓이는 거겠지. 언행일치를 실행하는 리더 뒤를 따르는 길은 늘 든든하다..

 

여주 휴게소에서 모여 전혀 휴게소 식사 같지 않은 음식으로 아침을 먹으며, 이 곳이 바로 불과 6개월 전에 대개의 우리들이 낯설어하며 인사를 나눈 곳이라며 잠시 회상에 젖었다. 그 순간 우린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1 365, 하루 24시간.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어느 해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바쁘지만, 마치 아주 오랜 기간이 지난 것처럼 충만히 느껴지기도 하는데, 바로 올해가 우리에게 그러하다. 아마, 다른 그 모든 것에 우선하여 사람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어서인 것 같다..

 

그렇게 관계를 찾아 떠나는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짧은 회상 속에, 그들과 여전히 의미 있는 관계에 놓여있음에 감사하며..

 

새벽에 일찍 출발해서일까. 기분 좋을 만큼 달려서 도착한 곳은 강원도 평창에 있는 <애비로드>라는 펜션이었다.

 

세상에

 

그리 높지 않은 산 속 품 안에 안긴 듯이 자리 잡은 펜션은.. 뭐랄까.. “편안함 혹은 아늑한으로 다가왔다. 왜 일까..? 낯설다면 낯설어야 하는 이 곳에 왜 이렇게도 편하지…?

 

산 속에 안긴 듯이 자리 잡은 펜션 정원에 앉아 건너 편 산을 바라보면 단풍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나와 그 산의 경계를 알려주는 유일한 표시는 2차선 좁은 도로인데, 이 곳이 시간이 멈춘 곳이 아님을 알려주려는지 가끔 차들이 지나간다. 정말 지나가는 차들이 아니라면 시간의 경계마저 모호할 그런 곳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마치 이 세상에 우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 그 끝자락에서 우린 왜 자유를 느끼는건지..

 

펜션 이름이 <에비로드>임을 알리는 예쁜 간판 외에는 그 어떤 건물도 기타 상업적 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지러운 상업적 간판의 홍수로부터 자유로워서, 그래서 딴 세상에 온 느낌일까?

 

자연에 취한 몽롱한 마음을 거두어 고개를 돌려 잠시 펜션을 둘러 보았다. 예쁘게 지어진 하얀 건물들. 자연이 선사한 소나무를 배경으로, 구석구석 가정집같이 꾸며진 정원의 조화로움. 뭘까, 이 느낌은…? 어딘가 격이 있는 것도 같고, 꽉 차오르는 것도 같은 이 느낌

 

믿기지 않지만 건물 모두를 펜션 주인 내외분이 시간을 두고 손수 손으로 하나, 하나 지으신 거라고 한다. 어쩐지

 

이 세상에는 말이다.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정신이 깃든 삶 말이다. 건물 그 자체는 생명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두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 영혼에는 세상 타락에서 벗어나 그곳 자연의 물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숨결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다행이다. 아직 내 심장이 얼어붙지 않고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말이다..

 

얼마 간의 탄성이 이어진 후 사람은 누구라도 그런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싶어진다. 그냥 침묵 속에서 나를 그 곳과 하나되게 하는 의식 속에 풀어 놓고 싶다고나 할까. 침묵 속에 본채와 외떨어진 자그마한 집 하나를 발견했다. 나무로 된 침대 하나가 놓여 있는 천장이 낮은 작은 집이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일은 어쩌면 명성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에 시작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자크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아는 많은 옛 문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가란 앞선 자들의 지식과 사상으로 내면을 채우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와 사상으로 새로이 버무리고 다듬어 다시 세상에 내놓는 고된 반복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 사상이 깊을수록, 퍼져나가는 파장이나 지속되는 울림이 그 영역을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넓겠지만, 정작 그런 울림과 파장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필요한 공간은 어쩌면 저와 같은 작은 집 하나면 족하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에서 찰스 핸디의 말처럼 한낮에도 꿈꾸는 벼룩이 되고 싶다는 또 하나의 꿈을 꾸며 돌아섰다.

 

과연 수업 아니 워크숍이 가능할까..? 이렇게 몽환의 세계 속에서 이미 현실과 꿈 속의 경계가 엇갈려 보이기 시작하는 이 곳에서 현실의 무언가를 진행한다는 게 가능할까?하고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느낌을 억지로 누르고 그 곳에 간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둘러 앉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자연스레 관계의 흐름을 찾고자 정원에서 시작했는데, 결국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해 안으로 들어 갔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고 선 순간, 그 곳. 그 곳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인테리어 중에서 차가운 느낌의 금속보다는 나무가 오래 인간들 곁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속성도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말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무로 꾸며진 카페는 첫 느낌부터가 포근했다. 어쩌면, 벽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페치카의 따듯함 때문이었을지도. 순간의 멈춤에서 벗어나 고개를 돌려보면, 벽을 장식하고 있는 비틀즈포스트와 함께 벽면 하나 가득 차지하고 있는 앨범들이 눈에 들어 온다. , 그러고보니 펜션 이름인 <애비로드>가 이해되었다. 그랬구나.

 

사람들은 왜 비틀즈를 좋아할까..? “우린 오늘 아주 기막힌 우연 속에 가장 뛰어난 창조적 소수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에서 이 토론을 진행하게 되었지?” 빗방울 때문에 약간 흐릿해진 창문을 바라보며 웨버 오빠가 페치카 속에 넣은 고구마가 넘 맛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를 깨운 건, 부드러운 그러나 북두칠성처럼 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부님의 목소리였다.

 

비틀즈를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창조적 소수의 예로 드시며 뛰어난 감각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사부님에 의해 그제서야 우린 조금씩 창조적 소수와 관계라는 주제를 갖고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창조적 소수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과연 그들은 내게 어떤 존재들일까?

 

비틀즈를 비틀즈로 만든 것은 무어라 생각해? 그들은 같은 혹은 비슷한 꿈을 공유했던 사람들이지? 그리고 그들은 그 꿈을 이룰 탁월하지만 비슷한 역량 혹은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해체했을까? 어쩌면 가치관의 차이였을 수도 있어. , 창조적 소수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3가지 소스가 나온 것 같은데 말이야. 이 중에서 꿈과 재능에는 변수가 크지 않지만, 가치관은 한 사람 내에서도 여러 변수가 작용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제자들의 열띤 토론을 가라앉히며 중심을 잡아주시는 철학가 같은 스승님이시다.

 

그렇지만 말이야, 너희들이 이 문제를 갖고 너무 개념적으로만 흘러서도 안 돼. 그런 식으로라면 한낱 부질없는 이론만 담게 될거거든. 그러니까 제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를 잡았다 생각되면 그걸 붙잡고 한 번 해보는거지

 

공자와 마키아벨리의 가운데 균형점을 찾아,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공헌하려 하시는 스승님의 날카로운 현실감이시다. 그래서 우린 길을 잃지 않는다. 그 스승의 그늘에서는..

 

우린 이미 한 마음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스스로 창조적 소수가 되고 싶은 열망이 커서였을까? 아직 발표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토론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책의 구성이 물흐르듯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서로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뿌듯함을 느끼는데, 비 오기 전에 막간을 이용해서 정원에서 식사를 하라는 반가운 말씀이 들려 온다.

 

고기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들고 나간 고구마를 한 입씩 나눠먹는 우리들은 그 옛날 어릴 적 동무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페치카에서 갓 꺼낸 고구마가 뜨겁다고 까르륵, 너무 달다고 까르륵. 그게 뭐 그리 크게 웃고 떠들 일이라고 그저 모든 것이 감탄이고 웃음이다.

 

그 때 저쪽에서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주인분께서 (난 이 분을 결코 사장님이라 부르고 싶지 않은데, 아직까지 마땅히 아름다운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사장님이란 세속의 단어는 그 분의 순수함에 비해 너무 저급하다) 고기 굽는 석쇠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시면서 굵은 소금을 뿌리는 그 모습이 마치 이탈리아의 전문 쉐프의 모습과 닮아 있다. 멋있다. 역시 무슨 일이든 장인 정신이 느껴지는 행위는 아름답다.

 

비가 올 듯 말 듯 가라앉은 산 속의 정취는 그 자체로 예술인데, 그 안에 마음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너와 나의 경계를 조금 더 허물고,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지는.. 거기에 객들보다 더 장사 개념이 없는 안주인이 아예 부엌을 통째로 내어주고 옆자리에 앉아 친구가 되어준다. 자연과 영혼이 깃든 건물에 영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 곳은 그렇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말이지 비가 오면 비오는데로 서로 다가앉으며 몸도 마음도 풍족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못다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개념과 현실의 경계선을 오고 가며 이어진 토론 속에 어쩐지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을 뒤로 한 체 잠시 5분간의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하지만, 5분간의 시간조차도 결국 카페 안과 밖에서 작은 무리를 지어 관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 재능 그리고 가치관이 전부일까? 진정 그게 전부일까?”, “아니야.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관계 속에는 그 보다 더 본질적인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맞아! 바로 그거야. 본질적인거.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바로 그거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카페 안의 멤버들이 꿈과 재능 그리고 가치관을 이어지는 접착제와도 같은 본질적인 그 무언가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디고 있을 때, 밖으로 나가셨던 스승님께서 들어오셨다.

 

얘들아. 말이지. 창조적 소수에겐 위의 3가지 말고도 그냥은 어떨까? 그냥 끌리는 거.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맞아요, 사부님! 저희도 그 생각 방금 떠올렸어요!” 이구동성 난리도 아니다. 스승이나 제자들이나 마치 고대에서 내려오는 무슨 신비한 비밀이라도 해결한 양 들떠한다. 순수한 그들.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렇게 끝 모르게 이어지는 토론은 비가 온다는 사실은 이제 소리로만 느낄 수 있는 밤이 찾아와서야 겨우 끝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린 대략적이지만 5개의 파트로 구성을 잡고, 결론에 가까운 5장은 남겨둔 체 두 사람씩 한 파트를 맡는 걸로 마무리를 지었다. 아침에 출발해서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 한 조각도 버릴 수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시간은 밤 열 시 반. 수업을 오래하는 걸로 악명 높은 (^^::) 오기 참여들에게는 수업 아닌 수업이 이리도 빨리 (?) 끝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 앗싸~! 놀 수 있군!”하는 탄성이 마음을 꿰뚫었다. 드디어 카페가 제 역할을 찾아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보니까, 정면에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DVD를 틀면, 우리만의 전용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라이브 콘서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아까부터 화제에 올랐던 단독 무대에 슬며시 앉아 보았다. , 이 설명을 안 했다. 여기서 말하는 단독무대란, 주인되시는 분의 아이디어와 장인 솜씨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베치카의 열기를 이어서 만든 대형 스크린 아래에 있는 온돌방같다고 해야 할지, 사랑방이라 해야 할지 (이것만큼은 비루한 내 표현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직접 가셔서 그 곳에 앉아 보지 않고는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여하간 그 누군가 여기에 앉아 모도 드라마를 펼쳐도 좋겠다는 말이 나오기도 할 정도로 사람과 상황에 따라, 그야말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가장 묘한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이번에는 서기의 전용 공간이었다.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우리 서기가 노트북으로 정리하면서, 마치 조선시대 책사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 곳은 시간과 공간이 좀 헷갈리는 곳이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라이브 콘서트였다. 우리의 웨버. 이번에는 주인 내외분이 카페로 가신 자리를 대신해 DJ로 변신한다 (참고로, 펜션에서 조금 떨어진 산 아래에 역시 주인 내외분께서 손수 만든 <애비로드>라는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다. 주인분들은 홍대 앞에서 약 7년 정도 같은 이름의 뮤직바를 운영하셨던 분들로서, 구비하고 있는 음악과 장비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고구마 장수면 고구마 장수 (고구마가 맛있는건지, 잘 구워서 그런건지 쫌 헷갈린다. 크크), DJ DJ. 준비된 웨버인 DJ (그의 성을 조금 세게 발음하면 곧바로 짱이다. 역쉬 리더역할은 타고났다)의 첫 번 카드는 에릭 클립튼!”

 

그런데 난 솔직히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안경이 조금쯤 흘러 내린 약간은 멍청한 표정에. 헐렁한 난방에 역시나 헐렁한 바지. 그리고 편안한 운동화. 영락없는 이웃집 평범한 아저씨의 외모였다. 그러나 역시 그는 그였다.

 

“What a wonderful tonight…”

 

감미로운 목소리에 감미로운 기타 연주..

그를 과연 그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한없이 빠져들었다.

 

너희들 춤은 안 추냐?”

에릭 클립튼의 감미로운 무대가 끝나자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시다.

 

한국이란 땅에서 말이다. 스승 앞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춤을 출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춤이란 자아를 버리는 의식이요 행위라 말씀하시며, 그 역사의 원류를 고대 시대 샤먼에 연결해두시는 우리 사부님. 그 분께서 우리에게 춤은 안 추냐하고 말씀을 건네오실 때는 춤이란 단어 속에 많은 것을 담아 건네오는 말씀이신 걸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DJ Jang, 토론 중간에 잠시 벌인 관계의 게임에서도 머리와 마음을 연결하여 우리를 구해주더니, 이번에는 짧은 라틴 댄스곡 하나에 이어 “Journey”부터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메탈리카의 공연까지 서서히 강도를 높여 끝내는 우리 안의 모든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아 버렸다. 창조적 소수란, 내면의 매력과 열정 그리고 영혼이 교감하는 관계라는 걸.

 

하나 하나 세계적인 그룹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자신들의 꿈과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전해줄 때, 그룹의 멤버들간에는, 그리고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경계의 구분도 보이지가 않았다. 오직 하나됨. 그것만이 거기에 있었다.

 

영혼이 하나될 때.

내면이 하나될 때.

그 때는 아티스트들 스스로를 담고 있는 육신이나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세상의 벽도 전부 허물어버리고 다가와 하나될 수 있음을 깨쳤다고나 할까.

 

끝으로 스팅의 센치한 음악을 틀어 놓고, 다시 술잔을 부딪히는 우리는 또 이전의 우리가 아니었다

 

함께 체험하고, 함께 깨닫고 그래서 결국 삶의 조각들을 나누며 산다는 일은글쎄당신이라면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그건 그저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그 무언가이기에..

 

아침 해가 밝아 우리를 깨우신 건 역시 사부님이셨다. 주문진 바다에 다녀오자고. 부지런한 선배 두 분께서 동행하실 수 있었고, 게으른 후배들은 세수도 못한 얼굴을 차마 스승께 들이밀 수 없어 따라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은 손수 차를 몰고 주문진까지 바다를 보러 가신 것이 아니었다. 회를 좋아하는 주인분들에게 정을 드리고 싶어서, 제자들이 곤히 자고 있는 시간을 틈타 당신이 직접 회를 사러 비오는 길을 뚫고 다녀오셨다. 언제나 할 말을 잃게 만드시는 스승이시다

 

솜씨 좋은 여인들이 있다는 건 어느 때라도 분위기를 빛나게 해주는 일인 것 같다. 외모만 예쁜 것이 아니라 손 끝까지 예쁜 예서 선배와 춘희가 축이 되어 만든 매운탕과 도루묵 졸임은. ... 속이 풀리면서, 마음 끝 명치자락 끝까지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신세대답게 부엌에 들어가는 걸 마다하지 않는 철이의 해물 칼국수까지, 그야말로 전날의 바비큐 파티가 주인이 객들에게 선사한 선물이었다면, 이번에는 객이 화답하는 정이 물씬 베어나는 아침 햇살만큼이나 밝은 장면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전날과는 달리 비가 그치고 햇살이 카페 안 가득 구석구석 밝혀주었는데, 아침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어제의 DJ가 오늘은 기타리스트가 되어 스승께 노래를 선물한다. 반쯤 눈을 감고 부드러우면서도 특이한 제자의 음색을 감상하시는 스승과 제자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따사로운 느낌이 몰려온다..

 

아침을 먹고 누군가는 우당탕 설거지를 하고 나오면, 그를 위해 누군가는 커피를 타주고, 또 누군가는 정원에 내려가지 않고 기다리며 뒷정리를 마무리한다.  침묵 속에 이어지는 마음의 불빛들이 아름답다..

 

이윽고 그 곳을 떠나, 부산에 내려가셔야 하는 스승님을 원주에 모셔드리며 잠시 뵌 사모님은 한 눈에 스승님과 어울림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시는 분이셨다. 내가 믿는 인연 깊은 배우자들은 둘이 함께 있을 때 어울림을 자아낸다는 생각이 든다. 외모나 나이 차이, 하는 일의 차이 심지어 남녀 차이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다른 요소일 것 같은 남녀차이까지 말이다!)를 뛰어 넘는 묘한 어울림이 느껴진다. 그런 커플들을 만날 때면 괜히 나까지도 충만감이 느껴지며 또 한 번 스스로에게 말을 하고는 한다… “그래그런거지…”.

 

사모님을 만나시자, 더욱 정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 옆자리에 앉으시는 사부님의 모습이 마치 철부지 소년같았다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당신의 열정을 다 쏟아서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사모님 품으로 돌아가시는 스승의 모습은 놀이를 다 마치고 따듯한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해맑은 소년의 미소, 그것과 닮아 있었다. 진정 보석 같은 미소였다..

 

마음을 담아 스승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남은 일행과 여주 휴게소에서 다시 합쳐 커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비교적 이른 저녁에 돌아온 어제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몸도 피곤했지만, 마음도 어수선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빈 집에서 눈을 떴는데 여전히 어딘가 이상하다.

 

…………….. 뭐지...? 이 느낌은…?

 

평상시 즐겨 마시던 커피를 타서 내 방으로 돌아와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 알았다. ...

 

내가 늘 머물던 이 공간이, 이 시간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며, 해야 할 일들에 손이 가질 않았다.

아직 난 어제의 그 시간에, 그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몸은 이 곳에 돌아와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데, 내 의식은 여전히 다른 곳에 있으며 나를 헷갈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다. 풀어낼 수 밖에..

내 안의 감성을 고스란히 풀어내야, 이성이 내리는 지시에 따를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나는 또 꿈을 꾼다. 언젠가는 꼭 한낮에도 꿈꾸는 벼룩이 되겠다고

내 안의 황금씨앗을 결코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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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들도

그 공간도

그리고 함께 했던 이들도

모두 사랑합니다

그래서 이젠 제 삶도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 한 번 진하게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일깨워 주신 당신과 함께 하는 동지들.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힘껏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IP *.249.57.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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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11.02 21:44:25 *.12.20.58
세미나 기록에서 자세히 나타내지 못한 아름다운 장면이 여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참 좋아. 푸근하고...^^
그래. 참 좋더라. 무르익어 너무나 현란한 가을, 밤에 내린 가을비, 더 찬란한 아침 햇살....
매 순간 마다 사람들 머리위에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소중한 느낌과 통찰의 말풍선들이 어찌나 떠오르던지...ㅋㅋ
나도 내 머리 위의 말풍선들을 이렇게 정리해야 벅찬 가슴이 정리가 될텐데...
아무튼 모두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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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11.02 22:25:37 *.206.198.248
우리들 중 누군가 언제라도, 그 때 그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금 삶에서 기운을 얻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아. 막상 연구원이 끝나고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긴 있겠지..

그러나 우린 또 잘 이겨낼거야. 우리에겐 순수한 열정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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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1.02 21:50:24 *.126.231.227
참 누나 재주꾼이다.
그 순간순간의 장면들을 어떻게 기억해서 풀어놓았는지~
놀라워요. 재주인것 같소이다.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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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11.02 23:04:31 *.249.57.213
캬캬. 정야야 내 말이. 내도 그거 읽고, 그 말이 느~~무 하고 잪았당!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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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11.02 22:54:04 *.12.20.58
의리파 혁산! 멋지다. 정말!! (저기서 본 걸 여기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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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11.02 23:09:22 *.249.57.213
혁산 그대야, 당근이징! 느는 Symbolization의 대가인디, 글로꺼정 풀어내면 나같은 사람하고는 안 놀아줄꺼 아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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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11.02 22:49:27 *.126.231.227
또 실시간 댓글놀이가 되는군요.
그러게 말이요. 강렬한 혹은 선명한 느낌을 어떻게 그리 리얼하게 잡아내냐는 거요?
그 긴 시간동안의 장면들을~ 나는 못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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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11.02 22:33:02 *.249.57.213
재주라기 보다는 강렬한 혹은 선명한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
누구라도 의미있는 사건이나 순간들은 잘 기억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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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 내용 [2] 희산 2009.11.03 2745
1302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 내용 혜향 2009.11.03 2754
1301 사자팀 프로젝트 세미나(10/31) [1] 書元 이승호 2009.11.03 2947
1300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1, 걸어서 하늘까지 [2] 백산 2009.11.02 3157
1299 [사자9] 니가 필요해! [8] 한명석 2009.11.02 2948
» [첫번 사자 저술여행을 다녀와서 - 창조적 황금벼룩이들의 이야기] [8] 수희향 2009.11.02 2834
1297 한 걸음 떨어질 순간 -거리두기의 효용 예원 2009.11.02 3413
1296 칼럼 29 - Amor fati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3] 범해 좌경숙 2009.11.02 5820
1295 시대의 요청 : 아모르 파티(Amor fati)에 대한 서사 효인 2009.11.02 4137
1294 [호랑이3] 현재보다 꿈을 파는 마케팅 사례 (3) file 한정화 2009.10.27 17801
1293 칼럼 28 -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6] 범해 좌경숙 2009.10.26 3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