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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0일 03시 57분 등록
나의 10대 풍광 - 깊은 꿈


첫 번째 풍광 : 나의 첫 책, 그리고 책 읽기

내가 책을 쓰고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관심을 두고 있고,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현 시장에 대한 부족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연 시장이 바라는 것과 현장의 전문가가 제대로 만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이 제때,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 나는 오래도록 한 분야에서 일한, 오랜 기간 전문분야에서 종사한 이들이 인문학적인 바탕 위에서 자신의 전문분야가 조화를 이루고 이것이 우리의 실생활에 응용되고 활용되어 지게끔 쓴 책을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내가 쓰고자하는 글쓰기의 방향이다.


그래서 나의 첫 책은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것에 무게가 실렸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 아는 분야, 내가 그동안 몸담고 일했던 현장의 경험이 녹아있는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우리 생활공간에 대한 나의 새로운 시선과 해석이 담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화려하고 분위기 있는 사진에만 기대어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제대로 된 정보는 알려주지도 않고, 알맹이는 쏙 빠진 채, 우리의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기존의 노하우를 과감히 걷어냈다.


나의 공간에 대한 창의력은 신화, 역사, 철학, 문학을 근저에 둔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공간에 중심을 두고 생활의 발견과 함께 완성되었다. 화려하거나 기교를 부린 문장에 기대기보다는 어려운 말도, 전문적인 용어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렵지 않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풀어서, 복잡한 내용을 압축하고 잘 정리해서 재미있게 구성하고, 편안함과 따뜻함, 깊이를 전하는 글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다. 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책을 본 독자들이 '내가 쓰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책이야" 라고 말해 주어 기뻤다.


‘이것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왠지 끌리는, 그것이 왜 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느끼는 무엇이 있었다. 변경연 연구원이 되어 사부님, 연구원 동기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것, 그것은 바로 책을 읽는 것, 그 넓고 깊은 의미에 푹 빠져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공간에 대한 창의력은 인문학적인 책들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고, 책을 쓰는 동안도 역시 다양한 분야의 좋은 책, 제대로 된 많은 책을 다시 읽었다. 책으로는 정말  무엇이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느끼지 않으면, 가슴이 함께 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고, 제대로 된 책을 잘 읽을 것이다.


두 번째 풍광 : 나의 공간 I - 심스홈 & 크리에이션즈 (sim's & creations)

오늘은 나의 고객을 만나는 날이다.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지금 나는 정성스레 내린 차와 케이크 조각이 담긴 티 테이블을 대접한다. 나에게 자신의 소중한 공간을 의뢰하러 온 사람들에게 정성을 먼저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렇게 시작되는 대화에서 나는 고객의 요구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과연 이 사람의 집에 대한 추억은 무엇이며, 어떤 사연이 있으며, 그래서 집에 대한 어떤 가치를 요구하는지를 파악한다.


본래 집은 주인을 닮는다. 나를 위한, 내 가족을 위한 환경에 정성을 기울이는 건,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꼭 비싸거나 넓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과 딱 어울리는 진짜 공간을 갖고 경험하기를 바란다. 환경이,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나를 바꿀 수 있음을, 좀 더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를 희망한다. 집주인이 발품 팔아 고른 가구, 집주인이 손질한 꽃과 나무가 있는 아담한 정원, 집주인의 손때가 묻은 집, 나는 집에 대한 그 모든 것이 정성스럽고 즐겁기를, 무엇보다 집이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좀 더 특별한 공간을 얻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다. 특별한 것을 위해 편안한 소통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정말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다. 시간이 좀 더디 걸려도 서로 배려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에게 더 잘해서 보답하고 싶다. 내가 집과 공간에 대해 언제나, 반드시 그리고 여전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자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를 선사하는 것이다.


세 번째 풍광 - 나의 공간 II - 심스 & 크라프트 (sim's & crafts)  

나는 나만의 완벽한 일을 꿈꿔왔고, 스스로 즐기는 일을 남들에게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격려해 잘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내 개인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임과 동시에 가르치는 이와 가르침을 받는 관계가 인간적으로 얽혀 서로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수작업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알리는 작업을 함께 하는, 따뜻하고 즐거운 공간을 빚어내기를 늘 소망했다. 수작업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생활감각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는데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그들이 스스로 실험하고, 디자인하고, 창조하고, 꿈꾸도록 격려하는 일을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내가 그리던 공간이 만들어졌다. 


유난히 통창이 많은 이 공간은 부서질 듯한 햇살이 실내를 파고들어 따뜻한 온실로 만들고 있다. 이 곳 안에서 만들어내는 우리 공방 식구들의 자분자분한 손놀림, 때로는 치열하지만 잔잔한 일상, 마음을 열고 즐겁게 소통하기, 편안하면서도 특별한 가치를 만들어 내기, 반짝거리는 결과보다 과정이 돋보이는 곳, 머리와 손이 함께 움직이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함께 하는 우리 공방 실습생들은 모두 다섯 명인데, 우리는 그들을 세 자매와 두 형제라 부른다. 각자가 한 성질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기 다른 분야의 재능을 가진 그들이, 창조적 소수라 불리 우는 그들이 모여 그 끼와 에너지를 한데 모아 이루어낸 작업은 누가 보아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패턴 디자인도 하고, 재봉틀 앞에 앉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일부는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프린트하면서 손바느질과 다림질까지 마무리한다. 손이 많이 가는 이 모든 과정을 즐기며 언젠가는 자신들도 이 분야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과정들을 경험하는 게 당연하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들은 실습하는 동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이 자유로운 활동 범위 안에서 그들이 맘껏 실험하고 이룬 작업들이 심스&크라프트에 자연스럽게 채택되어 자신은 물론, 공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심스&크라프트는 자신의 고유 브랜드 명으로 디자인을 생산하지만 때로는 다른 회사에서 필요한 제품이나 다른 회사 브랜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공유되지 않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나 자신부터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그렇게 해서 쌓이는 나의 노하우를 공개할 것이다. 결국 내가 사회에 공여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실질적인 기여는 내가 하는 일의 시장성을 넓히고 그 가치를 넓히는 일, 나 자신은 물론 세상에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예가의 정신,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물건들, ‘솜씨와 마음을 나누며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 심스&크라프트의 디자인 철학이다.


네 번째 풍광 : 재능을 나누는 삶

오늘은 심스&크라프트와 심스&크리에이션즈의 프리 마켓이 열리는 날.

1년에 한 번, 공방에서 나와 우리 학생들의 핸드 메이드 작품을 공개하고 심스&크리에이션즈의 벼룩시장 및 바자회를 겸하는 작은 행사이다. 우리 공방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발을 들이게 되는 계기도 만들고, 집에서 제대로 숨 쉬고 있지 못한 물건들도 새 주인을 찾아가 잘 사용되고 생명을 불어넣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하는 일이 손과 직물을 쓰는 일인지라 재료와 도구에 대한 탐닉이 지나쳐 쌓아놓은 물건들이 집과 작업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나름 감각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보니 눈썰미는 있어 해외여행, 국내여행에서 시리즈별, 컬렉션별로 괜찮다고 가져다 놓은 물건들도 꽤 많다. 나도 이렇게 하나하나씩 소중히 모은 물건들을 이때만큼은 아낌없이 내놓는다. 행사로 남겨지는 모든 수익은 수작업 발전을 위한 곳에 기부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주변의 것들을 하나하나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면서 머리로 하는 일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섞어서 하는 공예술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서 나오는 충만한 느낌, 자기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누리고, 자기 손을 충분히 활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디자인과 물건의 수준도 계속해서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나의 재능으로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수작업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존경, 그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다섯 번째 풍광 - '삶이 사랑이다'

오늘도 나의 딸아이는 그림을 그리다 고개를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에게 질문을 한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참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 나를 닮아 좀 깊다. 나의 답변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이번엔 동화책을 꺼내어 읽다가 아빠에게 질문을 한다. 아이 아빠는 나를 바라보며 구원의 눈길을 보내지만 삶은 각자의 몫.. 나는 웃으며 눈길을 피한다. 정말 피하고 싶지만, 도저히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순간, 조금만 딴청을 부리면 딸아이는 바로 승질을 부린다. 아빠는 뭐라 뭐라 얘기해주기는 하는데.. 잠시 후,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그러다 둘이서 깔깔대고 좋아 죽겠단다. 이 아이, 아빠를 닮아 많이 깊다. 이 아이의 깊이, 우리 부부는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아가, 엄마, 아빠는 네가 느무 깊지 않아도 좋으니,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랐으면 좋겠구나..’


우린 좀 늦게 만났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꼭 만나게 된다는 인연의 힘을 믿었다. 언제나 내 가슴을 울리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믿고 기다렸다.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늘 참았는데 그는 잘 참지 못했고, 나는 승질이 더러웠는데 그는 그런 나의 성질을 늘 받아주었으며, 나의 부족한 깊이를 그의 깊은 마음으로 채워주었다. 그런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무엇을 해줄까, 어떻게 하면 그를 웃게 해줄까, 어떤 방법으로 그를 기쁘게 해줄까 고민한 날들이 우리를 인연의 끈으로 묶어주었다. 우린 만나야 할 운명이었다.


살면서 제일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아왔다. 가장 귀한 것을 놓치고 살 뻔했다. 2009년 크로아티아 여행, 사랑 이야기 수업에서 사부님이 해주신 말씀, ‘삶이 사랑이다’ 그 이후로 늘 내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다행히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 내 눈앞에 있다. 소박하고 따뜻한 가족의 일상. 아, 행복하다.


여섯 번째 풍광 - 여행 - 마음에 울림을 가져다주는 여행

2009년 8월 크로아티아, 그리고 모로코, 브뤼셀, 프라하, 코펜하겐, 헬싱키, 프로방스, 이탈리아 일주, 피렌체, 밀라노, 로마, 토스카나까지... 2009년부터 시작된 여행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년에 두 번 나에게 여유를 주기로 했다. 한번은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 또 한번은 나와의 여행.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행복의 조건, 그 중 하나는 마음의 여유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지만 떠남에 있어서 나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는다.


나에게 여행은 휴식이자 새로운 일을 위한 즐거운 선택이기도 하다.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일일이 채집한 아이디어와 자료, 기록, 감흥, 나 자신과 나눈 대화.. 그저 잠시 잠깐 눈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닌 마음에 울림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따뜻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시선..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하고 비우니 가슴에 새로운 것이 채워져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나의 눈길과 마음이 머물렀던 역사와 공간, 일상의 풍경들을 글과 그림으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일곱 번째 풍광 - 작은 정성 (소통)

오늘 나의 글과 그림이 담긴 달력이 나왔다. 늘 사람들에게 입으로만, 말로만 그림을 그려주고 설명하다 보니, 이번엔 내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달력이 완성되기까지 레오나르드 정의 공이 컸다. 


나는 매년 연말경, 한 해 동안 방문한 여행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 곳을 정해 그곳의 정취와 감성을 담은 캘린더, 핸드 메이드 제품을 제작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가까운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시작했는데, 어느 새 연중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연말이 되면 내년에는 어떤 아이템을 만들 거냐고, 어떤 그림, 어떤 내용을 담을 거냐고, 사람들이 먼저 물어본다. 선물 받은 사람은 받은 그 순간뿐 아니라 일년 내내 나를 기억해 주고, 이것으로 공감대도 형성되니 만남이 더욱 반갑고 대화가 훨씬 풍성해진다. 나의 작은 정성이 전해져 그 덕택에 맺은 귀한 인연이 현재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여덟 번째 풍광 - 나의 글쓰기

나는 공간과 수작업에 관한 글을 정기적으로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그 곳에 보낼 글을 쓰느라 끙끙대고 있다. 2009년 변경연 연구원이 되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부터 수많은 밤을 지새웠는데도 아직 단련이 되지 않은 것인지,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인지, 나의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밀려오는 잠에 잠시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한다.


처음엔 나 같은 사람이 글은 뭐.. 그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한 우물을 파며 모아놓은 자료가 좀 있으니.. 한번 써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읽는 것이 좋았고 글에 대한 애정만 품고 있었지 이렇게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었다. 그나마 이렇게 뒤늦게라도 끊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변경연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고자하는 열정에, 그 시간, 그 순간에 몰입해 즐겼다. 그것은 정말 순수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연구원 생활을 하는 내내 진정성을 갖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니? 너, 정말 미치도록 쓰고 싶은 게 있니? 그게 뭐니?


처음 생각과는 달리, 그저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 가슴 속에 있는, 그래서 도저히 풀어내지 않으면 숨쉴 수 없을 것 같은 강렬한 무엇, 내 자신 속에 있는 그 무엇을 풀어내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그 무엇이 명확치 않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아 모든 게 답답하고 힘들게 느껴진 날들도 많았다. 그러다가 그걸 찾아냈을 때 단번에 모든 것이 풀리는 희열을 경험했고, 그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진정한 창조적 소수를 얻는 행운이 내게 주어졌다. 그 모든 경험이 내게 지금의 길을 열어 주었다.


아홉 번째 풍광 - 걷기는 나를 만나는 일

난 오늘도 걸었다. 어느새 걷기는 내 삶의 양식이자 나를 치유하는 방식이 되어 있다. 걷고, 또 걷고, 그러다 쉬기도 하고, 이렇게 단순한 삶이 주는 기쁨이 그 어떤 것보다 더 깊게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걷는 동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자유롭게 상상을 펼치고, 과거를 되살리고,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꿈꾸고, 또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텅 빈 마음이 잠시 머무르기도 한다. 걷다보면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의 일부가 되는 즐거움도 경험하고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통해 얻는 지극한 몰입의 경험도 나를 기쁘게 한다. 나의 생각을 자극해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나의 사고를 대담하게 만드는 매력도 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걷기가 좋은 건 내 몸이 가는 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발을 디디면 진정한 나 자신과의 깊은 만남을 선물한다는 것이다.


열 번째 풍광 - 창조적 소수와 함께 하는 삶, (따로 또 같이, 그리고 깊이..)

우리 가5기,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좌샘은 여행의 길동무를 만나 일년에 반은 세상 구경을 다니시느라 노란 운동화가 벌써 몇 켤레 째인지 모르겠다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을 편지와 함께 보내주셨다. 백산 오라버니는 50세조 세계 펜싱 경기에 참가해 신체와 정신의 건강한 조화로 진정한 자아를 찾아 ‘지금 나 여기에 있다‘를 외치고 다니신다. 쎄이는 I-브랜드 전문가가 되어 영민한 호랑이의 시대를 펼쳐 나가고 있고, 아인은 두 아이의 엄마임에도 평생을 함께 할 공부를 찾아 박사과정을 공부한 끝에 논문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홍영 오라버니는 자아 마케팅 연구소를 오픈 해 1인 기업가로서의 삶을 열어가고 있으며 이번 송년 모임에서 자신이 작곡한 천개의 사랑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직접 연주해 주기로 했다. 승호 오라버니는 드디어 아침마당에 출연하게 되었다며 문자를 보내 주었다.


장면 1 - 나는 요즘 연구원 동료들의 작업공간을 꾸미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근래에 연구원 동기들이 호랑이 시대, 사자의 시대를 위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수희향 언니는 춘희향 언니와 나에게 믿고 맡길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스스로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는다’ 는 변경연의 사상을 계승하는 우리는 그녀를 절대 가만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현 언니의 작업공간이 아름다운 공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녀의 발품과 그녀의 손때가 꼭 필요하다. 자신을 위한 공간에 정성을 기울이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공간이 더욱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다, 잘 못한다면서 수희향 언니가 아무리 승질을 부려도 춘희향 언니와 나는 더한 성질로 맞선다. 그렇게 해서 수희향 언니가 꿈에 그리던 공간이 수희향 언니의 발품과 손때, 그리고 그녀의 마음과 정성이 더해져 드디어 아름다운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다음엔 춘희향 언니의 아름다운 공간 탄생이 바로 기다리고 있다.


장면 2 - 오늘은 매해 연말에 열리는 변경연 송년 파티에 쓰일 의상과 소품 제작 및 아이디어 회의를 우리 공방에서 하기로 한 날이다. 예전에는 연구원들이 준비하고 사부님께서 짜자잔 나타나시면 공연을 하곤 했었는데, 사부님께서도 워낙 유치한 데가 있는 분이라, 어떻게 돼 가냐고, 너희들끼리 해서 되겠느냐며 자꾸 물으시고, 은근히 부러워하시는 것 같아, 이번부터는 끼워드리기로 아니, 모시기로 했다. 그래도 사부님만 모르시는 비장의 무기는 비밀로 한 채, 아, 이것이 더 어렵다.


정현 언니 : 내가 좋아하는 생화 수국을 양 손에 가득안고 라틴 스탭을 밟으며 등장, 따부님은 아직 안 오셨어? 여전히 사부님을 향해 있는 먼별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춘희 언니 : 향이야~, 나 어때? 이번에도 이름모를 꽃 한송이 머리에 꽂고 플레어스커트 주름자락을 펼치고 빙그르르 한바퀴 돌며 등장한다.


희산 오라버니 : 하이~, 기타랑 엠프랑 또 무언가를 한가득 들고 입장한다. 자연에 산다고 하도 자랑을 해서 노동으로 좀 단련이 되었나 싶었더니.. 어째 배는 더 동그래졌다. 춘희 언니와 손뼉을 마주치자마자 공방이 바로 장터 분위기로 바뀐다.


철 : 누님들~, 형님들~, 흐~~~하며 등장. 그를 보자마자 누나들이 달려들어 또 뭐라뭐라 얘기를 해주긴 하는데 철이, 여전히 바로 수긍은 하는데 즉각 대답을 못한다. 우히히.. 또 다시 그 특유의 웃음으로 마무리. 역시, 처~얼, 여전히 구엽다.


따부님~, 따부님~, 드디어 사부님이 등장하셨다. 정현 언니는 사부님을 향해 달려가느라 정신이 없다.


사부님 : 유치한 오기들아, 니들은 나를 왜 불렀냐?
(사부님~^^, 에이, 다 아시면서여.. 근데.. 여기 오신 걸 후회하게 되실지도 몰라여.. ㅇㅎㅎ)


사부님의 손, 그리 섬세하지 못할 거라는 건 예전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시는 걸 본 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바늘에 자꾸 찔리시는 걸 보니 나의 예감이 그대로 맞았다. 너무 어려운 걸 부탁드렸나, 속옷 개키시는 거만큼만 섬세하셔도 좋을 텐데.. 뭐.. 그래도 모른 척 해야지..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유치한 파티는 go~go~~go~~~, 그리고 to be continue...


나, 오늘 10대 풍광을 그렸다. 난 잠을 깊이 자는 편이다. 그래서 1년에 꾸는 꿈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막연하게 꿈꿔 온 장면들이 현실로 이루어짐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내가 꿈꾸는 최상의 삶은 행복한 일과 행복한 사람, 이들과 따로 또 같이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의 조합이다. 나는 내가 그린 나의 꿈이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펼쳐질 날을 꿈꾸며 살 것이다.

난 나의 꿈을 믿는다. 반드시 내 눈 앞에 존재하리라는 나의 깊은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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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9.20 09:52:31 *.108.48.236
와~~  그림그리는 사람이라 그런가 이미지를 빚어내는 솜씨가 정말 남다르네요!
수작업에 대한 애정, 때로 사자로 때로 호랑이로 살아가는 모습에 모두 공감하구요
엄마아빠를 난처하게 하는
영리하고 속깊으면서도 장난끼가 철철 넘치는 아이와의 만남을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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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05:22:18 *.230.92.254
명석 썬배님~ ^^

오랜만에 인사드려여.. 방가~방가~
무엇보다.. 사자.. 함께해서 좋아여.. ^^

그림.. 안그린지가 좀.. 오래됐어여..
요즘은.. 말로만.. 입으로만.. 이케해라, 저케해라..
치대는 일상에.. 눈으로만 보고.. 마음에만 담고.. 손이 따르지를 몬하니.. ㅎ
그림도.. 글도.. 자꾸 그리고.. 써야.. 깊어질텐데여..

선배님의 응원.. 진심으로 감사드려여.. 꿈.. 잘 그려나가도록 할께여..
선배님과 깊어질 날.. 완죤---- 기대돼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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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9.21 05:17:31 *.66.16.166
결국 제목에도 "깊이"를 집어 넣다니, 참으로 깊이에 목숨을 거십니다요~! ㅎㅎㅎㅎㅎ
그래놓고 깊이가 뭐냐고 물으면 또 본인도 모른대요. 나 참~! ㅋㅋㅋ

하지만 다 알어. 니가 무슨 말 하는지. 뭘 의미하는지.
그래. 함께 읽고, 함께 쓰고.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그렇게 함께 삶을 나누며 같이 세월을 살아내는거지...

나도 너의 꿈을 믿어. 이 모든 것들이 지금부터의 네 삶속으로 다 들어올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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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05:50:15 *.230.92.254
큰 언니~ ^^

예전에.. 오래전에.. ..가 나에게 물었져..
넌 왜 나에게 물어보는 게 없냐고.. 나를 얼마만큼 믿냐고..
전.. 제가 본 만큼.. 믿는다고 했져..

그때는.. 별 생각없이.. 말했는데..
사실은.. 당신이 믿는만큼.. 이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게 나의 진심이었는데.. 전.. 맨날 늦게 깨닫져..ㅎ

깊이.. 저에겐.. 같은 마음이에여..
굳이 묻지 않아도.. 다.. 말하지 않아도..느끼는..  때로는 알지만.. 말하지 몬해도 알꺼라는 믿음..

우린.. 함께하고 있잖아여.. 느끼잖아여.. 알잖아여..
언제나.. 따로 또같이.. 함께.. 깊-------이..
언니~, 깊이~ 알라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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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9.21 06:01:50 *.126.231.195
누나 답다. 풍광
섬세하고 주변을 베려하고 은근하게 장난끼 걸고
하여튼 이리저리 조목조목 한올한올 엮어가는 누나의 삶이 무척이나 반갑다.

단 맘에 안드는 딱 장면이 있다면 요거이인데~
철 : 누님들~, 형님들~, 흐~~~하며 등장. 그를 보자마자 누나들이 달려들어 또 뭐라뭐라 얘기를 해주긴 하는데 철이, 여전히 바로 수긍은 하는데 즉각 대답을 못한다.

위 장면에서 누나들이 뭐라뭐라 얘기하는 것을 유추해보면
"너 3시에 일어나긴 하냐?"  나 "음"
"너 쇼파사업은 시작했냐?" 나 "음"
"너 책은 언제쓸래?  나 "음"

상상하기도 싫다 이 장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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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05:58:05 *.230.92.254
철~ ^^

공감 누나.. 어제부터.. 먹는 거이 목록.. 적고 있다..
깡통에 들은 황도.. 파인애플.. 꼬마병 포도주스.. ㅋㅋㅋ

네 무덤을.. 네가 팠구나.. 이거이.. 문제를 또 맞춘.. 너의 탓이려거니.. 해야지..ㅎㅎㅎ
어쩌냐..구여운 처~얼 ^^

글구.. 누나 2 !
눈치가 읍네여.. ㅇ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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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2
2009.09.23 00:31:34 *.12.21.33
크하하^^
(철: 누님들~ 형님들~ 흐~~~하며 등장. 그를 보자말자 누나들이 달려들어 또 뭐라뭐라 얘기 하는데...)

이 장면을 찌지지지~ 되돌려 보면.......
(어깨를 툭 치며)"철아, 넌 그럴줄 알았어. 누나는 네가 해낼 줄 알았어!"
(팔짱을 끼며) "와우, 처~얼, 너 멋지다~ 그래, 우리는 요트 언제 태워줄 거얌??"
(자기팔 자기가 끼며) "철, 너 쫌 하더라."
철이는 누나들의 달려듬에 주춤 물러서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이내 각본같은 성공스토리로 누나들의 혼을 쏙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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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향
2009.09.23 00:19:08 *.12.21.33
이게 너구나.  그래 이게 너야.
향기가 난다. 그래, 향이 있어. 넌.
그래서였나보다.  내가 널 '향'이라고 부른게.  그냥 그렇게 향이라고 부르는 게 좋았지. 
정성스럽고 고집스럽게 한 땀 한 땀  이러지는 바늘길이 보인다. 그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되겠지?   
자박자박한 너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게 너만의 장인정신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그 길 함께 가자.^^

향도 많은 데 무슨 향이냐고?
굳이 무슨 향이냐고 묻는다면  난초 봤지? 청초하고 단아한,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한국의 난.
몇 송이 피지 않는 옥색의 꽃,  아주 가까이에서 정성스럽게 맡아야 향기를 주는.... 
그 난초꽃의 향기야.
이 느낌은 철이도 인정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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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06:09:44 *.230.92.254
춘희향 언니~ ^^

우린.. 이제.. 함께 할 수밖에 없어여..
우리.. 알잖아여.. ^^

향.. 특히.. 난초라.. 음..흠..
후회할텐데여.. 제가 요즘.. 좀.. 더티해여..ㄲㄲㄲ

언니가.. 은근히.. 깊게.. 예리한 거이는.. 알고 있지만..
역~쉬.. 저를.. 깊------------------------이 알고 계시네여..^^
근데.. 제가.. 또.. 구멍이 좀.. 많아여.. ㅎ

작은 언니~, 우린 같은 마음.. 전 알아여..
언제나 깊------이 알라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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