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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14시 25분 등록

8 8– 셋째날, 자다르 시내, 수페타르섬으로

 

배추벌레 배추 속에서 기어 나오다

어제는 어찌 잠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발표의 긴장감에 와인을 마지막에 한잔 더 마신 탓에 방에 들어와 잠깐 누운 것이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난 것이다.

모든 것은 과거가 되었을 뿐 어제의 나는 없다.

플리트비체 에메랄드 초록을 기억하며 내가 좋아하는 색, 초록색으로 아래 위를 맞춰 입고 귀걸이까지 초록색으로 했다. 이번에 내가 가장 정성 들여 가져간 것은 귀걸이와 메뉴큐어다. 물론 현지에서 살 마음도 있었으나 나름 다양한 귀걸이를 챙겼고 못생긴 손 커버용으로 칠하는 메뉴큐어는 필수품 인지라 리무버에 솜까지 챙겼다. 아무튼 초록 귀걸이까지 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밖에 나가고 싶어 창문 너머를 힐긋거렸다. 혜향이는 초록빛의 나를 보더니 자기도 초록색 입으려 했다며 순간 난감해 했다. 우리는 이내 같이 초록색으로 입고 다니지. .” 하며 의견을 맞추었다.

 

우리가 묵은 자다르 포르토(Porto)호텔은 좋게 얘기하면 전통있는 학교 건물처럼 생겼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병동(혜향이의 표현), 포로수용소처럼(내 표현) 건물이 정사각형으로 둘러쳐져 있고 가운데 커다란 중정이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내개의 건물을 통하게 되어 있었고 복도 어느 지점에서나 중정의 라파솔 카페가 보였다.

 

그 호텔에서 우리가 수업한 세미나실이나 지하식당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 방향을 잡으면 온 건물을 돌아야만 했다. 나는 했던 직업 탓인지 건물이나 도시의 공간감을 금방 익힌다. 어제 밤 몇 번으로 오르내림으로 구조를 파악했다. 방에서 나오자 말자 계단을 돌아 식당에 이르니 혜향이 놀라워해 줬다.

 

우쭐한 기분에 어깨를 으쓱이며 걸어가는데 스승님을 만났다. 둘이 반갑게 인사를 하니 스승님은 초록색 옷을 입은 우리를 보고 너희들은 배추벌레들이냐?” 하셨다. 배추벌레ㅋㅋ. 우린 한참을 웃었고 그날 하루는 즐겁게 배추벌레로 지냈다.

 

dsc00398.jpg
<
나비와 배추벌레 두 마리>

 

그렇게 하루 종일 배추벌레, 배추벌레하며 지냈다. 배추벌레, 배추벌레그러고 보니 우리가 읽고 공부한 책 중, 어느 책에선가 배추벌레가 나왔었는데….어느 책이던가

 

기억이 나지 않아...배추벌레를 빗대어 나온 이야기가 있었는데….배추벌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뭐 그런 내용으로어디더라어느 책이더라좋은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라즈니쉬였나..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만 맴돌았다. 깊이 숙지하며 공부하지 않은 것을 탓하며 집에 돌아가면 살펴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래. 맞았다. 라즈니쉬의 책이었다.

그래. 맞다. 이거였다.


스승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다. 이미 그대 안에 있으며 그 진리가 불러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며 라즈니쉬는 배추벌레이야기를 한다.

 



잠깐 인용해 보면,

그대 안에서 하나의 과정이 시작된다.

그대에게 그대 존재의 진리를 드러낼 과정이 시작된다.

그대는 그대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신은 다른 어디에 있지 않다. 그는 지금, 여기이다.

그대는 커다란 사랑, 커다란 신뢰, 열린 가슴을 가지고 스승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는 그가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그는 그대가 누구인지 안다.

배추벌레는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대들은 배추벌레들이다. 보디사뜨바들이다.

모든 배추벌레는 보디사뜨바이고 모든 보디사뜨바는 배추벌레이다.

보디사뜨바란 나비가 될 수 있는 자, 붓다가 될 수 있는 자, 씨앗으로써, 그 본질로서 붓다인 자를 의미한다.

 

하지만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추벌레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유일한 방법은 나비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나비들이 바람 속을, 햇살 속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다.

나비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나비들이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며,

그들의 아름다움, 그들의 빛깔을 보며 나도 저들과 같아질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갈망이, 열망이 배추벌레 안에서 일어난다.

바로 그 순간, 배추벌레는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배추벌레와 나비의 관계이다.

배추벌레와 나비의 우정이다.

나비는, 배추벌레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비는 배추벌레 안에 하나의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

- 오쇼 라즈니쉬 자서전, 364p~365p


 

   배추벌레, 나비를 꿈꾸다.

 

dsc00422.jpg
<
배추벌레, 나비인양 날아보다>

그래. 맞다. 나는 배추벌레다. 자신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배추벌레.

 

나는 몇 번이고 되뇌어 읽었다. 읽을수록, 음미할수록 탄복하게 된다. 스승님께서 이 가르침을 주시려고 배추벌레라 하셨던가! 스승님께서 나에게 나비의 꿈을 꾸게 하려고, 이제는 그런 열망을 일으키라고 배추벌레라 하셨던가! 스승님께서 스스로 나비가 되어 우정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음을 느낀다.


진정한 스승은 그냥 말하는 법이 없다. 직접 일러주는 법도 없다. 라즈니쉬가 말했듯이 그것은 입밖에 나오는 순간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승이 계신 북악산 자락을 향해 조용히 고개숙일 뿐, 이 미련한 제자가 지금 할 수 있는게 무에 있겠는가! 
 

이제 나는 어제의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멍청한 배추벌레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열망으로 똘똘 뭉쳐진, 예사롭지 않은 배추벌레이다

   
나도 스승님처럼 화려한, 아름다운, 그윽한, 멋진, 덕망 있는 나비가 되어 멍청한 배추벌레의 스승이 되리!


 --> 이어서 다음주에 계속.......


IP *.11.176.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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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8.28 18:45:32 *.251.224.83
춘희씨의 꼼꼼한 여행기를 따라 가다 보니,
나도 그 자리에 있는 양 생생하네요.

배추벌레의 동시성!  너무 멋있어요.
오쇼의 멋진 구절 인용도 고맙구요.
나도 가끔 써먹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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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8.29 02:34:33 *.12.20.78
선배님.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는 터라 마음이 파도와 같답니다.
 
라즈니쉬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 너무 괜찮죠? 
스승님과  선배들...닮아가며 교류할 수 있는 나비들이 많아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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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8 23:20:25 *.145.58.162
왜 배추벌레가 나비가 될까 했더니.. ㅋㅋ
언니, 배추벌레와 은방울 자매 중 골랐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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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9 07:53:58 *.40.227.17
배추벌레 언니~ ^^

배추벌레 자매의 탄생 일화..  ㅋㅋㅋ
근데.. 나비의 유혹?이  좀.. 강하져? 
음.. 흠..  벌레들이 느~무 들이대는 건가? ㅎㅎㅎ

암튼.. 유혹하는 나비도.. 들이대는 벌레들? 도.. 서로를.. 무쟈게 사랑한다는 거이져..  모두 오케?  와~아~아~ ^^

생활의 발견팀.. 환상의 궁합이었져? ^^
무엇보다.. 매일밤.. 펼쳐지는 언니야의 섹시파티?에..  배추벌레 동상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부끄부끄^^

꼼꼼한 기억.. 그거이를 맛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능력.. 
이거이가 다.. 그 새벽?에 풀어낸.. 언니야 울그이의 깊이.. 덕인거 같아여..  맞져? ^^

음..흠.. 이제 겨우 시작?인거이  같은데여.. 계속되는 이야기.. 기대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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