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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7일 11시 58분 등록

칼럼 20 - 등대를 따라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안타까운 일 하나가 주말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모처럼 주일 아침 늦잠을 실컷 자고난 다음 집안에 있는 먹거리란 먹거리는 모두 다 꺼내놓고 브런치를 즐기는 것이 우리 집의 일요일 아침 풍경이었다.

그러나 주중에 주-욱 읽어내린 과제물을 이때부터 쓰기 시작해야 겨우 데드라인을 맞출 수 있는 나는 이미 새벽부터 비상사태에 들어가 있었다.

내 방문을 조금 열어보고는 책상 앞에 앉은 주부의 무용함을 알게 된 가족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나간다.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거의 모든 모임을 접었다. 아주 오랜 지인들의 피치 못할 대소사에도 가보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숙제를 한다. 내가 정한 내적기준을 따라서.

그러니 언제나 어깨가 아프다. 이제는 그 이상한 아픔이 왼쪽 손목으로 내려갔다. 며칠을 두고 보아도 차이가 없기에 할 수 없이 이 모든 통증들과 함께 잘 지내기로 결정했다.

내게는 스승 같은 친구가 하나 있다. 책을 무척 많이 읽는 이 친구는 처음부터 나의 지적 성장을 꾸준히 이끌어 갔다. 그냥 친구가 주는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키가 좀 커진듯해서 세상을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에 한번쯤 같이 만나서 그간의 공부를 나누고, 내가 익혀둔 아름다운 산책길을 따라서 함께 걷고 또 서울에서 두 번째로 잘한다는 밥집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고 헤어졌다.

올해 1월에 나는 이 친구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려고 제주도 여행을 기획했다. 그런데 그만 연구원 레이스에 줄을 서는 바람에 도저히 틈이 나지 않아서 4월로 연기했다가 다시 8월말까지 연기했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내어 ‘올레갈래’를 다녀 온 것도 이 친구와의 여행을 위한 나의 준비였었다. 그때 알아두었던 제주도의 동쪽 끝에서 친구와 함께 2박 3일을 지내고 왔다.

성산항에서 복동쪽으로 3.8킬로 떨어져 있는 우도는 제주도에서 제일 큰 섬으로 마치 누워있는 소의 머리모양으로 보인다고 하는 붙여진 이름이다. 그곳에 우뚝 솟은 등대는 1906년 처음 불을 밝혔는데, 2003년 12월에 새로운 등탑을 신축하고 IT기술에 접목하여 대형 회전식 등명기를 설치함으로써 50킬로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광력을 증강시켰다한다. 옛날 에 지어져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옛 등대도 함께 나란히 서 있어서 운치가 있고 언덕 아래에는 파로스 등대를 비롯하여 다른나라의 아름다운 등대의 모형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여행에 대한 꿈을 키워주고 있었다.

우리는 물맑은 해안도로를 따라가다가 또 하나의 작은 섬인 비양도에 여장을 풀었다. 전에 묵었던 아름다운 방을 다시 예약했고 두 개의 넓은 창으로 바람에 눕는 풀과 파도치는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 속으로 자연인이 되어 함께 어울렸다. 커피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 바로 태평양을 향한 망망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우리가 도착하던 날은 회색으로 바람을 가득안고 사납게 물결울 높이더니, 다음날은 쨍쨍한 햇빛 속에 유감없는 푸른색으로 찬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 골목을 다녔고, 여러 해수욕장을 둘러보았고 언덕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주했고 선착장 가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맛있는 밥집을 찾아내기도 했다. 저녁에는 도란도란 옛날이야기도 하고 웃는 애기도 하고 그리고 바다로 내려가 수영을 즐겼다. 내 친구는 수영장에서 익힌 수영이어서 미처 물 밖으로 머리를 내어놓는 법을 익히지 못했단다. 그래서 수경이 없어서 눈을 감고 수영을 했고 배영을 즐겼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즐거움의 하나는 그 바다에 누워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보며 한가로이 떠있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숨소리와 바닷물의 찰랑거림만 있는 곳에서 해저물녁의 바다를 즐겼다.

본래 몸이 약하고 밖으로 다니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친구는 수영도 하고 탁구도 치고 매일 한시간 씩 뒷산을 산책하면서 여행을 가서 민폐를 끼치지 않을 준비를 했단다. 그래서 의외로 걸어다니면서 생각하는 사람인 나의 에너지보다 더한 저력을 은근히 보여주었다. 다만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곳에서 자전거를 익혔기 때문에 렌탈 카 일색인 큰 도로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걸어오는 바람에, 우체국에서 내가 엽서를 쓰는 동안에는 그만 자전거를 버리고 싶어했다. 그래도 자전거가 없으면 너무 많이 걸어다녀야 해서 시간과 힘이 얼마나 드는지 내친구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지난번 여행에서 내가 빌린 자전거를 일찍 돌려주고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해가 저물어버린 얘기를 아직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우 충실한 날을 보내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숙소에서 만나 인사를 튼 사람들이 바베큐에 초대를 했다. 우리는 우리끼리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까다롭고 잘난척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함께 했다. 재미 있는 것은 그때 혼자서 이장의 안내를 받고 파란 눈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집주인이 “영어! 영어!” 하면서 우리를 쳐다본다. 물론 우리가 시니어였으니 외국인을 조금 더 많이 만나보긴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와 합류한 33세의 프랑스 청년은 조용하게 우리와 소통을 시작했다. 조금 수줍고 착해 보이는 이 젊은이는 소주도 잘마시고 조용히 그 시간과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레오나르” 는 한참을 우리가 심각한 얘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잠깐 자기방으로 가더니 살며시 다시 내려왔다. 보름달은 빛나고 얘기는 무르익고 ... 그래서 우리는 다시 우도 팔경의 하나인 서빈백사로 갔다. 이곳은 천연기념물로 정해진 홍조단괴로 이루어진 눈부신 흰색 해안이 주-욱 펼쳐진 곳이다. 달밤에 더욱 빛나는 백사장에 앉으니 마지막 여름의 운치가 대단했다. 목청껏 노래를 뽑아보고 싶었으나 아무도 청하지 않아서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함께 갔던 일행 중에는 디스크 자키를 하던 사람도 있었는데 이사람의 불어 실력이 만만찮았다. 그래서 앵리코 마샤스부터 이브 몽땅, 아다모..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불리워 지기에 슬그머니 레오나르를 부추켰더니 조용조용한 노래가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내가 아는 노래들이다. 어릴때 부르던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더니....몇곡 부르다가 “우리 엄마는 잘 부르는데...” 가사가 생각이 안난단다. 그럴 때에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지...애국가를, 그래서 레오나르는“라 마르세이예즈”를 부르고 우리는 백 코러스를 넣어주었다. 그 끝에 내가 "자크 아탈리" 라고 했더니 반짝 우리 두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함께 웃었다.

레오나르는 행복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밤을 만들어주어서 고맙단다. 그리고는 자꾸만 옷을 만지작 거린다. 그래서 내가 두 주일 전에 아드리아 해안을 다녀왔는데 그때 밤에 수영을 해보았는데 참 좋더라. 너도 수영이 하고 싶은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여기는 물이 깊어서 좀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물에 들어가보라고 했더니 꼭 아이처럼 옷을 훌흘 벗더니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물고기처럼 파득 거렸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은 밤이었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르니 이제 그만 마무리를 하고 헤어졌다. 레오나르와 디스크쟈키는 밤새 또 술을 계속 마셨단다. 한국어로 대화를 하면서.... 다음날 우리가 떠날때 이 젊은이들이 우리를 올레 3코스 입구까지  데려다 준단다. 그래서 함께 가다가  "김영갑  갤러리"에 들르는데 따라온다. 두모악의 그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고 감동하고  책도 사고 그렇게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표선까지 걸어가기로 했고 그들은 표선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제주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배가본드"가 된 두 젊은이는 죽이 맞아서 함께 다녔다.

나는 다시 내친구와 고즈녁함을  즐기며  길을 걸었다. 올레길은 정말 아름답다.  지난번 에 10대 풍광중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를 걷는 일을 기록에 넣었었는데, 이렇게 비슷하게 제주 올레를 걷고 있다. 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특히 바닷길에 면한 바다목장길을 걸을때, 내 친구는 하늘아래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있다고 무척 행복해 한다. 나는 친구가 좋아하니까 나의 기쁨에  앞서서 더 즐거웠다.

행복하게 마무리를 한 우리의 여행길은 한달 후에 친구와 다시 만나서 다시 한번 정리가 될 것이다. 우선은 각자 자기자리로 돌아가 다시 긴장하고 사는 시간이 계속되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바다를 보며 등대를 생각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고 또 돌려보내는 바다는 점점 더 내게 모험을 해보라고, 겁내지말라고 손짓하여 부른다. 어린아이 였을때도 바다를 보고 자랐고, 어른이 된 후에도 줄곧 바다내음을 그리워하며 살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바다는 바라보기만 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나의 때가 이르러 바다의 손짓에 대답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니 바다를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도 기억하고 포말로 부숴지는 하얀 파도도 줄기차게 들여다보고 또 그 소리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마치 출발선에 서있는 달리기 선수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호루루기 소리가 들리면 나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에는  이렇게 50 킬로미터까지 각도를 바꾸면서 나를 지켜주는 등대를 생각할 것이고, 내 친구와 함께했던 이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심어놓은 사랑이  힘차게 나아갈 힘을 더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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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9.10.13 10:00:41 *.166.82.219
'스승 같은 친구' 분과 꿈 같은 여행을 다녀오셨군요.
글을 읽는 내내 행복했던 추억이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흐뭇함을 느끼었습니다.
아래 두 개의 문장에서는 하하, 하고 웃기도 했지요. ^^
"목청껏 노래를 뽑아보고 싶었으나 아무도 청하지 않아서 부르지 못했다."
"우리끼리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까다롭고 잘난척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함께 했다."

머지않아 시작될 좌 선생님의 항해를 기대합니다.
항해의 시작이 될 '호루라기 소리'는 무얼 의미하는지요?
뵙게 될 때에 여쭈어보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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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10.29 08:43:13 *.248.91.49
현운의 글을 보기위해 다시 찾아와 봤어요.
깊이 공감해주는 댓글이 참 고마워요.
요즈음 나는 자주 소리를 듣게되요.< 나를 부르는 바다>
그러니 분명 출발을 알리는 호루루기 소리도 들을 수 있을거에요.
그때는 또 말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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