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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6일 09시 36분 등록
 

칼럼13- 올레 갈래


드디어 해방이다. 숙제가 조금 널널해진 틈을 타서 부리나케 책을 앞당겨 읽어두고 비행기를 타러갔다. 배낭하나 달랑 매고..... 한국판 산티아고인 제주올레를 향하여 성지순례를 나섰다. 나의 강점은 걷기이다.

지난 30년 동안 가능한 모든 직종과 업무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사람들 200만 명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할 때 정확히 어떤 단어들을 사용하는지를  오픈 엔디드 방법으로 인터뷰하여 그 결과를 34개로 유형화해낸 것이 이번 주의 주제인 스트렝스파인더의 배경이다. 그래서 책에 주어진 ID를 가지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180개 문항에 재빨리(20초 이내) 대답하여 나의 강점 5개를 찾아냈다. 그 내용을 공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매우 간단한 짐 꾸리기에서 이 <나의 강점>이라는 스트렝스를 함께 데리고 가는 일이 스트롱 스트레스였다고  말하고 싶은거다.


어쨋든 어설프게 책을 한번 읽어둔지라, 폭우를 뚫고 김포에 도착해서도 오로지 책읽기에 몰두해서 보안 검색대 앞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재능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자발적인 반응, 동경, 빠른 학습속도, 만족감은 당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실마리가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한 걸음 빠져나와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나운 바람소리를 잠재워라. 그리고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렇게 한다면 재능을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사나운 바람소리를 잠재워야지..... 그리고는 출입구의 전광판을 바라보며 Processing이 Boarding으로 바뀌기만을 기다리면서 독서 삼매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Processing 이라니?........


우째 이런 일이....세상에....

단 한명, 아직 비행기에 오르지 않은 승객인 나를 찾아, 사나운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공항 방송이 내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재빠르게 보안검색대를 지나니 승무원이 무전기를 가지고 나를 찾고 있었다. 또다시 부리나케 뒤쫓아 뛰었더니 나를 위해 공항 내 버스를 대절해서 혼자 타고 트랩을 막 걷어 올리려는 비행기를 손짓 해 부르고는  겨우겨우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모두 다 얌전히 앉아있는데 그 가운데를 헤치고 내 자리로 들어가는 기분은 왕 쪽이었다. 다행히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가지고 가서 쪽을 겨우 가리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쪽팔려서 주위를 돌아볼 수가 없어서, 그냥 연필을 들고 <나의 강점>을 주~욱 읽어나갔다. 검사결과 나온 ‘맥락’이란 나의 강점은 ‘무엇을 위해 혁명을 할 것인가?’ 를 풀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강점혁명을 위해 재능을 찾아 나가던 나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몰입을 잘하고 뛰기를 잘하는 것'을 나의 강점으로 삼기로 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도 아니련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유치하고 웃기는 연구원이 되고 만 것이다. 별이 하나 그려진 책<나의 강점>과 연필을 손에 쥐고 마구마구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시라.

어찌되었든 바다 위를 날아올라 푸른 바다를 건너 쪽팔렸던 과거를 뒤로 하고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어느 모임에서 차담을 할 때 “제주 올레 갈사람 요기 붙으세요!” 라고 잠시 말했는데, 세상에, 그곳에 있던 선생님 한분이 “우리언니가 제주에 사는데... 제가 전화해 드릴테니까, 한번 만나보세요.”라고 하고는 또 중간에 문자를 보내서 스케쥴을 물어봐 주고 언니를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 인연으로 새로운 제주사람을 만나 함께 올레길을 다녀왔다.


여름 무더위 속이어서 습하고 무더웠지만 중문 외돌개에서 시작한 제 7 올레길은  바닷가를 따라 아기자기한 길들이 펼쳐져 있어서 참 아름다웠다. 푸른색 화살표를 곳곳에 그려 넣어 가는 길을 알려주고 노랗고 푸른 리본을 나무에, 혹은 바위에 묶어놓아서 운치가 있었다. 화산 석 사이로 아담하게 가꾸어진 오솔길들, 파도소리 바람소리...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놓이니 지친 영혼이 쉼을 얻어 평화를 되찾은 것 같았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고 산다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책으로 되돌아가서  <나의 강점> 85쪽에 써있는 글을 읽는다.


“자연은 재능에 귀환 장치를 설치하여 사람들이 계속해서 재능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인간의 무의식적 반응은 재능의 원천을 보여주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지만 , 그 외에도 염두에 두어야 할 세가지 수단이 더 있다. 이 세가지는  동경, 학습속도, 만족감이다.” 95쪽.


평화롭게 어슬렁거리며 걷던 길이 어느 틈에 끝이 났고 시간은 4시간 반이 흘렀다. 처음 시작할 때와 달라진 길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나다녀서 민원이 들어와서 할수없이 차가 다니는 큰길로 코스가 바뀌었단다. 길에서 만난 외국인들도 많았고 내국인들도 많았다. 누구든 손에 물을 한 병 달랑 들고 가벼운 차림으로 이렇게 4-5시간 걸을 수 있다는 건  소박한 기쁨이고, 혹시 삶의 방향을 바꾸어보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많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은 코엘료가 글을 남겨 유명해졌고, 제주의 올레길을 처음 시작한 서명숙은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그곳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가 “너네 나라에 이런 길을 만들면 어떻겠니?” 라고 말해주어서 시작을 했다한다. 이제는 길이 모두 13개 코스가 만들어져 있고 각 코스마다 조금씩 다른 매력과 재능(?)으로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다시 혼자 남아서 성산포 앞바다에 있는 우도에서 머물다왔다. 섬속의 섬이라는 제주도의 동쪽 우도에서 다시 그 동쪽 끝이라는 비양도에서 머물다왔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라 풀이 낮게 자라고 바닷물을 머금어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고 있는 화산석들 너머로 두 번의 일몰과 두 번의 일출을 보내고 맞은 나는 이제 당분간 더 바랄 것이 없는 행복한 마음으로 책읽고 북리뷰하고 칼럼쓰는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숨쉬기 운동만하다가  뛰기 걷기 자전거타기 헤엄치기에 바보 짓까지 다해보고 나니 정말 나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아니하여 밝힐 수는 없다. 올레길을 다 걷고 나면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올레 갈래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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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7.06 12:18:09 *.17.70.4
헤헤, 글 너무 재미있고 또한 힘이 느껴지네요. 이런 글 '오레~~오레~~' 써 주세요^^. 오 예, 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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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6 15:15:14 *.246.196.63
얼마나 독서삼매경에 빠지셨으며 그런 귀한 경험을 하셨어요 ㅋㅋ
생생하게 눈앞에서 모든 광경들이 지나가는 것 같아요~  생동감 있는 현장감이 일품이에요
아.. 나두 제주도 가구싶다~ 선생님 나중에 저두 델꾸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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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7.07 01:54:48 *.233.20.240
ㅋㅋㅋ 샘의 모습이 선한걸요~
이런 표현 죄송한데요, 깜짝 놀래서 뛰어가셨을 샘의 모습이 너무 구엽게 상상되는 건 제 탓이 아닙니다~ ㅎㅎㅎ

제주 올레길 아직 가본 적 없는데,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어지는 길이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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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01:08:09 *.178.155.91
좌샘~^^

왕쪽? ㅍㅎㅎㅎ
암튼.. 무쟈게 구여우세여.
갑자기 은하철도 철이가 뛰어오르는 상상?ㅋㅋㅋ

강점을 공개하지 않으시고 비밀로 남겨두신건..
저희에게 함 맞춰보라는 무언의 ?
음..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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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세실리아
2009.07.08 13:52:08 *.126.80.203
선생님의 강점은 음~ 정신적인 가치에 대한 열망을 위해 자신에게 투신하는 의지가 아니련지, 선생님을 알게 된지도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만나 뵐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젊은이에게서도 잘 볼 수 없는 정신적인 가치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거........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면 제 정신적 소양이 커짐을 느껴요. 선생님 늘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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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9.07.09 08:56:21 *.251.224.83
하하, 발랄하고 귀여운 글 잘 읽었습니다.
비양도!
고현정의 복귀작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군요.
서명숙과 올레의 만남은 참 놀라워요.
우리에게도 천둥같은 그런 만남이 가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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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
2009.07.10 18:10:58 *.243.5.20
좌샘의 모습과 이야기가 겹쳐져 빙긋 웃음이 나게 합니다.

잘 지내시네요~~ 언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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