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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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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09시 25분 등록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말 보다 애틋한 말은 없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가슴에 세게 파고드는 말도 없다.

보고 싶다고 표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애틋하다.

 

보고 싶음을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 자에게는 더 편히 말 할 수 있는 것이 '보고 싶다'이다.

영혼이 통하는 관계가 아니고서야 가능하랴.

보고 싶음은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보고 싶음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갈망이 되어 끝내는 보고 있게 한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싯구절을 빌리지 않더라도 보고 싶음은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리움이 가득한 사람의 눈은 깊다.

그것은 곧 사랑이기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사랑이 먼저 일까. 보고 싶음이 먼저 일까.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가 쌓여 만들어진 사랑은 변치 않는다.

사랑 없는 보고 싶음도 없다.

 

보고 또 보면 느껴야 한다.

눈빛을 마주치고 살결을 부비며 서로 끌어 안고 만져보아야 한다.

그래도 허전하고 아쉬운 것이 보고 싶음이다.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나 일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병원에 계시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조카들과 새 언니를 통해 전해 들은 엄마의 건강은 늘 그러하듯 그만 그만 하다 했다. 오빠는 병원에 있으니 괜찮아지실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하여 안심 시켰다. 오래된 지병에 효자 없다고 나 또한 예전처럼 금방 퇴원하시겠지, 오빠들이 있으니 잘 하시겠지 하며 달려와 보지 못했다. 그렇게도 보고 싶어하며 마음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만나 보게 되었을 때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난 늘 엄마를 그리워했다. 7남매 중 자라면서 내가 가장 엄마를 찾았고 엄마 엄마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학교를 갔다 오면 부엌으로 밭으로 마당으로 바쁘신 엄마 뒤를 따라 다니며 엄마, 있잖아요~~” 하며 귀찮아 할 만큼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했다. 잔병치레를 많이 할 때도 무의식 중에 엄마, 엄마만 불렀다. 중학교 시절부터 학교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해야 했기에 주말에만 만나는 엄마가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잠꼬대를 하면서 엄마를 찾곤 한다.

 

그런 내가 엄마한테 아이들 육아를 부탁 드리면서 같이 살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무척 좋았다. 그러나 그런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썩 잘해 드리지 못했다. 일단 바빴다. 엄마와 대화를 오래 조근 조근 할 것 같았던 내가 엄마와의 대화를 대충 대충하며 서둘러 끝내려는 나를 보았다. 맛있는 것, 좋은 곳 구경시켜드릴 것 같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런 고민에 대해 동생은 같이 살기 때문일 거라고, 결혼으로 나의 관심사가 남편과 아이들한테 있기 때문일 거라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말해 주었다.

그런 것 같다. 엄마는 곁에 없으면 보고 싶은 차원을 넘어 너무나 보고 싶으면서도 함께 있으면 왠지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것.

 

나는 엄마한테 빚진 게 너무 많다. 잘 할 수 있었던 그 기회,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다시 한번 우리 집에 모시고 싶다. 우리에게 당신이 도움이 되는 명분 없이는 머무르지 않으실 분이지만 난 꼭 모셔야 한다. 막상 오시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일단 지금은 시간이 넉넉하다.


그러나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아버이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고 했던가.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엄마의 건강상태도 다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걱정이다.

 

엄마에 대한 나의 마음은 남다르다. 출가한 딸 중에 우리 집에 오래 계셨다. 우리 둘째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같이 살며 키워주셨다. 우리 둘째는 엄마가 다 키웠다. 작년까지 우리 집에 계셨던 엄마가 건강 상태가 안 좋으시니 마음이 두 배나 더 착잡하다. 죄송스러움이고 괴로움이다. 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했던 것들. 우리 집에 계시면서 괜히 고생시킨 것은 아닌지.

 

엄마는 노인전문 병원에 계신다. 큰 도로 옆에 병원이 있고 길 건너에는 산이다. 조용한 곳이다.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는 6층짜리 건물이라고 말해 주었다.

엄마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부었다. 셋째 딸네의 출연에 반가우신 듯 손을 내미시지만 표정은 없다. 눈빛도 없다. 이런 증상은 없었던 분이시기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먼저 손수 키우신 작은애의 손을 잡으신다. 반갑다. 반갑다. 직접 보니 너무 좋다. 보고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보니 너무 좋다.

 

곁에 많이 많이 있을 요량으로 왔기에 계속 병실이 머물렀다. 찬찬히 병실을 둘러보았다. ‘보호자 없는 병동 운영이라고 적혀 있더니 병실마다 담당 간병인이 있다. 다섯 분을 돌본다. 식사를 챙겨주고 환자에 따라 먹여 주시도 하고 턱 바침을 해준다. 얼굴도 닦아주고 샤워도 시킨다. 노인용 간이 양변기를 비우고 소변의 횟수와 대변의 양을 기록하기도 한다. 말을 못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기 위해 묻고 또 질문한다. 그 분들도 곧 할머니가 될 연세이다. 사랑이 가득하신 분들이시다.

 

출입문에 붙여진 입원명단을 보니 엄마가 제일 어리다. 모두 여든이 훨씬 넘으신 분들로 우리 엄마보다 한참 언니다. 그리고 모두 장기환자이시다. 엄마한테 얼른 달려가 엄마는 제일 젊기 때문에 가장 빨리 좋아지실 것이며 이런 곳에 계실 때가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가 약해지는 육체 때문에 마음까지 유약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만은 펄펄 나는 청춘이었으면 좋겠다. 옆에 계신 할머니처럼 빨리 일어나 직접 손이라도 씻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아픈 노인은 더욱 그렇다. 관심 받고 싶어하고 많이 먹고 싶어하고 투정도 부린다. 무엇보다 아기처럼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노인들의 건강한 삶으로 길이다.

 

앞에 계시는 할머니는 84세이다. 저녁을 먹은 후 텔레비전을 보시던 할머니께서 더듬거리며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리셨다

, , 엄마가 보고 싶어.” 그 말에 간병인은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마이소. 딸이 보고 싶다 케야제.” 하며 얼른 대답했다. 간병인의 그 말의 뜻을 이해한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서 들으면서 마음이 짠 했다.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가 데리러 올 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의 딸도 보고 싶지.”라는 말에 간병인은 갑자기 이마를 딱 치더니 말했다.

어르신, 제가 지금 점을 딱 쳐 보니까 내일 딸이 온다니네예. 오늘 밤만 편히 자이소 . 그러면 낼 딸이 올기라예.” 그 말에 할머니는 웃기 시작하셨다. 눈물이 나도록 웃으셨다. 우리도 모두 같이 한참을 웃었다. 할머니는 무척 기뻐했다. 그것이 이 할머니의 보고 싶음, 그리움, 갈망이다. 더 마음이 짠하다. 내일 꼭 딸들이 왔으면 좋겠다. .

이런 장면이 희망을 나누는 것이리라.

 

마르틴 그레이도 어머니 같은 외할머니에게 이와 비슷한 거짓말로 희망을 주고자 했다. 마르틴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자신만의 요새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버는데 몰두했다. 그는 외할머니 곁을 떠니 열심히 생활했는데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외할머니께 자신이 주치의 의사인양 목소리를 변장하며 전화하곤 했다.

 

펠트 부인, 몸은 좀 어떠신지요? 저는 웨이저 교수입니다.” 외할머니가 자신의 증상을 이것 저것 말하면 제 생각에는 다 괜찮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펠트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정기적으로 전화드릴께요.”라며 희망을 주고자 했다. 외할머니는 그 말에 기분 좋아했고 웨이저 교수의 말을 되풀이하여 말했다. 그리고 그가 간과하지 않은 것이 할머니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나타났다.

 

이런 희망을 주는 거짓말은 아름답다. 희망적인 거짓말로 어른의 건강이 좋아진다면 나는 몇 백 가지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엄마한테 할 수 있는 것도, 해야만 하는 것이 이런 희망을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 지내실 때 기분 좋게 하셨던 한강 산책 가기, 나물 뜯고 매실 따오시던 얘기, 인동초 따기, 의료기 무료치료 받으러 다니기 등을 상기시켰다. 엄마가 하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끄집어 냈다. 엄마는 가만히 듣고 계셨다. 그리곤 웃었다. 꼭 오셔서 다시 그렇게 하시라고 강조 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고 지금 잘 드셔야 빨리 좋아지시는 것이라고 퇴원할 수 있다고 몇 번씩 말했다. 엄마에게 이러한 것이 희망적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이것으로 원기 회복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가 위독하신데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슬프다. 얼굴 닦아 드리고 다리 좀 주물러 드리고 식사 몇 숟가락 떠먹여 드리는 것.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뭔가를 해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병으로부터의 오는 고통에 대해 내가 손 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희망 섞인 거짓말을 하는 것 밖에.

 

내일모레면 나는 또 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전화 목소리로 엄마의 건강을 짐작 할 것이고 또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모드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지 않도록 나는 내일도 주저리 주저리 희망을 얘기할 것이다.

IP *.12.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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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9 09:44:33 *.204.150.141
아...춘희야...안그래도 소식 궁금했는데...

춘희야. 희망섞인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그게 진정 소중한 이들의 가치인 것 같아.
그런 존재조차 없는 삶이 사실은 가장 외롭고 두려운 삶이잖아...

나 역시 네게 힘내...라고 밖에는 해 줄 말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그래도 네 곁에 있을께...

춘희야 힘내... 어머니도 그런 네게서 큰 힘을 얻으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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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29 14:46:49 *.216.130.188
누나 걱정이 많겠어요. 나는 잘 몰랐었네
누나의 건강한 마음이 어머님에게 활기로 전해질꺼에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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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6.29 15:00:56 *.94.31.27

정야!
노인들은 있쟎아...  사람이 그리운거야.. 
특히, 뭔가 몸이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그들은  오늘을 사는 것이아니라 추억을 살거든,   
마르틴의 어머니도 그랬지 싶은데...

우리누나는 내 년에 일흔인데...
골프장 풀뽑으러 아르바이트 간다..
거기서는 우리 누나 별명이 '새댁'이야...
그 중에 가장 젊어서...

노인들에게 이야기거리가 생각나지 않으면,
물어봐,, ,  엄마는 옛날에 어떻게 하셨어요? 로...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다.

글고,
그냥, 자주 가라.  
'뭐하러 또왔냐...'  가 나오게스리..
직접 안되면 전화로,,,

그래,,,,   나도 가오기가 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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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09:14:40 *.246.196.63
보고 싶다.. 라는 말이 참 절절하고 가슴을 울리네요
다 잘될꺼에요. 잘될꺼야..
글을 보니 언니가 참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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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00:10:51 *.40.227.17
춘희 언니..

엄마는.. 마음으로.. 언니의 마음을.. 아실거예요..

언니.. 마음으로.. 꼬~옥 안아 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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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07.01 11:48:50 *.248.91.49
춘희는 엄마가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
목소리가  벌써 달라져요.

도서관가자고 전화했더니 벌써 목소리가 엄마그리운 목소리로 변해있더군요.
그래도 숙제 다해놓고 애들 데리고 가겠다고.....

잘다녀왔는지 전화 또 해봐야지.
이번에는 한-두주일 견딜수 있는 목소리가 되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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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9.07.02 02:11:19 *.41.103.163
춘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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