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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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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11시 55분 등록

 

아이들은 따라쟁이의 귀재들이다. 우리 집 둘째 햇살이는 모든 것을 언니한테 다 배웠다. 무작정 따라 하면서. 네 살 많은 언니가 밥을 먹으면 밥을 먹고 숟가락을 놓으면 놓고 방에 가면 방에 가고 그림 그리면 그림 그리고 언니가 책을 보면 꼭 그 책을 보려고 하고 언니가 치마를 입으면 자기도 치마를 입어야 하는, 하여간 심각한 따라쟁이였다. 무작정 따라 하는 그 모습도 정말 귀여웠다. 그때는 애칭을 우리 집의 햇살이 아니라 우리 집의 따라쟁이라고 불렀었다.  

 

햇살이에겐 언니가 학습 모델이었고 언니만 따라 하면 또래 친구들 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따라하기는 한 때로 끝났다. 말 배우는 4살 때까지 인듯하다. 이제 웬만한 건 자기방식이 생겼다. 오히려 언제 따라 했느냐는 듯이 자기 맘대로만 하려고 해 언니의 약을 올린다. 6살인 지금은 선별해서 따라 한다.

 

나도 아이처럼 따라쟁이가 되기로 했다. 햇살이처럼 무작정 따라 하기. 이 나이에 누굴 따라 한다는 것이 좀 유치하고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나에게 부족한 부분, 아니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을 잘하기 위해서는 따라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다.

 

연구원 생활도 한 학기가 끝난 샘이다. 지난 한 학기 동안 나는 그녀의 책 리뷰에 매료되었다. 나는 쭉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를 지켜본 것이 아니라 그녀의 리뷰와 칼럼을 지켜 보았다. 그녀의 리뷰는 독특했다. 분명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처음엔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앞에 v자로 체크하면서 써 내려간 것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저 독특한 방식이구나 생각했다. 또 그녀의 인용 글의 양이 놀라웠다. 책을 거의 다 옮겨 적은 듯한 양이다. 일단 그 양에 감탄하게 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저자라면에서 글에 대한 키 포인트를 뽑아 낸 것을 보고 나는 그녀의 인용문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주에 걸쳐 내가 줄 친 책을 펴놓고 그녀의 인용 글을 읽으며 줄을 그어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또 감탄했다. 그녀의 책 읽기 방식은 탁월했다. 내가 보기엔 대단하다. V자 체크의 비밀도 알아낼 수 있었다. 한 단원마다의 인용문을 읽어보면 스토리가, 내용이 쫙 정리가 된다. 얼마나 책을 꼼꼼하게 읽었는지, 얼마나 책을 맛깔스럽게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몰입이 느껴졌다. 시간 투자가 느껴졌다. 그것 조차도 궁금해졌다.

 

나의 인용문과 비교해 볼 때 문장선택이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나의 인용문은 글을 그대로 옮겨 놓는 방식으로 단순히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로 본다면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인용문을 읽으면 흐름이 잡히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녀의 인용문은 무찔러 드는 글귀를 음미할 수 있으면서 글의 흐름까지 잡을 수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주차가 지날수록 나는 탄복했다. 그녀의 방법이 무척 좋아 보였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작정 따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고 마음에 찔렸다.

리뷰에서 책의 내용이 키 포인트를 잡아내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그러면 나는이라고 자신에게 비춰보는 글도 부러웠다. 사실 이 부분은 부러운 만큼 두렵기도 하다. 나에게 비추어, 나의 생각을 나열하는 것이 익숙지 않는 나로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까지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공과 역량의 차이니까. 또 그런들 어떠랴.

 

사실 글이라는 것에 따라쟁이가 될 필요는 없다. 나만의 문체, 나만의 색깔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따라쟁이가 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의 차원이 아니다. 연구원으로써 책을 읽고 공부함에 있어, 이왕 읽는 것, 제대로 읽고 정리하고 음미해서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지난3, 연구원 합격을 위한 초심으로 돌아가보면 책을 삼켜먹어도 아쉬울 만큼의 열정이 있다. 그러나 열정뿐이라는 걸 이제서야 안 것이다. 책을 잘 요리해 먹는 방법을 몰라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용기를 내었다. 발칸으로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리뷰에 매료되었음을 말했다. 그리고 따라쟁이가 되겠다고 선포했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웃을 뿐 반대하지 않았다. 용기를 내 몰입의 시간 분배까지 알아냈다. 이제 아주 유아기적으로 돌아간 심정으로 따라쟁이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행복하다. 나도 그녀처럼 책을 꿀꺽 삼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나의 이 따라하기는 연구원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몸부림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절박함. 지금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부족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자세를 낮춰 배움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번 리뷰를 그녀 따라하기 버전으로 해보았다. 시간 배분은 아직 적용하지 않아 짧은 시간에 인용문만 정리하는데 어깨가 내려앉을 지경이지만 역시 다르다. 한번 해보고 이렇게 감탄할 일은 아니지만 두 배로 뿌듯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쉽지 않다. 부담도 크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그 짝 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설령 그럴지라도 시도는 해보자. 나도 마냥 따라쟁이로만 살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 둘째, 햇살이처럼 내 방식, 더 멋진 하이퍼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따라쟁이 메뉴가 떠올랐다.

이번 책, 미래의 물결을 읽으면서 자크 아탈리를 따라 해 보고 싶어졌다. 그는 미래의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를 먼저 얘기한다. 과거를 안다는 것은 역사가 지닌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며, 과거는 역사의 구조로 작용하여 다가올 미래를 예측 가능하도록 도와 준다는데개인에게도 이것이 적용될까?

 

개인이 자신의 과거, 나아가 집안의 과거를 안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왜 안 되겠는가. 물론 인류의 역사만큼은 거시적이지는 않겠지만 개인의 역사에서도 적용됨은 물론일듯하다. 다만 과거를 안다는 것은 그냥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드려다 보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50페이지의 개인사를 써 보는 것도 이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리라.

 

나의 과거도 자크 아탈리 방식을 빌어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는 인류 역사의 세가지 지배 권력, 즉 종교, 군사, 금전 중에서 돈이 흐름, 상업 권력에 초점을 두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여러 측면 중에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따라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어떤 경이로움이 나타나고 또 다른 이상향이 보일까?

 

아주 가늘고 짧은 이야기 세상에 대한 인식 편

학교 들어가기 전

§         막내인 새살차이 동생의 젖을 떼기 위해 엄마가 젖꼭지에 빨간약(빨간 소독약이었던듯)을 바르고 동생은 매달리며 울었다. 나는 그때 동생을 동생과 엄마를 물끄러미 보았던 것 같다. 그대 엄마 젖은 어린 동생 것이라고 양보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동생이 막내라고 오랫동안 모유를 먹었나 보다.

초딩시절

§     1학년 입학식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어떤 나이가 앞에 나가 칠판에다 무엇을 주르룩 썼다. 그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가나다라…’였다. 요즘은 학교 가기 전에 모든 한글은 다 알고 가지만 두메산골에는 유치원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학교 가기 전에 한글 알고 오는 아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1학년 때 가,,다를 배웠다. 아무튼 나중에 그것이 한글이었다는 것을 깨쳤을 때 나는 무척 기뻤다.

§     나는 많이 아팠다. 5학년 때는 학교에 갈수 없어 집에만 있어야 했다. 우리 반 친구들이 위문 편지를 써서 선생님과 함께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 우리 집까지 왔다 갔다. 그때 가지고 온 편지 중에서 남학생들 거는 하나도 읽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의 편지를 읽는 자체만으로 부끄러웠다. 읽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     6학년 때 옆 반(두 반밖에 없었다)과 체육시간에 핸드볼을 하였다. 처음 해본 핸드볼은 정말 재미있었다. 옆 반과 우리 반은 막상막하였는데 지면은 분이 나서 씩씩거렸다. 그때 이기고 싶다는 승부에 대한 욕심을 가장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중딩시절

§     처음으로 동시를 썼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연과 행을 맞추어. 그리고 ~처럼, ~같이 은유를 반복적으로 넣어서. 3 12행의 시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 하니 그때도 따라쟁이였던 것 같다. ㅋㅋ 그 동시를 초딩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로 보냈는데 무척 잘 지었다고 칭찬하는 답장이 왔다. 무지 기뻤다. 그러나 그 후 나는 한번도 시를 쓰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마음의 감흥으로 쓴 것이 아니라 행과 연을 생각하고 은유법 등을 꼭 넣어야 되는 줄 알고 교과서를 보고 했기 때문인 듯 했다. 그리고 하나 더, 괜히 자랑하고 싶어 보낸 마음을 선생님이 알아챈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잘난 체, 생색내기도 건강한 것인데... 아직도 부자연스러운 칭찬 받기와 생색내기...무조건 겸손 하라고만 배운 탓인가?

§     남녀공학에 합반. 우리 반에는 키도 제일 작고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 책도 잘 못 읽는 용국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용국이를 놀리고 가만히 있어도 툭 치고 가곤 했다. 그런 용국이를 나는 보호해주기로 했다. 누가 괴롭히면 말리고 혼내주고 먹을 것이 있으면 그 애부터 챙기고. 교실에 갖다 놓을 꽃을 꺾어가도 그 애를 먼저 보여주고 꽂았고 항상 그 애 편이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더 그 애를 괴롭혔다. 그때 알았다. 과잉 친절과 관심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후 고딩 시절부터 현재까지는 나중에 차근히 써 보아야겠다. 단편의 일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는데 따라 해보기의 효과는 이것도 괜찮은 듯하다. 그리하여 나의 따라쟁이는 계속된다. 크하하!

IP *.12.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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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8.31 20:40:35 *.176.68.156
세상 최고의 학습 방법은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 이래잖아. 바로 '따라 배우는' 것이지.

수희향의 북리뷰는 정말 탁월하지. 이번에도 예외없더만. 게다가 수작을 남겨 놓고 홀연히 떠나는 '느와르'까지ㅋ..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꼼꼼히 읽고, 읽을 때 내용과 구조를 그 순간에 꼼꼼히 분석하고, 분석된 내용을 나중에 주제별로 재구성 하는 것.... 절대시간과 노력과 몰입이 없으면 힘든 일이지. 그래도 연구원이라면 당연히 따라가야 할 참조 모델인 것 같애.

나는 티 안 내고 조용히 따라쟁이 하려고...쉿!!!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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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02:27:15 *.40.227.17
춘희 언니~

ㅋㅋㅋ 대놓고 공표하더이만.. 드뎌.. 시작했군여..
무찔러에다.. 리뷰에다.. 이제는 칼럼까지..
따라쟁이ㅋㅋ 어감이.. 느~무 구여워여..^^

암~요.. 할려면.. 제대로 해야져.. 그래야.. 춘희언니져..^^
근데.. 리뷰보니까.. 따라쟁이+춘희언니?.. 보이던데여..
완벽한? 따라쟁이가 아직 몬돼서이 그런지.. 아니믄.. 도저히 그?를 감출수가 읍는 거인지.. ㅎㅎㅎ

근데.. 다~ 조아여~~~^^
우리.. ?, 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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