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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4일 11시 37분 등록
부자인 집, 가난한 집, 미래의 집


이번 주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읽으면서 제가 원하는, 제가 살고 싶은, 제 미래의 집은 어떤 집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토플러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변화, 부의 혁명을 주장하지만, 유행이 변해도, 취향이 변해도, 생각이 달라져도 뭔가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작은 움직임, 사소한 변화는 있을지언정,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것들 말입니다. 바로 집에 대한 저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부자인 집

제 일의 특성 상, 호화로운 집, 그 속에서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그다지 부럽지 않았습니다. 제 목표는 호화롭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 자랑하는 것 같은 집, 그런 집 꾸밈은 품위가 없어 보입니다. 본래 자신의 이야기든 자신의 부든 너무 드러내면 재미가 없을 뿐 더러 때로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고, 지나치면 추하기까지 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달변가라 할지라도 때로는 침묵이 무기가 되고 효과적일 때가 있듯이, 사람도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듯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너무 고급에, 명품으로, 새것으로만 치장을 하면 오히려 촌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딘가는 평범하고, 어딘가는 채워지지 않은 구석이 있어야 더 매력 있어 보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이렇다 할 가구에,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전자제품에, 완벽한 코디를 이루었는데도, 대단하다 할지는 몰라도, 정말 이상하게도, 아름답다는 반응은 낳지 않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화려하게 꾸몄더라도 오래되었거나, 값싸더라도 이야기가 있는, 소품 한두 개쯤은 코디할 줄 알아야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집안을 압도하는 가구,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범한 장식과 디자인은 오히려 집주인의 삶을 버겁게 할 뿐입니다. 아름다움이란 부가 만드는 완벽한 조화와 균형보다 때로는 그 절묘한 벗어남에서 오기도 함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절제는 미덕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

가난하다고 해서 남루한 일상만 보인다면 그건 삶의 장이 아니라 생존의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딘가 부유한 데가 있다면 그런 부유함은 물질의 빈곤함을 비집고 반드시 그 당당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부유한 구석이란 수년간 걸쳐 모은 좋은 책들일 수도 있고,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정성껏 손수 만든 나무 책상 하나, 시어머니께 물려받은 작은 소반 하나, 주인을 닮아 똘똘하게 생긴 찻주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유한 구석을 볼 때면 참 즐겁고 뿌듯합니다.


가장 매력 없는 집 꾸밈 중 하나가 가구점의 카달로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치장했을 때입니다. 아무리 집안을 가꾸는 일이 안목을 필요로 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 해도 자신의 집이 획일적인 취향의 전파를 목표로 하는 가구점의 카달로그와 비슷해서야 되겠는가하는 생각입니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막상 꾸며 놓고 보면 어디서나 본 듯한 지루함에 집주인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장면입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 집 사람들의 역사, 취향, 이야기, 손때가 배어 있는 집, 그 집만의 개성이 묻어나고,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멋스럽지만 사치스럽지 않는 집이 훨씬 매력 있습니다.


미래의 집

미래의 제 집은 소박하지만 멋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가지고 있는 무거운 책들을 모두 꽂아 놓아도 휘지 않을 만큼, 두툼한 두께의 질감 좋은 원목으로 만든 책장이 벽면을 둘러싸고 있고, 양 손을 펼쳐 앞으로 열 수 있는 창 앞에 널찍한 책상을 놓고,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사시사철 다양한 꽃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지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간절히 원하던 책을 사 모으는 기쁨, 그 책을 제가 원하는 위치에 꽂으며 저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기쁨이 있고, 그 책을 나이에 따라 여러 번 읽어가며 다른 느낌을 얻어낼 수 있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책의 냄새를 맡고, 종이를 매만지고, 그림의 빛깔과 글자의 놓여진 위치를 기억하고, 지식의 창고만이 아닌 세상을 만나는 지혜를 배우고, 제가 생각하고, 느끼고, 만진 추억을 함께 하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제가 좋아하는 공간, 저의 집은 생각의 흐름을 막지 않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찾아가는 것이 제 일의 평범한 진리이니 만큼 제게 영감을 주고, 제가 하는 일에 도움을 주는 공간이길 원합니다.


반짝거리는 결과보다 과정이 돋보이는 작업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머리와 손이 함께 움직이는 매력적인 공간이면 더 좋겠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오픈 공간 중앙엔 질 좋은 원목으로 짜여진 커다랗고 기다란 작업 테이블이 놓여 있고, 열 개의 의자 모양은 각기 다르고, 테이블 위에는 우유빛 화기, 투명한 유리 볼에 커다란 핑크빛 작약, 푸른빛 수국이 만개하고, 스케치가 그려진 종이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원단 샘플, 작품에 쓰일 부자재들, 참고 자료 등이 쌓여 있고, 아름다운 음악과 커피 향기 그윽한, 바로 그곳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작업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인, 진지함과 웃음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한, 자신의 가족을 위한 공간에 정성을 기울이는 건,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꼭 비싸거나 넓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과 딱 어울리는 진짜 공간을 갖고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환경이,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자신을 바꿀 수 있음을, 좀 더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를 희망합니다. 집주인이 발품 팔아 고른 가구, 집주인이 손질한 꽃과 나무가 있는 아담한 정원, 집주인의 손때가 묻은 집, 저는 집에 대한 그 모든 것이 정성스럽고 즐겁기를, 집이 이 험한 세상의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집과 공간에 대해 언제나, 반드시, 미래에도 여전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제 자신,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를 선사하는 것입니다.


제 미래의 집이, 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저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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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예린
2011.12.07 18:46:55 *.140.1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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