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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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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일 13시 14분 등록

할 수 있을까?

이상한 회사다. 사장님은 왜 이런 회사를 만든 것일까? 회사에 들어 온지 한 달 째다. 정말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 일까? 앞으로 2개월도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될지 모른다. 설마 했지만 이곳의 누구도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가르쳐 줄 마음은 없어 보였다. 사장님도, 캐드를 배우기 위해 들어왔다는 경리누나도 그리고 가끔 놀러오는 듯한 사장님 친구 분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작렬한 하품을 구사하는 빽과 지금의 난관을 해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 싫다.

빽의 무관심을 능가하는 표정 때문이었는지 다음날부터 경리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것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어쩐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사흘이 흐르던 날 누나가 나타났다. 한 손에 귤 한 봉다리를 들고 들어왔다. 사장님은 누나 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20분이 지났는데도 똑 같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누나는 야릇한 미소를 남기며 책상 위에 사무실 열쇠를 놓고 나갔다. 나는 왜 나가느냐는 말도 묻지 못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은 처음이다. 누나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꽤나 화가나 있는 표정이다. 저런 무표정은 처음이다. 감정의 변화도 없다. 시종일과 컴퓨터 화면만 쳐다본다. 뭐라 말하지도 않는다.

이제 빽과 나 둘뿐이다. 사무실엔 산적 같은 사장님 말고 단 둘 뿐이다. 혹시 경리누나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주문을 한 것일까? 왜 이런 상황에서 그게 궁금한 걸까?

누나가 나가고 얼마나 되었을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사장님은 귤 봉다리를 집어들었다. 분명 저걸 먹으려고 든 것은 아니다. 사장님은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냅다 봉다리를 쇼파 쪽으로 던졌다. 봉지는 터졌고 귤은 파편이 되어 사무실 바닦을 둘러 다녔다. 난 숨죽이고 지켜보는 수밖에 달리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과연 빽은 이런 상황에서도 하품을 할까?' 빽을 보며 강아지 풀 뜻어 먹는 어이없는 생각을 해봤다. 빽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은 표정이 역력하다.

"니들도 저럴 꺼면 당장 나가!"

사장님의 음성은 높낮이가 없었다. 힘없이 뱃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뭔가 꾹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벗어놓은 점퍼를 입었다. 나가시려나 보다.

텅 빈 사무실. 불과 30분 만에 일어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분위기 였는데 불난 집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것처럼 것 잡을 수 없었다. 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 나 간다."

"너까지 왜 그래."

며칠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꼴을 본 빽이 회사에 있겠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 녀석 마저 떠나면 난 정말 외톨이가 된다.

"얌마. 지금 상황을 보고도 여기 있고 싶은 생각이 드냐. 들어. 니 두 눈으로 다 지켜 봤잖아. 뭘 더 생각해야 하는 거냐고. 너도 참 무던하다. 목숨걸때다 걸어."

빽의 말에 틀린 건 하나도 없다. 혹시나 했지만 사장님은 처음 말한 것처럼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 주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정말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듯 했다. 더군다나 경리누나가 나가게 된 이유를 잘은 모르겠지만 충분히 짐작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6개월 넘게 있었다면 나라도 못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을 무안하게 만들 것 까지 없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빽 말대로 왜 난 여기에 목숨을 걸려고 하는 것일까?

"야. 빽. 알았어. 너 가려면 가. 가라고."

"니가 그렇게 나오면 못갈 줄 아냐. 이 똘아이야."

"빽. 솔직히 너 갈 때 있어. 너 집 짓는거 배우러 가서 뭐 배웠냐. 혹시 쓰레기만 치우다 온거 아냐. 거기서도 한 일 년은 버티고 있어봐야지. 너나 나나 우리 같은 놈들이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냐고. 이 멍청한 새꺄. 대학까지 공부해서 그렇게 일 하는게 아니면 너나 나나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너 그게 뭔지 알기나 하는 거냐고."

"또. 지랄한다. 모른다 새꺄. 그러는 넌 아냐."

"에이. 열팔.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있겠냐."

"너도 모르면서 왜 나보고 지랄야 지랄이."

"그러니까 같이 해보자고 새꺄."

"뭘 해 보자는 거야 이 상황에서. 니 두 눈으로 보고도 아직도 모르겠냐구. 이 답답아."

"야. 빽. 우리가 뭘 해보긴 했냐. 솔직히 아무것도 없잖아. 해본 거라고는 누가 뭘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본 것과 하루 종일 모니터하고 눈싸움 한 것 밖에 더 있냐."

"얌마. 뭘 할 줄 알아야 하지. 조금이라도 좀 가르쳐 줘야 알 것 아니냐고. 수학도 덧셈 뺄셈 곱셈은 알아야 문제라도 읽을 수 있는거 아니냐. 너 설마 컴퓨터 켜고 끄는게 덧셈 뺄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 정말 미치겠다. 빽의 말에 뭐라 더 할 말을 잃었다. 이 넘 정말 나가려나 보다. 나 혼자는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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