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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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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4일 10시 27분 등록
 


함박웃음.jpg
(이미지 출처 : http://smkwon23.tistory.com/tag/%ED%95%A8%EB%B0%95%EC%9B%83%EC%9D%8C )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외모에는 몇가지 치명적 문제점이 있다. 일단 머리숱은 차지하고서라도, 치아구조 또한 만만치 않다. 구지 작은 키와 짧은 팔, 무쇠 몽땅다리 등을 더 언급하지 않더라도 콤플렉스로 안고 살아 가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어렸을 적 나의 대인관계 특히, 이성과의 만남에 있어서는 그다지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없었다.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는 있었지만 그 날개를 옳지 않은 외모를 가리는데 사용하느라 저 높은 창공으로 날아갈 수 없었다.


어릴 적 사춘기 시절, 거울을 보다보니 나의 치아구조가 그렇게 못났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특히 왼쪽 윗몸쪽에 떡하니 자리잡은 덧니는 그나마 가까스로 평균을 유지하고 있던 외모를 그 이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덧니를 가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웬지 덧니를 보이게 되면 내 속살을 보여주는 듯 창피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수줍은 여자아들처럼 입을 가리고 웃거나 아니면 좀처럼 웃긴 일이 있더라도 웃지 않으려 애를 써야만 했다. 당연히 나의 표정은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웃는 표정 자체가 일그러질 수 밖에 없었다. 입을 활짝 벌리고 마음껏 큰 소리로 웃을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거나 돌린 채, 아니면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한 채 ‘끅끅끅...’ 하며 웃는 게 기껏 나의 웃음이었다. 열린 웃음이 아니라 폐쇄된 웃음이었다.


이러한 웃음은 사진 찍는 것조차 싫도록 만들었다. 사진과 웃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스마일~’, ‘치즈~’, ‘김치~’, ‘개구리 뒷다리~’ 등의 단어들이 사진 찍을 때 동원되는 이유는 조금 강제적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얼굴에 웃음을 띄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들과도 친하지 못했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웃음을 띄려 하려도 나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 속의 나는 항상 굳게 입을 다물고 있거나 입을 벌리더라도 덧니가 드러나지 않도록 아주 살짝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아주 우스꽝스런 표정들의 사진이 많았다. 점차 사진찍는 것이 싫어질 수 밖에 없었다. 사진 속의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 참 모습이 나오지 않는 사진을 계속 찍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커서도 이 습관은 계속 되었다. 사진 찍는 것은 물론 잘 웃지도 않았다. 다행인 건 사회에서는 그다지 웃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회생활 속에서는 대부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고, 쓸데 없이 실실거리거나 가벼운 웃음을 흘리는 것은 오히려 개인에게 마이너스였기 때문에 일부러 웃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생활에서 웃음은 점점 멀어져 갔으며, 내 얼굴은 항상 굳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콤플렉스였던 덧니는 비로소 세상의 빛과 차단된 채 어두운 곳에 혼자 안정되이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던 2007년 9월. 2박 3일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꿈벗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총 7명이 참여하였으며 그 자리에 모인 7명은 모든 사회적 허물을 집어던진 채 오로지 자신들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만 몰입하였다. 그 자리는 어린 아이처럼 순수해 져야만 하는 자리였다. 또한 감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솔직해 질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잊어버리고 지냈던 웃음이 나의 얼굴 위로 번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나의 얼굴 근육들은 웃음에 익숙질 수 없었다. 마치 갑작스런 심한 운동에 근육들이 놀란 것처럼 얼굴 근육 조각 하나하나들이 충격으로 우왕좌왕 하는 듯 싶었다. 나의 덧니는 더 당황스러워했다. 마치 밤에만 활동하는 뱀파이어가 새벽의 여명을 본 것처럼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세상의 환하디 환한 빛에 공포심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었다. 결국 두 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그리고 환한 세상 속으로 뛰어 들었다.



억지 웃음이라도 지으려 하면 얼굴 근육들은 그 웃음에 맞는 운동을 해야만 한다. 그 활동은 근육간의 신경을 타고 뇌에까지 전달된다. 재밌는 것이 뇌에서는 억지 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에서는 웃음에 대한 시그널만 포착할 뿐 그것이 강제든 자연적이든 모두 같은 웃음으로만 받아들인 다는 것이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의 폴 에크먼 박사는 강제적 웃음이 자연스러운 웃음처럼 효과가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해 낸 사람으로, 그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특정한 감정표현을 흉내내게 되면 몸도 거기에 따른 생리적 유형을 따라가게 되며, 그 결과 일부러라도 웃는것이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또한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데, 억지로라도 자꾸 웃는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새 얼굴에 찡그린 표정이 사라지게 되어 대인관계 뿐 아니라 자신의 얼굴에 대한 자신감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열심히 웃다보면 뇌에서는 그 반응으로 엔돌핀(endorphin)이라는 호르몬을 생성시킨다. 엔돌핀은 우리 몸속에서 만들어 내는 마약(morphin)과 같은 것으로 스트레스나 긴장을 없애주는 진통효과뿐 아니라 사람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들어 준다. 엔돌핀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레 즐거워진다. 즐거워지면 우리는 더욱 웃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폴 에크먼 박사가 억지 웃음이라도 많이 웃으면 좋다고 하는 이유다.


많이 웃는 사람들은 얼굴에 특유의 주름이 생긴다. 많이 웃다보니 특히 웃음 근육이 위치한 부분에만 특별한 주름이 생성되는 것이다. 대개 얼굴의 주름은 일반인 모두가 싫어하는 기피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더 나이들어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음이 만든 주름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주름 때문에 상대방의 얼굴을 더 편하고 친근하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탈인 하회탈이 왜 친근해 보이겠는가. 왜 우리 선조들은 탈에다까지 쭈글쭈글한 주름을 새겨 넣었겠는가. 웃음에 의해 만들어진 주름은 그 사람이 얼마나 즐겁게 웃으며 살아왔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혹은 얼마나 즐겁게 살려 노력해 왔는 지를 나타내주는 징표와도 같은 것이다.



본격적으로 웃게 되면서 외모 자체는 함량미달일지 몰라도 최대한 자연스러우며, 남들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만족스러울만한 표정, 소위 함박 웃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서서 다양한 실험을 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함박 웃음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아주 간단한 요령 하나를 터득하게 되었다. 이것을 소개 하고자 한다.




가릴 바에는 아예 터뜨려 버려라



웃음은 돌발적이다. 웃음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돌발적인 신체 반응이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된 웃음은 드물다. 이미 한번 본 TV 개그 프로그램을 재시청한다고 생각해 보라. 처음 볼 때처럼 그렇게 똑같이 웃을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웃음에 대한 반응은 갑작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우리들의 표정 또한 웃음의 진척도에 맞추어 인위적으로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의 경우 덧니 때문에 마음껏 입을 벌리고 웃을 수 없었다. 항상 조심해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강박관념처럼 항상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돌발적 상황에서의 웃음은 나의 조심성을 무위로 만들기 일쑤였다.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웃음은 항상 일그러져 있었으며,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이 싫어져 더욱 입을 꽉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꿈벗 프로그램을 다녀온 후 ‘창조적 부적응자들’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일단 무엇보다 편했다. 그리고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고, 상대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면 되었다. 모임 안에서는 자연스러움이 흘러 넘쳤다. 가끔 나의 복잡소심한 성격 때문에 불편한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음껏 웃고 즐길 수 있었다. 행복했다. 그 안에서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웃고 있었다.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줄 조차 몰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온통 입을 활짝 벌린 채 - 물론 덧니까지 시원스럽게 드러내며 - 웃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당황스러워졌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입을 다물 순 없었다. 내면에서 흘러 넘쳐 나오는 기쁨과 즐거움을 막기에는 나의 얼굴 근육들이 너무나 풀어져 있었다.



거울 앞에 섰다. 활짝 웃음 짓고 있는 나를 자세히 살펴 보고 싶었다. 거울 안의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려니 상당히 쑥스러워졌다. 하지만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조금씩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어색한 웃음이 살짝 벌어진 입을 통해 삐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오래동안 지니고 다녔던 본래의 웃음이었다. 몸에 맞는 옷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것처럼 답답하고 부자연스러운 웃음이 바로 나의 웃음이었다. 눈에 살짝 힘을 주어 보았다. 은근 웃기다. 입이 조금씩 더 벌어지기 시작한다. 작은 눈을 크게 떠 보았다. 순간 내가 아닌 개구리 왕눈이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이런 코믹한 표정도 있구나. 코를 씰룩거려 보았다. 거울 안에 웬 무명 개그맨이 살고 있나 보다. 순간 ‘풋~!’하고 터진다. 으하하하~!! 입을 맘껏 벌리고 웃는다. 나도 웃고 거울 속의 개그맨도 웃는다. 이 순간은 하나다.


금새 얼굴이 빨개진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다. 눈가의 주름이 아주 선명하다. 한 개, 두 개... 세는 걸 포기한다. 실주름까지 포함하면 한 다스, 두 다스로 세어야 할 듯 싶다. 콧구멍이 벌렁벌렁 거린다. 입은 온갖 공기를 다 들여마시려는 듯 활짝 개방되어 있고, 덧니는 물론 윗니, 아랫니 게다가 잇몸까지 모두 밝은 곳에 누드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그동안 나도 잘 보지 못했던 적나라한 광경이다. 순간 아무런 사심없이 활짝 좋아라 하고 있는 오랑우탕이 떠오르는 건 어떠한 이유 때문일까.


잠시 객관적으로 거울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썩 강추할만한 표정은 아니지만 일그러진 표정의 웃음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자연스럽고 더 솔직해 보였다. 게다가 정말 웃기다. 이 표정을 보며 나 또한 다시 웃을 수 있다.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는데, 이런 표정이면 상대방으로부터 웃음 유발과 함께 동정표 정도는 가뿐이 얻을 수 있을 듯 싶다.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나 자신에게 드디어 합격 판정을 내렸다. 무려 40년이란 시간이 걸려 얻어낸 귀중하고 소중한 합격이었다.



무엇을 감춘다는 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 중에서 가장 하위단계의 행동이다. 감춤은 또한 일시적이다. 완벽한 회피란 없다. 밝은 태양 아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 특히 내면 속의 나, 자아가 바라 보는 나의 모습 안에서 감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노력하여 감춘다 해도 결국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도망이 어려울 때는 차라리 정면대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가릴 바에는 아예 터뜨려 버려라. 의외로 괜찮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시도가 중요하다. 머리 속 강박관념은 잠시 잊어 버리고 거울 앞에 서 보라. 그리고 일단 제일 잘 짓는 ‘썩소’를 거울 속의 나에게 날려 보아라. 반응이 올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웃어 주어라. 잠시 후 나와 거울 속의 나, 모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전에는 없었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리지 마라. 아예 터뜨려 버려라.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크게 외쳐라. 무언가 달라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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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4 10:59:39 *.12.130.119

저 지금 웃어요~~~ㅎㅎㅎ

사실은 오늘 아침에 이러저러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면서
저 혼자 "으띠~으띠~"를 날리며 인상쓰고 왔다갔다 했어요.
그럴 때 저는 습관적으로 변경영 사이트를 클릭해요.
그냥 여기 들어오면 괜시리 맘이 편해져서요.

그런데 역시나 오늘 아침의 저를 본 듯한 선배 글이 올라왔네요...^^

저야말로 인쟈는 "환한"저를 더 이상은 감출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몇분이라도 "으띠~"해야 하는 상황은 그다지 좋지가 않네요. 누구나 다 그러하겠지만 ㅎㅎ

선배님. 좋은 글 감사요!! 좋은 하루되세용~~~

참! 선배님 덧니 매력 뽀인뜨야요. 아주 구엽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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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6.25 07:24:49 *.122.143.214
소심한 사람들은 평소 표정도 그렇지만 웃는 상황이 와도 역시나 많이 어색하죠.
웃는 것도 용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나를 과감히 드러낼 수 있을 때, 용기를 가지고 덤벼들 수 있을 때,
그때 정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 수희향님을 보았을 때,
서로 반갑긴 했으나 우리 표정은 둘다 어색했죠? ^^;
서로 환하게 웃음 지을 수 없었죠?
이제는 조금씩 가능해 지는 것 같아요.
내 모습을 보여줄 용기가 생겼으니까요.
저만의 생각일 지 모르겠지만,
수희향님도 그렇지 않을까... ㅎㅎ 생각해 봅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도
직접적이진 않지만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이거 아무나 못하거든요.
열정과 용기, 두 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거든요.
게다가 소심(세심과 배려)하기까지 해야 하니까요. ㅎㅎ

아마 올해 수희향님은 본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성장하시게 될 겁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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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9.06.26 02:19:40 *.248.75.8
그대 이름에 그토록 유구한 스토리가 있었구만,
목하 소심을 즐겁게 탈출하고 있는 그대의 용기와 성실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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