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숙인
  • 조회 수 3413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09년 6월 17일 18시 14분 등록

연구원 오프 수업 #3 :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장면 3가지]

1.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제작장면
2. 김구선생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관상을 보는 장면
3. 리처드 스톨만의 copy left 운동

 

[이유와 설명]

1.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의 프로그램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는 프레스코화였다.
프레스코의 뜻은 '신선하다'는 뜻인데 물기가 있고 석고 벽에 물기가 마르기 전에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기법이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잘못하면 수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뜯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프레스코화로 천장에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천장에 닿는 비계를 만들어
비계 위에 누운 채 목과 어깨를 약간 든 상태에서 4년 6개월 동안 이 그림을 프레스코화로 완성했다.

얼굴에는 온갖 물감이 흘러내려 피부병이 생기고 몸은 하프악기처럼 휘어지고, 항상 고개를 뒤로 제치고 그렸기 때문에 고개가 굳어 목이 잘 굽혀지지 않는 고통스럽고도 고된 작업이었다. 그 때의 고통을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내 붓은 늘 머리위에 있고 그림 물감은 바닥에 떨어져 내려 호사스러운 모양을 만들어 낸다. 내 다리는 허리를 가로질러 엉덩이에서 겨우 균형을 이룬다. 발 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조심조심 발자국을 띄울 따름이다. 내 얼굴 가죽은 옥죄어진 상태로 뒤로 꺾여진다.
내 뒤로 젖혀진 몸은 시리아인의 활과 같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30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600㎡ 크기의 대작을 혼자 그렸다.
어느 날 한 동료가 미켈란젤로에게 "지금 그리는 귀퉁이 인물화는 바닥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푸념했다. 이어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아주겠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미켈란젤로의 대답은 짧았다.
 
"내가 안다네."



2004년 겨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5일간의 유럽여행을 갔었다. 15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마음 속에 새겨진 것은 파리의 에펠탑도 아니었고, 런던에서 본 ‘시카고’ 뮤지컬도 아니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것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항상 책에서만 보던 그 그림이 그렇게 거대한지 미처 몰랐다. (가로 14.1미터, 세로 40.5 미터)

그림을 보는 내내 긴 시간 동안 외롭게 홀로 천장을 향해 드러누워 천장화를 그리고 있을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그림과 오버랩 되었다. 그의 지독한 프로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역작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시대를 뛰어 넘어 뭇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의 ‘장인정신’, ‘프로정신’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가 아닌 스스로 정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 내렸다.

"그 일을 왜 하는냐?"

라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각기 모두 다른 반응이 나올 것이다.
특정한 보상이 될 수도 있고 출세도 될 수 있고, 명예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동기에서 비롯된 요인의 경우, 그것이 사라지면 일순간에 일에 대한 열정, 더 나아가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함께 사라질 수 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외적인 조건이나 환경과는 상관없이 묵묵히 자기를 향해 자기 일에 목숨을 거는 순수한 동기, 그것은 내적 동기, 또 다른 말로 ‘미켈란젤로의 동기’라고 한다.

다른 사람이나 내가 속한 집단,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기를, 스스로의 선택과 삶에 대해 만족하기를 원한다.

 

2. 김구선생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관상을 보는 장면

백범일지 가운데 젊은 시절의 김구가 과거 시험에 회의를 느끼고 관상학을 배워야겠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 내용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이나 내 상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귀격, 부격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옴몸에 천격, 빈격, 흉격 밖에 없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짐승과 같이 살기 위해 산다면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러나 상서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身好不如心好)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백범 김구는 그의 자서전을 ‘범인의 자서전’이라 칭하며,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 누차 강조한다. 그의 삶의 기록을 읽어보았을 때 그는 범인으로 태어났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범인으로 태어나 거인으로 삶을 다한 그의 삶의 첫 단추는 어린 김구가 자신의 못난 상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야겠다’ 고 결심한 이 장면에 있지 않을까?

타고난 삶, 주어진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겠다는 이때의 다짐,
이것이 범인 김구를 거인 김구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의 삶의 수많은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 당시의 다짐이 종종 등장한다. 어려운 일이 닥치고 힘든 고비의 순간이 올 때 ‘타고난 삶을 뛰어넘고자 했던 그의 노력과 다짐’이 그를 바로 세우고 용감하게 앞으로 전진하게 만들었다.

20세기가 된 후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평등’ 이 마치 공기처럼 당연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자유와 평등’이 이론 만큼 지켜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삶을 선택하겠다는 다짐은 현재 내게 주어진 많은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걱정 어린 시선을 의식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에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된 삶일 것이며, 객체가 아닌 주체, 종이 아닌 주인으로서의 삶일 것이다.

모든 개인의 위대한 역사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사회에 의해 규정지어진 삶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결심 말이다.

 

3. 리처드 스톨만의 copy left 운동

2000년 6월 두명의 컴퓨터 천재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 명은 한국 친구의 자취방으로 향하고 한 명은 특급호텔로 향했다.
전자는 리처드 스톨만 MIT 컴퓨터 공학부 교수이며, 후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이다.

두 명은 한 때 같은 꿈을 꾸었다.
"세상 사람들의 컴퓨터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깔려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도 채 못되던 그 시절, ‘곧 모든 가정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날이 올 것이다’ 라고 천재들은 직감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정말 엄청난 상품이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하버드 대학 수학과를 중퇴하는 한 명의 해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 소프트 설립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하버드 대학을 떠나는 또 다른 사람, 리처드 스톨만은
"누구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겠어." 라는 결심을 한다.

빌 게이츠는 이내 소프트웨어 상품화에 성공하여 억만장자가 된다.
그의 초기 상품 베이직은 750달러라는 고가였음에도 판매수량은 단 40개였다.
베이직을 원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사를 택했고, 이런 이들에게 빌게이츠는 잡지에 공개편지를 띄운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더 나은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3년 동안 아무 대가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버그를 찾고 그 결과물을 공짜로 나눠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결국, 프로그램 복제는 도둑질과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우려와 달리 무료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배포했던 사람이 실제로 있었고, 그가 바로 리처드 스톨만이다

“완벽한 소프트웨어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탄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누구나 고치고 배포하고 사용할 수 있는'자유'가 주어져야 합니다. 컴퓨터가 너무나 중요한 이 세상에서 소프트웨어는 공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됩니다. “

그는 리누스 토르발즈가 처음 개발하여 전세계 컴퓨터 사용자가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리눅스 커널( Linux kernel)로 하여금 운영체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그는 "운영체제의 독점이 아닌 다수를 위한 공개"라는 원칙하에 전 세계의 5백만 명이 넘는 프로그래머 그룹을 형성하여 지금 이 순간에서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리처드 스톨만,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의 컴퓨터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깔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와 같이 꿈은 같았다.


참조 : 지식 채널 e <두 명의 해커>편



언젠가 친한 선배가 마케팅에 관심 많은 내게 꽤나 흥미로운 홈페이지를 소개해줬다
트렌드와칭(www.trendwatching.com) 이라는 웹사이트인데, 매월 무료 트렌드 브리핑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2002년에 만들어진 이 회사는 직원은 10명이 채 안되지만 170여개 국의 수백명의 스포터가 새로운 마케팅 트렌드, 시장현황을 전하고 이를 모으고 분석해 트렌드 분석 자료를 매월 내놓는 것이다.
이 회사의 자매회사인 스프링와이즈(www.springwise.com) 역시 전 세계의 8,000여명의 스포터들이 신규사업 아이템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처음 위키피디아 (www.wikipedia.org) 서비스를 알게 되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웹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람들의 지식이 모이고 수정되고, 정리되어 공동의 지식을 창출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짜릿함이 느껴진다. 지식의 독점되던 세상에서 점차 지식의 공유, 확산,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재미난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은 나 역시 적극적인 정보 창출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러한 지식의 공유, 공동생산의 역사를 거슬러보면, 리눅스를 의미있는 운영체계로 만든 리처드 스톨만 교수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가 강조하는 소프트웨어에서의 자유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뿐 아니라 소스코드도 본인이 원한다면 직접 수정하고 또 배포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이러한 그의 FSF(Free Software Foundation) 운동은 카피레프트 운동에까지 연결이 된다. 카피레프트 진영에게 저작권은 디지털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알고 보면 카피레프트는 태생부터가 카피라이트에 대항하기 위한 개념이다. 카피라이트에서 right 란 물론 권리를 뜻하지만 이를 오른편으로 볼 때 자신들이 왼편에 서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카피레프트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카피레프트는 "자신이 획득한(acquire)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복제(copy)하며 소스코드를 개작(modifying)하거나 변형된 것을 포장(repackaging)해서 분배(redistribution)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생각의 시작은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곳, 사회에 이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곳에서부터 이다. 그런데 ‘부’를 뛰어넘은 ‘지식’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곳, 사회에 이로운 가치를 ‘함께 생산’하는 곳은 어떠할까? 분명히 진화된 개념의 사회적 기업일 것이다. 훗날 이러한 일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세 번째 역사적 사건으로 리처드 스톨만 교수 편을 꼽아 보았다.


[참고자료]
카피레프트의 성자, 리처드 스톨만



[나오며...]


오프수업을 하고 승호 오라버니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승호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제작, 김구선생의 일화, 리처드 스톨만의 copy left 운동을 통해 현실에 반영하고 싶은 각각의 가치를 꼽아주었습니다. 이 중 가장 상위에 두는 가치가 무엇인가요?

나 : 모든 일의 시작은 ‘결심’에서부터 있는 것 같습니다. 주어진 삶이 아닌 주도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에서부터 모든 신화는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구선생의 일화를 첫째로 꼽습니다.
둘째로 삶을 사는 일을 대하는 태도인데요. 미켈란젤로와 같이 내적 동기 부여를 통한 프로의식, 이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관심이 있고 궁극적으로 진행해보고 싶은 일은 리처드 스톨만 교수와 같이 지식의 공유, 그리고 공동지식의 창출 작업이 아닌가 합니다. 상당히 흥미롭고 짜릿한 상상입니다. 

 

IP *.246.196.63

프로필 이미지
2009.06.20 18:51:47 *.204.150.140
우리 막내 그러나 언니, 오빠들보다 더 성숙한 쎄이쎄이...

쎄이야. 지금 어디있어? 한국 아니겠지...?
공간이 중요하진 않을 것 같아.
이 언니는 쎄이의 마음이 지금 어디있을까...를 생각해...

그 나이에 그렇게 깊다면 말이야
그 나이에 그렇게 고민한다면 말이야
그 나이에 그렇게 치열하다면 말이야
분명 우리 쎄이는 언니, 오빠들의 자랑이야...

나도 언젠가 카피라이트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부유층의 방어벽이 아닐까를 생각했더랬어.

김구선생님을 마음의 중심으로 미켈란젤로의 프로 정신으로 무장하고
그리고 빌 게이츠가 아닌 리처드 스톨만을 닮고 싶다는 쎄이는
분명 그 꿈을 이루리라 믿어.

쎄이야, 더 크고 더 넓게 너의 세상 마음껏 날기를 이 언니는 늘 응원해...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72 글을 쓴다는 것 [12] 혜향 2009.06.22 2834
1071 내 자신이 되기, 자유와 사랑 안에서… [6] 희산 장성우 2009.06.22 6663
1070 내가 전에 그랬었다. [7] 백산 2009.06.22 2959
1069 칼럼 10 - 내게 닿아있는 역사 -6월 오프 [2] 범해 좌경숙 2009.06.22 2993
1068 [12] <오쇼 라즈니쉬>를 읽고 - [사부님께 드리는 하얀 편지] [10] 수희향 2009.06.22 2895
1067 훈련된 무의식 [6] 書元 이승호 2009.06.22 3470
1066 삶의 여행법 [5] 예원 2009.06.21 3049
1065 6월 오프라인 과제 [3] 김홍영 2009.06.18 2835
1064 비단길과 함께하는 나의 역사 [1] 혜향 2009.06.18 3721
» [6월 과제] 역사적 사건과 내 안의 형상화 [1] 숙인 2009.06.17 3413
1062 이상한 반 아이들 11 - 맨땅에 해딩하기 [5] 홍스 2009.06.17 3452
1061 [6월 오프수업 과제 - 마징가 제트 합체!] [10] 수희향 2009.06.17 3376
1060 나는 왜 소심에 대해 쓰려 하는가 [13] 양재우 2009.06.17 3101
1059 (42) 나의 아버지는 유쾌한 택시 운전사 [8] 지희 2009.06.17 3433
1058 6월오프수업 과제 - 내 삶을 밝혀 줄 역사적 사건들 [2] 정야 2009.06.16 2959
1057 역사속의 위대한 나를 꿈꾸며 - 오프라인 수업과제 [2] 혁산 2009.06.16 2929
1056 역사 속의 나와 미래 속의 나 [2] 백산 2009.06.16 3119
1055 6월 오프라인 수업 과제 [1] 書元 이승호 2009.06.15 2698
1054 6월 과제: 역사와 나 [2] 예원 2009.06.15 2795
1053 <17시간 30분 릴레이 수업- 우리들의 두 번째 이야기> [25] 수희향 2009.06.14 2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