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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0일 04시 20분 등록
( 소설 중에 일부입니다.)

2. 

막내가 가출을 했다. 나갔다가 하루 이틀 외박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이 몇 번 있어 그러려니 했는데, 기어이 가출을 하고 만 것이다. 나는 동생의 다리를 붙들고 가지 말라고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막내는 왜 그러느냐고 놓아달라고 했지만 난 설명할 수도 놓을 수도 없었다. 가지말라고 붙들고 있었다. 막내는 아무리 놓으라고 해도 놓지 않는 내가 사정을 하다가 놓으라며 울어버렸다. 막내도 내가 잡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하기엔 너무나 미묘한 것이다. 막내의 다리는 놓지 못하고 나도 울었다. 그날 막내는 나가면 꼭 외박을 할 것 같았다. 동생이 외박하는 날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심하게 다투셨다. 아버지께서 늦게 퇴근하셔서 딸애가 10시까지 들어오지 않은데 찾아보지도 않는다며 역정을 내셨다.


동생이 집을 나가려고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나는 집이 답답했다. 동생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몇 년전부터 취직을 해서 집을 떠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동생의 밤늦은 귀가가 외박으로 바뀌게 된 것은 내가 취직해서 집을 떠나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와 비슷할 것이다. 단지 막내는 나처럼 취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니 가출을 감행했을 터였다.


=

“근무 끝나고 바로 오냐?”

“어 그래.”

“그럼 터미널에서 내리면 바로 전화해. 우리집에 모이기로 했어.”

다음날에 있을 효실언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 정미언니 집에 모이기로 했다. 같은 근무조로 돌고 있는 입사동기들이 근무를 마치고 광주로 향할 것이다. 오늘 일근조가 동기수가 제일 많은 듯하다. 수원의 영종, 대전의 대수, 서산의 덕배 오빠, 광주의 정미언니, 그리고 멀리 경상도에 살고 있는 동기들도 왔다. 얼굴이 동그란 윤정이와 키가 훌쩍 큰 명희. 그리고 웃을 때 눈이 작아지는 윤섭오라버니와,  멀때같이 크고 착한 지석오라버니도 왔다.


수퍼에 맥주를 사러 나서는 길에 따라나섰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나는 발을 헛디뎌 앞으로 꼬꾸라진다. 요즘 근무중에도 계단에서 앞으로 넘어질뻔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발을 자꾸 헛딛는다. 대수의 등에 얼굴을 부딪혔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어, 아 미안. 발을 헛디뎠어.”

“거짓말.”

“정화 쟤 집에 막 오면서부터 졸립다고 하더라.”

좋으니까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올시다이다. 잠이 쏟아진다. 깨어 있어도 늘 졸리는 것 같다. 너무 졸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왜 이리 졸린지 모르겠다.


수퍼에서 사온 맥주와 소주를 비워가며 첫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기상청 근무한다고 좋아라 했는데, 발령받아서 간 곳은 동사무소보다도 훨씬 작고, 건물은 일제시대 세운 것 같아 실망했다는 둥, 전문을 놓이고 미치는 줄 알았다는 둥, 야근할 때 혼자서 일당백으로 뛰는 데 어떤 잡놈이 술 먹고 전화를 해서 쌍욕을 해대는 통해 맞대거리로 같이 욕을 했다는 둥, 몇 달간 우리들이 한두번은 겪었을 만한 것들을 술술 토해내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일은 이골이 났을 터지만, 처음 당해본 입장이라 당황한 이야기, 심한 장난 전화에 감정대로 했다가 다음날 상사에게 혼난 이야기. 우리들에게 예측하지 않은 소나기처럼 닥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졸려서 먼저 이불을 펴고 누웠다. 잠결에 동기들의 소리를 들었다. 먼저 잔다고 영종이 시비를 걸며 이불을 걷어가 버렸다.

“나 졸려서 죽을 것 같애.”

옆에서 정미언니가 말린다. 이불을 들고 다른 방으로 옮겨 잠을 청했다.


다음날 효실이 언니 결혼식날은 조용히 조금씩 비가 왔다.

광주 터미널 옆에 예식장이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예식장까지 걷는 동안, 터벅터벅 걸었다. 장식으로 끼던 반지를 동기 영종이 탐을 내었다. 반지는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내 것이라는 이유로 갖고 싶어했다. 나는 반지를 빼서 던져 버렸다. 이전부터 미묘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 부담스러운 영종. 그러나 나는 그가 싫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확 할퀴어 버리는 심사가 내 막내동생하고 꼭 닮아서 싫었다.


.
.
.

 

사무실 불을 몇 개를 껐는데도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훤하다. 달이 높다. 보름이다. 남쪽으로 하늘이 보이게 지어진 이 건물은 안에서도 바깥쪽 하늘을 관측하기 쉽게 남쪽의 거의 대부분분의 벽이 창문으로 되어 있다. 벽면을 둘러서 컴퓨터나 기록을 위한 관측장비 배치하지 않았다면 창문 앞에 서서 바로 하늘을 관측할 수 있으련만.


달을 보니 달노래가 절로 생각난다. 대학부에 창수오빠가 어찌나 멋들어지게 부르던지 ‘창수타령’으로 기억하고 있는 노래다. 아무도 없는 기상대에서 소리내어 불러 본다.

‘창문을 닫아도 스며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사랑이 달빛이냐, 달빛이 사랑이냐

사랑, 사랑-,

사랑이란 게 사랑이란 게 무엇이냐

보일듯이도 아니 보이고, 잡은 듯 하다가 놓쳤으니.

텅빈 내가슴에 달빛만 남기고 떠나갔네.’


‘막내야 어디 있는 거냐?’

‘막내야, 어머니 수술하신 날도 안나타나면 언제 들어오려고 하는 거냐.’

막내는 어머니가 수술하셨다는 것을 알까? 알았다면 집에 돌아왔을까?



관측을 위해서 구지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각. 나는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선다. 달빛 때문인지 적적함 때문인지, 기분이 싱숭생숭이다. 일 때문에 매번 칠판에 해 뜨는 시각, 지는 시각, 달뜨는 시각, 지는 시각, 음력날짜를 기록해두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나는 이쯤의 음력날짜에 민감하다. 생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음력 6월 14일. 남동생 생일, 어제가 생일이었다.


내 생일 음력 2월에 나으니 막내가 집을 나간지 넉달이 지났다. 그러고보니 나는 참 못된 언니다. 동생이 집을 나갔지만, 나는 어딜 찾아나선 적이 없다. 막내의 친구 전화번호도 없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몇 달간 어머니께선 여기저기 동생의 친구들의 집을 찾아다니셨다. 어머니 혼자서만 속이 탔던 것 같다. 그리고 동생은 친구 집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셨다. 어머니께선 몇 번을 찾아가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막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탕비실로 가서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따뜻한 차가 먹고 싶다.


 

밤샘근무로 몸이 굳는 것 같다. 아침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느껴진다. 창문 쪽으로 향한 오른쪽 팔꿈치가 쑤신다. 바람이 맞는 쪽을 몸은 기상측기보다도 더 빠르게 알아챈다. 직원들은 출근하느라 더웠는지 선풍기부터 찾아서 3단으로 튼다. 팔을 주무르며 결재 받을 일지를 챙긴다. 나는 여기저기로 바람을 피해 다닌다. 야근을 한 다음이면 바람이 아프다. 바람 닿는 부분이 쑤시는지 저리는지 감각이 묘해지고 바람이 시원하다는 것보다는 아프다고 감지한다. 출퇴근 한느 동안 직행버스 안에서 에어컨을 막기 위해 준비한 긴팔 옷을 밀 꺼내 입는다. 옷을 껴입는 네 모습을 보시며 예보관님은 자신이 옷을 껴입기나 하듯이 말을 건네신다.

“한양은 안 덥나?”

“아~ 예.”


결재를 받고 인수인계를 한 후 사무실을 나선다. 9시 반을 넘어선 여름해는 벌써 따갑다. 군산 시외버스 터미널, 차표를 살 때마다 망설였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어머니 수술하신 전주예수병원에 가야 한다. 터미널에만 서면 어딘가로 떠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가야할 곳이 있어 접어진다. 집에 갈 차표를 사야할 시간이면 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고, 익산에서 군산으로 오는 표를 사야할 때는 근무를 째고 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전주행 버스표를 사 버스에 올라타서 잘 준비를 한다. 버스 안은 늘 자는 곳이다.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팔을 옆구리에 끼고는 눈을 감는다. 밤샘근무로 지친 몸은 가볍게 흔들리는 버스에 적응한다.



어머니께서는 가쁜 숨을 쉬시다가 가래를 몽땅 뱉어내곤 하셨다. 수술시 투여한 마취제 때문에 가래가 심해진다고 그럴 때는 다 뱉어내라고 하신다. 어머니께서 가래를 뱉어낼 때에 역겨운 냄새가 난다. 조개섞는 냄새다. 어머니께서 가래를 뱉어내는 동안 함지박을 들고 있다. 냄새가 확 올라와 역겨워진다. 화장실에 갖다 버리고 돌아온다.


어머니 침대 곁에서 책을 읽는다.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자신의 현실세계를 도피해서 영화 속 세상에 묻혀 자란 영화광이야기. 주인공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소개할 때, 서커스 가족을 소개하듯, 보여주듯이 소개한다. 그가 영화 속에 빠져드는 삶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어쩐지 헐리우드키드가 불쌍해진다.



3.

아버지께서 화가 나셔서 식탁에 있는 국그릇을 내동댕이 치셨다. 국이 어제 저녁부터 나오던 것이다. 오늘 낮까지는 좀 심했다 싶었는데 기어이 일이 터졌다. 그릇들이 깨졌다. 나는 잠자코 깨진 반찬그릇들에서 반찬을 집어 먹는다. 김치그릇에 깨진 국그릇 파편이 있다.

“위험하다. 먹지마라.”

아버지께서 말리신다.

어머니께서는 일어서서 안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그냥 계속 밥을 먹는다. 

“깨진 조각 들어갔다. 버려라. 라면 끓여라, 라면 먹자.”

“아버지, 저 배고파요. 밥 먹고 싶어요.”

아버지는 내 말을 짐작을 하실 것이다. 아버지를 꼭 닮은 나이다. 내가 화가 났을 때 말 안하고 있는 것까지 눈치 채실 만큼 꼭 닮은 나이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까지 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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