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예원
  • 조회 수 3476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9년 9월 21일 11시 42분 등록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비즈니스의 목적은 일단, 생존입니다. 가장 훌륭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도 생존이지요. 수익이 충분히 나지 않아서 생존할 수 없는 기업은 종업원들을 계속 고용할 수도, 사회에 기여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것저것 생각 않고 기부를 하다 보면 아마 거덜날 겁니다. 그렇게 되어 실직되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생각해 보세요. 사회에 정말 큰 민폐 아닙니까?’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는 결국 핵심이 위와 같은 내용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가르친다. 아마도 이들은 신이 나서 바디샵(The Body Shop)과 벤 앤 제리(Ben & Jerry's)를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들 것이다. 창립자는 결국 경영 악화로 기존 거대산업에 회사를 넘겼으니 얼마나 구미에 딱 맞는 케이스인가. 나는 그래서 그들의 선택이 (비록 오랜 동안의 시도는 아름다웠다 할지라도) 무척 실망스럽다. 결국 자신들이 지켜나가던 소중한 가치들이 다시한 번 조롱당하게 되는 것을 뻔히 예견했을 것이므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들 자신이었겠지만, 그런 기업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응원하며 쌈짓돈으로 그 회사 제품을 사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다쳤을 것이다.

북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북리뷰는 다들 잘 안 보셔서), 내가 본 아니타 로딕은 주류에 잘 안착한 아웃사이더였다. 영국의 작은 구멍가게로 시작했지만 직영보다는 돈이 덜 드는 가맹점(프랜차이즈)이라는 방식으로 전세계적으로 매장을 늘렸다. 의식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가맹점을 내고 싶어서 줄을 섰다. 기업공개(런던거래소 상장)도 1984년에 일찌감치 했는데, 이를 통해 사회운동을 해 나갈 힘을 더욱 얻었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통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 말라’며 주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다. 전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비주류적인 것만으로는 어렵다.

그녀는 분명 큰 꿈을 가슴에 지닌 이상주의자였지만, 더불어 충분히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비율이다. 그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을 이야기하며 흑백논리를 경계한다. 완전히 윤리적인 극단에 있는 기업도, 비윤리의 극단에 있는 기업도 없다는 게 그녀의 요지였다. 어느 정도 뒤섞여 있는데, 그 비율이 중요하다. 그녀 역시 뛰어난 수완을 가진 현실적인 경영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불어 열 살 때 느꼈던 분노가 이끌어낸 사회운동가로서의 이상적 그림도 함께 가지고 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그 모든 아름다운 시도들은 ‘과거’로 묻힌 채 그녀의 지문이 곳곳에 남아있는, 즉 자신의 분신 같은 바디샵은 거대 화장품 그룹에 팔리고 말았다. 지금 바디샵의 매장에서 나는 아니타 로딕의 정신을 하나도 읽을 수 없다. 거죽만 남은 것 같은 그곳에 들어가는 것조차 나는 망설여진다.

아니타 로딕의 바디샵을 보며 시작한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마나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좀 더 현실적으로 경영을 잘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게 되면, 이상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누가 그 순수한 열정을 보존해줄 것인가? 무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나는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해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좌절감이 나를 이 곳까지 끌고 왔는데, 몇 년 째 길을 잃은 나는 노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직도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다.

 

IP *.71.99.41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9.09.21 23:03:18 *.160.33.197

예원은 어찌하여 늘 이기려하느냐 ?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참혹했으나 
네가 정성껏 믿고 있지 않느냐 ? 
프로필 이미지
2009.09.24 01:14:20 *.246.196.63
이상과 현실 사이의 비율이라... 음 흥미로운 주제네
여기서 '이상'이란 '윤리적인 기업, 공익을 실천하는 기업'일테고 '현실'이란 '기업의 이윤추구'를 말하는거지?
근데  과연 '윤리적인 기업'과 '기업의 이윤추구'는 상반되는 개념일까?
하나를 얻고자 하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게임일까?

난 조금 다르게 해석하구 있거든
내가 처음 바디샵에 열광했던 것은 그들의 '윤리의식' 보다는 그들의 '바디로션'이 탁월했기 때문이야.
글구 내가 처음 스타벅스에 열광했던 것은 그들의 '문화'보다는 그들의 '카페라페'가 기가 막혔기 때문이구..

바디샵이 결국 경영 악화의 문제를 겪거나, 스타벅스가 최근 구설수에 오르는 것,
그리구 잘 모르는 기업이지만 벤엔제리가 경영상의 문제를 겪었던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가치, 윤리의식, 문화를 내세우고 그것을 고집해서였다기 보다
더이상 소비자들이 인식하기에 탁월한 제품,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바디샵은 그들의 사회개혁의식, 윤리의식 이전에
천연재료를 활용한 화장품 업계를 새로 만들었고 시장을 선점한 개척자지
바디샵과 그들의 제품은 새로웠고, 감동스러웠으며 고객을 끌어당겼어
그러나 뒤로 갈수록 맹렬하게 쫓아오는 후발주자들을 따돌리기에는
그들과 또다른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에 부족했던게 아닐까 싶어

음.. 그래서 나는 윤리의식과 현실감각 사이의 비율을 어느 정도 맞춰야 된다.. 라고 생각치는 않아
왜냐믄 그 두 개념이 양 극단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반드시 택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나 역시 바디샵이 로레알에 인수되어 그들의 고유한 색이 바래는게 너무나 아쉽지만
그 원인이 윤리의식만 강조하고 현실감각이 떨어져서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보다는 방금 이야기한 기업행위의 핵심, 지속적이고 차별화되는 제품, 서비스의 공급이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봐

그리구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어
어느 윤리적인 기업이 만약 훌륭하고 감동을 주는 컨텐츠(제품,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시장과 소비자에게 공급해줄 수 있다면... 아인이 서두에 말한 경영학의 수업내용은 바뀌어 질 수 있을거라구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2 [호냥이 1- 꿈을 팝니다! 드림케팅 1] [17] 먼별이 2009.10.06 3491
1231 사자 칼럼 1 - 관계의 기본은 믿음이다. [1] 혜향 2009.10.05 3046
1230 살아남아 기억하는 자의 승리. 단, 예의도 지킬 것 예원 2009.10.05 2925
1229 [사자1] 관계의 황금률 역지사지 [1] 정야 2009.10.05 3954
1228 <관계 #1> 배려로 관계를 열기 [1] 희산 2009.10.05 2856
1227 선배로부터의 교훈 [2] 백산 2009.10.05 2776
1226 [사자 1- 관계: 삶 그리고 존재의 의미] 수희향 2009.10.04 2772
1225 [사자팀-관계에 대한 칼럼1] 조카와의 일상사 書元 이승호 2009.10.04 3721
1224 창조적인 관계학1 > 관계를 관찰하기 [1] 혁산 2009.10.04 3060
1223 [사자5] 관계의 리듬을 타라 [5] 한명석 2009.10.01 2928
1222 [10개 사랑] 밤 한정화 2009.09.30 3287
1221 [9월결산] 내맘대로 경영자 분석 file [4] 예원 2009.09.28 4548
1220 칼럼 23 - 게시판 글쟁이 [2] 범해 좌경숙 2009.09.28 3165
1219 관계의 기본3 > 긍정의 메세지 [10] 혁산 2009.09.28 3178
1218 [사자4]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 [9] 한명석 2009.09.27 3051
» 이상과 현실 [2] 예원 2009.09.21 3476
1216 관계의 기본2 >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계하기 [8] 혁산 2009.09.21 3261
1215 창조성과 개념 [3] 백산 2009.09.21 3052
1214 9월 오프수업 - 나의 10대 풍광 [9] 희산 2009.09.20 2851
1213 칼럼22-뮤즈 불러오기 [6] 범해 좌경숙 2009.09.20 2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