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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19시 05분 등록

버스 세울 곳이 없어서 공항을 돌고 있었습니다.

다행이예요. 알고있겠지만 저는 로이스입니다, 미스터 스타니슬라브!

 

그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성(姓)에 미스터란 타이틀을 붙여 그를 불렀다. 버스 회사가 알려준 그의 이름은 Pevec Stanislav였다. 다음날 알게 된 일이지만 그의 성은 스타니슬라브가 아니고 페베츠였다. 이쪽 사람들의 이름에는 C로 끝나는 이름이 많다. 발음은 가 아니고 로 해야 한다. 모음이 거의 없고 자음이 대부분인 이 나라의 단어들은 영어철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아주 낯설게 다가온다. 물론 발음하는 것도 익숙치가 않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면 이들 식으로 읽는 것에 점차 재미를 붙이게 된다.  

 

스탕코라고 불러주세요.

스타니슬라브에서 나온 애칭이군요. 그런데 스타니는 성이 아니었던가요?

 

그가 이름을 쓰는 순서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은 자그레브 구시가지 관광을 마치고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였다.

슬로베니아는 성을 먼저 앞에 써요. 성이 뒤에 있는 경우는 국제 관행에 맞추려고 일부러 그렇게 쓸 뿐이예요.

, 반갑네요. 저희도 그렇거든요.


이미 스탕코와는 하루 사이에 많이 친해졌다. 그날 아침 스탕코는 약속에 없는 자그레브 시내 관광을 위해 버스를 운행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유럽 장거리 버스에는 전날 시동을 끈 후 11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시동을 걸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그는 아침 8시에 우리들을 시내에 태워다주었다. 전날 밤 방 배정을 마치고 혼자 프론트 데스트에 남아 다음날 있을 자그레브 관광을 위해 컨시어지에게 차량 수배를 부탁하고 있는 내게로 다가오며 그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내일 아침 관광을 위해 차를 알아보고 있어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그래도 된다면, 차량비를 당신에게 지불할게요.

그러지 않아도 돼요.


돈은 안받아도 된다는 그의 말을 나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기사들에게는 그런 가외 수입이나 팁이 한달 총 수입의 무시 못할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여러 대로 나누어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었다.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던 내 말을 잊지 않고 우리 그룹이 식사하는 시간에 그는 식당에 나와있었다. 떨어진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가 함께 식사를 했다. 이후로 나는 그를 우리 그룹 테이블로 초대하거나 내가 그의 테이블로 가 항상 함께 먹었다. 자그레브 관광을 마치고 두 시간 만에 버스로 돌아오니 한 사람이 미아가 되어 있었다. 한 시간 만에야 그녀의 행방을 찾아 다음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Thank you so much for your wonderful patience, Stanko!

버스를 오래 세울 수 없는 곳에서 한 시간 이상 마음을 졸였을 스탕코지만 그는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 대부분의 기사는 얼굴에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신경질을 내거나, 아니면 전략적인 푸념으로 팁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스탕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때 묻지 않은 기사였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남의 고용인으로 차를 몬 게 27년이나 되었다는 사람이 그토록 때가 묻지 않을 수 있다니,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다.

 

그의 정서는 참으로 우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성과 이름 순서가 우리와 같다는 것이 내게는 왠지 우연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조상의 조상, 또 조상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피는 어디 쯤에서 우리네 피와 섞여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 첫날 자그레브 구시가지 광장 뒤편의 재래시장 돌라츠 마켓(Dolac Market)에서 10쿠나를 주고 산 꽃다발은 첫날 꽂아둔대로 내내 그의 운전석에 머물러 있었다. 차에 흘린 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고 깔끔하게 청소를 하는 그가 그 꽃을 투어가 끝나도록 치우지 않은 것은 꽃을 전해준 이에 대한 그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는 내성적이긴 했지만 꽤나 세심하고 따뜻했다. 내가 미리 다가가서 사람들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했다. 그건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그들의 문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서양 관광객들에게는 기사 역시 한 사람의 개별적 존재일 뿐이다. 개인의 의사를 충분히 타진하기 전에는 자신의 영역에 타인을 들여놓는 법이 없는 그들에게는 기사와의 관계 역시 서비스에 합당한 팁을 지불하면 그만인 합리적 관계만이 용인될 터였다. 그런 문화에 익숙한 스탕코에게는 우리가 한솥밥을 먹는 식구처럼 살뜰하게 챙기는 것이 어쩌면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루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버스 안에서 우리가 반드시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먼저 한 사람씩 자기에게 붙여진 일련 번호를 크게 외침으로서 인원을 체크하는 일(25번째 희석씨가 complete! 이라고 외치면 기사는 모든 이가 승차했다는 걸 알고 차를 출발시키곤 했다)과, 간드러진 써니의 선창을 따라 '앗싸바리, We love you Stanko!'를 크게 외침으로써 빡빡한 하루 여정을 시작하는 스탕코를 격려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하루 이틀은 그냥 웃고 지나치던 스탕코가 사흘째가 되던 날에는 우리보다 더 크게 I love you too, girls much more. 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박장대소를 하며 스탕코에게 사정없이 환호를 보냈다. 나도 여러분을 사랑해요, 여자들은 더 많이! 그는 한 술 더 뜨고 있었던 것이다. 허물도 경계도 없이 순간 순간 서로에게 녹아드는 우리 무리들의 호방한 분위기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스탕코는 극소심을 물리치고 어느새 마이크만 대주면 앗싸~!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감탄사를 따라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그의 앗싸~는 우리보다 더 감칠 맛이 났다.

 

스탕코는 우리 나이로 올해 48세다. 82년에 운전을 시작해 올해로 27년째 운전을 하고 있다. 운전이 싫어 다른 직업에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정비공 1년과 군대생활 1년 반이라는 외도 기록만 가지고 다시 운전대로 복귀하였다. 처음에는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제약회사의 5톤짜리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그는 그 회사의 제약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슬로베니아 국토의 90% 이상이 산악지대인 걸 감안하면 운전사라는 직업은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국경에 위치한 율리안 알프스 산맥의 경우 험하기가 이를 데 없다. 도로 포장도 제대로 안되어있었을 80년대 초반, 그 험한 고개를 숱하게 넘나들던 스탕코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새벽 3에 집에서 나서서 외진 길을 말 벗도 없이 묵묵히 운전만 하고 다녔을 걸 생각하니 그의 인생 여정이 결코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의 착한 미소는 달관의 미소란 말인가. 15년 동안 젊음을 다 투자한 트럭 운전사 일을 접고 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그가 다시 일을 시작한 곳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의 시티버스 회사였다. 월급은 조금 더 받았지만 근로 환경은 딱히 좋아지지 않았다. 교대로 운전해야 하는 시티버스의 경우 날마다 운전하는 시간대가 달랐다. 생활이 일정치 않으니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안전이 가장 중요한 직업인데도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다시 직업을 바꾼 것이 바로 이 전세 투어버스 회사, 스트릿 투어(Street Tour). 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는 2년이 되었다. 주로 슬로베니아와 인근 나라에서 일하고, 필요하면 유럽 전역을 다닌다. 10일에서 20, 어느 때는 한 달 이상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이 직업 역시 만만한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단련된 것이 있어서 그다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내는 처음엔 이 직업을 반대했다. 그러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는 것으로 그녀와의 협상은 별 무리 없이 타결되었다.

 

이 대목에서 OB의 한 멤버는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은 우스개 시리즈 중의 하나다.  밤 일도 못하는 것이 돈도 못 벌어다 주면? <설상가상>, 밤 일은 못하지만 돈은 잘 벌어다 주면? <천만 다행>, 밤 일도 잘하는 것이 돈까지 잘 벌어다 주면? <금상첨화> 뭐 이런 우스개인데 스탕코는 <천만다행>이라는 것이다. 의미를 알고 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스탕코가 완전히 우리 사람으로 포섭(?)되자 우리 일정은 점점 더 즉흥성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떻게 할거요, 로이스?

그는 아예 기존 일정을 무시하고 아침이 되면 나에게 그날의 일정을 물었다. 그 말은 오늘은 또 무엇을 바꿀 생각이야? 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페이퍼에 명시된 일정은 이제 편의상의 일정일 뿐이었다. 우리는 일정에 무언가를 더 얹어서 언제나 some more를 찾아나섰다. 재즈처럼 improvisation(즉흥연주)에 강한 우리 무리들의 성향(물론 나의 성향이 주도하긴 하지만)은 스탕코의 도움으로  더욱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그레브에서 자다르에 도착한 저녁, (5기 연구원이 세미나를 하는 동안) OB의 몇 무리들은 전날의 보름달 축제(full moon festival)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자다르 성을 구경하러 나섰다. 시내에서 10분 이상 떨어진 호텔이라 우리는 택시를 불렀다. 그 때 스탕코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시내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적은 인원이 대형버스에 타고 가는 게 부담스러워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날 그는 자그레브와 플리트비체를 돌아보는 동안 혼자서 우리 일행을 오랜 시간 기다렸고 자그레브에서 자다르까지 먼 거리를 내려오느라 오랜 시간 운전을 해야했다. 피곤할 법도 하건만 그는 기꺼이 우리를 위해 친절을 베풀었다.  그날 이후 스탕코는 자신의 재량 안에서라면 언제든 우리를 도울 자세가 되어있었다. 그와 우리는 천생연분이었다. 한국 그룹은 처음 맡는다는 그는 이 이상한 한국 그룹의 매력에 완전히 전염된 것 같았다. 다소곳이 숨어있던 그의 친절은 첫 날이 지나기도 전에 겉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버스로 자다르 항에 도착하자 먼저 항구에 정박된 하얀 요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자다르의 밤하늘이 짙푸르게 익어가고 있었다. 자정에 이르도록 수많은 인파가 3천년 고도의 성벽을 따라 교교한 네온과 함께 흘러다녔다. 커다란 돌 조각을 박아 만든 거리 바닥은 오랜 동안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서 맨들맨들했다. 신발을 벗어들고 맨 발로 돌의 감촉을 느끼며 성 안을 누볐다. 해안 계단에 앉아 파도가 연주하는 씨 오르간(Sea Organ) 소리도 들었다. 낯에 태양빛을 모았다가 그 전지로 300개의 다양한 글래스 서클 위에 빛을 쏘아주는 환상적인 <Sun Salutation> 위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기도 했다. 방파제에 연결된 광장에서는 락콘서트가 막바지 열기를 몰아가고 있었다. 젊은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가 한동안 몸을 흔들다가 인근의 이국적인 카페로 가 로컬 생맥주를 시켰다. 모두들 한 잔씩 들이켜고 기분 좋게 취해 북문으로 갔다. 그곳에는 우리를 태워갈 미니 밴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내다본 하늘에는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오른 달 무리가 여전히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달 속에는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극한의 아름다움이 서려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달을 우리는 그 다음날 브라치 섬의 수페타르에서 다시 만났다. 꿈에 그리던 푸른 아드리아 해를 50 미터 앞에 앞 마당처럼 끼고 있는 리조트 호텔 벨라리스(Velaris)는 천혜의 휴식처였다. 올리브 나무 정원에 자리잡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은 우리는 블라치아 해변을 끼고 마냥 걸어서 시내로 갔다. 가는 동안 달은 우리가 지나치는 건물과 나무들 사이로 여러 풍경을 연출하였다. 성당의 종탑에 걸린 달이나 어느 집의 아담한 지붕 사이로 보이는 달은 열대의 꽃인 부겐빌리아나 야자 나무 사이에 걸린 달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걷는 동안 다른 풍경 속에 자리한 달의 아름다움에 취해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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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 해변에서 멱감는 우리들에게 시원한 맥주와 물을 날라다 주는 친절한 스탕코

IP *.248.7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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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0 17:39:13 *.96.12.130
글을 읽으며 중간중간 울컥거렸던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함께 하지 못했지만 글을 읽다보니 나도 거기에 있었던 건 아닌가 살며시 착각이 드네요. 좋은 여행을 위해 얼마나 많이 애쓰셨을지 보지 않았지만 알 거 같아요.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즐거우셨죠? 남은 이야기도 계속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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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지혜
2009.08.21 10:11:27 *.251.5.1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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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희
2009.08.23 01:56:54 *.12.20.192
때때마다 외쳐던 '알 러브 스탕코~"가 들리는듯 하네요. 전 스탕코보다 한숙님의 매력에 빠져있어요.
한숙님 덕분에 정말 근사한 여행이었어요. "멋있어요. 로이스!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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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12:17:43 *.6.2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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