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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09시 31분 등록
 

칼럼 12  인간에 대한 예의


파도치는 바다, 바람부는 언덕, 부드러운 흙길이 그리워서 숙제를 빨리 끝내고 밖으로 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월요일부터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마르틴 그레이의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어디에서도 눈을 멈추지 못하고 한 걸음에 다 읽어 내렸다. 책속에는 그의 80년 생애가 이야기되고 있었지만 한 오백년을 굽이굽이 흘러온 것처럼 가슴 아픈 삶이 녹아 있었다. 14살에 시작된 조국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침공, 유대인 박해와 게토 생활, 트레블린카 수용소에서의 삶, 파르티잔, 붉은 군대,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그리고 겨우 찾은 그의 행복을 산불이 와서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데리고 가버린 일들은 한 사람이 겪기에는 너무 엄청난 재앙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네 아이를 잃고 자살을 생각했다. 이웃들이 곁을 주지 않고 지켜냈다. 가족 한사람의 상실도 우리에게는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그 아픔이 오래오래 간다. 마르틴은 어머니와 두 동생을 트레블린카 수용소에 도착한 첫 날 왼쪽과 오른쪽으로 분류되는 순간에 결별한다. 아버지는 끝까지 살아남아 투쟁하던 중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때 그의 눈앞에서 총에 맞아 죽어갔다. 그는 트레블린카에서 유대인 시체처리반이 되어 수많은 동포의 죽음을 경험한다. 아직 자기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14세에 너무나 생생하게 참혹한 일을 겪는다. 그에게는 오직 아버지의 “우리 대부분은 죽을 거야. 너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라, 마르틴. 우리 모두를 위해 살아남아.”라는 마지막 당부만 남았고 그 말을 기억하며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 언제나 계획하고 실천하며 쉼 없이 충실한 삶을 살아서 고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바쁜 시간들이 지나가면 두통에 시달렸고 가족이 그리워서 죽고 싶을 만큼 외로웠고, 잊혀지지 않는 주검의 모습들로 인해 세상을 사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운명과도 같은 외로움을 뚫고 나타나 그에게 생명의 느낌과 새 생명의 기쁨을 모두 가져다주며 아름다운 인생을 가꿔주던 사랑하는 아내 디나를 산불로 다시 잃는다. 마르틴을 대신해서 인간의 운명을 주재하는 신이 눈앞에 보인다면 나라도 종 주먹을 쥐고 그의 운명에 항의하고 싶어졌다. 시와 같고 노래와 같고 춤과 같아서 그에게 사는 기쁨을 누리게 해준 천사 같은 여인 디나는 4명의 아이를 낳아, 마르틴에게 직접 출산에 참여하고 아이를 받아내게 하여, 응어리진 마르틴의 생명에 대한 허무감을 큰 기쁨으로 위로해주지만 단 11년 동안만 그런 행복을 누렸다.


마르틴은 그의 생명을 대신하여 이 책을 세상으로 내어 놓았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고, 디나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동족의 영혼을 위로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 그의 기억을 옮겨 놓았고, 무심하게 지나갈 역사 속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야수가 되고 어떻게 모독을 당해왔는지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라도 토해내지 않으면 정말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그림자 인간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인간의 악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가며 그 폭력을 휘둘러대고, 거기에 대항하는 인간의 힘은 미약하다 못해 나약하기까지 한 우리의 참 모습을 마르틴이 들고 서있는 거울에 비춰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인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가, 동시에 인간인 것이 부끄러운 그런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그의 운명과 삶에서 용기를 다시 얻었다는 편지를 받고는 다시 힘을 얻어 그의 에너지를 세상으로 몇 천배나 더해서 되돌려 놓고 있는 , 이사람 마르틴 그레이에게 경의를 표한다. 세상에서 26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3000만부 이상 팔린 기록을 남겼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평생 단 한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집어 들어야 한다.”고 권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표하며 상황에 어울리는 슬픈 표정을 마음 밖에서 지어 보이지 말자. 마르틴은 그를 취재하러 오는 기자들이 보이는 슬픈 표정들과 함께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며 사방을 훑는 시선을 보며 상처를 입는다. 수첩과 녹음기를 꺼내며 초조한 미소를 짓지만 마르틴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왜 당신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 당신은 살았는데 왜 그들은 죽었는가? 살아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런 의문들이 맴돌고 있는 것을 읽는다.


그는 상처 입은 영혼이기에 예민하다. 때로는 위로의 말보다 침묵이 훨씬 인간적일 때가 있다. 아니 많다. 그러나 침묵과 말을 논하기 전에 진정성을 찾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때때로 마르틴은 그를 찾아온 기자의 멱살을 잡고 문밖으로 내던져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었단다.  그는 스스로 같은 말을 1970년 10월 3일부터 끊임없이 독백해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즉각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밀려와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금니와 입술을 깨물며 비명이 새어 나오는 걸 간신히 참는다. 그러나 그 비명사이로 흘러나온 “나는 살아 있다”라는 절규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가족과 부모님과 동료 유대인들이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힘들게 내어놓는 자기의 이야기는 용기 있는 사람의 마음이므로 듣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주기 위해서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단계들이 있다. 가끔 친한 친구들에게는 무덤까지 함께 갈 비밀을 듣는다. 어떤 때는 대수롭지 않게 이 비밀을 밝혀버리는 친구들이 있다. 아마 소심과 대심의 차이라고 웃고 넘어갈 사람들도 있겠지만은 그 말이 입 밖에 나가고 그렇게 나간 말이 다시 주인을 찾아 되돌아올 때는 용서받지 못할 사건이 되고 만다. 현명한 친구들은 “그런 비밀은 내게 말 하지마!” 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봐야 할 순간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라고 말하지만 억울한 죽음은 언젠가 그의 하소연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한을 풀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자기에게 닿아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동시에 그의 영혼과 화해하는 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어떤 종교예식에는 따로 마지막 진언을 할 기회를 준다. “이 시간 맺힌 응어리를 풀고 못다한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런 과정은 살아남은 자에게  평화를 선물하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다.  개인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간과 사건들로 남기 때문이다.


세상의 역사는 기록물로 남아있는데 우리와 얼마나 가깝게 닿아있는지는 각 개인이 아는 만큼, 보는 만큼, 받아들이는 만큼 다 다르다. 역사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오게 해서 오늘 우리와 소통할 수 있도록 평전을 쓰고 전기를 쓴다. 소설가들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위인들을 불러와 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기도 한다. 우리는 그래서 빛나는 인간성을 알게 되고  그리워하고 본받으려 하게 된다.


위인전이 부담스러운 것은 보통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위대함 때문이다. 보통사람을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지 않는 청동상으로 만들어 놓는 작가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좀 부족한 것 같다. 보통사람이 모진 운명을 만나 자기가 가진 힘을 다하여 그 운명에 맞섰을 때, 그리고 살아남았을 때 우리는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감동과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그리고 우러러 본다. 옆에 나란히 앉아 친구가 되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에게도 똑같은 힘과 용기기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십시오.” 라고 말해준다. 나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은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반복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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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29 14:21:04 *.216.130.188
좌선생님의 편안하고 잔잔한 목소리에 기운 얻고 갑니다.
말 그대로 예의있는 목소리로 친구처럼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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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09:01:11 *.246.196.63
글이 참 좋아요 선생님~

때로는 위로의 말보다 침묵이 훨씬 인간적일 때가 있다.
힘들게 내어놓는 자기의 이야기는 용기 있는 사람의 마음이므로 듣는 사람에게는 선물이 된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가슴에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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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6.30 16:12:56 *.12.130.121
저도요. 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깊게 울려오는 목소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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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00:05:44 *.40.227.17
좌샘~^^

'인간에 대한 예의는 산 자에게나 죽은 자에게나 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깊이 새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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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09.07.01 11:42:01 *.248.91.49
사랑하는 가오기 여러분!
자기 글을 쓰기에도 바쁠텐데...늘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줘서 고마워요.
난, 요즈음 손님을 맞이하고, 담소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한편 엄청난 활력을 받고...또 옛날로 되돌아간듯 즐겁게 지내요.
반면에...
묵언 수행이 물건너 사라지려고 하네요.

구래서 2-3일 진짜로 물을 건너가서 혼자 수행하면서 묵언을 되찾아오려고 해요. ㅋㅋ

구러니, 동상들 벙개할  때
몸은 못가지만 마음은 함께 갈테니
칠레산 적포도주 한방울 남겨놓길 바라면서....
자-알 댕겨올게요.

혹시 네루다 처럼  칠레산 적포도주 마시는 동안 詩가 솟아나올까봐....ㅋㅋ

휘몰아치는 바람 맞으며 올레길 걷다올게용.
구동안 <강점혁명 >열공하고 , 댓글놀이 욜심히 하고 .... 잘 지내고 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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