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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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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일 20시 35분 등록


◇ 흡연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던 시절, 가끔 길 한쪽에서 또는 길을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우곤 하였다. 특히 길을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울 경우 내겐 꼭 옆, 뒤를 확인하는 습관이 하나 있었다. 혹시나 담배 연기가 뒤로 흘러가면서 뒤따라 오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을 하더라도 아주 가끔은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담뱃에 불을 붙이는 경우가 있곤 했다. 그럴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담배연기가 자신의 쪽으로 온다 하더라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채질하거나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즉시 옆으로 피해 가곤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나는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얼굴까지 빨개지곤 하였다. 그리고 즉시 길 옆으로 비켜 서서 더 이상 담배 연기가 그 여자분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곤 했다.


솔직히 길을 걷다 가끔 앞에 가던 사람에게서 넘어 오는 담배 연기를 맡게 되면, 담배를 피우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사실 기분이 좋지 않다. 간접 흡연은 차치하고서라도 전혀 모르는 타인의 입 -- 깨끗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 을 통해 나오는 담배 연기라고 생각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물며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들은 어떠하랴.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이제 비흡연자가 되어 길을 걷다 보면 종종 흡연자의 담배 연기를 맡게 된다. 역시나 싫다. 냄새도 싫지만, 흡연자의 입에서 나오는 구취가 얼마나 심한지 알기 때문에 더 더욱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싫은 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 특히 금연으로 지정되어 있는 장소에서조차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눈에는 같은 공기를 들이 마시고 사는 다른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가 보다. 심지어는 갓난 아이들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분노가 치밀기까지 한다. 내가 투명인간으로 변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옆으로 몰래 다가가 따귀라도 한대 올려 붙이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할까. 왜 다른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받아야 하는 불이익에 대하여는 신경쓰지 않을까. 소심한 나로서는 당체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難題)이다.




◇ 문 열고 닫기


매일 아침마다 집을 나선 후 회사로 들어서기 전 마지막 통과해야 하는 곳이 회사 건물의 출입구다. 이 건물에는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 뿐 아니라 규모가 다소 작은 여러 개의 회사들이 입주해 있으며, 1층에는 은행, 14층에는 뷔페전문 식당까지 다양한 회사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건물 출입구에는 다양한 연령대, 성별 그리고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출입구의 문은 일반적인 대부분의 문들이 그러하듯 밀고 당겨야 열 수 있는 유리문이다. 손잡이를 잡고 밀거나 당겨야 하는데, 문의 무게가 있기 때문에 힘을 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열때는 순간적인 힘을 가하게 되어 있고, 문이 열린 후 재빨리 몸을 빠져 나가게 되면 문은 처음 받았던 힘을 가진 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바로 뒤에 사람이 뒤따라 오게 되는 경우는 갑작스럽게 앞으로 달려드는 문과 맞닥뜨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젊고 힘 있는 사람이야 그 정도의 반동력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힘없는 유아나 노약자 그리고 약한 여성의 경우에는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열거나 닫을 때 항상 앞 뒤를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보게 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앞에 오는 사람은 그래도 눈으로 확인 가능하므로 덜하지만,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만 나가면 그만이다. 물론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만 더 신경을 써준다면 혹시 생길 지도 모르는 불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일까. 귀찮아서일까. 아니면 신경쓰기 싫어서 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의 본능자체가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이기 때문일까?


건물의 큰 문뿐 아니라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이나 사무실의 문은 대부분 나무문으로써 안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문이다. 이런 문 중에서 당겨서 여는 문은 좀 나을 지 모르나, 밀어서 여는 문 같은 경우 동시에 두 사람이 문 앞에 섰을 때 들어가려는 사람이 힘을 주어 문을 확 밀 경우 안에 있는 사람은 십중 팔구 다치게 마련이다. 무방비의 상태이기 때문에 손목이든 손가락이든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문을 연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하긴 애매하다. 하지만 그 사람에 의해 다른 사람이 다친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세심과 배려의 문제이다. 조금만 혹시 문 앞에 있을 지 모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이러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소심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남을 생각한다. 자신 때문에 남이 다치거나 불편해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 조심한다. 소심하기 때문에 세심하며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다.




◇ 화장실


이번에는 조금 언급하기 꺼려지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요즘에는 많은 가정에서 점차 비데의 사용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비데는 위생을 위해서나 청결감을 위해서도 좋은 제품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데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용하길 원하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이제는 어느 정도 습관처럼 되다보니 비데가 없는 곳을 이용하게 되면 하루종일 뭔가 빼먹은 것처럼 느낌이 좋지 못하다.


2년전부터 회사의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되었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참고로 일반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1층과 지하 1층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지 않았다)을 위해 과감히 투자를 한 것이다. 많은 직원들이 회사의 조치에 환영의 표시를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비데의 물이 제대로 나오지 못해 일을 본 후 비데 사용이 원활치 못한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화장실을 이용함에 있어서 그전과는 달리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공중화장실이란 청결 면에서 그리고 심리적인 면에서 가정의 화장실과 비교했을 때 깨끗하기 어려운 곳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남의 흔적(?)을 본다는 것은 기분이 좋아질래야 결코 좋아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비데를 사용하면서 화장실을 가게 되면 꼭 양변기 위에 물이 묻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비데 사용의 흔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왜 뒷정리를 하지 않는가 하는데 있다. 나 같은 경우 물이 묻게 되면 꼭 화장지로 닦은 후 화장실을 나오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 여부를 떠나 내 스스로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치부(?)를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몰래 빠져 나간다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던 곳을 원래대로 유지해 놓아야만 마음이 편해진다.


소심이란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자, 사회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 양면성의 완벽을 기하려 하기 때문에 삶이 힘들고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소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에만 집중한다. 예의에 관련된 부분만 아니라면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필요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과 남에 대해 모두 신경쓰지 않으면 스스로 불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심한 사람들은 항상 손해를 보는 느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대범하고 대심한 사람들을 부러워 하게 된다.


<부끄러움 Shyness>의 저자 버나도 카두치 박사는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은 타는 사람들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 “사회가 제 기능을 잘하려면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조용하고 남들보다 사려 깊은 부끄럼쟁이들 역시 꼭 필요하다. 모두가 지도자나 탐험가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서 군중의 일부가 된다. 부끄럼쟁이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무모한 충동에 제동을 거는, 합리적이고 조심성 있는 집단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가 공동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 공동체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함은 물론 세심한 배려를 실천하고 있는 소심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이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지금과 같은 모습일까, 아닐까. 지금보다 나은 모습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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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9.07.02 02:06:22 *.41.103.163
공중 도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 =  소심하지 않은 사람.  ^^
이분법적 사고는 헛점이 참 많아 그치 형.. ^)^
이런 글도 알콜 기운에 쓰는 걸 보면 나도 소심유형에 속하나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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