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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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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6일 06시 20분 등록

역사 속의 나와 미래 속의 나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장면 3 개를  선택할 것   ( 1/2 페이지)

1.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레스링 양정모 선수의 금메달

내가 고등학교 일 학년 그러니까 펜싱을 시작하던 그 해의 일이었다.  한국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레스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이다.  그 이전에 한국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36년 손기정, 남승룡이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었으나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올랐다.
태극기가 시상대에 처음 오른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역도의 김성집 선수와 권투의 한수인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을 때 였다. 북한은 4년 앞서 뮌헨 올림픽에서 사격 종목에서 이호준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올림픽의 금메달은 한국 스포츠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며 경쟁 무대를 전국체전에서 세계 무대로 바꾸어 놓는 출발점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세계화, 신사고 라는 개념이 낯설었지만 스포츠는 이미 세계화를 시작했으며 성과도 긍정적이었다. 

2. 광주민주 항쟁과 학생운동 그리고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24회 올림픽 개최지 결정
1980년 5.18 광주 민중항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향이 광주인 나는 학교 데모 학년 주동인물이었고, 그 해에 동생이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뒤로 오랫동안 동향감시라는 것을 받았다.
1978년 박종규 대한 사격연맹회장은 세계 사격 선수권대회를 9월 24일부터 10월 5일까지 태능 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그 결과 세계연맹 관계자들과 참가관계자들로부터 칭찬과 함께 올림픽도 치를 수 있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박종규 회장은 자신감을 얻어 그 이듬해 1979년 10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 올림픽 유치 결정을 발표했으나 그로부터 며칠 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태가 발생해서 묻혀버렸다. 이듬해 5.18 민주항쟁을 진압하고 출범한 전두환 정권은 국가에 대한 대외 이미지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 결과 올림픽 유치를 결정하고 대대적인 유치작전을 통해서 1981년 9월 30일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경쟁 도시 일본의 나고야를 52 대 27로 완벽하게 물리치고 24회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게 되었다.

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2009년 5월 23일 오전 6시 45분 노무현 대통령이 짧은 유서를 남기고 투신하여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 시대의 영웅이 이었다. 고시를 통과했으면서도 자신의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버리고 가난한 서민과 억울한 노동자를 위해서 일했다. 그는 정직과 일관된 신념을 가지고 국가를 통치했으며 국익을 위해 자신의 편까지 외면하는 상황에서도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을 굳히지 않았다. 제왕의 법도란 권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권위를 내려 놓았다. 언론과의 갈등에서도 공권력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그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에서 벗어나 민주적 대통령의 품격을 보여 주었다.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   나는 머리 속이 먹먹해졌다.


*  왜 자신에게  그 장면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는지  알아내고 설명할 것 (1/2 페이지 )
  
앙정모 선수의 금메달은 내게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 당시 대학진학은 매우 어려웠으며 특히 펜싱종목을 육성하는 대학이 인천제전, 청주대학, 그리고 지방 국립대학교 사범대학이었다.  그러나 한국체육대학은 비인기 올림픽 펜싱 종목을 육성하고 있었다.한국체육대학은 양정모선수가 금메달을 딴 후에 청화대에 초정 된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도 더 많은 메달을 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동독의 골든 플랜과 몬트리올 올림픽의 성적을 예로 들면서 체육전문대학을 만들어 지도자를 양성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령에 의해 한국체육대학교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3회 입학생이 되었다. 
광주민중항생은 우리 가족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큰 누나가 하던 다섯 개의 식당은 망했고 그 결과 재정과 보증으로 연루되어 있던 가족들은 다 잃고 뿔뿔히 흩어졌다. 아버지는 화병으로 그해 겨울에 돌아 가셨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나는 동향감시를 받았다. 
바덴바덴의 올림픽 유치는 당시 IOC 부위원장에 일본인이 있었으며, 이미 나고야 개최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집고 한국이 압승을 하였다.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정부는 개최국의 명분과 성과를 위해서 대대적인 선수 지도자 육성계획을 세웠다.
나는 그로인하여 대학원을 다니던 중에 아르바이트로 ‘올림픽 꿈나무'들을 가르치는 기회가 있었고 '우수지도자'로 선발되어 표창과 함께 국비 프랑스 유학을 다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스물여섯의 나이로 '국가대표 코치'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내게 진정성과 성실함을 믿지만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사회의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위정자들의 폭력적이고 비도덕적 태도를 수정할 수 있는 길은 탁월한 전문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장면이 상징하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영하고 싶은 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것  ( 1 페이지)

양정모의 금메달은 세계화의 시작이라는 상징적 암시였고,  광주민중항쟁과 올림픽 유치는 시대적인 불행에도 불구하고 극복함으로써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신의와 의리를 모르는 자에게는 협력과 공존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자비도 의미가 없다는 것과 좀 더 고도의 전술과 전략의 개발에 있어서 문제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필요한 것 같다. 무장한 강자가 자신의 것을 지킬 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지난 30년의 세월동안 급변하고 있는 세계화된 사회에서 나의 삶은 전쟁이었다. 어떠한 대가라도 치루어서라도 이기려고 했던 그래서 절박하고 간절하게 살았던 과거의 시간들이 불가능을 극복하고 성과를 거두었을 때 나는 외면 당했다.
이순신 장군이나 ,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들을  조국과 민주화를 통해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원하였지만,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후 안전해지자 구원자의 탁월함에 대한 감사는 사라지고  위협이 되고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순신 장군처럼 스스로 총알을 맞이 하고 싶지도 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죽음으로서 똥묻은 개들로부터 재 묻은 자신의 진정성을 수호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혁명을 할 것이다. 내가 그 동안 가졌던 힘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힘으로써 혁명을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잘못된 사람들이고 많은 사람을 고통 받게 하는 변학또 보다 더 한 놈들이니까! 그러나 그들과 싸울 필요는 없다.  

그저 성실하고 진실되게 삶을 이어서 눈에 보이는 칼 대신에 눈에 보이지 않는 칼과 태도로서 새로운 자기혁명을 이룰 수 있게 할 것이다. 
나는 책 한 권을 쓸 것이다.  30년 동안 수백만번을 반복연습하면서, 일념으로 살았던 그 세월의 시간들을 정리하여 합리적인 방법과 체계를 세우고 사상과 철학을 완성할 것이다.

원한은 원한을 낳는 법, 그들의 심판은 그들의 역사와 신 앞에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선악이 매일의 삶 속에 있었음을 신과 만인들이 밝혀 줄 것이다.  

나의 사부께서 지적하셨던 말,
사람들은 칼을 쓰면서 ‘어쩔 수 없이’ 라고 말한다. 그러나 네게 칼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권위, 업적, 성과 축적이라는 욕망을 위해 폭력과 강요를 남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칼을 상대의 목에 겨누고 감사의 답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힘있는 자가 겁주지 않을 때 사랑 받기 때문이다.

 

IP *.131.12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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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3:07:32 *.204.150.153
사랑하는 산이 오빠.
오빤 우리 중 그 누구보다 네루다가 될 수 있는 인물이야.
네루다에겐 시였다면 오빠에겐 검이었을 뿐.

맨 끝의 문장을 난 믿어.
오빤 더 큰 힘을 지녀도 결코 겁주지 않을 사람이라는 거 말이야.

오빠의 검 끝에서 사랑이 춤 추는 그 날.
진정 오빠가 세상을 크게 껴안는 그런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어.
그 때까지 진정 우리 오기들이 함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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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2009.06.20 14:21:27 *.137.254.170
저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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