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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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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일 15시 42분 등록

  

몇 일 전 일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갑자기 걷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일행들과 헤어져서 혼자 선정릉으로 갔다. 찌는 듯이 더운 날이었지만 선정릉 입구에는 나무 그늘 밑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돗자리를 깔고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늘 밑은 시원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 정현왕후 능을 끼고 언덕으로 걸어 올라가니 바람이 솔찮게 불어와서 제법 시원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랫동안 잘 보존된 꽤 굵은 소나무들 사이로 비쳐지는 푸른 하늘을 바라 보았다. 가슴이 싸했다. 그 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일까? 가만이 생각해 보니 그리움이었다. 내 마음 속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연 속으로의 회귀’에 대한 그리움이다.

 

밥벌이를 위해 도시 속의 삶을 살고는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더욱 더 내 속에 명확해지는 주장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나의 꿈이다. 최근의 나를 돌아보는 여정에서 그 꿈은 더욱 더 명확한 그림으로 색깔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사무실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쪽의 빌딩 숲과 그 속에 담긴 도시적 삶은 더 이상 나를 매혹시키지 못한다. 다만 한 구석으로 넓게 바라보이는 선정릉의 숲 만이 나의 눈길을 잡아 당길 뿐이다. 멀리 보이는 남산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만이 나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오직 자연만이 나를 매혹시킨다.

 

나는 자연이 좋다. 특히 나무가 좋다. 굳건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서서 그늘과 공기를 제공하는 그들의 우직함이 좋다. 그 중 소나무가 제일로 좋은데, 그 올 곧은 기상의 느낌이 나를 매혹시킨다. 그는 자신이 견디어 온 세월을,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의 자신의 응전을 온 몸으로 도도하고 당당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소나무는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자신 만의 방법으로 주어진 환경과 기후에 대응하여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살아 남아 자신의 고유한 형상을 보여 준다. 그의 형상이 바로 그의 역사이다. 순리에 맞추어 살아남은 자신만의 자존심의 역사이다. 나는 나무들 중 소나무를 으뜸으로 사랑한다.

 

나는 차가운 시냇물이 좋다. 그들이 서로 흘러가며 부딪치며 내는 맑고도 서늘한 소리가 좋다. 그 물에 발을 담그면 기쁨은 배가 된다. 차가운 한기가 발 끗을 타고 온 몸을 건너 정수리에 닿은 순간, 그 송곳 같은 차가움은 나의 뇌 속에 담긴 모든 부패한 것들을 날려 떨궈 버린다. 서늘한 의식 속에서 나는 나의 몸과 정신 속을 돌아 보면서 온갖 부정한 것을 찾아 내고 놓아 버리게 된다.

 

나의 꿈 속에서 나는 좋은 공기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졸졸졸’ 시원한 개울물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가운데 넓은 그림자 드리운 커다란 소나무 그늘 밑에 누워서 옛 현인의 책을 읽으며 조그만 깨달음과 깨우침 이후의 몰려오는 졸음과 노곤함을 느끼며 반쯤 감은 눈으로 주변을 즐기고 있다. 저 멀리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조곤조곤 얘기하며 뭔가를 열심히 같이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끔은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행복이 느껴져서 바라 보고 있는 내가 다 기분이 편안해진다. 유쾌한 그들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노곤함 속으로 빠져 들어 간다. 그래 이거야, 이것이 행복 아니던가.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행복한 교감 안에서 하나되는 나른한 느낌.

 

앞쪽에 시냇물이 흐르고 나무들로 둘러 쌓인 산 중턱에 나는 나의 집을 짓고 살 것이다. 나의 집은 아주 작고 소박하고 단촐할 것이다.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쓸 수 있도록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딱 한 공간 내 욕심이 들어간 곳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서재이다. 집의 중심은 거실과 연결된 서재가 될 것이다. 누구나 편하게 거실에서 쉬다가 책이 읽고 싶으면 서재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서재에서는 뒷산 숲이 연결되어 있어 책 보다가 마음 내키면 숲속 산책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집에는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다. 나의 집은 나무를 닮을 것이다. 그늘이 있고 열매가 있으며 편안함이 있으며 휴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꿈은 시대의 순리에 맞는 것일까? 이번에 읽게 된 ‘엔트로피’는 시대를 바라보는 가치관적 관점에서 자연으로 돌아 가고 싶은 나의 생각을 지지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기반해서 살아가는 다가올 저엔트로피 사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저엔트로피 문화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며 이 둘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생명의 원천이 된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자연을 ‘정복’한다는 생각이 다른 생물과 전체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는 개념으로 대치된다.

 

태양 에너지 시대에 농업은 다양화된 유기 농법으로 바뀔 것이다. 또한 농작물을 멀리 떨어진 시장까지 수송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고 따라서 소규모 지역 영농은 좀 더 경제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와 걷기가 중요한 이동 수단이 될 것이다.

 

산업사회는 생산의 목적이 소비에 있고 노동은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지만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노동이야말로 의식의 계몽상태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 ‘우리는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아는 데 도움을 주는 활동으로 신성시된다. 저엔트로피 문화에서 노동은 수면, 명상, 놀이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된다. 노동 없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노동은 무엇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엄성과 목적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미 마음 속으로 저엔트로피의 삶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갈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탐닉하고 향락하면서 낭비하고 소비하는 삶, 그러면서도 타인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과 배려도 없이 자기만의 보호막을 친 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거침없이 남의 것을 빼앗는 삶에 진저리가 난지 이미 오래이다.

 

하지만 인생은 삶이다. 자연 속에서 풍광 좋은 곳에 있을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은 휴가간 사람의 마음이지 그곳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의 자세는 아니리라.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택하고 난 뒤에야 인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에서의 삶을 위한 적절한 태도는 무엇일까?

 

먼저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청빈하게 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가난인 청빈은 약함이 아니요 강인한 삶의 자세’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자유의 수단으로서 돈은 성실한 업의 수행의 결과로 열심히 적당히 벌되,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쓰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적절히 꼭 필요한 만큼의 소유만으로 사는 것이다. 소유의 욕구를 버리고 자연의 시간 속에서 자연과 접속하며 사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무위적 삶을 사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일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식량을 얻는 일이며,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는 일이며 동시에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에게 가치를 더 하는 성실한 노동이 될 것이다. 적절히 일하고 적절히 휴식할 것이다. 노동과 휴식의 균형 속에서 나의 몸은 더욱 강건해질 것이다.

 

주변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도 식물도 땅도 공기도 물도… 모두에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그들의 행복에 함께 기뻐하고 그들의 슬픔에 곁을 지켜주고 함께 있어주는 삶. 내가 무엇을 직접적으로 해 줄 수는 없어도 주변을 지키며 지근 거리에서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삶. 나무의 뿌리와 땅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굳게 얽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 나는 물 위를 떠 가는 나뭇잎처럼 나를 잃어버림 없이 하지만 물을 거스름 없이 함께 가면서 끊임없이 나의 위치를 낮에는 해와 구름에게 밤에는 별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

 

명상 중에 생각해 본다. 나의 자세의 근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믿었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데 있다.’

 

깊이 명상할 일이다. 자연으로의 삶은 나를 앞세운 욕구의 충족이 아닌 자연 속에서 나를 자연에 맞추어 가는 삶이므로. 욕구를 자의지로 포기하고 자연과 하나 되는 일이므로.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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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08.03 21:46:47 *.12.20.123
사슴개 조르바는 도전할 라이벌이 있고 승부를 가르는 긴장된 공간에서 더 능력을 발휘하고 성취감을 느낄 것 같은데.....순리만을 따르는 자연은 식상할 수 있을 거야.  아주 늙은 사슴개 조르바가 아닌 이상.^^
조르바 오빠 마음속에 소나무가 있고 콸콸 흐르는 시냇물이 있으니 이미 자연속에 있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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