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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10시 46분 등록
 

칼럼 1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텅빈 공간에서 텅빈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오쇼 라즈니쉬는 사람들이 그에게 중독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약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그를 찾았고 좀 더 그의 가르침을 받기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는 15년 동안 인도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고요하고 주의 깊게 앉아서 모든 단어 하나하나를 들이 마시며 집중적이고 명상적으로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훨씬 더 높은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그의 앞에 앉아있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ABC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때는 비행기는 결코 날아 오를 수 없다. 그때 비행기는 버스의 기능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ABC, ABC 를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XYZ를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 여행을 그만 두어야 했다. 


스승이 되는 매우 드문 사람들은 여러 생을 통해서 단어와 언어, 어감, 언어의 아름다움과 운율에 대한 어떤 명료성을, 어떤 통찰력을 얻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평범한 언어 속에서 어떤 비범한 음악을 발견하는 , 평범한 산문에서 위대한 시의 질을 창조하는 문제에 더 가깝다. 그들은 그대가 말을  넘어가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단어를 가지고 노는 법을 안다.


오쇼 라즈니쉬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 말을 사용했는데 , 그의 말이 일관성이 있거나 어떤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침묵의 간격들을 창조하기 위해서 말을 이용했다. 침묵은 예측하거나 기대할 때에는 오지 않는다. 그때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명상의 순간을 맛보게 하는 그 침묵은 한번 경험을 하게 되면 이제 말이 없어도 스스로 그 장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소음이 넘쳐나고 모든 것이 미쳐 돌아가는 시장바닥에서도 침묵의 맛을 볼 수 있단다.


혼자서 하안거 기간에 맞추어 수행을 하고 있는 나는 아직 스승을 구하지 못해서 온갖 책에서 조금씩 따온 이론으로 독학 수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수행은 몹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책에는 써 있지만 나는 완전 초보용 교재를 따라가고 있으므로 태평한 마음으로 가고 있다. 108배를 하는 것만은 확실하게 지키고, 고요하게 침묵을 엿보는 명상은 자주 하지 못한다. 보따리를 싸서 산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 아직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해 전에 요가반을 따라 해인사로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의 요가 사부는 이번 생애에서 한 소식하기를 원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가운데에서도 틈만 나면 수행자세로 앉아있었다. 공부를 매우 잘하고 열심히 하던 그 사부는 만화책을 즐겨보고, 또 요가를 열심히 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정해진 요가수업을 빠지는 일이 없었으며 명절에도 예외가 없었다.  앞서서 길을 가며 그토록 성실하니 우리는 그 수련회 기간 내내 스님들보다 더 열심히(?) 수행을 했었다.


하루는 잠시 틈을 내어서 등산을 했는데, 산꼭대기까지 잘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나는 마애불이 보고 싶어서 혼자서 다른 길로 내려왔다. 씩씩하게 가던 길이 어느새 무성한 풀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려워서 여기 저기 가보아도 길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머리끝이 쭈뼛 서더니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더니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는 여름 뱀이 머리위로 솟아오르더니, 한 발자욱도 옮겨놓기가 힘들게 겁이났다.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 살려!”라고 외쳐 보고도 싶었지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용감한 모험심과 확신에 찬 마애불을 향한 열정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순간 그냥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반쯤감고 앞으로 내달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나무 관세음 보살  나무 관세음 보살 ”이 이어졌다. 풀은 키가 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발 밑에는 너무 내가 빨리 달려서 뱀이 쫓아오지 못햇다. 거미줄을 걷어가며 땀을 비오듯 흘리며 가슴은 쿵쾅거리고...생사의 갈림 길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렸더니 어느새 전날 새벽 산책길에 익혀두었던 길이 나타났다. 재빨리 법당으로 가서 일행과 재회를 하고 부처님께 감사를 드렸다.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고.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수행할 마음을 다시 내보는 것이 그때, 그렇게 달렸던 일이 한편 참 황홀한 체험이었다는 생각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영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고 수강하기도 하며 그동안의  삶을 정화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나의 의지대로 깨달음들이나 통찰들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와 같이 가고 있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화들이 일어났다. 언젠가는 이 체험들도 잘 풀어서 엮어봐야겠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오쇼 라즈니쉬가 매우 솔직하게 매 순간 실험을 하며 그의 명상을 발전시켜 나갔고, 분명한 깨달음의 순간을 체험한 후에도 변함없이 명상을 하고 또 명상을 가르치며 그 결과를 함께 나누어 놓은 글들이 나의 마음을 불러 깨워서 변화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깨어 있어라, 그 순간에. 그리고 억압과 허례를 벗고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보라고 한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귓가를 스치는 노래가 아니고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그가 들려주고 있다. 매우 쉬운 말로, 강요함이 없이 나에게 온전히 맡기고 있다. 그리고 문을 조금 열어놓고 있다. 아니, 문을 활짝 열었지만 내눈에 조금만 열려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려고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뒤돌아보라고 부르지 마라. 따라오지도 마라.

혼자서 간다. 무소의 뿔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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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09.06.22 15:20:01 *.246.146.19
이번 연구원님들은 도인이 많으신 것 같다는 혼자 생각.

좌샘, 범해, 해운... 세가지 이름이로되 모두 하나 같은 기운을 풍기는 것도 좌샘 한테는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하안거 잘 보내십시오. 때 맞추어 우기가 시작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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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15:55:01 *.12.130.72
숲속에서 열심히 뛰었을 샘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왜이렇게 귀여우신건지요! ㅎㅎㅎ
그땐 노란 운동화 아니었겠죠? 후훗.

무소의뿔처럼 씩씩하게 가세요.
하지만 뒤에서 혹은 옆에서
저희가 응원하며 함께 가고 있음 또한 잊지 마시고요.
샘. 제가 꼭 한 번 안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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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23 00:49:35 *.126.231.194
삭막하고 거친 들판에서도 홀로 뿌리를 내리는 노란 민들레 꽃처럼
홀로설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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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06.23 10:03:23 *.12.21.21
수행기간에 오쇼의 책을 읽으셔서 더 깊은 명상을 하신듯 합니다.
선생님의 글이 마음을 차분합니다. 또한 '瀞也'의 뜻을 되세겨 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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