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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2일 02시 28분 등록

 조용해진 것을 보니 아버지는 이제야 잠이 드셨나 봅니다. 언제나처럼 술을 드시고 귀가하신 아버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돌아오신 날은 가족들은 모두 잠든 척 하거나 기척을 내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제 기억속의 아버지는 늘 술에 취에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만류하시느라 다투는 소리,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술이 깰 때까지 누나와 저를 세워 놓고 긴 시간 이어지는 넋두리. 그런 아버지가 어릴 때는 무서웠고, 조금 커서는 남들앞에서 부끄러웠고, 더 커서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저희를 위해 그 모든 것을 참으시는 어머니를 홀로 두고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묻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아버지가 원하는 가정은 어떤 모습이었는 지,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는 지,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하셔서 누나와 저를 세상에 내놓으신 건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자식은 부모가 어떠하든 그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건지 꼭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열심히 운영하시던 작은 가게가 문을 닫고 일용근로자가 되셨을 때, 아버지의 술 버릇은 더 심해지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제게 종종 말씀하셨습니다.
 " 너는 꼭 큰 회사에 가거라. 아버지가 월급쟁이였다면 저렇게 안 되셨을거야." 
  누나가 좋은 대학에 입학했을때 한 푼이라도 아끼며 사시던, 엄마가 누나 합격자발표문을 굳이 사진사 아저씨를 불러 거금을 들여 사진을 찍어 오셨습니다.  그 사진 속의 엄마는 그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활짝 웃는 얼굴이었지요.  열심히 공부해도 누나만큼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없던 저는 최선의 선택으로 2년제 대학을 지원했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큰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기에 제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불안해 열심히 학업에 매달렸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충당하면서도 평점 4•.4를 유지해 졸업도 하기 전에 큰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경영학과로 편입, 졸업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 회사에서 정년까지 마칠 수 있을까하는 염려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경력자를 모집하는 회사에 지원서를 내 이직에 성공했고,  지금 아버지가 보시는 대로 만족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롤 모델이었던 누나에 이어 제가 큰 회사에 입사하자  저희가 그렇게 되기까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뒷바라지 해 온 어머니는 행복해 하셨습니다.  누나와 저는 부모님 슬하를 떠나 독립을 해서 살아갈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하나만을 믿고 결혼한 어머니는 어찌하셔야 하는 걸까요. 언제까지 아버지의 악습을 받아주며 견디셔야 하는 걸까요.  보다 못한 누나와 저는 어머니께 이혼을 권유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저희의 앞길에 누가 된다면서 말도 못 꺼내게 하셨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가끔 어머니께 데이트를 청합니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저녁도 먹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버지와 이런 데이트를 즐기고 저와의 데이트도 하시는 거라면 엄마는 얼마나 행복해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와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강인하면서도 유쾌한 어머니는 배로 행복하시지 않았을까 싶어 어머니가 안쓰러워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커질 수록 왜 넘어진 그곳에서 저희를 생각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을까 아버지가  원망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던 저는 언젠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불치병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아버지가 술을 안 하셨다면 다른 것으로 찾아왔을 수도 있는, 즉 아버지 내면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회생활 육 년이 지나자 아버지가 저희를 위해 애쓰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는 아버지가 술을 드실 때 자리를 함께 하면서 여러 번 대화를  시도해 보았습니다. 술 마시는 아버지가 싫었던 저로서는 큰 용기 였지요. 하지만  어떻게 해보아도 아버지는 제자리였습니다. 그 과정을 두 세 번 지나면서 저는 자주 지쳤습니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는 아버지.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버지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누나도 매형과 알콩달콩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조카들의 재롱을 보며 살고,  저도 안정이 되어 결혼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일을 하시지만 저희가 어릴 때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이십니다. 그런데 아버지만 묵은 세월 속에 우두커니 앉아 계십니다.  스스로 술을 끊기 어려우시면  전문가의 도움이라도 받도록 도와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아버지. 돌아오는 휴일에는 제가 좋아하는 북한산에 모시고 가려 합니다. 그곳에서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과 같았을 아버지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버지께 어떤 부모였는지, 제 나이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술을 마시지 않은 맑은 정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제가 아버지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전에 비해 모두가 훨씬 행복해진 우리 집, 저희를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시간, 우리와 함께 행복하셔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 악습을 던져 버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저, 누나를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바라봐주세요. 그리고 제 소원, 곱게 단장한 어머니, 아버지가 데이트를 하시고 즐겁게 돌아오는 걸 보게 해 주세요.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어도 저는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며 알게 됩니다.  아버지. 아주 어릴 적, 아기였을 때 맹목적으로 저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저를 안아 주세요. 저도 산의 정상에서 소외되고 힘들었을 아버지를  뜨겁게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낳아주셔서 고맙단 말씀 아직 한 번도 못 드렸는데 그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이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참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는 것을,  아버지를 미워한다면서 사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나 봅니다.  내일 아침 꿀물은 제가 타다 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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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08.12 10:49:10 *.68.6.34
비오는 이 아침 메일 한 통으로 인해 들어와 읽었는데.. 코끝이 찡하고 눈물 한 방울 흘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가벼움이 참 부끄럽게 하네요. 누구보다 더 뜨거운 가족애에 아픔까지 모두 품어안을 수 있는 내면의 성장하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아직도 철이 덜 들은 제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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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12:33:03 *.71.76.251
오늘, 날이 개였네요. 고맙습니다.  여여한 날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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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원
2009.08.12 14:57:50 *.91.243.147
저도 더 빨리 철을 들 것을....앤선생님 글을 더 빨리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버지와 가족사이에는 늘 벽이 있었습니다. 명절때면 대화에 소외된채 혼자 소파에 누워 TV를 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별이 슬픈건 그 사람의 존재를 다시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다시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수 없고 만날수 없다는 생각에 요즘 슬픈 생각이 자꾸 듭니다.
부자간의 정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채, 벽을 허물지 못한채 영원한 이별을 하였기에 너무나 슬픈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많은 힘을 얻어갑니다. 그리고 앤 선생님댁에서 점심을 먹은 그 청년이 너무 부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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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12:31:17 *.71.76.251
그랬었군요.  그래서 지금 성원씨가 그렇게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그런 성원씨도 제가 보기에는  철든 이이지요. 
언젠가  누추한 집에 초대하면 오시겠어요?  아가, 가족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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