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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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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3일 21시 33분 등록


현대에는 소심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 자신은 대범하고 대심하다고 말할 지언정 돌아서서 스스로를 잘 들여다 보게 되면 의외로 한 두가지 소심한 면은 모두들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다만 사회적 체면이나 개인적 자존심 때문에 그렇지 않은 척 지내는 것일뿐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심을 호주머니 안에 깊숙이 감춰 놓은 채 그렇지 않은 척, 상관없는 척, 나와는 관련없는 척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실제로 소심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나 또한 나를 포함하여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던 소심이 현대에 들어와서 제법 심각한 문제화가 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왜 현대에 와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소심은 언제부터 시작이 된 것일까. 소심을 성격의 한 유형이라고 본다면 소심은 어느 시대를 기점으로 태생되었다고 봐야 할 것인가. 과거를 거슬러 가 보도록 하자.



먼 옛날, 인류가 동물과 같은 본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던 나날들이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들이 인류의 조상뻘이 된다라고 주장하는 인류학자들이 있으나 지금 인류와 비교해 본다면 역시나 그들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동물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과 인간은 어떠한 점이 가장 틀린 것일까? 아무래도 생각을 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본능이 아닌 이성적, 합리적 행동을 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차이점이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목숨을 위협하는 맹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원시인들은 가지고 있는 돌칼이나 창 같은 것으로 목숨을 걸고 대항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무조건 도망을 쳤을 것이다. 즉 사고보다는 본능적인 행동,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하는 식으로 밖에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먼저 맹수를 한방에 제압할 수 있는 총은 물론 각종 폭탄류에다가 심지어는 포크레인이나 트럭 같은 중장비까지 없는게 없다. 어디 그뿐인가? 그물이며 함정까지 온갖 맹수를 제압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폭포수처럼 쏟아낼 수 있는 인간들이 바로 현대인인 것이다. 원시인들의 방법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소심의 기원에 대해 어떤 학자들의 경우는 원시인의 본능으로부터 소심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원시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공격 혹은 도망의 방법을 예로 들며, 공격은 대범 또는 대심, 도망은 소심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적극적 대응방법인 공격은 외향적이며 저돌적이고 대범한 사람들이 택하는 방법이고, 소극적 대응방법인 도망은 주로 소심한 사람들이 택했던 방법이라는 것이다. 생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공격보다는 도망이 더욱 유리해 보인다. 만약 우리의 선조 중에 대범, 대심한 사람들만 있었더라면 어쩌면 인류는 멸종에 이르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원시인들의 본능 - 공격 혹은 도망 - 은 현대에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시시대처럼 우리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위험한 상황은 많이 줄어들고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도 공격할 것인지 도망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여전히 많은 편이다. 아니 예전과 비교해 오히려 더 많아지고 복잡해 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원시인들의 본능에 의한 선택이건, 현대인들의 사고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건 간에 방법은 2가지로 축약된다. 공격이냐 도망이냐. 현대인들 또한 여전히 결과적으로는 원시시대의 우리 선조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능력은 선택을 하기까지에 있어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즉 상황별 분석을 통해 공격 또는 도망이 스스로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이며, 향후 자신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될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현대인들은 과거 우리 선조와는 달리 본능보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선택이 가능해 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은 대범과 소심의 줄다리기를 가능케 하고 있다. 상황에 맞추어 공격이냐 도망이냐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과거의 원시인들이 각자 성향에 따른 하나의 선택밖에 하지 못했던 반면에 현대인들은 2가지 선택 모두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자면 현대인들의 가슴 안에는 대범과 소심이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많든 적든 간에 소심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심의 발현은 사람에 따르다. 누구다 다 소심한 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느냐 감추느냐의 차이는 소심의 많고 적음, 경중(輕重), 농도의 짙고 옅음 등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이것은 개인적 성향의 차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사회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서양사회는 소심에 대해 문제시 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나 동양사회에서는 그에 비해서는 겸손, 부끄러움 등으로 바꾸어 이해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나 혼자만 소심하다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부정적 소심의 늪으로만 자신을 몰아가는 것이다. 늪이란 한번 빠지면 스스로 헤어나기 매우 어려운 공간이다.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도구를 가져야만 한다. 이 사회에는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며, 소심을 강점으로 전환시켜 성공한 역사 위인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스스로를 옭아매어 들어가는 늪에서 빠져 나와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부정적 소심이라 이름 붙여진 늪에 빠진 자신을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잊지 말라. 누구나 다 소심한 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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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7.23 23:39:08 *.131.127.100
 확실히 그렇다고 나도 생각합니다. 
성격 성향은 항상  하나의 연장선상의 양극단으로 보는 것이 현대의 성격심리학의 관점이다.  보통 소심하다든가 대범하다는 우리의 판단은 보편적인 상황에서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근거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시말해서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반응보다 더 적극적이고 상위적인 반응을 대범, 부족하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일 때 소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응행동은 대면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대응능력의 정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혹은 소극적인 대응을 보이게 된다.
그것은 상황의 판단에 따른  중요성이나 의미부여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의 성향이 대범 혹은 소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태도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아무리 소심한 사람도 자신이 잘하고 자신있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소심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범해서 일을 망치고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있으며 소심해서 꼼꼼히 챙겨서 재앙을 면하고 곤란한 문제를 섬세하고 치밀한 행동으로 해결해 낼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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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7.24 09:01:39 *.249.57.142
하모요하모요. 제 생각에도 사람의 성격을 대심과 소심으로 나누긴 어려울 것 같고요
한 사람 안에도 외향과 내향 기질이 전부 있으되 상황에 따라 어떤 성향이 더 강하게 발달 혹은 표현되느냐처럼
소심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되요...
사실 소심한 사람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도 많고요.
저를 변호해주는 듯한 선배글에 신나게 흥분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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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9.07.25 20:27:39 *.5.98.153
제목 좋다.
그리구 맞는 말이야.  '알고보면 누구나 다 소심하다.'

소심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사람을 소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스스로 소심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되면 이전보다 더 소심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위축되곤 한다.

모 회사에  다니다가 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하더라.
그 은행에서 직원 복지의 일환으로 암 투병중인 직원들을 케어하는 행사를 했단다.
행사장인 강당에 들어서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더란다.
'아니 이 사람들이 모두 암 환자란 말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전에 다녔던 직장에는 암 환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까닭일까 궁금하더란다.
은행이 몇년간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소심한 사람들이 극심한 마음고생 덕에 암에 걸렸을 거란 짐작이다.

어려운 위기상황은 사람을 소심하게 만든다.
이 일이 잘 될까?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혹시 잘 않되면 어쩌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 반복되고 깊어지면서 마음을 좀먹고 몸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려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이 말은 소심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나저나 이제 모땐양의 소심론이 경지에 오르는 것 같구나.
모땐양. 이거 그냥 책제목으로 써도 좋겠다. 
내 말대로 해봐라..... 그래서 대박나면 알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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