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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07시 18분 등록
살아남은 앤티크, 살아야 할 앤티크의 가치


몇 해전, 아는 지인의 소개로, 의뢰를 받아 구반포의 오래된 아파트에 간 적이 있습니다. 현관 입구는 물론이고 거실, 안방 할 것 없이 집안 곳곳에 가득 채워진 동・서양의 고가구들이 앤티크에 대한 집주인의 남다른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안주인은 이사갈 때마다 새집에 새살림을 들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현관 입구에 놓여 있는 콘솔은 시어머님께서 손수 곱게 쓰시다가 물려주신 귀한 유품이기 때문에, 안방에 있는 이층장과 반닫이, 작은 경대는 시집올때 친정어머니께서 해주신 혼수품이기 때문에, 거실 베란다에 놓인 등받이가 둥글고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의자 한 쌍과 뷰로(책상)는 한창 앤티크 열풍이 불때 부부가 이태원과 강남의 앤티크 샵을 발품 팔고 돌아다닌 추억이 묻어 있어 이사를 하거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될 때마다 갖은 유혹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까이서 살펴본 가구들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이가 나가기도 했으며, 모서리 한쪽이 떨어진 곳에는 석고를 붙이고 거기에 아이들이 쓰는 포스터 물감을 칠해 감쪽같이 고쳐놓은 것도 있었으며, 경첩이 망가져 이쑤시개를 꽂아놓은 모습도 보였습니다. 안주인은 창피해 하면서 너무 자세히 보지 말라하며, 웃으며 말렸지만 그동안 여러 번 이사를 다닐 때마다 온갖 유혹을 뿌리치며 버리지 않고 마치 피붙이처럼 모시고 다녔던 앤티크・고가구의 모습과 흔적에서, 그 가족의 역사와, 그 세월을 지내온 것들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안주인의 웃는 얼굴이 겹쳐져 제게는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주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의 저자 마르틴 그레이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대물림한 가구와 혼수품들도 마르틴 그레이처럼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랜 시간을 버텨오며 시간의 흐름에 지지 않고 살아남아 한 가족의 역사가 되고, 이러한 것들이 대물림되는 아름다운 과정을 거치면서 이것이 또 다른 가치를 지니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어느 집에나 적어도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법한 앤티크・고가구에 대한 의미와 그 가치를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우리말로 골동품을 의미하는 '앤틱 Antique'의 어원은 오래된 것, 구식의 것들을 나타내는 용어인 라틴어 ‘안티쿠스 Antiquus'에서 기인한 것으로, 앤티크란 일반적으로 ’수집가치가 있는 오래된 물건‘으로 이해하면 쉬울 듯합니다. 앤티크는 그 설정 기준이 현재로부터 100년 이전, 즉 100년 이상된 고(古)물건을 의미하는데 최근에 와서는 백년이 되지 않았더라도 특별한 가치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물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쓰임새가 넓어졌습니다.


앤티크가 지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생활품’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앤티크가 생활품이라는 것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데 이 점이 바로 우리 골동품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의 골동품은 일부 관심있는 계층에 치우쳐 투자의 대상으로서 소중한 물건으로 취급받으며 이로 인해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럽이나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앤티크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투자나 즐겨 구경하는 완상용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 사용하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필수품으로, 인테리어용으로, 그리고 상업용으로, 실제 생활의 필요에 의해 생활용품으로서의 앤티크가 우선하며 앤티크를 매매하는 사람들도 일반인들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저도 몇 번 되지는 않지만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동남아의 벼룩시장을 구경하며 일반 시민들이 벼룩시장(flea market, 벼룩이 들끓을 정도의 고물을 파는 곳)이라는 말 그대로, 온갖 잡동사니를 내다놓고 사고파는 것이 일상생활화되어 있는 풍경을 경험했습니다. 내놓은 물건들은 아주 고가의 그림이나 가구에서부터 제법 그럴듯한 것들도 있었지만 제가 앤티크에 대한 안목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누가 살까 싶을 만큼 낡고 볼품 없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이빠진 그릇, 오래된 천과 단추, 레이스, 낡은 타피스트리, 녹슨 주전자와 은수저, 알이 깨진 시계 등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우리처럼 황학동이나 인사동 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는 일상생활 전반에 퍼져 있어 오래된 것이 주는 아름답고 소중한 느낌과 내게는 하찮은 물건이라도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시키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앤티크를 축으로 한 하나의 거대한 생활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러한 그들의 문화가 부러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부모님께서는 우리나라 골동품을 의뢰해 감정가를 알려주는 ‘TV쇼 진품명품’이라는 프로를 즐겨 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저 조그만 필통이 저렇게 높은 값이 나가냐며 전에 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주신 필통이 있었는데 어디에 두었느냐며 어머니께 찾아보라고 성화시고, 어머니께서는 외할머니 댁에 있던 오동나무 반닫이와 옛날 그릇, 혼수로 해주셨던 재봉틀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되다보면 급기야는 두분 모두 서로가 양반 가문의 자손인데 왜 가문에서 물려받은 이렇다 할, 그러니까 진품명품에 가지고 나가 감정을 의뢰할 만한 골동품이 없는지를 가지고 싸움아닌 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가 매주 반복되는 이 광경을 보다보다 못해, 고안해 낸 방법이 우선은 두분 모두 양반 가문의 자손임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었고, 둘째는 없는 것, 무지해서 내다버린 것,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있는 것이라도 잘 살펴 소중히 간직하면 된다며 안심시켜 드리는 일과, 마지막으로는 앞으로 제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좋은 가구를 수집해 집안의 역사를 이어가는데 일조를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되셨는지 그 이후로는 조용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가끔씩 알듯모를 듯한 웃음띤 얼굴로 제가 구입하겠다는 프랑스 장인의 콘솔은 언제 오냐며 물어보시는 형편입니다.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 장면이 비단 저희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 합니다. 여러분도 한때 할머니가 쓰시던 이층장과 문갑, 어머니의 혼수품인 색동이불과 은수저, 다듬잇돌 등등 서양의 앤티크나 빈티지 못지 않은 우리만의 고가구나 앤티크를 잘 찾아보면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해서 발견한 골동품이 의외의 행운을 안겨다 줄지도 모를 일이구요.


더 큰 것, 더 새로운 것에 밀려나고 밀려나, 유행에 따라 버려지고 버려진 수많은 미래의 앤티크들, 너무나 쉽게 버린 물건들과 함께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화와 정신도 한데 쏠려나간 것은 아닌지, 너무나 새것 밝힘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앤티크인 전통가구도 아파트처럼 현대적인 주거 공간에서 얼마든지 조화를 이룰 수있습니다. 모던한 디자인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개념인데요, 현대화된 생활에 맞춰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기능으로 쓰이고 있는 고가구들을 한번 재배치해 보고, 다시한번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꼭 우리 앤티크, 서양 앤티크, 동시대의 앤티크로만 한다고 해서 어울리는 것이 아닌 만큼 여러 시대의 다양한 앤티크를 혼합・구성하여 자기만의 연출을 시도하다보면 모던과 앤티크가 이루어내는 조화의 멋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버리기에는 망설여져 창고에 방치해 두었던 먼지 가득한 앤티크 소품 하나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은 물론입니다.


제게도 오랜 세월, 외할머니의 체온과 손때, 어머니의 손때, 저의 손때를 묻혀 오랜시간 저와 함께 해 온 물건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물건들을 사랑하고 그 용도와 멋을 제대로 활용하면서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해 대물림 할 생각입니다. 앤티크가 뭐 별건가요? 금액적 가치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우리 가족의 역사, 나의 역사가 세월과 함께 어우러져 낳은 결정체이고, 역사가 짧다면 앞으로 더 소중히 가꾸어 역사와 가치를 이어가면 될 것이고, 내가 아끼며 모은 것의 가치는 결국 나 자신만이 아는 것이니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생활에 스며들 수 있도록, 그 가치가 좀 더 커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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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29 14:33:43 *.216.130.188
엔티크는 친구와 비슷한것 같아요.
구입하는 순간 자신과 함께 늙어갈 수 있어서요.
깨끗하고 화려하게 다가와서
시간이 지날수록 때묻게 되지만 더욱 다정다감 해지고
이리저리 큰 흠이라도 생기면 온 정성 다해 걱정해주니
같이 나이들어 가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모처럼 엔티크같은 친구 얼굴 떠올라서 소주한잔 땡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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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01:04:04 *.40.227.17
그 친구.. 너와 닮았을 거 같은데.. ^^
정말.. 좋은 친구를 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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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6.29 15:15:41 *.94.31.27
혜향!
^ ^  아니? 
아버지가 대목수셨다... 
참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지....  흠..
네 말을 듣다보니,,, 아버지 생각이 났어..  보고싶다..

혜향아..
우리도 앤티크 하자.. ^^
묵으면 묵을 수록 중후해지는 가구처럼 말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중후해지자...

갑자기 보구 싶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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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7.01 18:19:58 *.94.31.26
혜향아... 
사람 엔티끄를 나무 앤티끄 하듯 하믄 우짜노... 
그라믄 있잖아 나는 하나도 안해두 된다.
이미 째고 그을리고 바래고... 다했거덩...

그라고 니는 엔티끄하믄 .... 아무도 못 알아본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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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01:07:51 *.40.227.17
백산 오라버니~

근데여.. 앤티크처럼.. 그러니까 진품처럼.. 하려면..
없던 기스도 만들어서.. 화~악 그어야 하구여.. 또.. 흠집도..마구마구 내야 하는데..
괘한으시겠어여?ㅎㅎㅎ

설마.. 백산 오라버니가 누구신데.. 맘이 바뀌신거 아니시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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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12:58:01 *.12.130.121
내도 산이 오빠 말에 공감!! 여그서 공감~하니까 재밌군~ㅋㅋㅋ

가구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일수록 일상 생활에 함께 스며드는
앤티크같은 관계가 소중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칼럼 굿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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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01:10:14 *.40.227.17
언니~

제가 계속.. 치대고.. 직선적으로 말해도.. 계속.. 이뻐해 줄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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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07.01 11:58:11 *.248.91.49
부드러운 직선인감 ?
우리 혜향은 .....

옛날에 집단할때 내 별칭이 "옛생각" 이었어.
지금 새로 정하라면 "그 옛날 옛생각 처럼" 이 되겠네.ㅋㅋ

앤틱속에 앤틱 만들기 좋아좋아... 가오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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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5:32:53 *.246.196.63
가끔씩 숲을 거닐다가 나무에 이끼가 가득 끼어 있는 걸 보고, 누구네 담벼락에 담쟁이가 얽혀있는 것을 보면
'저것은 자연의 앤틱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돈으로도 최신기술로도 진정한 앤틱은 못만들어요
절대적인 시간의 량이 손때를 만들고 이끼를 만들죠
앤틱적인 자연, 앤틱적인 가구, 앤틱적인 사람
모두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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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maker
2010.12.20 14:55:44 *.49.2.180
The greatest characteristic of this ice machine will be the actual ice it creates, half-ice maker machine price. Everyone understands that beverages, soft drinks particularly, have an enormous margin within the restaurant business. A single method to improve that margin much more is by cramming as significantly cube ice machine within the cup as it is possible to. Far more ice signifies much less beverage signifies much more funds. That is exactly where half-cube ice comes in to play. Because the cubes are half as huge, that implies they are able to be packed far more tightly within the glass and take up far more room, leaving small room for the actual drink. So, any restaurant or bar that serves upwards of 60 individuals and does not have any water restrictions (this unit is water-cooled, so it'll waste a great deal of water) can use this ice machines installation to assist boost their bottom line, 1 ice cube at a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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