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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일 20시 04분 등록

보던 신문을 접고 접어서 머뭇거리던 것도 잠시. 결국 신문을 버스에서 들고 내리지 못했다. 여느 때 같으면 신문을 집으로 들고 와서 채 읽지 못한 내용을 더 훑어보고는 했다.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보던 신문을 던지듯 버스 좌석에 내려놓았다. 1면에 주먹만한 글자로 실린 연쇄살인 기사 때문이었다. 신문을 들고 갔다가 아이가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아이가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으로 이해를 시킬 수 있을까. 윤리라는 또는 상식이라는 것으로 이 현상을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들 아이는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알아듣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다 된 것일까. 그러면 한숨을 돌려도 되는 것일까.

연쇄살인이라는, 입을 벌려 말하기도 두려운 단어는 이제 희귀하지 않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터져 나오는 연쇄살인범은 우리의 이웃이고 옆 동네에 살고 있었다. 몸서리쳐지는 범행에 모두들 머리카락이 쭈뼛 솟아오르도록 놀라고는 하지만 연쇄살인범은 끊이지 않는다. 마치 공포영화속의 살인마처럼 사라진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들 옆에 다가오고는 한다.
연쇄살인의 형태는 시간이 가면서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욱하는 감정이 살인을 불렀지만 최근 들어서는 말 그대로 범죄의 형태가 의도되고 지능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범인들의 심리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공통적 소견을 보인다. 희생자들을 ‘도구’로 생각하며 영웅의식이 강하고 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다중인격의 모습을 보인다.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문명과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에 왜 이러한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일까. 문명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지혜가 열리고 사람의 도리에 대하여 더 많이 깨닫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왜?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생활형편이 좋아지고 삶이 풍족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답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현대의 고차원 방정식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문명이 발달해서 머리가 좋아졌지만(지혜가 아니고), 경제가 발달해서 삶은 풍족해졌지만 그 와중에 사람은 사라진 것이 아닌지. 영악함과 돈은 쌓여있지만 정작 세상살이의 기본인 사람을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예전이라고 할 것도 없는 불과 30년 전에만 해도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윤리와 상식이 있었다. 범죄가 없지 않았지만 부끄러움과 사람이 해야 할 바를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연탄가스로 사람이 죽어도 신문에 꼭 실리고는 했다.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고로 몇 명 죽는 것 정도는 신문에 실리지도 않는다. ‘사람’이 죽었음에도 말이다.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겪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의 세태가 두려운 것은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탐욕이 앞서는 모습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린 사람은 이제 그 자리를 다른 것에게 내주었다. 만물의 영장 자리를 새롭게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돈과 욕망이다.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그래서 돈과 욕망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을 부리고 있다. 사람이 부리던 돈과 욕망이 거꾸로 사람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돈과 경쟁은 이 시대 최고의 화두이자 최고의 선이다. 그것은 탐욕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시대와 사람을 지배하는 화두 앞에서 사람들은 속절없이 좌절하고 쓰러져 간다. 혹자는 승리의 노래를 부르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승자 역시 곧 또 다른 패배에 좌절하고 만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신에게도, 개인의 삶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끔찍하게 위하는 아이에게도 우리는 끝없는 탐욕을 가르치고 강요한다. 그것을 성공이라는, 행복이라는, 사랑이라는,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이 탐욕의 덩어리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지점까지 와 있다.
그러한 까닭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직장생활에서는 남을 견제하고 짓밟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성공을 하고 그 성공의 앞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삶에서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살아야 한다. 남보다 부족하게 사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에서도 예외는 없다. 사랑도 밥을 충분히 먹어야 생기는 것이 되었다. 생존 앞에서 사랑은 이미 시들은 꽃으로 전락했다. 아이에게는 무조건적인 승리를 강요한다. 그래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가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다른 아이는 알 바 아니다. 내 아이만 원하는 대로 이루어 내면 모든 게 좋은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많은 곳에서 ‘사람’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연쇄살인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야. 그렇지만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 내가 그 대상이 될 것도 아니고.’ 과연 그럴까. 진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행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들이 펼쳐내는 삶의 모습 때문이다.
무조건 내가 이겨야하고, 무조건 내가 많이 가져야하고, 무조건 내 아이가 성공해야 하는 사고의 틀 속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자. 그렇게 사는 우리들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을 한번이나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있기는 한걸까. 무조건 이겨야 하고 좋은 대학에만 가면 된다고 길러 낸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 배려의 마음을 가져보기는 했을까.
사람은 결국 어울려 살아야 한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아무리 좋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도,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인 것이다. 그러한 원초적인 개념을 무시하고 우리는 ‘사람’을 버리고 ‘나’만 찾는다. 그래서 ‘나’만 남으면, 그래서 ‘나’만 즐겁고 행복하면 정말 좋을까.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대단한 병적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의 삶을 사는 우리는 일정부분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위하는 의식이 강하고, 이익과 욕망 앞에서는 죄의식이 급격히 줄어들고, 필요에 따라 다중인격을 지닌다. 사이코패스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분명한 개인의 문제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그러한 범죄가 생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이루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는 탐욕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야할 터전을 불모의 척박한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내 발길에 심하게 채여 넘어진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상처와 증오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꼴이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멸망하지 않을 정도의 사랑은 아니어도 사람들을 둘러보며 살자. 그게 나를 위하고 내 자식을 위하는 일이다. 내가 그리고 내 아이들이, 자신들을 ‘도구’로 여기는 사람들보다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살인의 추억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추억으로 남겨두자. 살인의 추억보다는 사랑의 추억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IP *.163.6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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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9.02.02 09:36:32 *.209.32.129
감수성과 상상력이 발달한 편인 나도, 이런 흉악범죄에 접하면 계속 생각하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해야 합니다.
내가 참지 못하고 넘어 갔던 작은 충동이 - 주로 쇼핑 ^^
어떤 사람에게는 살인이었다는 것이 놀랍고,
때로 우리 안에 그 비슷한 파괴성과 잔인함이 없지도 않다는 것,

특히 그의 아들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가 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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