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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00시 28분 등록
왜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명령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일까?
어떻게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 걸까?
왜 평범함 사람들이 끔찍한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것일까?

1961년 Stanley Milgram 이 '복종'이라는 주제로 실험을 했던 이유이다.
그는 신문에 '기억력에 대한 실험을 한다고 광고를 내고 교사 역할을 할 일반인 40명을 모집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간 곳은 15V에서 450V까지 30개의 버튼이 있는 실험실이었다.
교사역할을 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칸막이 너머의 학생이 문제의 답을 알아맞추지 못할 경우 전기충격으로 벌을 주고, 문제를 틀릴 때마다 충격의 강도를 한 단계씩 올리라는 것이었다.

15V씩 벌의 강도를 높여갈 때마다 칸막이 건너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벽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사 역할을 한 사람이 더이상 진행을 못하겠다고 하자, 실험진은 엄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계속 진행하세요. 모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당시 실험진들은 0.1%의 사람만이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450V까지 충격을 가한 사람들은 전체의 65%였다.

마르틴 그레이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어떻게 인류가 이렇게 잔혹한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내면에는 그토록 다양한 탈들이 있는 것일까? 사회가 그리고 교육이 인간의 잔혹함을 숨겨왔던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이와 같이 묻고는 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나 그를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이렇게 질문을 바꾼다.
"나는 누구여야 합니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또는 그녀의 판단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직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의 모든 것에 집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되고 만다. 자아를 상실했다고 비판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이와 같이 초라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수많은 모습이 있다. 어쩌면 사회화라는 것이 수많은 개인을 사회에서 원하는 상으로 만들고 그 안에 내재된 다채롭고 다양한 특징을 모두 잠재워 놓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함께 사는 이들의 판단에 나의 모습을 맞춰나가기도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특징을 잡아내 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지 파악해 특정 집단으로 분류하려고 한다. 가령 '저 사람은 퍼펙트한 엘리트인데', '전형적인 A형, 소심남이군'.. 등과 같이 말이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붙여준 다양한 형용사에 익숙해져 살아왔다.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은 그 형용사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달리 불려진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내게 여성스럽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내게 남자답다고 한다.  어떤 이는 내게 도도한 것이 매력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내게 털털하고 터프한 것이 매력이라고 한다. 나는 상황에 따라 소심녀가 되기도 하고 대범녀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상'이 아닐 경우, 나는 그들이 내게 불러주는 형용사에 반발했다.
"저기요. 저는 그런 사람 아닌데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특성 역시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또 다른 나였던 것 같다. 어쩌면 나 역시 내가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 맞춰 나를 길들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이 보기에 그럴 듯 해보이고, 왠지 더 매력있을 것 같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면 나다운 게 무엇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결론을 내린다
'나다운 것을 규정짓지 말자. 그때의 상황에 맞춰 어떤 행동과 말이 나왔다면 그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내가 믿는 삶의 가치들,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 이상과 가치관이 버물려 그때의 나의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다. 나를 어떤 형용사나 어떤 단어로 한정짓지 말자.'

그러나 때때로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서, 사회에서 홀로 소리치는 외톨이가 되기 싫어서 내 안에 목소리를 거세시키고 타인의 목소리로 얘기하는 경우가 생길 때가 있다. 관계를 절단하기 싫어서, 그로 인한 벌이 무서워서 말이다.
어떤 이는 그 목소리가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목소리'인지, '타인의 목소리'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질문한 사람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스스로 안다.

"나답게 사는 법은 무엇일까?"
"인간답게 사는 법은 무엇일까?"

마르틴 그레이가 '살아야 한다'며 끊임없이 외칠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것은 언어에 속박되는 것이 아니며 타인이 정해놓은 경계선에서 분류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구속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발현시키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스스로의 목소리를 힘있게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답게 사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 개인이 모여 공동체가 된다면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법'이 아닐까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에 대한 실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복종은 상하관계에서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동조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리고 때때로 피복종자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위배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합법적인 권위에 의해 강하게 요구되고, 악이 평범성으로 인지될 때에 사람들은 그들 안의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450V의 버튼을 선택한 65%의 사람들... 처음에는 여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중간에 더 이상의 버튼을 누르기를 거부하고 실험을 중단한 35%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도 인류가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고,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은 이러한 35%의 사람 때문이 아닐까

나는 어느 쪽일까? 그리고 당신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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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29 15:08:50 *.216.130.188
글이 점점 세련되져 간다고 느껴지는 것이
많이 준비되서 인가? 아님 원래 본 모습을 찾아가서 인가?
굉장히 궁금하네~ ^^ 아무튼 글 좋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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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08:49:30 *.246.196.63
일본에 여행가서 같이 갔던 칭구랑 수다를 떨었죠
"어떻게 이렇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남에게 폐끼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끔찍한 일을 벌였을까?"
오랜만에 숙소에서 맥주 한잔, 콜라 한잔 건배하면서 토론다운 토론을 했어요
그때 들었던 생각과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만난 마르틴 그레이의 삶을 보고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어요
응원 감사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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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6.29 16:06:22 *.94.31.27
사람은 사실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를 기대한다.
                                                                -백산^^-

쎄이 ^^
사람은 자신이고프면서도 누군가의 자신이었으면 하지.
원래 고향이 ... 같아서일까.. 본질이라는 거 말야...

심리실험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으면 해,,
유의수준이 .05 아니라 .01 이어도  대상이 100만이면 만명이거든...
그러니 35% ... 65% 가 중요한 거이 아니고...  그 상황과 사고력의 가변성이 아닐까 싶어,,,
나의 주장은?    의사결정능력은 경험과 빈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거지... ^^

인간답게 살며  나답게 사는 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거... 
내가 누구이면서 그의 누구이기도 한거... ^^

이거,,,  이거이
가능할까?

아니믄
내가 이 나이꺼정...  아직도 철 없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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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08:45:35 *.246.196.63
요점을 콕 찍어준 백삼 쌤의 내공 역쉬 ~~ 최고예요 ^^
맞어요~ 65%이든 35%이든 그 숫자는 중요한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이야기 하신,
"인간답게 살며  나답게 사는 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거... 
내가 누구이면서 그의 누구이기도 한거"
철없는 꿈이라뇨~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꿈일걸요^^
멋진 댓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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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6.30 16:10:36 *.12.130.121
나는 누구이며 나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실 그걸 찾아헤매다 결국 변경영에 안착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부터 치열하게 "나"를 물고 늘어지는 쎄이는
진정한 나를 찾으며 멋진 길을 가리라고 믿어.
쎄이는 꼭 그럴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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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5:14:49 *.246.196.63
그러게요~ 끝까지 물고 늘어질라구요
근데 참 재밌어요. 그 과정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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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00:47:03 *.40.227.17
숙인~^^

숙인은 누구이며.. 숙인답게 사는 거이는 어떤 것일까?

정답 : 숙인은.. 너무나도 인간다운 세희!
           숙인답게 사는 거이는.. 세희답게 사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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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5:16:24 *.246.196.63
ㅋㅋㅋㅋㅋ그 답변 잊지 않을께요^^
경쾌한 답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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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07.01 12:01:45 *.248.91.49
복종을 꼬랑지내리는것과는 구별해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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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5:27:34 *.246.196.63
맞아요. 내가 원해서 복종하는 경우가 있고,
원치 않지만 외부압력이나 어떤 힘에 굴복해 복종하는 경우도 있지요
클로이를 사랑한 주인공은 스스로 원해서 복종을 했지만
많은 경우 조직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타의에 의해 복종을 하는 경우도 꽤 있지요
이런 복종의 경우 경계해야 겠지요
복종이 자기 합리화를 낳고, 악이 일반화가 되는 꼬리가 이어질 수도 있거든요
끊임없이 꼬랑지를 살펴봐야겠어요. 빳빳하게 서있어야 할 때 죽어있지는 않은지...그 반대의 상황은 없는지
체크!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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