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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일 11시 58분 등록
 

 

칼럼 16 -엔트로피의 분수령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나의 유년시절의 여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 비췄다.
 그러면 어른들은 7월의 장마를 겪느라 눅눅해진 옷가지와 이불들을 내다말리고 ,  방안에서만 놀기에 많이 심심했던 우리들은  널어놓은 이불사이를 뛰어다니며 신이나게 놀아서 어머니와 일을 도와주던 분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해수욕을 위한 준비물을 챙겨들고 아버지께로 가서 함께 택시를 타고 광안리나 해운대로 갔다. 이시간이 되면 바다는 조금 한적해지고 강한 빛은 조금 누그러져서 수영을 하기에 참 좋았다. 튜브를 타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 온갖 구름이 떠다니고 그 사이로 햇님이 방긋 웃어주기도 하고  구름사이로 숨으며 ‘날 찾아봐라’, 숨바꼭질하자고도 했다.


아버지가 모래위에서  던져주시던 파란 사과를 바닷물에서 꺼내 한입 베어 물면 더 바랄 것이 없이 행복했다.


8월이 시작되었다.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죽을 것 같은 (?) 두려움을  안겨주었지만 늘 해오던 북리뷰인지라, 제레미 리프킨의 책을 다 찾아냈다. 그런데 ‘엔트로피-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 ’ 이란 책은 전에 한번  읽었기에 온 서가를 다 뒤져보았으나 책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젠 내가 책까지 먹어 치웠다는 말이야 ....”


그게 아니라, 이 책은 번역자의 한사람이 학교 동아리 선배였던 까닭에 호기심으로 사두었다가, 이 선배가 뭘하며 살고 있는거지.... 하는 호기심으로 읽었기에 제레미 리프킨이란 이름은 읽지도 않았고 기억에 남아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살면서 간혹 느끼는 맹점을 또 하나 찾아냈다.


어쨋든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가 잘 지은 '책 제목'하나로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물리학에서 ‘엔트로피’ 라는 개념을 이끌어 냈다. 그의 전공인 경영학, 법학, 외교학이 아닌 과학에서 이 단어를 끌어 왔기에 과학계의 기피인물 1호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요즈음 각광을 받고 있는 이른바 “통섭”을 먼저 시작해 보인 것이 아닐까?


그는 현대 사회의 모순에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행동하는 지성인이었고 그 결과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출판하는 책마다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우리의 양심에 까지 찾아들어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금 어떤 상황이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원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토론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곳까지 우리를 밀어 붙인다.


다시 말하자면, 엔트로피의 분수령에  우리를 세워놓는 것이다.


고엔트로피의 문화는 인생의 최고 목표가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한다.  그래서 최고의 가치는 환경을 변형시켜서 그것을 부를 추출하는 목적에 활용하여 이른바 지상의 천국을 건설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물질적 부는 세계의 귀중한 자원을 복원할 수 없는 상태로 감소시킨다는 사실이 간과되었다. 절도를 모르는 소비와 소유와 물질적인 것에 대한 통속적인 애착은 과거의 모든 영성적 지도자들이 끈임없이 염려해왔던 것처럼 인간성의 상실과 맞물리게 되었다.


간디는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를 의도적이며 자발적으로 포기하는데 있다”고  믿었다.


장려되는 것은 절제,  검소 ,자발적인 가난, 한계,등 이었다.

즉, 부질없는 세상의 에너지는 끈임없이 품성을 타락시킨다. 흔히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들이 우리를 소유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우리는 거기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생활의 구조에서 일은 필요악이다. 정말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돈을 벌기 위해서 짊어져야하는 짐이다.


그러나, 일은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에게 품위와 목적의식을 줄 수 있도록 짜여져야 한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일하는 연장-기계들, 공장들-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자본 집약적, 에너지 집약적이 되고 더욱더 엔트로피적이 된다.


규모가 커지고 중앙 집중적으로 될수록  인간의 역할이 또 하나의 생산요소 정도로 전락하는 경향이 심화된다. 생산과정도 기계중심으로 짜여지기 때문에 근로자는 생계를 위해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엔트로피 문화는 “최소의 통치가 최선의 정부‘ 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저엔트로피 문화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서 파악하며 따로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는다.


생태계의 제 1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자연을 ‘정복’한다는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생물들과 전체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한다고 믿는다. 모든 다른 형태의 생명체들 처럼 하나하나의 인간은 지상을 거쳐가는 길손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뒤에 올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들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자연을 보존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인 엔트로피의 분수령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발적인 빈곤을 선택하고, 보다 적게 먹고 적게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르며 단 한번 뿐인 나의 인생을 어떻게 하면 우주의 호흡에 맞추며 살아나갈까 하는 생각으로 저마다의 가슴속의 불씨와 꽃씨를  움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비물질적인 경험으로부터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배우며 이 과도기를 어떻게 혁명할 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귀농, 공동육아, 공동생산, 농산물 직거래를 시작하고 ,또 장작을 지피는 벽난로가 다시 돌아오고, 자전거와 태양열 주택이 건설되고 있다.


그리고 기계 및 기술 시대를 떠나 물질이외의 것에서 단절되었던 자신의 신체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즉 자기의 느낌을 관찰하기 시작했으며 큰 톱니바퀴에 맞물린 작은 톱니바퀴의 삶이 아니라 피와 눈물이 있는 사람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혁명에서는 피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새로운 에너지를 향한 초기단계에서는 현 질서의 엄청난 붕괴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 과도기를 헤쳐 나가는데는 개인적, 사회적 희생과 꾸준하고 어려운 작업들이 요구될 것이다.

마치 로마제국의 몰락은 일시적인 혼란과 야만의 상태를 불러왔지만, 숨막히는 감옥과도 같았던 옛 습속과 죽은 관습들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유럽이 탄생한 것과 같이.


크나큰 변화의 시기가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하겠지만 이 길이 꼭 가야만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 용기를 내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길을 떠나야 할 것이다.


엔트로피의 분수령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면 마치 수직으로 내려 꽂히는 폭포를 보는 것 처럼 아득할 것이다. 두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겠지만 이제는 더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엔트로피는 시간의 화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레미 리프킨은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시작을 하면 30년 뒤 우리의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를 것이고 결국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올 여름은 유난히 더 덥게 느껴진다.

축축하고 눅눅하고 무덥다.

장마와 맑은 날의 경계도 없이 하루종일 무덥고 하루종일 숨이 막힌다.


그래서 

햇빛은 쨍쨍하고 모래알은 반짝이던  그때 그 시절이 더 그리운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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