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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9일 11시 40분 등록
 

영원한 희망과 사랑의 이중주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래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신문에서 답답하고 울화통 터지게 하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 이러한 외침들에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들의 울부짖음과는 별개로 역사는 가진 자들과 살육자들의 욕망에 의해 이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 이후 인간 역사에 있었던 수많은 살인이 있었다. 인류역사속에 흐르는 살인자들의 광기로 인해 인간 역사는 희망이 없고 무자비한 비극처럼 보여 진다. 하지만 흙탕물 속에 연꽃이 피어나듯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생명의 숭고함과 강인함을 볼 수 있다. 특히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시대를 통틀어 희망의 발자취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인간은 언제나 카인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책 한 권, 조각 한 점, 그림 한 점, 음악 한 곡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자유를 지켜왔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의 그림을 통해 ‘죽음으로 둘러싸인 희망과 사랑’을 표현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홀로코스트 부분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사랑과 생명의 힘을 믿는 대목에서는 영화 ‘피아니스트’가 되고, 불행 가운데서도 희망의 빛이 비치는 장면에서는 ‘인생은 아름다워’로 변화되어 나타났다.


렘브란트, 피카소, 모차르트, 브람스, 쇼팽, 베토벤, 말러. 디킨스의 예술 작품들에서 희망과 사랑의 이중주를 들을 수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에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에서 희망과 사랑의 하모니를 들을 수 있다. 비극의 현장에서 의미 없이 사라져간 생명들이 이들 작품들 속에서 다시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있음을 보게 된다. 마르틴 그레이도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기는 누가 죽었는가? 그들은 모두 여기 나와 함께 있다. 쇼팽, 루빈스타인, 디나, 모두가, 지금 내 감정이 콘서트가 열렸던 그 날 저녁처럼 생생하고, 내가 경험한 고통 덕분에 더 풍부해졌다면 누가 희망의 원칙을 의심할 수 있는가? 우리의 세계가 폭발을 해서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쇼팽과 루빈스타인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디나의 이야기를 수십만 독자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녀 또한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지금까지 내게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선한 자가 악한 자의 광기와 욕망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르틴 그레이의 이야기를 통해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영원한 희망과 사랑을 노래한 최초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살인자 카인에 대한 처벌과 아벨의 영광을 성서 전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삶이 수고와 슬픔, 고통으로 가득해도 삶에 활력과 기쁨을 갖는 비결은 바로 마지막 날에는 아벨이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담겨 있으며 윤동주의 ‘별을 헤는 밤’에도 나타난다. 한 남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휘파람을 불면서 지나가는 모습 속에서도 보인다. 이 기쁨은 영원한 희망과 사랑이 연주하는 곡조이다. 그리고 이 기쁨이 세상의 색깔이라고 한다.


소망의 위대함을 믿으라


그대여,

소망의 위대함을 믿으라.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오물이 욕망이라면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연꽃이 소망이라니,

욕망은 인간의 범주에 머물러 세상을 몰락으로 인도하고

소망은 하늘의 범주에 도달해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한다.

그대여, 지금부터 소망하라.


- 이외수의 『청춘불패』중에서 -


“죽은 것들만 남아 있고 사랑하던 것들이 모두 죽은 까닭에 세상이 의미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 특히 당신이 알았으면 좋을 비밀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의 비밀이 희망의 힘에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은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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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6.29 14:03:35 *.216.130.188
글 잘 읽었습니다.
현재 형님한테 주어진 희망은 뭔가요? 그것이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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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30 23:48:28 *.40.227.17
홍영 오라버니~^^
지금.. 저  혜향이..그리고.. 우리 가5기의 희망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흐흑
그저.. 저는.. 우리5기는.. 홍영 오라버니께서.. 카페에 들어와 족적 하나 남겨주시는 거이지여!!!

기렇게.. 기케.. 말씀을 드렸건만..
얼굴만 내밀고.. 기냥 가시면 어떠케여?
지켜보는 이가 많다는거.. 글구.. 지 승질..
더 말씀드리지 않겠어여!!!

^^  <---참고로 이거이는.. 억지 웃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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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1 11:42:20 *.171.64.242
철아~

네가 좀 놀라기는 놀랬던 모양이구나..
근데.. 왜 얌전한 홍영 오라버니 집에서 노니?

네 자리로 돌아와 정정 당당히 결투하자꾸나.
뭐.. 하나마나겠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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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7.01 00:10:37 *.216.130.188
큰일났네
드디어 조폭누님이 움직이실려구 하는 구먼
피해있어야지~ ~~~~~~~~~~~~~~~~~~~~휙 ^^ <......참고로 이거이는 웃는것이 아니여
                                                                                            놀란거지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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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세실
2009.07.08 14:49:03 *.126.80.203
예전에 어떤 책에 지옥이 왜 지옥인지 알아? 그곳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  라는 글 귀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희망은 살아가는 자에 있어서 꼭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세상이 희망의 의무로 묵묵히 이 험난한 삶의 고통을 이겨난간다면 죽음의 가치보다는 희망의 가치에 더 의미를 둘 텐데......점점 자살이라는 단어가 미화되는 현실에 슬퍼집니다.  산자에게 있어 희망은 의무......이 의무가 무거움과 숨막힘이 아니라 오늘을 또 내일을 살아갈 기쁨의 힘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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