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백산
  • 조회 수 221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9년 11월 9일 00시 53분 등록

이 글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훌륭한 선수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코치가 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코치로부터 그 운동의 전문성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인생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도 함께 배운다고 많은 연구결과들은 말합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스포츠 왕국을 꿈꾸면서, 타고난 재능과 끝없이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삶의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코치의 존재에 대해 항상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바탕으로 이러한 소망을 담아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이 소설속에 나오는 내용들은 실제의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미리 밝힙니다.    

 

 

열정보다 더 깊은 사랑

 

수줍은 눈, 부끄러운 볼,

예쁜 가슴, 매끄러운 허리

탱탱한 ,

 

온 몸으로

춤을 추는 그 녀를

다시 볼 수 없지만

 

깊고 그윽한 눈, 차분한 볼

편안한 가슴 단정한 허리

흔들리지 않는  

 

온 마음으로

지켜 서는 그녀는

영원히 내 곁에 있다.

 

 

 

몰래 하는 사랑 보다 존중 받는 사랑을 원한다.

 

 

선생님!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 보았다.

선생님은 누군가를 사랑해 보신적이 있으세요?  사모님 말고…”

그래! 그런 적이 있지…”

선생님이 그러신 적이 있으세요?...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되 물었다.

, 놀랬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선생님이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는 대답 대신에 먼 곳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 깊은 곳 어딘가에서 기억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렇게 말없이 먼 곳을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

옳지 않은거잖아요,,, 나쁘세요…”

그가 가만히 뽀로퉁 해진 그녀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사랑에 옳고 그름이 있느냐?

그럼요,…”

사랑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다. 네가 말하는 것은 사랑하는 방법이겠지…”

네에~? 그녀가 의아해하며 잘 모르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럼,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누군가를 정말 정말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하나의 감정이겠구나 좋아하고 아끼는 그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지? 그렇지?

…”

그래 그렇다면 말이다. 글쎄, 잘은 모르겠다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옳고 그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거지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러니 옳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거지…”

결혼 하셨잖아요.

그럼 결혼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는 않되니? 내 아내는 인표가 나오는 연속극을 보면서 나에게 좀 조용히 하라고 말한다. 정말 정말 좋아하지 그럼 잘못된거니..?

에이 그건 진짜 차인표가 아니라 연속극에 나오는 차인표를 좋아하는 거쟎아요그리고 그 정도 표현은 누구나 다 해요, 우리 언니도 그러는 걸요…”

그래, 그건 네 말대로 정도의 문제고 방법의 문제겠지?

~? 아직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가 말했다.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옳고 그름이 있지 그 시대의 사회나 문화에 따라서 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윤리적인 규범말이다.

그녀는 더욱 궁금해졌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방법의 문제라면 선생님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에겐 선생님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더욱 궁금해졌다.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셨을까?  끌어 안고 입은 맞추어 보셨을까?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면서 에이 아니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더욱 궁금해졌다. 끝내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 그럼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셨어요?

그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생각과 문화가 다른 낮 선 나라에서 코치생활을 하면서 항상 성적에 쫓기고 고독함과 홀로 있는 외로움에 힘겨울 때,,,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날에  강인한 정신만큼이나 뜨거웠던 육체적인 욕망과 열정   그는 얼굴 빛이 우울해졌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먼 곳으로 향하면서 슬픈 기억 속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펜싱을 사랑한다. 내 아내에게는 당신은 나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펜싱과 결혼해 버렸다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나의 펜싱에 관한 열정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펜싱을 좋아하던 그녀를 사랑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외로움에 지칠 때, 그녀는 내게 위안이었고 마음의 안식처였다 나를 이해 해 주었고, 나를 한 없이 믿어주고 말없이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내가 펜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고,  또 진심으로 그 마음을 공감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펜싱을 가르쳤지만 그녀는 내가 왜 그렇게 펜싱을 사랑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펜싱을 사랑했던 것은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녀는 그런 나를 사랑해주었고 내가 사랑하는 펜싱을 조용히 좋아했었다. 시합이 없는 주말에는 그녀와 함께 차를 몰아 여행을 떠났다.  그녀의 손을 잡고 낯선 거리를 걸었고, 낯선 휴양지에서 나는 삶의 힘겨움이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었다.  우리는 깨끗하게 정돈된 조용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늑한 산장의 커피 숍에서 한적하게 책을 보거나 기술과 전술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따뜻한 가슴이 내 가슴의 상처난 수술자국을 어루만질 때,  가녀린 양팔로 나를 안고 나의 얼굴에 그녀의 얼굴을 부벼 댈 때 나는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행복했었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함께 깊은 잠을 잘 때, 나는 세상과 관계에 얽힌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 자유로웠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 때,  몇몇 나의 친구들은 우리의 몰래한 사랑을 아는듯 모르는 듯 묵인했지만 그 사랑은 공개적으로 승인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아무리 성이 자유롭고 문화적으로 다른 윤리적 규범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회든 개별적인 가치와 상관없이 사회 전체를 이끌고 있는 규범과 질서가 허용하는 경계를 넘으면 공개적으로는 비난 받고 처벌받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시대와 사회가 정하는 보편적 규범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결혼이란 한 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그리고 생활에 대한 관심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약속이다.  생활과 사회적 규범 속에서 그 약속을 지속시키겠다는 책임을 약속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사랑의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사회적 규범의 한계를 지키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 내가 아내를 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히 결혼에 대한 약속의 위반이었다.

 왜 그러셨어요. 사모님은 선생님을 사랑하시쟎아요. 아이들과 함께 ..

그래, 맞다. 내 아내는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저버렸다.

왜 그러셨어요, 선생님은 약속을 어기시는 법이 없으시잖아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약속을 어기시다니 믿을 수 없어요

그래, 네가 나를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난 약속을 위반한 것이다.  그렇게 된 속사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나는 아내를 두고,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거짓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이 억지로 되지 않는 것처럼, 깊은 마음 속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감정을 숨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사회적인 규범의 틀을 벗어 났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는 마치 추궁이라도 하듯이 묻는 그녀의 말에도 언짢은 기색 없이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옳다고 믿어왔던 생각을 그녀에게 말하려는 듯 하였다.

마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코치란 펜싱의 기술이나 전술만 잘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코치의 삶과 인생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도 선수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지 않고 능력과 관계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흥분해서 묻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차분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감정 때문에 선생님께 거칠게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그만 함부로 선생님의 사생활에 대해서 건방지게 묻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네요.. 그만 흥분해서…”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의 감정이 어찌 마음대로 조절이 쉽게 되더냐?  .. 말이 나온 김에 분명하게 해 두는 게 좋겠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훈련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으면서도 질문을 이어갔다.

후회하지 않으세요?

후회 후회할 일을 해서는 안 되겠지,,  그것보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반성하며 더 나아져야겠지, 삶이든 사랑이든 그리고 시합이든 모든 것은 선택이며 판단이다.  시합에서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 깨닫고 반성하는 것은 좋지만 후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쉬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나 시합이란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군요…”

그래,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시합에서 졌을 때,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이겼을 텐데 하면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보다,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고 전략적인 우리의 선택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의 코치와 악수를 하고 승리를 축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그 사랑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젊은 날의 열정과 부족한 인내심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한 대가가 아무리 크더라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왜냐면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책임도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래서 그분은 어떻게 됐는데요,, 그녀의 질문은 갑자기 초점이 바뀌어버렸다.

그녀는 선생님의 말이 옳고 그름보다는 사랑이 더 궁금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무릎을 조아리며 다가가 매달려 묻고 싶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래 그 나이에 옳고 그름보다는 사랑에 대한 끌림이 더 하겠지 싶었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한 동안 몰래 사랑했었다.  남의 눈을 피해서 낮 선 곳으로 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  그러던 어느 날, 동이 틀 무렵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문득 밝아오는 아침 햇살 속에서 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나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버리고 그녀와 함께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은 운명 지어진 세계로부터 탈출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삶과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만큼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펜싱을 버리고 사랑을 위해서 떠날 만큼 용기도 있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에 내가 그녀보다 펜싱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펜싱을 사랑한다는 아내의 비난이 가슴에 와 닿았다.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솟았었다. 그 때, 비로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열정과 진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까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삶 속에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열정적인 욕망에 앞 뒤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다가서거나 그저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면서 결혼한 나를 사랑했던 그녀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녀는 항상 나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 손을 내미는 나를 이해해주었었다. 마음속으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모든 비난을 받으면서도 나를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 몸을 돌리면서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마음 속에서 솟아나 고이는 눈물을 감추려고 하였다. 숙연해진 그녀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그의 머리 속으로 밀려오는 선생님이 사랑했던 그녀에 대한 기억들은 가슴 끝을 아리게 했다.

 

언젠가 세계대회에서 실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예선 탈락한 그의 선수들의 경기 결과 리스트를 보고서 작성을 위해 챙기면서, 그 종이 위 맨 마지막 줄에 있는 그의 선수들의 명단을 바라보면서 고뇌하던 그의 곁에 말없이 서있던 그녀, 그 날, 결승전과 준결승전을 보면서 절망에 찬 그의 표정을 문득 본 그녀가 그 시합이 끝나고 돌아와 국내시합에서 자신의 조용하고 차분한 태도를 버리고 그렇게 그가 소원하던 대로 고함을 치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경기를 하였던 그녀,  그 때,,,  그 경기를 보았을 때, 그는 가슴이 뭉클했었지만 알 수 없는 걱정이 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시합이란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강인한 근성과 두려움을 주는 기세를 상대에게 펼쳐야 한다고 그렇게 온갖 방법으로 가르치며 나무라고 꾸짖어도 변화시킬 수 없었던 그녀가 일순간에 그 태도를 180도 바꾸고 성난 사자처럼 경기를 마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을 때, 그는 그렇게 소원했던 장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밀려오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었다. 그렇게 그 시합이 끝난 뒤, 그가 몇 일을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네가 그런 태도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너와 네 나라와 그리고 협회를 위해서 옳은 일이라고 믿었었고 나 자신도 그렇다고 그 순간에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네가 그렇게 하자, 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왤까 왜 기쁘기보다는 마음 한편에서 불편한 생각이 이는 것일까 몇 일을 두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너를 위해서도, 너의 나라나 협회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다른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능하게 해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그래서 내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순간에는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내 무의식 속에는 그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네가 변하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조용하고 차분한 너에게 공격적이고 과격하고 폭력적인 적절하지 못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나는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네게 사과해야만 한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코치! 그건 코치의 잘못이라고 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내 마음 속에도 그런 충동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있었지만 다만 표현하지 못 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는 코치의 그 펜싱에 대한 그 열정과 성실함을 존중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가슴은 먹먹해지고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한 동안 말없이 그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을 더듬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부끄러웠다.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또 내가 펜싱 검을 버리고 그녀를 위해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내가 가족과 펜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했을 때, 그녀는 까만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흘리며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코치가 얼마나 펜싱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코치의 펜싱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우리는 그 후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있지 않았다. 그냥 여늬 코치와 제자처럼 함께 운동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그녀에게 펜싱을 가르쳤지만 그녀는 정작 내게 펜싱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쳐 준 것이다.      

슬퍼요,,, 선생님! 그의 이야기에 빠져있던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나는 슬프지 않다. 다만 나를 사랑한 그녀만큼 그녀를 사랑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만약에 그 사랑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해도 그렇게 내가 가졌던 신뢰나 명성,,, 그보다 더한 무엇을 잃었더라도 나는 후회하거나 항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날의 혈기와 무모한 열정 때문에 윤리적인 규범을 어겼다는 비난에 대해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그것은 사실이고, 또 내가 스스로 한 선택에 따른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는 듯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묘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선생님에 대한 연민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었다. 그녀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운동을 하느라 남자 친구 한 번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했지만 멋진 사랑을 항상 꿈꾸고 있지 않았던가 중년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체격과 당당한 태도를 가진 햐얗게 세어버린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선생님을 보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감정이 있다고 해서 엉뚱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그렇게 선생님이 앞에 계시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상상을 하며 생각 속을 헤매고 있을 때, 그가 그녀를 불렀다.

선생님이 바라보는 눈 길에 내심 덜컥하는 기분이 들었는 데 그런 그녀를 보고 그가 말했다.

너는 그게 궁금하겠지,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고 싶겠지?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다. 들 수가 없었다. 아마 선생님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실 수 있으실거야,  훈련할 때나 시합할 때도 선생님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귀신처럼 알고 계시자쟎아 아이구.. 괜히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선생님한테 들통이 난 셈인데 에라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물으시면 딱 잡아 떼야지 그러면서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선생님, 저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텐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해하려고 해도 힘들거 같거든요…”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더 사랑한다는 것은 불행이겠지.  그러나 사랑이나 존경 같은 감정은 강요되거나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도록 자신이 더 노력해야겠지, 사랑의 감정이란 시작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다.  노벨상을 받았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프롬이 그랬다. 사랑이란 존중이며 보호이고 책임인 동시에 지식과 같아서, 그것은 노력해서 배우고 익히는 기술과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속적으로 사랑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지?

제가 노력해도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반해버리면 어떻게해요..?

하하하,,,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네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때가면 알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녀가  삐죽이다 웃으면서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또 누군가를 사랑하실 건가요? ..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억지로 만들 수 없듯이 저절로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 !

그녀는 내심 선생님이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대답 하시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 수 없다고.. 그 바람에 얼떨결에 큰 소리로 의심에 찬 반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그런 불행한 일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지, 나는 몰래 한 사랑의 달콤함보다는 모두에게존중 받을 수 있는 온건한 사랑을 원한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방법이나 표현 때문에 고통 받을 수 있는 사랑은네가 말하는 슬픈 사랑은 하고 싶지 않구나  그래, 내가 너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휘말려 선택의 귀로에 놓여서 어떤 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러한 힘겨운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옳다는 것이다.

.., 그렇군요.

우리가 펜싱을 사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않겠니?

~?

우리가 펜싱을 사랑하는 것은 이겨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 받고 싶은 것이 아니겠니?

.. 그렇죠..

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하거나 원망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리고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성실하게 훈련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서 도전하고 이겨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니?...

..  선생님은 선생님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던 결국엔 펜싱이라니깐요 선생님은 펜싱이 그렇게 좋으세요? 지겹지도 않으세요?

글쎄 모르겠다. 난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난 그저 펜싱이 좋다. 그리고 잘 알고 싶고 잘 다루고 싶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구나…”

그녀는 불현듯이 생각이 났다. 선생님이 렛슨을 받고  거리나 타이밍 훈련을 위한 데플라스망 훈련을 할 때, 가끔씩 마스크를 반쯤 벗어 든 얼굴의 그늘 속 선생님의 눈에서 빛이 나고, 때때로 파란 불꽃이 이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자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에이 선생님 저 갈래요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던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문을 나서던 그녀는 문득 선생님이 사랑했던 그분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나는 코치가 얼마나 펜싱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코치의 펜싱 속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IP *.131.127.10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3 사랑 백산 2009.11.09 2211
1311 [사자팀-관계에 대한 칼럼4] 드라마와의 친교 書元 이승호 2009.11.08 2718
1310 [사자10]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5] 한명석 2009.11.07 3066
1309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2, 그가 사는 나라 [2] 백산 2009.11.06 2722
1308 두 얼굴의 사부님 [10] 현운 2009.11.05 2795
1307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내용 file 정야 2009.11.03 2840
1306 [호랑이] 현재보다 꿈을 파는 마케팅 - 시각매채를 중심으로(4) file [1] 한정화 2009.11.03 4093
1305 10월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내용 혁산 2009.11.03 3020
1304 [사자 10월 워크숍 과제] 수희향 2009.11.03 2808
1303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 내용 [2] 희산 2009.11.03 2745
1302 사자 프로젝트 세미나 발표 내용 혜향 2009.11.03 2754
1301 사자팀 프로젝트 세미나(10/31) [1] 書元 이승호 2009.11.03 2947
1300 오리엔탈 펜싱 마스터 -1, 걸어서 하늘까지 [2] 백산 2009.11.02 3157
1299 [사자9] 니가 필요해! [8] 한명석 2009.11.02 2948
1298 [첫번 사자 저술여행을 다녀와서 - 창조적 황금벼룩이들의 이야기] [8] 수희향 2009.11.02 2835
1297 한 걸음 떨어질 순간 -거리두기의 효용 예원 2009.11.02 3413
1296 칼럼 29 - Amor fati ,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3] 범해 좌경숙 2009.11.02 5820
1295 시대의 요청 : 아모르 파티(Amor fati)에 대한 서사 효인 2009.11.02 4137
1294 [호랑이3] 현재보다 꿈을 파는 마케팅 사례 (3) file 한정화 2009.10.27 17802
1293 칼럼 28 -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6] 범해 좌경숙 2009.10.26 3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