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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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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7일 00시 31분 등록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다음날 오픈 일이 얼마 남지 않은 프로젝트를 점검해 보기 위해 인테리어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나름 여행을 가기 전에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먼저 해야 될 일들을 미리 지시해두었기에 잘 되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갔다.

그러나 현장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휴가철이라 시공업체들 섭외가 어려워 공사기일이 늦어졌고 그나마 천장공사와 벽면공사마저도 아이들을 상대하는 키즈카페의 특성상 소방법 문제가 처리되지 않아 일의 진척이 더뎌졌다는 이유만을 들어야 했다.

빡빡한 공사비로 어렵게 진행되는 일이라 사업주의 입장도 인테리어 업체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로 힘든 관계 안에 있었다.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빡빡한 공사비라는 이유로 몇 가지 중요한 재료들을 저렴한 소재로 대처해 시공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초기 디자인은 비용이란 문제로 변질되는 것이 속상했다.

이미 한정된 공사비를 알고 있었기에 화려함보단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성시켜서 벽면소재만큼은 내가 지정한 파벽으로 시공해야 한다고 지시해 놓았지만 인테리어 업체 입장에선 시공비 문제를 사업주와 상의하여 결정내렸음을 강조할 뿐이었다.

사업주의 의견을 들어봐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애초에 디자인 되었던 안이 변질되고 왜곡되어지는 것이 싫어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손을 놔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개선의 희망이 보여지지가 않았다.

좀 더 정성을 기울여 차별화된 키즈카페를 만들어 내보고자 했던 내 최초의 의도마저도 꺽이고 있었다. 이미 마지막 잔금을 다 받은 상황이라 손을 때는 것은 쉬운일이었으나 사업주가 좀 더 경험이 많고 강했더라면 어떨까!라는 아쉬움은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섰다.

아내는 아내대로 여행다녀오자 마자 일만 하고 자신과 아이에겐 신경을 안 쓴다고 서운해 하였다.

나는 미안한 감정은 있었으나 그 마저도 계속 축 쳐지는 몸으론 어찌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잠시 몇마디 나누며 서운함을 달래보려 하였다.

내 아내는 내가 여행가기 몇 일 전부터 이름 모를 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여행가기 몇일 전 아내가 조그마한 화분 하나를 가져왔다.

왠 화분이야?”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언뜻 보기에 선물받은 것 같지도 않고 샀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는 나무로 보이기에 물었던 것이다.

~내가 하도 사랑을 못 받길래. 이거래도 사랑을 줘보게~!”

아내의 말로는 아파트 쓰레기 처리장에 화분이 여러 개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큰 화분은 키우기 그렇고 유독 너무나도 초라해 보이는 작은 화분 하나가 눈에 띠어 주워 왔다고 하는데, 언뜻 보기에 어린 나무인 것 같은데 잎이 달랑 하나만 있어 초라함 그 자체로 보여졌다.

아내는 어린 것이 불쌍해 보여서 함 키워본다고 베란다에 갖다 놓았다.

다음 날부터 물을 열심히 주고 관찰을 하고 열심히 대화를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잘 자라라 내가 잘 키워줄께~” 라며 대화를 나누는 아내는 내가 여행을 가기 전날 흥분하며 화분을 보여주었다.

봐봐 여기 어린잎이 돋아나고 있지?” 하며 몇 개 인지 세어보라고 하였다.

하나 둘 셋~ 와 죽은줄 알았더니 살아나네~!”

나 역시 놀랐다.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나무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에 생명이란 참 대단한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여행을 간 이후로 그 화분을 잊고 있었다.

내 아내는 서운한 감정을 얘기하며 너무 일에만 빠져서 살지 말고 가족을 생각하라는 말을 하며 여행기간 동안 잊었던 그 화분을 보여주었다.

난 너무나도 놀랬다.

그 몇일 사이에 달랑 한 개 밖에 없었던 그 잎이 아주 작은 새싹을 포함하여 제법 괜찮은  그것도 어린 잎이 아니라 어느새 제 모습을 갖춘 나무 잎으로서 말이다.

정성을 기울이란 말이야~ 정성을 가족에게~”

내 아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이었다.

아내는 화분을 보여주며 처음키우기 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화분도 화분이지만 내 아내가 대단해 보였다.

그 말을 듣고 침대에 누워 키즈카페 프로젝트를 생각해 보았다.

남이 이사가면서 버린 죽어가는 화분도 이렇게 키워내기도 하는데 나도 키즈카페에 좀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미치자 어떻게 하면 최대한 최초에 의도한 대로 디자인을 유지하며 공사를 마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다음날 여행을 갖다 온 이유를 빙자하여 술한잔 산다며 사업주와 인테리어 사장을 설득하여 호프집으로 갔다. 이런 저런 크로아티아 여행이야기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구체적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던 키즈카페 공사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얘기해 보았다. 둘은 서로간의 서운한 감정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업주 입장에선 더 쓸 비용이 없어 완공이라도 했으면 하는 입장이었고 인테리어 사장은 남는 것이 거의 없는 프로젝트라 자기도 힘들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우선 인테리어 사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보고자 하였고 이해도 되었다.

들어보니 사업주가 자기 아는 동생의 친구라 하는데 아는 사이라 공사를 어렵게나마 진행해 주는 것인데 요구사항은 많고 비용은 적고 손실 보며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고, 사업주는 공사의 진행이 맘에는 안드나 인테리어 사장의 감정을 잘 못 건드리면 그마저 공사도 제대로 못 끝낼 것 같은 두려움으로 할말을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가 문제였다.

 

나는 두 입장을 이해하며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 나아갈지 고민해 보았다.

사업주의 자신감을 살리는 것과 인테리어 사장의 적극성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고 비용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기본 공사말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방시설물과 놀이기구등을 직접구입하는 방법이 있었고, 큰 목공사를 줄이고 데코레이션 위주의 디자인으로 구색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일일이 발품을 팔며 물건을 수소문하여 구입하러 돌아다녔고, 아이 놀이기구도 여러 업체들을 섭외하여 단가를 낮추기도 하였다.

현장에선 일이 진행될 때 마다 인테리어 사장에게 약간의 과장된 칭찬을 해주기도 하였고, 같은 을의 입장에서 애로점등을 나누기도 하였다.

사업주와는 오픈일에 맞춰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업체등을 같이 섭외하기도 하고, 주변의 웅진 싱크빅의 지점을 방문하여 서로 코웍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도 해보았다.

저녁쯤에 호프집에선 우리가 만들어 내는 키즈카페가 다른 경쟁사에 비해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를 나누기도 하였고 잘 만들어 졌을 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비젼을 제시해 보기도 하였다.

사업주가 비용의 문제로 처음에 내가 지정했던 샌드위치를 담을 도자기 그릇을 사지 못하고 일반 그릇으로 가야겠다고 하길래 그것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성깔을 꽤나 부리기도 하였다.그나마 어느정도 공사도 정리가 되어 가고 있고, HAND MADE의 컨셉으로 기획된 핫 샌드위치 (파니니)를 담을 그릇만은 품질과 멋이 있어야 함을 누차 강조했기에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정 비용이 없다면 내가 해주겠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다음날 인테리어 사장이 담배 한대를 주며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정대표님은 참 열정적이네요. 처음과는 다르게 뭔가 자꾸 해주고 싶어지네요.”

나는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만, 초기에 비해 적극적으로 변한 서로간의 관계를 느끼게 되어 좋았다. 사업주 역시 그릇 이야기를 와이프와 했는데, 비용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품질을 높이겠다고 하였다. 와이프의 말로는 남들도 뭔가 품질을 높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최대한 힘을 써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였다는 말을 해주었다.
무엇보다 초기의 서로간의 관계에 비해서 지금의 관계는 협력적이고 적극적이다.
 

관계는 배려보단 정성이 필요한 것 같다.

서로간의 불신과 말하지 못하는 속 마음을 정성은 열어준다.

그렇게 가둬두었던 속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관계의 속살이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적나라하게 보았고 서로간의 입장을 이해하였기에
비젼을 꿈꾸고 나눠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보단 모두들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다.

이런 분위기에 나도 더욱더 동화되어 가고 있다. 나 역시 더 열정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소소하지만 내 아내가 내가 아닌 주워온 어린 나무에 들인 정성에 감동받은 것처럼
정성은 타인의 마음에 꽃을 피워준다. 정성은 관계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그냥 너무나 따지지 말고 정성부터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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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9.07 08:02:47 *.209.229.61
혁산 마눌님 센스있네요! ^^
관계는 정성으로 꽃피고,
정성은 정성을 불러 온다~~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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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2009.09.08 23:06:20 *.126.231.207
글을 쓰기 전에
좋은 소재를 찾고 다듬는 시간을 중요시 해야 한다는 걸
선배님을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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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9.07 11:09:28 *.66.16.149
가정과 일 그리고 연구원.
이 트라이앵글 속에서 모두에게 정성을 쏟고자 하는 그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그대뿐이 아니라 어찌보면 우리 모두 겪고 있는 곡예와도 같은데..

"그냥 너무 따지지 말고 정성부터 기울여 보자"
참으로 의리파 그대다운 표현이다.
이게 바로 마음과 머리의 차이인 것 같은데
그대 말처럼 나 역시 모든 관계를 마음에서 시작하려고.

무튼, 그대같은 의리맨과 <사자~>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어 든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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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9.08 23:09:30 *.126.231.207
가정과 일 그리고 연구원 사이에서의
맘을 나누는 것에 부족함을 매일매일 느낍니다.
좀 더 힘을 내야 하는데
자꾸 꾀 부리게 됩니다.
요놈의 꾀를 어떻게 다듬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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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
2009.09.08 06:38:41 *.142.204.124
철아,  점점 더 철이다워지는 글이 참 좋다.

아니, 철이의 모습이 글과 어우러지니 내가 읽고 보기에 좋다는 말인데....

나, 지난번에 새로 분갈이했던 꽃들 모두다 말라죽어버렸다.
그래서...내마음속에도 사랑의 샘이 말라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거덩. 

왜냐하면
조금씩 사는게  짜증이 나고, 싫증도 나고 해서..
이런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생각하고 있었거든.

어쨋든 말라버린 샘에서 사랑을 좀 길어올려야 하겠어.

"사랑이 꽃피는 나무" 현명한 철이 아내가 가꾼 나무처럼 말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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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9.08 23:13:45 *.126.231.207
제 와이프가 가끔 제 컬럼을 살펴보는데
어느날 그러더라구요.
가식적이라고^^
말은 그럴싸한데
실천좀 하래요^^
그래서 그랬죠.
너 나랑 왜 결혼했냐~

저도 집에오면 베란다에 가서
커가는 나무를 보게 됩니다. 자꾸 자꾸
키우는 맛이 이런것이구나 했지요.
자그마한 화분 다시 가져다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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