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한명석
  • 조회 수 3065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09년 11월 7일 09시 00분 등록

일전에 행복숲의 김용규님에게서 ‘생태놀이’ 두 가지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첫 번째 놀이는 통나무를 활용한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용규님이 시키는 대로 기다란 통나무에 죽 올라섰다. 그런 후에 그는 '모자 쓴 사람이 오른 쪽으로 가라'거나, '연령순으로 서라'거나 하는 다양한 미션을 던졌다. 땅으로 떨어지면 악어가 득시글거리는 늪으로 추락한다고 생각하란다. 우리는 혼연일체가 되어 옆 사람을 넘겨주기 위해 꾀를 모으고 힘을 보탰다.  자리를 바꾸기 위해서는 서로 붙들고 의지하거나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 단순한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했다. 부둥켜안은 채로 땅으로 떨어질 때면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통나무라는 간단한 도구 하나 만으로 대단한 집중과 흥취를 이끌어낸 통나무놀이는 놀이 그 자체로도 훌륭했다. 하지만  내게는 "서로 껴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각인되었다.


나중에 진행된 의자놀이는 더욱 강렬했다.  우리는 둥근 모양으로 서로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 섰다. 그리고 우향우를 한 후, 용규님의 구령에 맞춰 일시에 뒷사람의 무릎에 앉았다. 앉아 보니 의외로 아주 편안했다. 그 때  그가 둥글게 서로의 무릎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순간 부딪친 팔이 아픈 것도 아랑곳없이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전부 무너진다!"


이 생태놀이의 메시지는 몇 시간에 걸친 강의나 몇 권의 책보다도 위력이 컸다. 애초에는 환경보존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도구로 고안되었겠지만,  내게는 관계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왔다. 개인주의를 독립적인 태도라 여기며 마치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살아 온 내게는 충격적인 액티비티였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모두가 속절없이  무너질 정도로 우리가 단단히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다.


나는 관계지능이 아주 떨어진다. 주위 사람을 낯설게 보고 관찰하는 데는 능하지만, 사람을 보듬고 더불어 친밀감을 나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었는데 최근에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올해 초 어느 작은 모임에서 회장이 되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워낙 조촐한 자기계발모임이라 편하게 회장직을 수락하였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나는 나름대로 모임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런 저런 활동을 계획했지만 구성원들의 냉담한 반응에 부딪친 것이다.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내 언어는 그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 같다는 말을 다섯 번이나 들었을 정도였다.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지만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나는 게시판에 글은 올렸지만 회원들하고 전화를 하거나 번개를 소집하지는 못했다. 나는 회원들의 기질을 판단하고 평가했지 그들과 한 마음이 되어 뒹굴지 못했다. 내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놀랍게도  신영복교수가 알려 주었다.


신영복교수 강의 전문보기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024032920&Section=03



조작된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2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신영복교수, 그는 처음에 감옥에서 왕따였다고 말한다. 그 역시 다른 재소자들을 대상화해 분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손 가족인지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를 파악했을 뿐 그들과 자신이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한번은 마흔쯤 된 동료 재소자에게 접견이 왔다. 생전 편지 한 통 받지 못하던 친구라 그 친구도 놀라고 같은 방 수감자들도 놀랐다. 접견을 마친 뒤 궁금해서 물으니 자기 또래 남자가 왔는데 자신의 엄마가 개가해 가서 키운 아이였단다. 수감자의 엄마는 2살과 3살인 자식들을 삼촌 집에 맡기고 개가를 했다. 그 집은 어린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죽은 집이었는데, 그 집에 가서 엄마가 키운 아들이 자라 접견을 온 것이었다.  둘이 만났지만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 친구는 한참을 침묵한 후에 굉장히 미안해하며 "만약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데려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속에 있고 당신이 밖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신영복은 동료들을 대상화, 분석화했던 자기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재소자들의 파란만장한 사연들에 접하며 '아, 나도 저 사람과 같은 부모를 만나 같은 경험을 했다면 같은 죄명을 가지고 저 자리에 있겠구나' 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많은 것이 나온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인식은 개인적이나 사회적인 삶에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는 ‘더불어 사는 삶’에 집중하려고 한다. '메이킹 머니 해피'에 나오는 한 구절이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들리지 않도록 말이다.


“인류는 수없이 많은 가닥으로 이루어진 로프와 같다. 우리들은 모두 로프의 가닥이다. 로프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건 긴 가닥들과 단단한 꼬임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당신이 긴 가닥이라면 당신의 동료 가닥들과 단단히 꼬여야 한다. 그것이 인류라는 로프의 가닥을 강하게 만들 수 있게 하는 당신의 역할이다.당신이 남들과 더불어 꼬이지 않은 짧은 가닥에 불과하다면 당신은 먼지와 같이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지푸라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IP *.108.48.236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11.07 09:03:02 *.108.48.236
지난 번 저술여행에서 분담한 제 챕터의 내용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이 한 편 써졌기에 걍 올립니다.
지난 주에 이어 계속 '반성문' 모드인 것도 조금 걸리지만,
일단 과제로 올리고 홀가분하게 진짜 과제에 몰두하려구요.
신영복교수님의 강의도 공유하고 싶었구요.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9.11.07 09:35:16 *.72.153.59
김용규님이 제안해서 해본 놀이들 사진이 있어 올립니다.

통나무.JPG
<2008.11월 꿈벗 가을 소풍, 김용규님의 행복숲에서>

20080524-1.JPG
<2008. 5 꿈벗 봄 소풍에서, 서로 연결된 인간의자>

20080524-2.JPG


20080524-3.JPG
끈을 이용한 자기소개 

저도 왕따인데요. 흐흐흐. 어떡하죠?
뭔가를 같이하면서 어울리는 법 알려주세용~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11.08 09:23:55 *.108.48.236
정화씨!
순발력있는 시청각댓글 고마워.^^
댓글란이 화안해지는 것이 참 보기좋다.

관계에서는 일단 내가 '힘'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
이 때의 힘은 물론 재력같이 외형적이고 무상한 것은 아니야
'나'라고 하는 인간 자체의 본질적인 근기라고 할까.

명랑하게 분위기를 만들고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힘,
귀기울여주고 나를 받아들여주는 수용성,
자기답게 살려고 애쓰는 몸짓에서 나오는 절실함...
같은 것들로 상대방을 잡아당기는 것!
이것이 창조적 소수를 오래 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어.

내게는 어떤 힘이 있을까
비오는 일요일, 차분하게 생각해 보려고 해



프로필 이미지
이승호
2009.11.10 11:39:26 *.94.245.162
한명석 선배님!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어유~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9.11.10 16:14:27 *.108.48.236
그려?
그럼 어디 팔 좀 한 번 흔들어 봐봐봐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12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3 사랑 백산 2009.11.09 2211
1311 [사자팀-관계에 대한 칼럼4] 드라마와의 친교 書元 이승호 2009.11.08 2717
» [사자10]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5] 한명석 2009.11.07 3065
1309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2, 그가 사는 나라 [2] 백산 2009.11.06 2722
1308 두 얼굴의 사부님 [10] 현운 2009.11.05 2794
1307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내용 file 정야 2009.11.03 2839
1306 [호랑이] 현재보다 꿈을 파는 마케팅 - 시각매채를 중심으로(4) file [1] 한정화 2009.11.03 4092
1305 10월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내용 혁산 2009.11.03 3019
1304 [사자 10월 워크숍 과제] 수희향 2009.11.03 2808
1303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 내용 [2] 희산 2009.11.03 2744
1302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 내용 혜향 2009.11.03 2754
1301 사자팀 프로젝트 세미나(10/31) [1] 書元 이승호 2009.11.03 2946
1300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1, 걸어서 하늘까지 [2] 백산 2009.11.02 3156
1299 [사자9] 니가 필요해! [8] 한명석 2009.11.02 2947
1298 [첫번 사자 저술여행을 다녀와서 - 창조적 황금벼룩이들의 이야기] [8] 수희향 2009.11.02 2834
1297 한 걸음 떨어질 순간 -거리두기의 효용 예원 2009.11.02 3412
1296 칼럼 29 - Amor fati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3] 범해 좌경숙 2009.11.02 5820
1295 시대의 요청 : 아모르 파티(Amor fati)에 대한 서사 효인 2009.11.02 4136
1294 [호랑이3] 현재보다 꿈을 파는 마케팅 사례 (3) file 한정화 2009.10.27 17801
1293 칼럼 28 -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6] 범해 좌경숙 2009.10.26 3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